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밝히지 말 걸 그랬어요” 20년 넘게 기자로 살고 17년을 복싱해설위원으로 활동하다 2017년 단편소설 ‘너와 나의 끈’으로 ‘조선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늦깎이 소설가로 변모한 한보영 작가의 말이다. 지난달 출간한 단편소설집 제목 ‘개새끼의 변명’의 대담함도 그렇고, ‘에로스의 화살’ ‘그는 살아있었다’ ‘천사의 미소’ ‘시인과 전쟁’ 등 수록된 10편의 소설에 표출해낸 생동감 넘치는 욕망의 실재성을 보더라도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한보영 작가의 나이는 우선 ‘너와 나의 끈’에 나오는 표현을 빌어 ‘할아비’ 정도로만 해 두자. 대략의 나이를 밝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소설을 읽노라면 마치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남자주인공 길(오웬 웰슨 분)이 같은 파리, 다른 시대로 스며들 듯 1980년대 한국남자가 오늘의 서울로 타임슬립 한 듯한 오묘한 느낌을 받는다. 요즘 젊은 남성들은 쓰지 않을 것 같은 말투, 시대적 한계에 의해 남성본위의 성인지감수성을 지녔지만 동시에 도덕률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지닌 남자가 주인공으로 종종 등장한다. 20세기 후반 30~40대 남성이 그 나이 그대로 21세기 초반 서울을 거니는 풍경은 도리어 오늘날 우리의 성인지감수성과 그에 연관된 윤리를 또렷이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한보영 작가의 나이가 더욱 빛을 발하는 작품은 ‘너와 나의 끈’이다. 사위 없이 손주를 보게 된 할아버지의 눈을 통해 할아버지-엄마-아들 단출한 삼대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자신의 의지로 아이를 낳아 홀로 키우는 딸의 인생, 딸이 일하러 간 새 독박육아를 하며 어린 손주와 나누는 교감에서 확인되는 ‘혈육’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강렬한 욕망이 인상적이다. MBC 복싱해설위원의 이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연작도 눈길을 끈다. 가난과 멸시를 벗고 사랑하는 여자와 태중아기를 위해 링에 오르지만 절명하고 마는 복서 이야기 ‘부나비의 꿈’, 유복자로 태어나 나이 서른이 돼서야 복서였던 친아버지가 있음을 알고 뒤늦게 복서가 되는 아들 이야기 ‘친부의 꿈’, 재취 자리로 들어가 눈칫밥 먹인 아들의 목숨값을 전처소생 아들들에게 뺏기는 어머니 이야기 ‘아들의 꿈’이 그것이다. 한보영 작가는 현재 장편소설을 집필 중이다. 한 여배우의 인생과 대한민국 정치현대사가 교묘하게 중첩되는 스토리다. 대중잡지 ‘아리랑’과 ‘주간시민’의 연예기자, 서울신문과 스포츠서울의 편집?해설위원 경험을 통해 쌓인 정보력과 내공이 고스란히 녹아든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편 ‘개새끼의 변명’은 도서출판 도화에서 지난 10월 7일 초판 발행됐다. ‘도화’는 고정적인 질서에 대한 익살맞은 비판자, 고정화된 사고의 틀을 해체한다는 뜻이다. 표지그림은 윤명로 화백의 ‘지옥도’이다.

[도서;뷰] 늦깎이 소설가 한보영이 들려주는 욕망 ‘개새끼의 변명’

홍종선 선임기자 승인 2019.11.19 15:45 의견 0
 


“나이를 밝히지 말 걸 그랬어요”

20년 넘게 기자로 살고 17년을 복싱해설위원으로 활동하다 2017년 단편소설 ‘너와 나의 끈’으로 ‘조선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늦깎이 소설가로 변모한 한보영 작가의 말이다.

지난달 출간한 단편소설집 제목 ‘개새끼의 변명’의 대담함도 그렇고, ‘에로스의 화살’ ‘그는 살아있었다’ ‘천사의 미소’ ‘시인과 전쟁’ 등 수록된 10편의 소설에 표출해낸 생동감 넘치는 욕망의 실재성을 보더라도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한보영 작가의 나이는 우선 ‘너와 나의 끈’에 나오는 표현을 빌어 ‘할아비’ 정도로만 해 두자. 대략의 나이를 밝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소설을 읽노라면 마치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남자주인공 길(오웬 웰슨 분)이 같은 파리, 다른 시대로 스며들 듯 1980년대 한국남자가 오늘의 서울로 타임슬립 한 듯한 오묘한 느낌을 받는다. 요즘 젊은 남성들은 쓰지 않을 것 같은 말투, 시대적 한계에 의해 남성본위의 성인지감수성을 지녔지만 동시에 도덕률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지닌 남자가 주인공으로 종종 등장한다. 20세기 후반 30~40대 남성이 그 나이 그대로 21세기 초반 서울을 거니는 풍경은 도리어 오늘날 우리의 성인지감수성과 그에 연관된 윤리를 또렷이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한보영 작가의 나이가 더욱 빛을 발하는 작품은 ‘너와 나의 끈’이다. 사위 없이 손주를 보게 된 할아버지의 눈을 통해 할아버지-엄마-아들 단출한 삼대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자신의 의지로 아이를 낳아 홀로 키우는 딸의 인생, 딸이 일하러 간 새 독박육아를 하며 어린 손주와 나누는 교감에서 확인되는 ‘혈육’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강렬한 욕망이 인상적이다.

MBC 복싱해설위원의 이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연작도 눈길을 끈다. 가난과 멸시를 벗고 사랑하는 여자와 태중아기를 위해 링에 오르지만 절명하고 마는 복서 이야기 ‘부나비의 꿈’, 유복자로 태어나 나이 서른이 돼서야 복서였던 친아버지가 있음을 알고 뒤늦게 복서가 되는 아들 이야기 ‘친부의 꿈’, 재취 자리로 들어가 눈칫밥 먹인 아들의 목숨값을 전처소생 아들들에게 뺏기는 어머니 이야기 ‘아들의 꿈’이 그것이다.

한보영 작가는 현재 장편소설을 집필 중이다. 한 여배우의 인생과 대한민국 정치현대사가 교묘하게 중첩되는 스토리다. 대중잡지 ‘아리랑’과 ‘주간시민’의 연예기자, 서울신문과 스포츠서울의 편집?해설위원 경험을 통해 쌓인 정보력과 내공이 고스란히 녹아든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편 ‘개새끼의 변명’은 도서출판 도화에서 지난 10월 7일 초판 발행됐다. ‘도화’는 고정적인 질서에 대한 익살맞은 비판자, 고정화된 사고의 틀을 해체한다는 뜻이다. 표지그림은 윤명로 화백의 ‘지옥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