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유년시절 일상에 대한 기억이 뚜렷하지는 않다. 그러나 학교를 마치면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저녁이 되면 부모님과 있는 것이 당연했던 편안한 분위기만큼은 또렷하다.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에피소드 몇 개를 제외하면 그때 내가 어떤 하루들을 보냈는지 곱씹어 봐도 떠오르진 않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느낌을 먼저 받는다. 기억이 조금은 더 뚜렷한 청소년 시기에 대한 회상도 마찬가지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인기를 얻을 때, 그 시절 학교를 다녔던 세대가 아니었음에도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의 과거를 소환해 추억하곤 했다. 당시에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었고, 그때는 마치 전부인 것만 같았던 친구와 갈등하며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와의 이야기 속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웃고 있다. 힘들었던 일도 마냥 힘들지는 않았던 것처럼 느껴진다. 추억은 약간의 미화 과정을 거쳐 행복함과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비단 복고 드라마가 유행하지 않을 때도 과거의 에피소드는 대화의 단골 소재가 된다. 특히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는 더욱 그렇다.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면 거리는 쉽게 좁혀지고, 친밀감도 더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과거의 잘못을 이야기하면 회상이 아닌 ‘끄집어내는’ 것이 된다. 이미 지나간 실수나 흠을 반복해 소환하면 소심하거나 갑갑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 일이 당시 제대로 해결되지 못해 응어리가 남고,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더라도 그렇다. 일시적 봉합을 해결이라 착각했을 수도, 아니면 실수나 잘못을 마주하거나 책임질 용기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전건우 작가의 ‘소용돌이’는 기본적으로 호러 미스터리 장르에 속한다. 그러나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음산한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1991년 광선리에서 ‘독수리 오형제’로 활약하는 5명의 소년, 소녀 이야기는 유년시절 따뜻했던 기억을 그대로 불러오며 포근한 느낌을 선사하는 것이다. 숲까지 들어가 자신들의 아지트를 만들고, 그곳에서 어른들의 눈을 피해 노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6학년 초등학생들의 이야기는 소소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는 아이의 사연이 드러나고, 친구를 위해 물귀신을 소환하게 되면서 분위기는 급변한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물귀신을 간신히 수습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이후다. 엄청난 사건을 겪은 이후, 아이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전과 관계가 같지는 않았다. 어른으로 성장을 하며 서서히 멀어진다. 어린 시절 허술하게 봉합해둔 사건은 20년이 지나 다시 마을을 위협하고, 그때 그 아이들이 광선리에 다시 모이면서 본격적인 장르적 재미도 만들어진다. 장르는 호러지만, 유년시절의 기억과 우정 등 익숙한 감정들이 전개의 중심이 된다. 찬란했던 유년시절 이후 삶에 찌들고 평범해진 ‘독수리 오형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런 그들이 과거를 마주하는 용기를 내고 나서야 진짜 성장을 이뤄낼 때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나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책에 길을 묻다] 지난 실수를 마주하는 용기

호러 소설 ‘소용돌이’가 소환한 추억

장수정 기자 승인 2019.11.29 14:09 의견 0
사진=픽사베이


유년시절 일상에 대한 기억이 뚜렷하지는 않다. 그러나 학교를 마치면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저녁이 되면 부모님과 있는 것이 당연했던 편안한 분위기만큼은 또렷하다.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에피소드 몇 개를 제외하면 그때 내가 어떤 하루들을 보냈는지 곱씹어 봐도 떠오르진 않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느낌을 먼저 받는다.

기억이 조금은 더 뚜렷한 청소년 시기에 대한 회상도 마찬가지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인기를 얻을 때, 그 시절 학교를 다녔던 세대가 아니었음에도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의 과거를 소환해 추억하곤 했다.

당시에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었고, 그때는 마치 전부인 것만 같았던 친구와 갈등하며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와의 이야기 속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웃고 있다. 힘들었던 일도 마냥 힘들지는 않았던 것처럼 느껴진다. 추억은 약간의 미화 과정을 거쳐 행복함과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비단 복고 드라마가 유행하지 않을 때도 과거의 에피소드는 대화의 단골 소재가 된다. 특히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는 더욱 그렇다.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면 거리는 쉽게 좁혀지고, 친밀감도 더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과거의 잘못을 이야기하면 회상이 아닌 ‘끄집어내는’ 것이 된다. 이미 지나간 실수나 흠을 반복해 소환하면 소심하거나 갑갑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 일이 당시 제대로 해결되지 못해 응어리가 남고,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더라도 그렇다. 일시적 봉합을 해결이라 착각했을 수도, 아니면 실수나 잘못을 마주하거나 책임질 용기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전건우 작가의 ‘소용돌이’는 기본적으로 호러 미스터리 장르에 속한다. 그러나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음산한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1991년 광선리에서 ‘독수리 오형제’로 활약하는 5명의 소년, 소녀 이야기는 유년시절 따뜻했던 기억을 그대로 불러오며 포근한 느낌을 선사하는 것이다. 숲까지 들어가 자신들의 아지트를 만들고, 그곳에서 어른들의 눈을 피해 노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6학년 초등학생들의 이야기는 소소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는 아이의 사연이 드러나고, 친구를 위해 물귀신을 소환하게 되면서 분위기는 급변한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물귀신을 간신히 수습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이후다. 엄청난 사건을 겪은 이후, 아이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전과 관계가 같지는 않았다. 어른으로 성장을 하며 서서히 멀어진다.

어린 시절 허술하게 봉합해둔 사건은 20년이 지나 다시 마을을 위협하고, 그때 그 아이들이 광선리에 다시 모이면서 본격적인 장르적 재미도 만들어진다.

장르는 호러지만, 유년시절의 기억과 우정 등 익숙한 감정들이 전개의 중심이 된다. 찬란했던 유년시절 이후 삶에 찌들고 평범해진 ‘독수리 오형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런 그들이 과거를 마주하는 용기를 내고 나서야 진짜 성장을 이뤄낼 때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나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