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식을 가져라" 어렸을 때나 성년이 돼서나 저 말은 불편하다. '주인의식을 가져'라는 말을 듣는 대부분의 사람은 주인으로 행할 수 있는 권리는 별로 없고 책임만을 강요받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니 어폐가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다. 요컨대 주인의식 함양을 위해서는 주인의 권리와 책임이 둘 다 있어야겠다. 두 가지 선결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면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말은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다. 최근 대우건설 매각과정을 살펴보면 노동자들의 경제적 생존권이 달린 문제에 책임은 있는데 마땅한 권리는 없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던 것을 보면 안타깝다. 대우건설 노동조합은 지난 4월부터 산업은행이 매각 과정에서 '밀실 매각'을 벌였다면서 절차적 공정성 확보를 요구했다. 대우건설의 최대 주주는 산업은행이 설립한 KDB인베스트먼트(KDBI)이다. 아이러니하게 대우건설은 KDBI라는 주인이 있음에도 주인없는 회사로 불린다. KDBI는 대우건설에 대한 매각 책임과 재무구조 개선에 힘썼고 이에 따른 성과도 있었다. 그럼에도 KDBI는 대우건설의 주인으로 잘 불리지 않았다. 언젠가는 대우건설을 팔아야 할 회사로 시기를 조율했던 상황에서 KDBI에게 주인의식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 정도에서 문제가 있었다. 매각에만 몰두했을 뿐 공동체 내부 반발에 대해서는 다소 동떨어져있던 것으로 보인다. 인생 대다수 문제가 그렇듯 정도의 차이다. KDBI는 지나치게 매각 과정을 꽁꽁 숨겼고 이 과정에서 주인없는 회사에서 버텨온 노조의 인내심도 말라갔다. 심상철 대우건설 노조위원장은 "특정업체가 매각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위원장마저도 언론을 통해서 정보를 입수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우려를 표명했던 터다. 이후 총파업까지 각오했던 노조가 내세운 노동쟁의 이유는 임금 인상이었다. 누군가는 역시 돈 때문에 파업을 한 거라고 비난할 수 있겠다. 그러나 노조는 사용자의 매각 등 경영권 행사에 손댈 권리가 없기 때문에 쟁의권 확보를 위해서는 명분상 임금 교섭이 필연적인 선택이었다고 본다. 물론 임금교섭 타결로 쟁의권은 자동 소멸됐다. 이미 한차례 인수합병으로 실패를 맛봤던 대우건설 임직원들이다. 누가 주입시키지 않았도 권리는 없고 책임만 지는 불안감 가득한 주인의식이 자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본인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에 대우건설 노조 입장에서는 매각 등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함께 떠안아야 하는 구조임에도 매각 과정에서 발휘할 어떤 권리가 없었다. 이 같은 잡음에 대한 조율은 결국 차기 주인으로 유력한 중흥그룹이 맡았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대우건설 노조와 인수에 나선 중흥그룹은 서로가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한 모양새다. 적극적인 노조 움직임에 중흥도 대우건설 임직원들의 처우 개선에 힘쓰겠다며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다. 중흥그룹 입장에서는 사실상 회사의 인수합병 문제에 관여할 권리가 없는 노조와 협상을 하지 않고 매각을 그대로 밀어붙여도 절차상 크게 하자가 없다. 대우건설 노조도 회사 매각에 아무런 권리가 없으니 괜한 잡음을 일으키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권리가 없다고 기업의 중대한 결정을 방관한다면 이 또한 회사 장래를 생각하면 썩 좋은 방법은 아닌듯 싶다. 대우건설 노조는 매각 과정에서 아무런 법적 권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나름 융통성 있는 주인의식으로 파업에 나섰고 임금 인상 등 적법한 이익을 얻어냈다. 인수 과정에서 노조의 이야기를 귀기울일 법적 책임이 없는 중흥도 적정한 선에서 노조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KDBI가 꽁꽁 숨기기만했던 상황에서 진일보한 발전이 있던 셈이다. 커다란 변수만 없다면 중흥그룹이 대우건설의 새주인으로 되는 일은 확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행보에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대우건설이 업계 'BIG 5'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버텼던 임직원들과 중흥그룹의 '각자도생'을 기대해봄직하다.

[정지수의 랜드마크] 주인없는 회사와 노조, 그들의 주인의식

정지수 기자 승인 2021.11.29 14:11 의견 0


"주인의식을 가져라"

어렸을 때나 성년이 돼서나 저 말은 불편하다. '주인의식을 가져'라는 말을 듣는 대부분의 사람은 주인으로 행할 수 있는 권리는 별로 없고 책임만을 강요받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니 어폐가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다.

요컨대 주인의식 함양을 위해서는 주인의 권리와 책임이 둘 다 있어야겠다. 두 가지 선결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면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말은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다.

최근 대우건설 매각과정을 살펴보면 노동자들의 경제적 생존권이 달린 문제에 책임은 있는데 마땅한 권리는 없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던 것을 보면 안타깝다.

대우건설 노동조합은 지난 4월부터 산업은행이 매각 과정에서 '밀실 매각'을 벌였다면서 절차적 공정성 확보를 요구했다.

대우건설의 최대 주주는 산업은행이 설립한 KDB인베스트먼트(KDBI)이다. 아이러니하게 대우건설은 KDBI라는 주인이 있음에도 주인없는 회사로 불린다.

KDBI는 대우건설에 대한 매각 책임과 재무구조 개선에 힘썼고 이에 따른 성과도 있었다. 그럼에도 KDBI는 대우건설의 주인으로 잘 불리지 않았다.

언젠가는 대우건설을 팔아야 할 회사로 시기를 조율했던 상황에서 KDBI에게 주인의식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 정도에서 문제가 있었다. 매각에만 몰두했을 뿐 공동체 내부 반발에 대해서는 다소 동떨어져있던 것으로 보인다.

인생 대다수 문제가 그렇듯 정도의 차이다. KDBI는 지나치게 매각 과정을 꽁꽁 숨겼고 이 과정에서 주인없는 회사에서 버텨온 노조의 인내심도 말라갔다.

심상철 대우건설 노조위원장은 "특정업체가 매각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위원장마저도 언론을 통해서 정보를 입수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우려를 표명했던 터다.

이후 총파업까지 각오했던 노조가 내세운 노동쟁의 이유는 임금 인상이었다.

누군가는 역시 돈 때문에 파업을 한 거라고 비난할 수 있겠다. 그러나 노조는 사용자의 매각 등 경영권 행사에 손댈 권리가 없기 때문에 쟁의권 확보를 위해서는 명분상 임금 교섭이 필연적인 선택이었다고 본다. 물론 임금교섭 타결로 쟁의권은 자동 소멸됐다.

이미 한차례 인수합병으로 실패를 맛봤던 대우건설 임직원들이다. 누가 주입시키지 않았도 권리는 없고 책임만 지는 불안감 가득한 주인의식이 자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본인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에 대우건설 노조 입장에서는 매각 등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함께 떠안아야 하는 구조임에도 매각 과정에서 발휘할 어떤 권리가 없었다.

이 같은 잡음에 대한 조율은 결국 차기 주인으로 유력한 중흥그룹이 맡았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대우건설 노조와 인수에 나선 중흥그룹은 서로가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한 모양새다. 적극적인 노조 움직임에 중흥도 대우건설 임직원들의 처우 개선에 힘쓰겠다며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다.

중흥그룹 입장에서는 사실상 회사의 인수합병 문제에 관여할 권리가 없는 노조와 협상을 하지 않고 매각을 그대로 밀어붙여도 절차상 크게 하자가 없다.

대우건설 노조도 회사 매각에 아무런 권리가 없으니 괜한 잡음을 일으키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권리가 없다고 기업의 중대한 결정을 방관한다면 이 또한 회사 장래를 생각하면 썩 좋은 방법은 아닌듯 싶다.

대우건설 노조는 매각 과정에서 아무런 법적 권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나름 융통성 있는 주인의식으로 파업에 나섰고 임금 인상 등 적법한 이익을 얻어냈다.

인수 과정에서 노조의 이야기를 귀기울일 법적 책임이 없는 중흥도 적정한 선에서 노조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KDBI가 꽁꽁 숨기기만했던 상황에서 진일보한 발전이 있던 셈이다.

커다란 변수만 없다면 중흥그룹이 대우건설의 새주인으로 되는 일은 확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행보에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대우건설이 업계 'BIG 5'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버텼던 임직원들과 중흥그룹의 '각자도생'을 기대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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