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한 달 살기’의 나라로 급부상한 태국의 치앙마이를 큰 계획 없이 찾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20대 후반의 동생은 나에게 ‘걱정은 없냐’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별 것 아닌 질문이지만,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물론 당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쳇바퀴 같은 삶에 대한 스트레스로 가득했다. 생각해보니 복잡한 마음을 덜어내고자 떠난 그 곳에서도 난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디지털 노마드족(시간과 장소 구애 없이 일하는 디지털 유목민)이라고 부러워했다. 남들은 모은 돈을 족족 써대는데, 그나마 노트북 하나 덜렁 들고 다니면서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왜 놀러 와서도 일해야 하냐”며 해결되지 않는 불만으로 투덜대고 있는 나에게 이 동생은 말했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터무니없는 그 말이 가슴에 꽂혔다.  나의 치앙마이 생활이 ‘여행’이 아닌 ‘살기’가 된 것도 이 때부터였다. 사실 그 후로도 치앙마이에서의 일상은 비슷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새벽같이 일어나 일하고, 오후엔 자유롭게 일상을 보냈다. 서울에서의 일상과도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굳이 꼽자면 만나는 친구들이 달라졌고, 새로운 언어의 환경 정도였다. 놀라운 건 똑같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이 180도 바뀌었다.  치앙마이에서 만났던 그 동생은 책 한 권을 추천해줬다. 그냥 카페에서 ‘가볍게’ 읽으면 좋을 책이라는 말과 함께. 1년 전 회사를 그만둔 나에게 회사 선배가 생일선물로 건넨 책이었다. 치앙마이행 가방에 몇 권의 책을 함께 챙겼는데,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 책도 가방의 한 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뒤늦게 펼쳐 본 그 책은 하완 작가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였다.  이 책이 다른 책들에 밀려 읽혀지지도 못하고 책장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제목 때문이었다. 제목은 이렇게 매혹적으로 만들어놓고 결론은 ‘그래도 열심히 살자’ ‘노력해야지’ 등 훈계로 끝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정말 배신감과 분노가 치솟을 것 같았다. 뒤늦게 읽은 이 책에서 저자는 다행히 ‘괜찮다’고 말해줬다.  작가는 즐기는 삶을 살자고 말하면서 두 가지를 제안한다. 지금 살고 있는 인생의 방향을 체크하는 것, 그리고 경로를 설정했다면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는 것. 괴테도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말했다. 저자도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면서, 왜 계속 달리는 건데?’라고 묻는다. 원하는 인생의 방향을 확인하고 재설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내가 즐길 수 있는 속도로 인생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말들은 무엇 하나 빼놓고 싶지 않을 정도로 주옥같다. 공감하지 못할 문장이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아직 저자처럼 ‘포기’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아직도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불안하고 조급하고, 실패가 무섭기만 하지만 두 달의 태국 생활 중에 읽게 된 이 책 덕분에 위로를 받고, 무거운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적어도 지금은 타인의 평가보다는 스스로 느끼는 즐거움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아닐까.

[책에 길을 묻다] 정말 열심히 살지 않아도 괜찮을까?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지 모를 땐, 잠시 멈춰야

박정선 기자 승인 2019.12.13 10:05 | 최종 수정 2019.12.18 09:31 의견 0
사진=픽사베이

‘한 달 살기’의 나라로 급부상한 태국의 치앙마이를 큰 계획 없이 찾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20대 후반의 동생은 나에게 ‘걱정은 없냐’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별 것 아닌 질문이지만,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물론 당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쳇바퀴 같은 삶에 대한 스트레스로 가득했다. 생각해보니 복잡한 마음을 덜어내고자 떠난 그 곳에서도 난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디지털 노마드족(시간과 장소 구애 없이 일하는 디지털 유목민)이라고 부러워했다. 남들은 모은 돈을 족족 써대는데, 그나마 노트북 하나 덜렁 들고 다니면서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왜 놀러 와서도 일해야 하냐”며 해결되지 않는 불만으로 투덜대고 있는 나에게 이 동생은 말했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터무니없는 그 말이 가슴에 꽂혔다. 

나의 치앙마이 생활이 ‘여행’이 아닌 ‘살기’가 된 것도 이 때부터였다. 사실 그 후로도 치앙마이에서의 일상은 비슷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새벽같이 일어나 일하고, 오후엔 자유롭게 일상을 보냈다. 서울에서의 일상과도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굳이 꼽자면 만나는 친구들이 달라졌고, 새로운 언어의 환경 정도였다. 놀라운 건 똑같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이 180도 바뀌었다. 

치앙마이에서 만났던 그 동생은 책 한 권을 추천해줬다. 그냥 카페에서 ‘가볍게’ 읽으면 좋을 책이라는 말과 함께. 1년 전 회사를 그만둔 나에게 회사 선배가 생일선물로 건넨 책이었다. 치앙마이행 가방에 몇 권의 책을 함께 챙겼는데,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 책도 가방의 한 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뒤늦게 펼쳐 본 그 책은 하완 작가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였다. 

이 책이 다른 책들에 밀려 읽혀지지도 못하고 책장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제목 때문이었다. 제목은 이렇게 매혹적으로 만들어놓고 결론은 ‘그래도 열심히 살자’ ‘노력해야지’ 등 훈계로 끝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정말 배신감과 분노가 치솟을 것 같았다. 뒤늦게 읽은 이 책에서 저자는 다행히 ‘괜찮다’고 말해줬다. 

작가는 즐기는 삶을 살자고 말하면서 두 가지를 제안한다. 지금 살고 있는 인생의 방향을 체크하는 것, 그리고 경로를 설정했다면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는 것. 괴테도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말했다. 저자도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면서, 왜 계속 달리는 건데?’라고 묻는다. 원하는 인생의 방향을 확인하고 재설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내가 즐길 수 있는 속도로 인생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말들은 무엇 하나 빼놓고 싶지 않을 정도로 주옥같다. 공감하지 못할 문장이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아직 저자처럼 ‘포기’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아직도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불안하고 조급하고, 실패가 무섭기만 하지만 두 달의 태국 생활 중에 읽게 된 이 책 덕분에 위로를 받고, 무거운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적어도 지금은 타인의 평가보다는 스스로 느끼는 즐거움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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