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십수년 전 사회 초년생 때 나는 잘못된 성(性) 인식을 목도하는 황당한 경험을 한 적 있다. 주간지에서 일할 때라 마감 때면 다같이 밥을 시켜 회의실에 모여앉아 먹곤 했는데 3개월차 신입 기자로서 편한 자리는 아니었다. 주로 선배들이 하는 얘기를 주어담으며 묵묵히 밥을 먹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어느날 식사자리에서 여자 ‘팔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결혼도 안한 40대 남자 선배가 시집 잘 간 지인의 이야기를 하다 대뜸 “여자 팔자 두레박 팔자라는 말이 딱 맞아”라며 홍일점인 나를 쳐다보고는 “너도 시집 잘 가라”라고 말했다. 순간 가슴 속에 분노가 일었는데 기습공격에 준비되지 않은 터라 “저야 뭐…두레박 탈 일도 없고 우물 밑에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라고 우물쭈물 말하고 말았다. 아주 오래 전 일이었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날 정도로, 당시 선배의 말은 충격적이었고 가시지 않는 모욕이었다. 그래도 사회의 지성인이라 할 만한 양반이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이라 더 기억에 남았던 듯하다. 그런데 이 황당한 경험을 또 했다. 2019년 연말, 중년의 여성들끼리 모인 자리는 각기 다른 경제력을 가진 이들이 한 데 모여 있었다. 이 자리에서 40대 중반 여성이 어느 드라마에서 나왔다는 “여자가 40대에도 우아하지 않으면 게으르거나 가난해서야”라는 대사를 읊으며 두레박 얘길 했다. 자신은 남편이 사업을 잘하는 덕에 평탄하게, 우아하게 살고 있고 아이들에게도 넉넉한 재산을 벌써부터 마련해준 참이라며 “여자 팔자 두레박 팔자라는 말이 틀린 건 아니야”라며 호호거리고 웃었다. ‘허 참, 이 얘길 여자 입에서 듣게 될 줄이야’라고 생각하다 “그래서 언니가 형부한테 그렇게 꽉 잡혀 사시는구나, 호호”라고 말하고 말았다. 내 말에 숨겨진 가시를 알아챘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또 한번, 모욕의 기억이 더해진 자리였다. 멋지고 훌륭한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데 남성의 힘과 경제력에 좌우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며, 남녀 모두 경제생활을 하고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판국에 남자들은 왜 스스로 두레박 도르레꾼을 자처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세상은 평등해지고 있고, 남자들이 오히려 부당한 처지에 놓이는 성 역차별이 이뤄진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남녀를 구분하고 있으며, 하나의 성 아래에서도 서로를 계급으로 나누고 괄시하거나 선망하고 있다. ‘두레박’은 아주 단편적인 일화일 뿐이지만 세상의 많은 부분, 사람들의 생각 한켠에 여전히 성과 권력의 차별은 존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사람들 안에 잠재된 성권력의 차별과 사회의 미진한 부분을 꼬집는 반가운 책이 나왔다. 이미 40여년 전 ‘시녀 이야기’로 성평등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마거릿 애트우드가 ‘시녀이야기’의 후속격으로 내놓은 ‘증언들’(황금가지)이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지난 1985년 성과 권력을 다룬 디스토피아 소설의 대표작 ‘시녀 이야기’를 출간했고 이 책은 지금껏 전세계적으로 1000만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진다. ‘시녀 이야기’는 남녀 차별이 극심한 가상의 전체주의 국가에서 자행되는 여성 혐오와 학대를 엽기적으로 묘사했고, 허구의 세상을 통해 미국 사회에 내재한 백인 남성 우월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를 여성의 관점에서 현실적으로 비판한 소설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2017년 미국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로 제작돼 재조명되기도 했다.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가상 국가 ‘길리어드’가 어떻게 붕괴했냐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져왔고 작가는 이 질문에 영감을 얻어 ‘증언들’을 완성했다. ‘증언들’은 미국에서만 초판 50만부를 찍은 뒤 곧바로 증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며 영국에서는 4초에 한권씩 팔려나갔다. 지난해 10월에는 권위있는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 해당 문학상이 이례적으로 또 한 번 상을 준 작가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부커상 심사위원회가 “이 작품은 오늘날의 세상을 다룬 이야기다. 우리에게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주고 우리 마음에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힌 ‘증언들’은 전작인 ‘시녀 이야기’의 설정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다. ‘시녀이야기’로부터 15년 뒤 이야기를 그리는 이 작품은 각기 다른 환경과 직업을 가진 아그네스, 리디아, 데이지 등 세 명의 각기 다른 여성의 증언을 바탕으로 전작에서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와 함께 길리어드 정권의 몰락 과정을 다루고 있다. 남성 가부장제가 여성을 통제하고 차별하는 세상을 상상한 설정 속에서 극소수 통치 계급 남성과 결혼한 귀부인들을 제외한 모든 여성은 공식적으로 ‘아주머니’, ‘시녀’, ‘하녀’로 불리는 계급 질서에 구속돼 살아간다. ‘아주머니’는 하층 여성을 관리하고 교육하는 엘리트 여성 집단이지만 남성 비밀경찰의 감시를 받아야 하며 ‘시녀’는 통치자 남성의 집안에 거주하면서 첩 노릇을 하는 동시에 출산의 의무가 부여된다. ‘하녀’는 허드렛일을 하는 최하층 집단에 속한다. ‘증언들’은 이 각기 다른 계급의 세 여성이 증언하는 기록의 형식으로 구성되는데 ‘길리어드’ 공화국 이전 미국에서 판사였던 여성을 비롯해 남성 통치자의 씨받이가 될 여성, 현 정권에 반대하는 여성이 화자로 등장해 서사를 이어간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설정은 이 같은 체제 아래에서 여성은 호기심과 상상력을 발휘해선 안되고 누려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책에서 ‘아주머니’ 계급의 여성은 “금지된 것이라도 상상에는 열려 있다. 그래서 이브가 지식의 사과를 먹은 거야. 상상력이 지나쳐서. 그러니까 모르는 게 나은 것도 있다. 잘못하면 너희 꽃잎이 뜯겨 흩어진단다”라고 충고하며 여성의 현실을 상기시킨다. 이 작품은 지극히 가상의 설정 아래에서 전개되지만 현실에서의 성권력, 가부장적 잔재들을 생각해보면 현실과 아주 동떨어져 있다고 할 수 없다. 억지로 계급을 나눈 세상이라거나, 사랑이 아닌 강제의 결혼을 해야 하는 처지 혹은 마음대로 살아갈 자유를 상상하는 것조차 억압받는 현실은 아니지만 여전히 세상에는 경제력, 능력, 의지 및 실력과 반하는 투명한 계급창이 존재하며 황당하기 그지 없는 ‘두레박 팔자’가 결혼 상대를 좌우하기도 한다. 마음대로 살아가는가 싶지만 워킹맘,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여전히 꽉 막힌 시가와 처가라는 가족 울타리와 보이지 않는 억압은 ‘길리어드’의 체제 이상으로 우리 삶을 누르고 있다. 이 점을 생각하면 “오늘날의 세상을 다룬 이야기”라는 부커상 심사평도 틀린 말은 아니다. 작가 역시도 독자의 질문이 ‘증언들’의 영감이 됐으며 “또 다른 영감이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일 것”이라고 밝힌 바다. ‘증언들’은 그렇게 가상의 전체주의 세계를 다루면서 우리에게 성차별을 비롯해 인종차별, 사회의 양극화 등 각종 차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같은 차별이 초래할 미래 역시 소설 속 ‘길리어드’의 세상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책에 길을 묻다] 여전히 여성에 대한 차별은 존재한다

마거릿 애트우드 '증언들'

문다영 기자 승인 2020.01.21 13:01 | 최종 수정 2020.01.21 13:02 의견 0
(사진=픽사베이)

십수년 전 사회 초년생 때 나는 잘못된 성(性) 인식을 목도하는 황당한 경험을 한 적 있다. 주간지에서 일할 때라 마감 때면 다같이 밥을 시켜 회의실에 모여앉아 먹곤 했는데 3개월차 신입 기자로서 편한 자리는 아니었다. 주로 선배들이 하는 얘기를 주어담으며 묵묵히 밥을 먹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어느날 식사자리에서 여자 ‘팔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결혼도 안한 40대 남자 선배가 시집 잘 간 지인의 이야기를 하다 대뜸 “여자 팔자 두레박 팔자라는 말이 딱 맞아”라며 홍일점인 나를 쳐다보고는 “너도 시집 잘 가라”라고 말했다. 순간 가슴 속에 분노가 일었는데 기습공격에 준비되지 않은 터라 “저야 뭐…두레박 탈 일도 없고 우물 밑에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라고 우물쭈물 말하고 말았다.

아주 오래 전 일이었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날 정도로, 당시 선배의 말은 충격적이었고 가시지 않는 모욕이었다. 그래도 사회의 지성인이라 할 만한 양반이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이라 더 기억에 남았던 듯하다. 그런데 이 황당한 경험을 또 했다. 2019년 연말, 중년의 여성들끼리 모인 자리는 각기 다른 경제력을 가진 이들이 한 데 모여 있었다. 이 자리에서 40대 중반 여성이 어느 드라마에서 나왔다는 “여자가 40대에도 우아하지 않으면 게으르거나 가난해서야”라는 대사를 읊으며 두레박 얘길 했다. 자신은 남편이 사업을 잘하는 덕에 평탄하게, 우아하게 살고 있고 아이들에게도 넉넉한 재산을 벌써부터 마련해준 참이라며 “여자 팔자 두레박 팔자라는 말이 틀린 건 아니야”라며 호호거리고 웃었다. ‘허 참, 이 얘길 여자 입에서 듣게 될 줄이야’라고 생각하다 “그래서 언니가 형부한테 그렇게 꽉 잡혀 사시는구나, 호호”라고 말하고 말았다. 내 말에 숨겨진 가시를 알아챘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또 한번, 모욕의 기억이 더해진 자리였다. 멋지고 훌륭한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데 남성의 힘과 경제력에 좌우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며, 남녀 모두 경제생활을 하고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판국에 남자들은 왜 스스로 두레박 도르레꾼을 자처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세상은 평등해지고 있고, 남자들이 오히려 부당한 처지에 놓이는 성 역차별이 이뤄진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남녀를 구분하고 있으며, 하나의 성 아래에서도 서로를 계급으로 나누고 괄시하거나 선망하고 있다. ‘두레박’은 아주 단편적인 일화일 뿐이지만 세상의 많은 부분, 사람들의 생각 한켠에 여전히 성과 권력의 차별은 존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사람들 안에 잠재된 성권력의 차별과 사회의 미진한 부분을 꼬집는 반가운 책이 나왔다. 이미 40여년 전 ‘시녀 이야기’로 성평등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마거릿 애트우드가 ‘시녀이야기’의 후속격으로 내놓은 ‘증언들’(황금가지)이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지난 1985년 성과 권력을 다룬 디스토피아 소설의 대표작 ‘시녀 이야기’를 출간했고 이 책은 지금껏 전세계적으로 1000만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진다. ‘시녀 이야기’는 남녀 차별이 극심한 가상의 전체주의 국가에서 자행되는 여성 혐오와 학대를 엽기적으로 묘사했고, 허구의 세상을 통해 미국 사회에 내재한 백인 남성 우월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를 여성의 관점에서 현실적으로 비판한 소설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2017년 미국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로 제작돼 재조명되기도 했다.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가상 국가 ‘길리어드’가 어떻게 붕괴했냐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져왔고 작가는 이 질문에 영감을 얻어 ‘증언들’을 완성했다. ‘증언들’은 미국에서만 초판 50만부를 찍은 뒤 곧바로 증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며 영국에서는 4초에 한권씩 팔려나갔다. 지난해 10월에는 권위있는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 해당 문학상이 이례적으로 또 한 번 상을 준 작가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부커상 심사위원회가 “이 작품은 오늘날의 세상을 다룬 이야기다. 우리에게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주고 우리 마음에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힌 ‘증언들’은 전작인 ‘시녀 이야기’의 설정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다. ‘시녀이야기’로부터 15년 뒤 이야기를 그리는 이 작품은 각기 다른 환경과 직업을 가진 아그네스, 리디아, 데이지 등 세 명의 각기 다른 여성의 증언을 바탕으로 전작에서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와 함께 길리어드 정권의 몰락 과정을 다루고 있다. 남성 가부장제가 여성을 통제하고 차별하는 세상을 상상한 설정 속에서 극소수 통치 계급 남성과 결혼한 귀부인들을 제외한 모든 여성은 공식적으로 ‘아주머니’, ‘시녀’, ‘하녀’로 불리는 계급 질서에 구속돼 살아간다. ‘아주머니’는 하층 여성을 관리하고 교육하는 엘리트 여성 집단이지만 남성 비밀경찰의 감시를 받아야 하며 ‘시녀’는 통치자 남성의 집안에 거주하면서 첩 노릇을 하는 동시에 출산의 의무가 부여된다. ‘하녀’는 허드렛일을 하는 최하층 집단에 속한다.

‘증언들’은 이 각기 다른 계급의 세 여성이 증언하는 기록의 형식으로 구성되는데 ‘길리어드’ 공화국 이전 미국에서 판사였던 여성을 비롯해 남성 통치자의 씨받이가 될 여성, 현 정권에 반대하는 여성이 화자로 등장해 서사를 이어간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설정은 이 같은 체제 아래에서 여성은 호기심과 상상력을 발휘해선 안되고 누려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책에서 ‘아주머니’ 계급의 여성은 “금지된 것이라도 상상에는 열려 있다. 그래서 이브가 지식의 사과를 먹은 거야. 상상력이 지나쳐서. 그러니까 모르는 게 나은 것도 있다. 잘못하면 너희 꽃잎이 뜯겨 흩어진단다”라고 충고하며 여성의 현실을 상기시킨다.

이 작품은 지극히 가상의 설정 아래에서 전개되지만 현실에서의 성권력, 가부장적 잔재들을 생각해보면 현실과 아주 동떨어져 있다고 할 수 없다. 억지로 계급을 나눈 세상이라거나, 사랑이 아닌 강제의 결혼을 해야 하는 처지 혹은 마음대로 살아갈 자유를 상상하는 것조차 억압받는 현실은 아니지만 여전히 세상에는 경제력, 능력, 의지 및 실력과 반하는 투명한 계급창이 존재하며 황당하기 그지 없는 ‘두레박 팔자’가 결혼 상대를 좌우하기도 한다. 마음대로 살아가는가 싶지만 워킹맘,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여전히 꽉 막힌 시가와 처가라는 가족 울타리와 보이지 않는 억압은 ‘길리어드’의 체제 이상으로 우리 삶을 누르고 있다. 이 점을 생각하면 “오늘날의 세상을 다룬 이야기”라는 부커상 심사평도 틀린 말은 아니다. 작가 역시도 독자의 질문이 ‘증언들’의 영감이 됐으며 “또 다른 영감이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일 것”이라고 밝힌 바다.

‘증언들’은 그렇게 가상의 전체주의 세계를 다루면서 우리에게 성차별을 비롯해 인종차별, 사회의 양극화 등 각종 차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같은 차별이 초래할 미래 역시 소설 속 ‘길리어드’의 세상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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