인간에게는 강한 경쟁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우리는 누가 가장 키가 큰지, 강한지, 부유한지, 영리한지를 알고 싶어 한다. 이렇게 일상의 많은 부분들이 객관적이라 믿어지는 기준으로 서열화 되며 순위 매겨진다. 그러나 소위 수많은 톱10 리스트는 주관적인 범주에 따라 산출된 것으로, 사실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예를 들어 뉴욕의 월드트레이드타워 꼭대기 첨탑은 빌딩 높이에 포함되지만, 시카고 윌리스타워의 안테나는 빌딩 높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빌딩의 필수 구조물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구경꾼들의 눈에 달렸다. 주관성이 개입되는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랭킹’의 문제제기가 시작된다. 오늘날 일종의 강박관념이 되어버린 대학 순위는 어떨까? 모두가 이 순위의 객관성을 의심하며 서열화 풍조를 비판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US 뉴스 앤 월드 리포트’지가 세계 대학 순위를 발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차트는 세계 대학 평판의 척도가 되었다. 이때부터 순위를 올리기 위한 대학 관계자들의 평판 경쟁이 격화되었는데, 입시생에게 무엇이 좋은 선택인지를 도우려는 의도는 역설적으로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US뉴스는 대학 평가를 위해 다수의 지표를 사용했는데 그중 하나로 교수 대 학생의 비율을 평가하는 ‘19명 미만인 강좌의 수’라는 기준이 있었다. 그러자 일부 대학들에서 강좌의 등록 정원을 19명으로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US뉴스가 상식에 준해 설정한 주관적인 기준일 뿐, 정원이 20명 이상일 때 수업의 질이 떨어진다는 아무런 근거도 없었다. 이렇게 우리는 순위를 끌어올리려고 현실을 조작하고 왜곡하는 존재다. ‘랭킹’의 저자 피터 에르디는 순위를 무시하고 살 수 없을 바에야 ‘순위 게임의 규칙’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순위는 객관성이라는 환상과 실재의 결합이며 언제나 조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순위는 양면적이다. 순위는 다차원적인 정보를 압축하고 객관적으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때로는 이 정보들이 주관적이고 편향되며 조작되기 쉽다는 점에서 부정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좋든 싫든 우리는 언제나 순위와 함께하기 때문에, 피터 에르디는 ‘랭킹’을 통해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순위 매기기 게임에 본질적으로 내재된 모순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이 모순을 잘 다룰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을 제시한다. 피터 에르디 지음 | 김동규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20년 11월 20일 출간 ■ 평판과 순위를 둘러싼 비즈니스의 숨겨진 알고리즘 지금까지의 행동경제학이 예측 가능하게 비이성적인 인간의 선택 문제에 집중했다면 ‘랭킹’은 그 선택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순위의 문제를 파고든다. 가령 우리의 모든 일상이 서로가 서로를 비교하여 우열을 가르는 일종의 사회적 순위 매기기 게임이라고 생각해 보자. 게임에는 규칙이 있게 마련인데 규칙이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면 그 게임에 계속 참여해야 할까?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FANG 기업(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을 비롯한 온라인 비즈니스 플랫폼들이다. 우리가 매일매일 소비하고 생산하는 어머어마한 양의 데이터들(검색, 구매, 좋아요, 별점, 리뷰, 상품평, 추천 등…)을 플랫폼 기업들은 공개되지 않은 알고리즘에 따라 처리해서 다양한 순위 목록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고 마케팅에도 활용한다.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우리는 이 사회적 순위 게임의 소비자일 뿐 아니라 생산자가 되고, 유저로서의 활동 데이터는 그 자체로 상품이 된다. 페이스북의 뉴스피드, 구글의 검색 순위, 넷플릭스와 아마존의 추천 리스트까지,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순위는 알고리즘에 기반을 두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인간의 주관이 개입된다. 알고리즘의 기반은 데이터고 그 데이터를 생산하는 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예측 가능하게 비이성적인’ 인간은 타인의 선택에 쉽게 영향 받기 때문에, 일단 순위가 공개되면 이는 즉각 새로운 순위에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순위는 과거를 반영할 뿐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 낸다. 편향 효과가 발생하고 핵심 이해 당사자들이 순위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조작과 편향의 가능성을 알면서도 결국 스스로 속아 넘어간다는 것, 이게 바로 우리가 순위를 대하는 역설적 태도의 본질이다. ‘랭킹’에서 저자의 메시지는 간명하다. ‘신뢰하되, 조심하라’는 것이다. 사회적 순위는 공동체의 의사결정과 선택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출현하는 것임을 인정하고 신뢰하되, 순위와 등급이 매겨지는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고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감시와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것이다. ‘랭킹’을 통해 일상을 지배하는 순위 매기기 게임의 숨은 규칙들을 깨닫고 나면, 독자들은 우리를 둘러싼 온/오프라인의 수많은 랭킹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책] 넷플릭스와 구글은 어떻게 막대한 부를 쌓았나?…‘랭킹’

박진희 기자 승인 2020.12.16 09:00 의견 0


인간에게는 강한 경쟁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우리는 누가 가장 키가 큰지, 강한지, 부유한지, 영리한지를 알고 싶어 한다. 이렇게 일상의 많은 부분들이 객관적이라 믿어지는 기준으로 서열화 되며 순위 매겨진다.

그러나 소위 수많은 톱10 리스트는 주관적인 범주에 따라 산출된 것으로, 사실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예를 들어 뉴욕의 월드트레이드타워 꼭대기 첨탑은 빌딩 높이에 포함되지만, 시카고 윌리스타워의 안테나는 빌딩 높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빌딩의 필수 구조물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구경꾼들의 눈에 달렸다. 주관성이 개입되는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랭킹’의 문제제기가 시작된다.

오늘날 일종의 강박관념이 되어버린 대학 순위는 어떨까? 모두가 이 순위의 객관성을 의심하며 서열화 풍조를 비판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US 뉴스 앤 월드 리포트’지가 세계 대학 순위를 발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차트는 세계 대학 평판의 척도가 되었다. 이때부터 순위를 올리기 위한 대학 관계자들의 평판 경쟁이 격화되었는데, 입시생에게 무엇이 좋은 선택인지를 도우려는 의도는 역설적으로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US뉴스는 대학 평가를 위해 다수의 지표를 사용했는데 그중 하나로 교수 대 학생의 비율을 평가하는 ‘19명 미만인 강좌의 수’라는 기준이 있었다. 그러자 일부 대학들에서 강좌의 등록 정원을 19명으로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US뉴스가 상식에 준해 설정한 주관적인 기준일 뿐, 정원이 20명 이상일 때 수업의 질이 떨어진다는 아무런 근거도 없었다. 이렇게 우리는 순위를 끌어올리려고 현실을 조작하고 왜곡하는 존재다.

‘랭킹’의 저자 피터 에르디는 순위를 무시하고 살 수 없을 바에야 ‘순위 게임의 규칙’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순위는 객관성이라는 환상과 실재의 결합이며 언제나 조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순위는 양면적이다. 순위는 다차원적인 정보를 압축하고 객관적으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때로는 이 정보들이 주관적이고 편향되며 조작되기 쉽다는 점에서 부정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좋든 싫든 우리는 언제나 순위와 함께하기 때문에, 피터 에르디는 ‘랭킹’을 통해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순위 매기기 게임에 본질적으로 내재된 모순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이 모순을 잘 다룰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을 제시한다.

피터 에르디 지음 | 김동규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20년 11월 20일 출간


■ 평판과 순위를 둘러싼 비즈니스의 숨겨진 알고리즘

지금까지의 행동경제학이 예측 가능하게 비이성적인 인간의 선택 문제에 집중했다면 ‘랭킹’은 그 선택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순위의 문제를 파고든다. 가령 우리의 모든 일상이 서로가 서로를 비교하여 우열을 가르는 일종의 사회적 순위 매기기 게임이라고 생각해 보자. 게임에는 규칙이 있게 마련인데 규칙이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면 그 게임에 계속 참여해야 할까?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FANG 기업(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을 비롯한 온라인 비즈니스 플랫폼들이다. 우리가 매일매일 소비하고 생산하는 어머어마한 양의 데이터들(검색, 구매, 좋아요, 별점, 리뷰, 상품평, 추천 등…)을 플랫폼 기업들은 공개되지 않은 알고리즘에 따라 처리해서 다양한 순위 목록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고 마케팅에도 활용한다.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우리는 이 사회적 순위 게임의 소비자일 뿐 아니라 생산자가 되고, 유저로서의 활동 데이터는 그 자체로 상품이 된다.

페이스북의 뉴스피드, 구글의 검색 순위, 넷플릭스와 아마존의 추천 리스트까지,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순위는 알고리즘에 기반을 두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인간의 주관이 개입된다.

알고리즘의 기반은 데이터고 그 데이터를 생산하는 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예측 가능하게 비이성적인’ 인간은 타인의 선택에 쉽게 영향 받기 때문에, 일단 순위가 공개되면 이는 즉각 새로운 순위에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순위는 과거를 반영할 뿐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 낸다. 편향 효과가 발생하고 핵심 이해 당사자들이 순위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조작과 편향의 가능성을 알면서도 결국 스스로 속아 넘어간다는 것, 이게 바로 우리가 순위를 대하는 역설적 태도의 본질이다.

‘랭킹’에서 저자의 메시지는 간명하다. ‘신뢰하되, 조심하라’는 것이다. 사회적 순위는 공동체의 의사결정과 선택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출현하는 것임을 인정하고 신뢰하되, 순위와 등급이 매겨지는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고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감시와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것이다. ‘랭킹’을 통해 일상을 지배하는 순위 매기기 게임의 숨은 규칙들을 깨닫고 나면, 독자들은 우리를 둘러싼 온/오프라인의 수많은 랭킹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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