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카테고리별 은행 규제 미국은 자유주의 국가다. 규제를 싫어한다. 그래서 우리 시각으로는 황당할 정도의 허점이 있을 때도 있다. 미국은 은행을 자산규모에 따라 카테고리 1~4개로 나누어 규제한다. 지난주 파산으로 난리가 난 실리콘밸리은행(이하 SVB) 경우는 카테고리4 은행으로 유동성에 대한 매우 느슨한 규제를 받고 있다. 그래서 3년만에 예금을 3배나 늘리는 것이 가능했고, 자산의 절반을 고정금리 MBS에 투자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래서 하루만에 파산할 수 있었다. 카테고리4 이하의 은행, 즉 SVB와 같은 느슨한 규제를 받고 있는 은행이 미국에는 4000개가 넘는다. 이 은행들의 예금 규모는 원화로 60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4000개 은행들이 모두 SVB처럼 극단적 자산-부채 미스매칭 문제를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스스로 타이트한 재무정책을 쓰는 우량 금융기관이 대부분일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은행 고객 입장에서 그런걸 쉽게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내가 미국 지방은행에 예금을 갖고 있는데, 비슷한 규모의 다른 은행 주가가 오늘 하루만에 -70% 폭락하는 것을 봤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예금을 보장해준다고는 하는데 돈이 기약없이 묶일 수도 있고, 유한한 예금보험 자원으로 어디까지 막아줄런지 장담할 수 없다. 필자라면 당연히 지방은행에 들어가 있는 예금을 인출해서 대마불사가 적용되는 초대형 은행에 예금하거나 정부가 보증하는 MMF로 자금을 옮길 것 같다. 한국시간 13일 새벽, 미국 재무부, 연준, 예금보험공사가 합동으로 긴급 성명을 발표해서 SVB와 또다른 파산은행인 시그니처뱅크 예금자에 대한 구제책 등을 발표했다. 오전 7시 15분에 나온 성명문을 보면 어떻게든 월요일 아시아 세션 시작 전에 뱅크런 확산을 막겠다는 절실한 의지를 느낄 수가 있었다. 2007년 워싱턴 뮤추얼 파산을 방기했던 트라우마와 반면교사에서 오는 시기적절하고 신속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대책만으로는 소규모 은행의 예금자들이 가진 불안을 완전히 해결할 수가 없다. 소규모 은행에서 대형은행 혹은 MMF로의 머니무브(자금이동)는 도도히 전개될 것이고, 예금이 줄어든 은행들은 갖고 있는 시장성 자산을 매각하거나 만기가 도래한 대출의 연장을 해주지 못하게 될 것이다. 4000개가 넘는 미국의 소규모 은행들은 주로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SVB사태로 촉발된 머니무브는 이 대출 시장을 직접적으로 압박할 것이다. 소규모 은행이 겪고 있는 문제의 근본 원인은 가파른 금리인상과 양적긴축이다. 은행업의 기본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단기로 조달해 장기로 운용하는 것인데 연준의 빠른 금리인상으로 인해 장단기 금리 역전이 심화되면서 대부분의 소규모 은행들이 영업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양적긴축 시행으로 중앙은행이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다보니 거의 모든 금융기관들의 수신액이 줄어들고 있다. 모든 은행들의 예금을 정부가 무제한 보증해줄 수는 없다. 머니무브의 악순환을 막으려면 결국 금리인상을 중단하고 대량의 유동성을 공급해주는 수밖에 없다. 미국 연준은 지난 2019년 겨울 양적긴축을 시행 중에 금융권의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자 긴급히 돈을 푸는 이른바 ‘not-QE’를 시행한 적이 있다. 통화정책의 태세전환이 시급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국 주도의 글로벌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이 겪을 소동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수준이다. 긴급하게 상황은 전개되고 있는데, 통화정책 변화가 가져올 인플레이션에 대한 영향, 실패한 금융기관을 세금으로 살려줄 수 없다는 미국의 자유주의 문화, 양당 간의 갈등이 절체절명의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작년 가을 한국에서도 ‘레고랜드’로 사태로 촉발된 국지적인 유동성 위기가 있었고 정부와 한은의 적극적 개입으로 사태의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경제는 물리현상이 아닌 사회현상이고 모든 것은 합의의 문제다. 미국 정부의 현명한 대응을 기대한다. ■ 강대권 대표는 현재 라이프자산운용을 이끌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산업경제학 전공)를 마쳤고, 서울대 가치투자 동아리 '스믹(SMIC)' 출신으로도 유명하다. 가치투자 2세대 스타 펀드매니저인 강 대표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을 거쳐 유경PSG자산운용에서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역임했다. 당시 국내 운용사 최연소 CIO다. 지난 2016년, 2020년 국내 주식형 운용사 수익률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강대권의 시시각각] 미국 중소은행 예금의 머니무브

강대권 승인 2023.03.14 11:13 | 최종 수정 2023.03.14 13:17 의견 0
미국의 카테고리별 은행 규제


미국은 자유주의 국가다. 규제를 싫어한다. 그래서 우리 시각으로는 황당할 정도의 허점이 있을 때도 있다. 미국은 은행을 자산규모에 따라 카테고리 1~4개로 나누어 규제한다. 지난주 파산으로 난리가 난 실리콘밸리은행(이하 SVB) 경우는 카테고리4 은행으로 유동성에 대한 매우 느슨한 규제를 받고 있다. 그래서 3년만에 예금을 3배나 늘리는 것이 가능했고, 자산의 절반을 고정금리 MBS에 투자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래서 하루만에 파산할 수 있었다.

카테고리4 이하의 은행, 즉 SVB와 같은 느슨한 규제를 받고 있는 은행이 미국에는 4000개가 넘는다. 이 은행들의 예금 규모는 원화로 60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4000개 은행들이 모두 SVB처럼 극단적 자산-부채 미스매칭 문제를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스스로 타이트한 재무정책을 쓰는 우량 금융기관이 대부분일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은행 고객 입장에서 그런걸 쉽게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내가 미국 지방은행에 예금을 갖고 있는데, 비슷한 규모의 다른 은행 주가가 오늘 하루만에 -70% 폭락하는 것을 봤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예금을 보장해준다고는 하는데 돈이 기약없이 묶일 수도 있고, 유한한 예금보험 자원으로 어디까지 막아줄런지 장담할 수 없다. 필자라면 당연히 지방은행에 들어가 있는 예금을 인출해서 대마불사가 적용되는 초대형 은행에 예금하거나 정부가 보증하는 MMF로 자금을 옮길 것 같다.

한국시간 13일 새벽, 미국 재무부, 연준, 예금보험공사가 합동으로 긴급 성명을 발표해서 SVB와 또다른 파산은행인 시그니처뱅크 예금자에 대한 구제책 등을 발표했다. 오전 7시 15분에 나온 성명문을 보면 어떻게든 월요일 아시아 세션 시작 전에 뱅크런 확산을 막겠다는 절실한 의지를 느낄 수가 있었다. 2007년 워싱턴 뮤추얼 파산을 방기했던 트라우마와 반면교사에서 오는 시기적절하고 신속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대책만으로는 소규모 은행의 예금자들이 가진 불안을 완전히 해결할 수가 없다. 소규모 은행에서 대형은행 혹은 MMF로의 머니무브(자금이동)는 도도히 전개될 것이고, 예금이 줄어든 은행들은 갖고 있는 시장성 자산을 매각하거나 만기가 도래한 대출의 연장을 해주지 못하게 될 것이다. 4000개가 넘는 미국의 소규모 은행들은 주로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SVB사태로 촉발된 머니무브는 이 대출 시장을 직접적으로 압박할 것이다.

소규모 은행이 겪고 있는 문제의 근본 원인은 가파른 금리인상과 양적긴축이다. 은행업의 기본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단기로 조달해 장기로 운용하는 것인데 연준의 빠른 금리인상으로 인해 장단기 금리 역전이 심화되면서 대부분의 소규모 은행들이 영업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양적긴축 시행으로 중앙은행이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다보니 거의 모든 금융기관들의 수신액이 줄어들고 있다.

모든 은행들의 예금을 정부가 무제한 보증해줄 수는 없다. 머니무브의 악순환을 막으려면 결국 금리인상을 중단하고 대량의 유동성을 공급해주는 수밖에 없다. 미국 연준은 지난 2019년 겨울 양적긴축을 시행 중에 금융권의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자 긴급히 돈을 푸는 이른바 ‘not-QE’를 시행한 적이 있다.

통화정책의 태세전환이 시급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국 주도의 글로벌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이 겪을 소동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수준이다. 긴급하게 상황은 전개되고 있는데, 통화정책 변화가 가져올 인플레이션에 대한 영향, 실패한 금융기관을 세금으로 살려줄 수 없다는 미국의 자유주의 문화, 양당 간의 갈등이 절체절명의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작년 가을 한국에서도 ‘레고랜드’로 사태로 촉발된 국지적인 유동성 위기가 있었고 정부와 한은의 적극적 개입으로 사태의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경제는 물리현상이 아닌 사회현상이고 모든 것은 합의의 문제다. 미국 정부의 현명한 대응을 기대한다.


■ 강대권 대표는 현재 라이프자산운용을 이끌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산업경제학 전공)를 마쳤고, 서울대 가치투자 동아리 '스믹(SMIC)' 출신으로도 유명하다. 가치투자 2세대 스타 펀드매니저인 강 대표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을 거쳐 유경PSG자산운용에서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역임했다. 당시 국내 운용사 최연소 CIO다. 지난 2016년, 2020년 국내 주식형 운용사 수익률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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