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늦은 여름으로 기억합니다.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서울에 큰 비가 내렸습니다. 급기야 저지대인 망원동 일대에 홍수가 났지요. 요즘 핫하다는 그 망원동입니다. 수천 가구가 물에 잠기고, 비가 그쳤지만 물이 빠지지 않아 아수라장 그 자체였습니다. 수재의연금을 모금하고, 많은 사람들이 복구 지원에 나섰습니다. 분단 후 처음으로 북에서도 ‘남녘 동포’를 돕기 위한 구호품을 보내와 화제가 되었습니다. 망원동 살던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쌀과 담요를 받았는데, 상태가 영 아니었답니다. 쌀은 차마 버릴 수 없어 떡을 만들었고, 담요는 강아지 집에 깔아주었다더군요. 홍수에 관한 보도가 연일 이어지던 어느 날, 의미심장한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수해지역에 ‘장사꾼’들이 등장했답니다. 수재민들을 찾아다니며 필요한 물품을 파는데, 양초와 건전지가 인기 품목이라는군요. 전기가 안 들어오니 당연한 일입니다. 당시 대학 졸업반이던 제가 이 뉴스를 접하고 느낀 감정은 참 복잡했던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첫 감정은 ‘분노’에 가까웠습니다. 돈도 좋지만 수재민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는 건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분노는 점차 ‘고민’으로 바뀝니다. 장사꾼들은 수재민들의 ‘수요’에 ‘공급’을 담당했습니다. 시장의 법칙이 작동한 것이지요. 수재민을 상대로 장사를 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들에 대한 비난은 정당한 걸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사회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우리는 재해를 개인의 문제, 시장의 논리로 대처하지 않습니다. 재해가 발생하면 정부는 물론 많은 봉사 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이 나섭니다. 식사와 생필품이 제공되고, 임시 거처도 마련되지요. 세금이나 공과금의 유예, 면제도 이뤄집니다. 재해 현장의 장사꾼은 극히 예외적인 ‘일탈’일 뿐입니다. 이재민에게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요구하거나, 재해 현장에 수요, 공급의 법칙을 적용하는 사회도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있다면 정서상 미국일 가능성이 큰 데, 뉴스를 보면 우리와 큰 차이가 없는 듯합니다. 두 나라의 차이는 초점을 조금 바꾸면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환자에 대한 치료’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해, 미국에서 코로나에 걸려 한 달여 입원했던 환자에게 우리 돈 15억 원 정도의 치료비가 청구되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보험이 없다면 무조건 파산이지요? 다행히 그 환자는 보험이 있었는데도 5천만원 정도의 돈을 부담해야 한다고 합니다. 미국은 질병 치료에 사회가, 정부가 개입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개인의 문제이고, 시장의 법칙이 적용되는 영역입니다. 이러다 보니, 미국의 병원비는 상당히 비싸기로 유명합니다.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다면, 안됐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코로나 환자를 무상으로 치료해줍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경험했을 겁니다. 저도 연초에 코로나에 확진됐는데. 검사비, 진료비, 약 값 모두 공짜더군요. 기저질환자라고 보건소에서 산소포화도 측정기도 보내줬습니다. ‘격리 지원금’도 준다는군요. 솔직히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공적인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합니다. 소득에 따라 부과되는 보험료는 사실상 세금입니다. ‘재해 극복’과 마찬가지로 ‘질병 치료’를 개인의 능력, 시장의 법칙에만 맡길 수 없고, 사회,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공감대입니다. 이재민 문제와 달리 의료 서비스에선 두 나라가 확실한 차이를 보입니다. 아픈 사람에 대한 치료를 개인의 문제, 시장의 논리로 풀려던 세계 최강국 미국의 의료 서비스는 대한민국과 비교가 안 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생각’의 차이가 만든 결과입니다. 망원동 홍수에서 미국의 병원비까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냐고요? 미국의 의료 체계처럼 우리에게도 생각을 잘못해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주택문제’입니다. 치솟는 집값 때문에 무주택자는 박탈감에 빠지고, ‘부모 카드’가 없는 대부분의 청년들은 집을 구할 수 없어 결혼을 못 한답니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의 아파트 단지 등 주택가 모습(사진=연합뉴스) 오늘은 그 주택문제를 얘기하려 합니다. 주택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의료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로 갈립니다. 하나는 주택문제를 개인과 시장의 문제로 봅니다. 집도 ‘상품’이기 때문에 집값의 변동은 시장 법칙에 따른 것이고, 집으로 ‘떼부자’가 되든, ‘벼락 거지’가 되든, 개인의 판단이라는 입장입니다. 다른 시각은 집의 ‘공공성’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제 주택문제는 개인과 시장을 떠나, ‘사회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집의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아직 부족한 것 같습니다.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집이 왜 공공성을 갖는지 설명해 보겠습니다. 집은 ‘땅’을 전제로 합니다. 땅 없는 집은 없습니다. 그런데 땅은 국가, 사회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극적인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수복지구’란 말을 아시지요? 수복지구와 반대인 경우를 북한에서는 ‘신해방지구’라고 한답니다. 가정해 보겠습니다. 광복을 맞아 김 씨는 양양에, 이 씨는 개성에 땅을 잔뜩 사두었습니다. 6.25가 끝났을 때, 양양은 ‘수복지구’, 개성은 ‘신해방지구’가 되었습니다. 이 씨는 쫄딱 망했고, 김 씨는 기사회생했지요. 게다가 양양 땅이 속초시가 되면서 가격이 치솟았습니다. 이제 김 씨는 세상을 떠났겠지만, 그 후손들은 ‘지주’가 되어 땅땅거리며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김 씨에게 땅을 되찾아준 건 전장에서 쓰러져간 군인들입니다. 전쟁을 이겨낸 모든 국민입니다. 김 씨나 후손들이 ‘내 땅’이라고 목소리 높일 일이 아닙니다. 특수한 상황을 일반화시켰다고 비난하기 전에 ‘원래 땅은 누구의 것인가?’ ‘무슨 근거로 그들의 것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의 땅, 사유지라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대로 집을 지을 수도 없고, 내 땅에서 석유가 나온다고 내 것도 아닙니다. 도로를 만들거나, 택지를 조성한다면 다 내놔야 합니다. 보상은 나중 얘기입니다. 이런 식이면 사유재산이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땅의 공공성’을 부정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들입니다. 물론 집과 땅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언급했듯 집은 땅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공공성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집을 짓는 것 자체가 사회적 동의를 필요로 한다는 점도 공공성의 이유입니다. 요즘 선호되는 초고층 주거시설은 누군가가 조망권, 일조권의 침해를 수긍하고, 사회적 동의가 가능했기에 지을 수 있었던 겁니다. 집의 공공성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습니다. 여러분의 공감을 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집의 공공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크지 않듯이, 주택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도 개인과 시장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입니다. 돈을 빌려주겠다는 게 대책입니다. 집값이 오른 만큼 더 많이 빌려준다지요? 상환이 부담스럽다니 50년에 걸쳐 천천히 갚으랍니다. 젊어서 빚으로 집 사고 70, 80까지 평생 갚으며 살라는 얘기입니다. 당연히 이자도 내야지요. 살기 위해 필요한 집이 삶의 목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왠지 잔인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제가 까칠한 탓인가요? 주택문제를 ‘공급의 확대’로 해결하겠답니다. 가능할까요? 우리 사회의 주택 수요는 ‘살 집’에 대한 수요와 투기적 수요가 섞여있습니다. ‘집 투기’에는 남녀노소, 교육수준, 직업, 사회적 지위의 구분 없이 온 국민이 하나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죽했으면 부동산 투기가 ‘시대의 특혜’였다는 정신없는 소리가 나왔을까요? 투기 수요는 끝이 없습니다. 탐욕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공급을 늘리면 주택문제가 해결된다고 확신할 수 없을 뿐더러, 무작정 공급을 늘릴 수도 없습니다.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늘어난 공급으로 또 다른 ‘주택문제’가 시작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살 집’에 대한 수요도 공급으로 충족시키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지역엔 이미 집이 빽빽합니다. 어쩔 수 없이 대체지역에 공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공급으로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요? 빵을 원하는 사람에게 국수를 주면서 밀가루로 만들었으니 같다고 주장하면 설득이 될까요? 주택문제는 개인이나 시장에 맡겨놓을 일이 아닙니다. 이재민, 의료 서비스의 문제처럼 사회, 국가 차원의 고민과 대책이 필요합니다. 국가는 공공의 편의를 위해 도로, 철도를 건설하고 관리합니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위해 쌀값을 통제하고, 기본적인 농수산물을 비축, 관리합니다. ‘집’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두 해에 해결될 일도 아니고, 많은 돈이 필요해서 세금을 더 걷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집의 공공성에 대해 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입니다. 이 공감대를 바탕으로 바꿔야 할 ‘집에 대한 생각’이 있습니다. ‘음식을 남기면 죄받는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아마도 음식이 없어 굶주리는 누군가를 생각했던 것이겠지요. 집은 음식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삶에 필수 요소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내 것이니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집은 ‘돈벌이 수단’이나 ‘투기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됩니다. 집값이 올라 돈을 버는 게 비상식적인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집값을 오르게 하는 지하철역, 학교, 공원 등의 시설은 대부분 세금으로 만듭니다. 그 혜택을 받기에 유리하다면 비용을 더 분담해야 하거늘, 돈을 버는 게 정당한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대학시절 필독서였지요. 1981년 이 소설이 영화화되어 충무로 극장을 찾았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꼬마열차를 타고 난쟁이 아버지가 귀가하던 장면, 주인공 가족의 마지막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포크레인이 집을 부수던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난쏘공’은 70년대 소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재개발이 이뤄지지만, 돈이 없어 입주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서민들, 그들의 입주권을 사들여 ‘돈’을 벌겠다는 부자들의 욕심, 약자의 삶을 유린하는 대책 없는 철거... 50년이 지난 요즘과 차이가 없습니다. 50년 동안 집에 대한 ‘생각’에 변함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의 생각이 계속되면 주택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겠지요. 언제까지 이렇게 놔두어도 되는 걸까요. 주택문제, 생각을 바꿔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생각이 세상을 바꿉니다. ■ 작가 한동희는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ROTC 23기로 군복무를 마친 후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했다. 중앙개발과 삼성증권에서 인사, 법인영업을 거쳐 지점장으로 10년간 근무했다. 30여년 삼성맨을 마무리한 그는 퇴직한 후에도 여전히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 네이버 블로그 '까칠한 이야기'를 통해 돈, 금융 그리고 세상에 대한 '썰'을 재밌게 풀어내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글은 뷰어스에서 우선적으로 게재하며, 추후 작가의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다.

[한동희의 까칠한 이야기] 주택문제, 생각이 세상을 바꿉니다

한동희 승인 2022.07.08 14:01 | 최종 수정 2022.07.08 16:00 의견 0

1984년 늦은 여름으로 기억합니다.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서울에 큰 비가 내렸습니다. 급기야 저지대인 망원동 일대에 홍수가 났지요. 요즘 핫하다는 그 망원동입니다. 수천 가구가 물에 잠기고, 비가 그쳤지만 물이 빠지지 않아 아수라장 그 자체였습니다.

수재의연금을 모금하고, 많은 사람들이 복구 지원에 나섰습니다. 분단 후 처음으로 북에서도 ‘남녘 동포’를 돕기 위한 구호품을 보내와 화제가 되었습니다. 망원동 살던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쌀과 담요를 받았는데, 상태가 영 아니었답니다. 쌀은 차마 버릴 수 없어 떡을 만들었고, 담요는 강아지 집에 깔아주었다더군요.

홍수에 관한 보도가 연일 이어지던 어느 날, 의미심장한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수해지역에 ‘장사꾼’들이 등장했답니다. 수재민들을 찾아다니며 필요한 물품을 파는데, 양초와 건전지가 인기 품목이라는군요. 전기가 안 들어오니 당연한 일입니다.

당시 대학 졸업반이던 제가 이 뉴스를 접하고 느낀 감정은 참 복잡했던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첫 감정은 ‘분노’에 가까웠습니다. 돈도 좋지만 수재민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는 건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분노는 점차 ‘고민’으로 바뀝니다. 장사꾼들은 수재민들의 ‘수요’에 ‘공급’을 담당했습니다. 시장의 법칙이 작동한 것이지요. 수재민을 상대로 장사를 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들에 대한 비난은 정당한 걸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사회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우리는 재해를 개인의 문제, 시장의 논리로 대처하지 않습니다. 재해가 발생하면 정부는 물론 많은 봉사 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이 나섭니다. 식사와 생필품이 제공되고, 임시 거처도 마련되지요. 세금이나 공과금의 유예, 면제도 이뤄집니다. 재해 현장의 장사꾼은 극히 예외적인 ‘일탈’일 뿐입니다.

이재민에게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요구하거나, 재해 현장에 수요, 공급의 법칙을 적용하는 사회도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있다면 정서상 미국일 가능성이 큰 데, 뉴스를 보면 우리와 큰 차이가 없는 듯합니다. 두 나라의 차이는 초점을 조금 바꾸면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환자에 대한 치료’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해, 미국에서 코로나에 걸려 한 달여 입원했던 환자에게 우리 돈 15억 원 정도의 치료비가 청구되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보험이 없다면 무조건 파산이지요? 다행히 그 환자는 보험이 있었는데도 5천만원 정도의 돈을 부담해야 한다고 합니다.

미국은 질병 치료에 사회가, 정부가 개입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개인의 문제이고, 시장의 법칙이 적용되는 영역입니다. 이러다 보니, 미국의 병원비는 상당히 비싸기로 유명합니다.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다면, 안됐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코로나 환자를 무상으로 치료해줍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경험했을 겁니다. 저도 연초에 코로나에 확진됐는데. 검사비, 진료비, 약 값 모두 공짜더군요. 기저질환자라고 보건소에서 산소포화도 측정기도 보내줬습니다. ‘격리 지원금’도 준다는군요. 솔직히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공적인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합니다. 소득에 따라 부과되는 보험료는 사실상 세금입니다. ‘재해 극복’과 마찬가지로 ‘질병 치료’를 개인의 능력, 시장의 법칙에만 맡길 수 없고, 사회,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공감대입니다.

이재민 문제와 달리 의료 서비스에선 두 나라가 확실한 차이를 보입니다. 아픈 사람에 대한 치료를 개인의 문제, 시장의 논리로 풀려던 세계 최강국 미국의 의료 서비스는 대한민국과 비교가 안 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생각’의 차이가 만든 결과입니다.

망원동 홍수에서 미국의 병원비까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냐고요? 미국의 의료 체계처럼 우리에게도 생각을 잘못해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주택문제’입니다. 치솟는 집값 때문에 무주택자는 박탈감에 빠지고, ‘부모 카드’가 없는 대부분의 청년들은 집을 구할 수 없어 결혼을 못 한답니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의 아파트 단지 등 주택가 모습(사진=연합뉴스)


오늘은 그 주택문제를 얘기하려 합니다. 주택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의료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로 갈립니다. 하나는 주택문제를 개인과 시장의 문제로 봅니다. 집도 ‘상품’이기 때문에 집값의 변동은 시장 법칙에 따른 것이고, 집으로 ‘떼부자’가 되든, ‘벼락 거지’가 되든, 개인의 판단이라는 입장입니다.

다른 시각은 집의 ‘공공성’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제 주택문제는 개인과 시장을 떠나, ‘사회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집의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아직 부족한 것 같습니다.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집이 왜 공공성을 갖는지 설명해 보겠습니다.

집은 ‘땅’을 전제로 합니다. 땅 없는 집은 없습니다. 그런데 땅은 국가, 사회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극적인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수복지구’란 말을 아시지요? 수복지구와 반대인 경우를 북한에서는 ‘신해방지구’라고 한답니다.

가정해 보겠습니다. 광복을 맞아 김 씨는 양양에, 이 씨는 개성에 땅을 잔뜩 사두었습니다. 6.25가 끝났을 때, 양양은 ‘수복지구’, 개성은 ‘신해방지구’가 되었습니다. 이 씨는 쫄딱 망했고, 김 씨는 기사회생했지요. 게다가 양양 땅이 속초시가 되면서 가격이 치솟았습니다. 이제 김 씨는 세상을 떠났겠지만, 그 후손들은 ‘지주’가 되어 땅땅거리며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김 씨에게 땅을 되찾아준 건 전장에서 쓰러져간 군인들입니다. 전쟁을 이겨낸 모든 국민입니다. 김 씨나 후손들이 ‘내 땅’이라고 목소리 높일 일이 아닙니다. 특수한 상황을 일반화시켰다고 비난하기 전에 ‘원래 땅은 누구의 것인가?’ ‘무슨 근거로 그들의 것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의 땅, 사유지라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대로 집을 지을 수도 없고, 내 땅에서 석유가 나온다고 내 것도 아닙니다. 도로를 만들거나, 택지를 조성한다면 다 내놔야 합니다. 보상은 나중 얘기입니다. 이런 식이면 사유재산이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땅의 공공성’을 부정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들입니다.

물론 집과 땅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언급했듯 집은 땅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공공성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집을 짓는 것 자체가 사회적 동의를 필요로 한다는 점도 공공성의 이유입니다. 요즘 선호되는 초고층 주거시설은 누군가가 조망권, 일조권의 침해를 수긍하고, 사회적 동의가 가능했기에 지을 수 있었던 겁니다.

집의 공공성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습니다. 여러분의 공감을 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집의 공공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크지 않듯이, 주택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도 개인과 시장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입니다.

돈을 빌려주겠다는 게 대책입니다. 집값이 오른 만큼 더 많이 빌려준다지요? 상환이 부담스럽다니 50년에 걸쳐 천천히 갚으랍니다. 젊어서 빚으로 집 사고 70, 80까지 평생 갚으며 살라는 얘기입니다. 당연히 이자도 내야지요. 살기 위해 필요한 집이 삶의 목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왠지 잔인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제가 까칠한 탓인가요?

주택문제를 ‘공급의 확대’로 해결하겠답니다. 가능할까요? 우리 사회의 주택 수요는 ‘살 집’에 대한 수요와 투기적 수요가 섞여있습니다. ‘집 투기’에는 남녀노소, 교육수준, 직업, 사회적 지위의 구분 없이 온 국민이 하나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죽했으면 부동산 투기가 ‘시대의 특혜’였다는 정신없는 소리가 나왔을까요?

투기 수요는 끝이 없습니다. 탐욕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공급을 늘리면 주택문제가 해결된다고 확신할 수 없을 뿐더러, 무작정 공급을 늘릴 수도 없습니다.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늘어난 공급으로 또 다른 ‘주택문제’가 시작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살 집’에 대한 수요도 공급으로 충족시키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지역엔 이미 집이 빽빽합니다. 어쩔 수 없이 대체지역에 공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공급으로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요? 빵을 원하는 사람에게 국수를 주면서 밀가루로 만들었으니 같다고 주장하면 설득이 될까요?

주택문제는 개인이나 시장에 맡겨놓을 일이 아닙니다. 이재민, 의료 서비스의 문제처럼 사회, 국가 차원의 고민과 대책이 필요합니다. 국가는 공공의 편의를 위해 도로, 철도를 건설하고 관리합니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위해 쌀값을 통제하고, 기본적인 농수산물을 비축, 관리합니다. ‘집’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두 해에 해결될 일도 아니고, 많은 돈이 필요해서 세금을 더 걷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집의 공공성에 대해 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입니다. 이 공감대를 바탕으로 바꿔야 할 ‘집에 대한 생각’이 있습니다.

‘음식을 남기면 죄받는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아마도 음식이 없어 굶주리는 누군가를 생각했던 것이겠지요. 집은 음식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삶에 필수 요소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내 것이니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집은 ‘돈벌이 수단’이나 ‘투기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됩니다. 집값이 올라 돈을 버는 게 비상식적인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집값을 오르게 하는 지하철역, 학교, 공원 등의 시설은 대부분 세금으로 만듭니다. 그 혜택을 받기에 유리하다면 비용을 더 분담해야 하거늘, 돈을 버는 게 정당한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대학시절 필독서였지요. 1981년 이 소설이 영화화되어 충무로 극장을 찾았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꼬마열차를 타고 난쟁이 아버지가 귀가하던 장면, 주인공 가족의 마지막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포크레인이 집을 부수던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난쏘공’은 70년대 소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재개발이 이뤄지지만, 돈이 없어 입주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서민들, 그들의 입주권을 사들여 ‘돈’을 벌겠다는 부자들의 욕심, 약자의 삶을 유린하는 대책 없는 철거... 50년이 지난 요즘과 차이가 없습니다.

50년 동안 집에 대한 ‘생각’에 변함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의 생각이 계속되면 주택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겠지요. 언제까지 이렇게 놔두어도 되는 걸까요. 주택문제, 생각을 바꿔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생각이 세상을 바꿉니다.

■ 작가 한동희는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ROTC 23기로 군복무를 마친 후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했다. 중앙개발과 삼성증권에서 인사, 법인영업을 거쳐 지점장으로 10년간 근무했다. 30여년 삼성맨을 마무리한 그는 퇴직한 후에도 여전히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 네이버 블로그 '까칠한 이야기'를 통해 돈, 금융 그리고 세상에 대한 '썰'을 재밌게 풀어내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글은 뷰어스에서 우선적으로 게재하며, 추후 작가의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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