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용훈. 사진 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오랜만에 감독을 인터뷰하고 싶은 영화를 만났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감독 김용훈, 제공배급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작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영화 ‘클로젯’이 ‘옷장 공포’를 한국영화에 도입했다는 점, 판타지공포로 풀어냈다는 사실에서 새로움을 맛보게 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스토리 전개 방식, 형식미 측면에서 신선함을 안기고 긴장미를 보존한다. 내용이 아니라 형식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대담한 신인, 관객에게 ‘뭔가 다른 것을 보여 드리는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출사표를 낸 감독 김용훈을 서울 삼청로 카페에서 만났다. 김용훈 감독은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로 확인시켰듯, 신인답지 않은 무게감으로 자신의 생각을 찬찬히 꺼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 인터뷰라기보다는 ‘대화’의 시간이었다. # 제가 영화를 잘못 봤는지도 모르겠어요. 잘못 봤다면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스토리 전개 순서를 바꾼 것만으로 이렇게 새로울 수 있나. 단순히 시간 순서대로 배열하지 않았다, 라고 표현하고 말기엔 아깝다 싶어요. 영화의 첫 장면이 스토리의 시작점이 아니라는 건 바로 알았어요, 돈가방을 든 남자의 얼굴을 감추었으니까요. 그럼 이 장면의 전체 스토리의 어디쯤인 걸까, 기승전결의 결인지 승인지 그걸 알고 싶은 마음으로 영화를 따라갔죠. 영화가 흘러가며 결말이 아니라는 건 금세 드러났고, 승인지 전인지 헷갈렸는데 저는 형사를 기준으로 삼았어요. 형사들이 그를 찾아다니는 장면이 나와서 능수능란했던 게 형사가 아니라 사기꾼의 특징이었나 했고, 그 뒤에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이 나왔죠. 두 장면의 시간이 역전된 것이라는 걸 기준으로 첫 장면이 ‘승’이라고 생각했죠. 결국 돈가방 첫 장면이 전체 스토리의 승, 그다음 얘기가 전이고, 전도연 배우의 등장과 함께 이야기는 순조로이 기승전결을 흘러간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생각 속에 영화를 추적하다 보니, 마치 탐정이 된 것처럼 훨씬 재미있게 본 것 같아요. 영화가 이미 1막, 2막 ‘막’으로 나뉘어 있으니, 저만의 엉뚱한 상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봐도 앞뒤가 맞아 흥미로웠어요. 그만큼 요새 감독의 색깔을 느낄 만한 없었다는 영화가 없었다는 뜻이겠죠. “아, 그렇게 보셨군요. 서술 트릭의 재미는 원작이 된 동명 소설에도 있어요. 저는 그걸 인물별로 풀어낸 것이고요. 보신 것처럼 의도하는 건 아니었어요. 전도연 배우, ‘연희’ 등장 이전의 스토리가 신현빈 배우, ‘미란’을 통해 있기도 하고요. 나름으로 재미있게 보신 것 같아 다행이에요. 음, 또 ‘막’이 불친절하다는 지적들도 있는데. 시나리오에는 막이 없었고, 극장에서 만날 순 없지만 막 없는 편집버전도 있는데 그만의 장점이 있어요.” # 제가 영화를 잘못 본 거네요, 하하. 말씀 들으며 승-전-기-승-전-결에 어긋나는 장면들이 떠올랐어요. 오류를 바로 인정하겠습니다(웃음). 막 없는 버전, 보고 싶네요. ‘막’과 관련해, 각 막의 제목을 보여 줄 때 타일 모양이 나오잖아요. 디자인으로만 쓰이는 건가, 특이하다 했는데 역시나 영화 막바지 전도연 배우의 결말에 가 닿더라고요. 짜릿했어요. 신인 감독이 막 구분 그래픽까지 신경 쓰는 여유가 있구나, 담대하다 싶은데요. “하수구에서 피가 거꾸로 솟는 장면을 보여 드린 건데. 후반부에 피가 흐르는 장면을 더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전반적으로 좋은 스태프를 많이 만났고 아이디어를 많이 주셨어요. 제가 먼저 생각한 부분도 있겠지만 저에게 자극을 주신 부분들이 많아요. 칭찬을 저 혼자 받을 수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사실을 정확히 설명함과 동시에 상대가 한 말에 대해 역전이나 정정을 점잖게 해내는 화법이 좋았다. 새로운 얼굴을 꺼낸 배우 정우성과 이를 연출한 김용훈 감독. 현장스케치 사진. #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무엇을 보여 주고픈 영화인가요. 어떤 영화는 메시지, 혹은 마지막 한 장면을 보여 주기 위해 2시간을 달린단 말이죠. 결과적으론 배우들의 향연, 편집의 묘미를 물씬 느끼게 하는데 시작도 그것이었을까 궁금해요. “스터리텔링의 독특함입니다. 외국영화를 보면 비선형적 구조라든가 여러 다른 구조가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시도가 없었던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다른 스토리구조를 보여 드리고 싶었고, 어려울 수 있는 구조가 잘 읽혔다는 말씀을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조금은 다른 서술 구조에 도전해 보고픈 욕심이 있었다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원작에서 취했던 것, 그것과는 별도로 영화에서 보여 줄 부분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습니다. 원작에서는 결말이 달라요. 중만(배성우 분)의 집에서 다 불에 타 죽는 거였는데요. 영화에선 ‘두 팔 두 다리만 멀쩡하면 된다, 살아갈 수 있다’를 보여 주잖아요. 그 얘기를 꼭 하고 싶었습니다. 불행이나 행복을 줄 수 있는 돈가방이 주어졌을 때의 선택,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영화는 가이드 정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스토리의 중심, 연희 역의 배우 전도연 # 네, 매무새 섹시한 영화라 교훈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말씀하신 그 대사의 울림이 너무 커요. 비슷한 상황을 코미디로 푼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 숨겨진 설정으로 스토리 전개의 묘미를 느끼게 하는 ‘범죄의 재구성’과 다른 지점이기도 하고. 인생의 깊은 페이소스를 담아내는데 윤여정 배우의 공이 크다 싶은데. 윤 배우님뿐 아니라 전도연, 정우성, 배성우 배우에 신인 중에 잘나가는 신현빈, 정가람 배우까지. 이런 꿈의 캐스팅, 장편 데뷔작에 가능하리라고 시나리오 쓸 때 상상이나 했었나요? “신인이다 보니 이분들이 해 줬으면 좋겠다,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꿈이죠. 쓸 때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제작사 장원석 대표가 전도연 배우와 친분이 있어요, 영화 ‘집으로 가는 길’로. 덕분에 연결될 수 있었고, ‘분량 적어도 꽉 찬 캐릭터입니다’ 말씀드렸어요. 전 선배께서 ‘다른 시나리오와 다른 지점 가졌다’며 작품을 많이 좋아해 주셨고, 그래서 먼저 캐스팅이 됐어요. 전 배우께서 친분이 있는 사람과 같이해 보자, 윤여정 선생님을 제안해 주셨고. 분량 적지만 중요한 역할인데. 수락해 주셨고. 이후 진경 선배도 그렇고 캐스팅의 퍼즐이 순로롭게 맞춰졌어요. 베테랑 제작사 대표가 있고 전도연 배우가 캐스팅돼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싶습니다.” “(정)우성 선배님도 그래요. 태영이라는 인물이 중요했는데, 태영과 정우성 배우의 이미지가 동떨어져 있어서 사실 생각 못했어요. 책 재미있게 봤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도 ‘매칭이 될까?’ 했는데. 만나서 얘기해 보면서 해 볼 수 있겠구나! 전도연 배우가 한다는 것에 선택을 받아들였다, 난 이런 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도연을) 받쳐 주든 같이 하든 무조건 하겠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정말 감사했어요.” 영화 스틸컷. 중만 역의 배우 배성우 # 기라성 같은 배우들의 출연으로 즐거운 건 관객이에요. 전도연-정우성의 만남도 왜 이제 이뤄졌나 싶은 새로운 조합이고요. 무엇보다 배우들에게서 새 얼굴을 꺼냈어요. 관록 붙은 배우, 많이 봐서 익숙한 배우에게서 신선미를 느끼게 하다니 놀라운 연출력이다 싶은데. 어떻게 가능했나요? “새 얼굴을 보셨다니 기쁩니다. 캐릭터를 배우분들이 잘 이해하셨어요. 배우들과 캐릭터 얘기는 잘 안 했어요. 워낙 베테랑이다 보니 디테일보다는 전체를 얘기했습니다. 우리 영화가 어떤 구조와 톤을 가지고 있는지 얘기 나눴어요. 그것만 해도 본인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아시더라고요.” “촬영이 시작됐고, 저도 현장에서 놀랐죠. 전체적 분위기 안에서 내가 보이기보다는 캐릭터에 충실해야겠다는 자세로 임하시는데 색깔이 다 다른 거예요. ‘새 얼굴’이라고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고요. 배성우 배우가 맡은 중만 역도 시나리오에선 무색무취였는데, (배성우와) 대화 나누며 적극적 캐릭터로 바뀌었어요. 행동하는 인물로 만든 부분이 있어요, 캐릭터가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배우들이 현장 편집본 보며 ‘아, 이런 영화는 이렇게 해야지’ 바로 체득하는 느낌이었어요. 이미 화면에 담긴 그 뉘앙스를 살리려 노력하시더라고요. 덕을 많이 봤죠. 사실 이렇게 해 달라, 이건 패스해 달라, 일일이 말할 수도 없었고. 그분들이 어떤 그림만 보시면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구나’ 현장에서 정리를 하더라고요. 오히려 수월했어요. 이런 대배우들과 찍는다 했을 때 주변에서 기가 보통이 아닌 분들이라 걱정들을 해줬는데 현장에서는 너무나 의외로 편하고 즐거웠죠.” 배우로서 '삶의 시간', 그 이유를 보여 주는 윤여정 # 현장에서도 놀라셨지만. 촬영장에서 미처 못 봤다가 편집하며 발견하게 된 명연기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진짜 좋아하는 장면이 마지막에 집을 바라보면서 했던 그 목소리랑 (잠시 회상하는 표정) 짧은 장면인데 너무나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현장에서는 불이 나고 있고, 해는 서서히 저물어서 빨리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당연히 현장 모니터로 봤지만 아주 자세히는 보지 못했는데 선배님 표정이 묘했어요, 너무 좋은 거예요. 사실 두 테이크를 갔어요. 묘한 느낌 한 번, 다른 느낌 한 번. 윤여정 선배님께서 ‘김 감독, 나는 그런 느낌도 괜찮은 것 같아’, 묘한 느낌 장면을 얘기하셨어요. 현장에서는 다른 느낌으로 붙였는데, 편집하며 묘한 느낌을 다시 봤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너무 좋아서 그걸로 완성본에 붙였어요.” #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즐겨 주시면 좋을까요. “너무 좋은 배우들이 많이 나오고 그들이 서로 만나면서 앙상블적 재미가 있지만. 스토리 면에서 예측하지 못하게 가다가 퍼즐이 맞춰지는 부분을 즐겨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 이게 이런 거였구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이렇게 흘러가네. 각자의 생각 속에서 봐 주셨으면 해요.” 주어진 1시간이 훌쩍 흘러, 질문은 많이 남아 있는데 시간이 부족한 상황. 여러 번 만난 친구와 속 얘기 털어놓은 것 같은 인터뷰를 마무리하기 위해 질문을 골라야 했다. 새로움을 시도하는 감독, 김용훈 # 어떤 감독이 되고 싶은가요. 김병우 감독은 갇힌 공간에서 얘기를 풀고, 김성훈 감독은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영화를 찍어요. 김용훈은 어떤 감독으로 남고 싶은가요. “새로운 거를 시도하려고 하는 감독으로 보이면 좋겠어요. 기존 영화들과 다른 지점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이거 어렵잖아요. 뭔가 다른 것을 보여 주고 싶은데, 세상에 다른 것이란 게 없잖아요. 다르다는 게 ‘어떤 부분’이냐에 대한 고민, 압박감이 있죠. 개인적으로 서스펜스가 있으면서 유머가 있는 그런 톤, 코엔 형제 영화를 좋아해요. 그분들이 다루는 기조가 아주 긴장하면서도 그 안에 유머 있으니까 긴장이 증폭되죠. 봉준호 감독도 이미 활용을 하셨고. 아마도 그런 식의 영화들을 생각하며 이 길을 가고 있지 싶습니다.” # 감독 김용훈에게 있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요. “아, 어렵네요. 사실은 영화감독, 어렸을 때부터 되고 싶었고 찍고 싶었는데. 그 기회를 어떻게 잡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죠, 문턱이 높으니까. 데뷔하고 나면 고민이 심플 해질 줄 알았어요. 첫 작품 끝나면, 이후엔 그동안 준비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펼치면 되겠지 했는데. 아니에요. 되레 이제 내가 어떤 색깔을 가져야 하나, ‘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라는 작품이 좀 다르게 보이는 영화가 된다면’이라는 전제하에 방향성을 고민하게 된 거예요. 리셋 되더라고요. 그전의 고민과 다르게 향후의 ‘어떤 선택’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한국영화를 넘어 비미국권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쓰며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쥔 오늘. 아카데미 첫 본선 진출에 국제장편영화상뿐 아니라 감본상, 감독상까지 총 4개 부문을 석권한 오늘의 영광이 내일로 이어지기 위해선 재기발랄한 신예 감독의 층이 두터워야 한다. 그 연장 선상에서 관객에게 새로운 밥상을 차려 드리고픈 김용훈 감독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길, 김용훈이라는 이름 석 자를 관객이 알게 되기를 희망한다. 홍종선 기자

[마주보기] 오랜만에 인터뷰하고픈 감독이 생겼다, ‘지푸라기…’ 김용훈

신선한 스토리구조, 편집의 묘미 ‘신선’
전도연-정우성-윤여정-배성우-정만식-박지환 ‘배우 향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이끈 김용훈 감독

홍종선 선임기자 승인 2020.02.24 17:26 | 최종 수정 2020.03.27 10:14 의견 0
감독 김용훈. 사진 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오랜만에 감독을 인터뷰하고 싶은 영화를 만났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감독 김용훈, 제공배급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작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영화 ‘클로젯’이 ‘옷장 공포’를 한국영화에 도입했다는 점, 판타지공포로 풀어냈다는 사실에서 새로움을 맛보게 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스토리 전개 방식, 형식미 측면에서 신선함을 안기고 긴장미를 보존한다. 내용이 아니라 형식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대담한 신인, 관객에게 ‘뭔가 다른 것을 보여 드리는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출사표를 낸 감독 김용훈을 서울 삼청로 카페에서 만났다.

김용훈 감독은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로 확인시켰듯, 신인답지 않은 무게감으로 자신의 생각을 찬찬히 꺼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 인터뷰라기보다는 ‘대화’의 시간이었다.

# 제가 영화를 잘못 봤는지도 모르겠어요. 잘못 봤다면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스토리 전개 순서를 바꾼 것만으로 이렇게 새로울 수 있나. 단순히 시간 순서대로 배열하지 않았다, 라고 표현하고 말기엔 아깝다 싶어요. 영화의 첫 장면이 스토리의 시작점이 아니라는 건 바로 알았어요, 돈가방을 든 남자의 얼굴을 감추었으니까요. 그럼 이 장면의 전체 스토리의 어디쯤인 걸까, 기승전결의 결인지 승인지 그걸 알고 싶은 마음으로 영화를 따라갔죠. 영화가 흘러가며 결말이 아니라는 건 금세 드러났고, 승인지 전인지 헷갈렸는데 저는 형사를 기준으로 삼았어요. 형사들이 그를 찾아다니는 장면이 나와서 능수능란했던 게 형사가 아니라 사기꾼의 특징이었나 했고, 그 뒤에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이 나왔죠. 두 장면의 시간이 역전된 것이라는 걸 기준으로 첫 장면이 ‘승’이라고 생각했죠. 결국 돈가방 첫 장면이 전체 스토리의 승, 그다음 얘기가 전이고, 전도연 배우의 등장과 함께 이야기는 순조로이 기승전결을 흘러간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생각 속에 영화를 추적하다 보니, 마치 탐정이 된 것처럼 훨씬 재미있게 본 것 같아요. 영화가 이미 1막, 2막 ‘막’으로 나뉘어 있으니, 저만의 엉뚱한 상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봐도 앞뒤가 맞아 흥미로웠어요. 그만큼 요새 감독의 색깔을 느낄 만한 없었다는 영화가 없었다는 뜻이겠죠.

“아, 그렇게 보셨군요. 서술 트릭의 재미는 원작이 된 동명 소설에도 있어요. 저는 그걸 인물별로 풀어낸 것이고요. 보신 것처럼 의도하는 건 아니었어요. 전도연 배우, ‘연희’ 등장 이전의 스토리가 신현빈 배우, ‘미란’을 통해 있기도 하고요. 나름으로 재미있게 보신 것 같아 다행이에요. 음, 또 ‘막’이 불친절하다는 지적들도 있는데. 시나리오에는 막이 없었고, 극장에서 만날 순 없지만 막 없는 편집버전도 있는데 그만의 장점이 있어요.”

# 제가 영화를 잘못 본 거네요, 하하. 말씀 들으며 승-전-기-승-전-결에 어긋나는 장면들이 떠올랐어요. 오류를 바로 인정하겠습니다(웃음). 막 없는 버전, 보고 싶네요. ‘막’과 관련해, 각 막의 제목을 보여 줄 때 타일 모양이 나오잖아요. 디자인으로만 쓰이는 건가, 특이하다 했는데 역시나 영화 막바지 전도연 배우의 결말에 가 닿더라고요. 짜릿했어요. 신인 감독이 막 구분 그래픽까지 신경 쓰는 여유가 있구나, 담대하다 싶은데요.

“하수구에서 피가 거꾸로 솟는 장면을 보여 드린 건데. 후반부에 피가 흐르는 장면을 더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전반적으로 좋은 스태프를 많이 만났고 아이디어를 많이 주셨어요. 제가 먼저 생각한 부분도 있겠지만 저에게 자극을 주신 부분들이 많아요. 칭찬을 저 혼자 받을 수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사실을 정확히 설명함과 동시에 상대가 한 말에 대해 역전이나 정정을 점잖게 해내는 화법이 좋았다.

새로운 얼굴을 꺼낸 배우 정우성과 이를 연출한 김용훈 감독. 현장스케치 사진.


#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무엇을 보여 주고픈 영화인가요. 어떤 영화는 메시지, 혹은 마지막 한 장면을 보여 주기 위해 2시간을 달린단 말이죠. 결과적으론 배우들의 향연, 편집의 묘미를 물씬 느끼게 하는데 시작도 그것이었을까 궁금해요.

“스터리텔링의 독특함입니다. 외국영화를 보면 비선형적 구조라든가 여러 다른 구조가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시도가 없었던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다른 스토리구조를 보여 드리고 싶었고, 어려울 수 있는 구조가 잘 읽혔다는 말씀을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조금은 다른 서술 구조에 도전해 보고픈 욕심이 있었다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원작에서 취했던 것, 그것과는 별도로 영화에서 보여 줄 부분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습니다. 원작에서는 결말이 달라요. 중만(배성우 분)의 집에서 다 불에 타 죽는 거였는데요. 영화에선 ‘두 팔 두 다리만 멀쩡하면 된다, 살아갈 수 있다’를 보여 주잖아요. 그 얘기를 꼭 하고 싶었습니다. 불행이나 행복을 줄 수 있는 돈가방이 주어졌을 때의 선택,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영화는 가이드 정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스토리의 중심, 연희 역의 배우 전도연


# 네, 매무새 섹시한 영화라 교훈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말씀하신 그 대사의 울림이 너무 커요. 비슷한 상황을 코미디로 푼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 숨겨진 설정으로 스토리 전개의 묘미를 느끼게 하는 ‘범죄의 재구성’과 다른 지점이기도 하고. 인생의 깊은 페이소스를 담아내는데 윤여정 배우의 공이 크다 싶은데. 윤 배우님뿐 아니라 전도연, 정우성, 배성우 배우에 신인 중에 잘나가는 신현빈, 정가람 배우까지. 이런 꿈의 캐스팅, 장편 데뷔작에 가능하리라고 시나리오 쓸 때 상상이나 했었나요?

“신인이다 보니 이분들이 해 줬으면 좋겠다,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꿈이죠. 쓸 때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제작사 장원석 대표가 전도연 배우와 친분이 있어요, 영화 ‘집으로 가는 길’로. 덕분에 연결될 수 있었고, ‘분량 적어도 꽉 찬 캐릭터입니다’ 말씀드렸어요. 전 선배께서 ‘다른 시나리오와 다른 지점 가졌다’며 작품을 많이 좋아해 주셨고, 그래서 먼저 캐스팅이 됐어요. 전 배우께서 친분이 있는 사람과 같이해 보자, 윤여정 선생님을 제안해 주셨고. 분량 적지만 중요한 역할인데. 수락해 주셨고. 이후 진경 선배도 그렇고 캐스팅의 퍼즐이 순로롭게 맞춰졌어요. 베테랑 제작사 대표가 있고 전도연 배우가 캐스팅돼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싶습니다.”

“(정)우성 선배님도 그래요. 태영이라는 인물이 중요했는데, 태영과 정우성 배우의 이미지가 동떨어져 있어서 사실 생각 못했어요. 책 재미있게 봤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도 ‘매칭이 될까?’ 했는데. 만나서 얘기해 보면서 해 볼 수 있겠구나! 전도연 배우가 한다는 것에 선택을 받아들였다, 난 이런 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도연을) 받쳐 주든 같이 하든 무조건 하겠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정말 감사했어요.”

영화 스틸컷. 중만 역의 배우 배성우


# 기라성 같은 배우들의 출연으로 즐거운 건 관객이에요. 전도연-정우성의 만남도 왜 이제 이뤄졌나 싶은 새로운 조합이고요. 무엇보다 배우들에게서 새 얼굴을 꺼냈어요. 관록 붙은 배우, 많이 봐서 익숙한 배우에게서 신선미를 느끼게 하다니 놀라운 연출력이다 싶은데. 어떻게 가능했나요?

“새 얼굴을 보셨다니 기쁩니다. 캐릭터를 배우분들이 잘 이해하셨어요. 배우들과 캐릭터 얘기는 잘 안 했어요. 워낙 베테랑이다 보니 디테일보다는 전체를 얘기했습니다. 우리 영화가 어떤 구조와 톤을 가지고 있는지 얘기 나눴어요. 그것만 해도 본인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아시더라고요.”

“촬영이 시작됐고, 저도 현장에서 놀랐죠. 전체적 분위기 안에서 내가 보이기보다는 캐릭터에 충실해야겠다는 자세로 임하시는데 색깔이 다 다른 거예요. ‘새 얼굴’이라고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고요. 배성우 배우가 맡은 중만 역도 시나리오에선 무색무취였는데, (배성우와) 대화 나누며 적극적 캐릭터로 바뀌었어요. 행동하는 인물로 만든 부분이 있어요, 캐릭터가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배우들이 현장 편집본 보며 ‘아, 이런 영화는 이렇게 해야지’ 바로 체득하는 느낌이었어요. 이미 화면에 담긴 그 뉘앙스를 살리려 노력하시더라고요. 덕을 많이 봤죠. 사실 이렇게 해 달라, 이건 패스해 달라, 일일이 말할 수도 없었고. 그분들이 어떤 그림만 보시면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구나’ 현장에서 정리를 하더라고요. 오히려 수월했어요. 이런 대배우들과 찍는다 했을 때 주변에서 기가 보통이 아닌 분들이라 걱정들을 해줬는데 현장에서는 너무나 의외로 편하고 즐거웠죠.”

배우로서 '삶의 시간', 그 이유를 보여 주는 윤여정


# 현장에서도 놀라셨지만. 촬영장에서 미처 못 봤다가 편집하며 발견하게 된 명연기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진짜 좋아하는 장면이 마지막에 집을 바라보면서 했던 그 목소리랑 (잠시 회상하는 표정) 짧은 장면인데 너무나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현장에서는 불이 나고 있고, 해는 서서히 저물어서 빨리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당연히 현장 모니터로 봤지만 아주 자세히는 보지 못했는데 선배님 표정이 묘했어요, 너무 좋은 거예요. 사실 두 테이크를 갔어요. 묘한 느낌 한 번, 다른 느낌 한 번. 윤여정 선배님께서 ‘김 감독, 나는 그런 느낌도 괜찮은 것 같아’, 묘한 느낌 장면을 얘기하셨어요. 현장에서는 다른 느낌으로 붙였는데, 편집하며 묘한 느낌을 다시 봤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너무 좋아서 그걸로 완성본에 붙였어요.”

#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즐겨 주시면 좋을까요.

“너무 좋은 배우들이 많이 나오고 그들이 서로 만나면서 앙상블적 재미가 있지만. 스토리 면에서 예측하지 못하게 가다가 퍼즐이 맞춰지는 부분을 즐겨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 이게 이런 거였구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이렇게 흘러가네. 각자의 생각 속에서 봐 주셨으면 해요.”

주어진 1시간이 훌쩍 흘러, 질문은 많이 남아 있는데 시간이 부족한 상황. 여러 번 만난 친구와 속 얘기 털어놓은 것 같은 인터뷰를 마무리하기 위해 질문을 골라야 했다.

새로움을 시도하는 감독, 김용훈


# 어떤 감독이 되고 싶은가요. 김병우 감독은 갇힌 공간에서 얘기를 풀고, 김성훈 감독은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영화를 찍어요. 김용훈은 어떤 감독으로 남고 싶은가요.

“새로운 거를 시도하려고 하는 감독으로 보이면 좋겠어요. 기존 영화들과 다른 지점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이거 어렵잖아요. 뭔가 다른 것을 보여 주고 싶은데, 세상에 다른 것이란 게 없잖아요. 다르다는 게 ‘어떤 부분’이냐에 대한 고민, 압박감이 있죠. 개인적으로 서스펜스가 있으면서 유머가 있는 그런 톤, 코엔 형제 영화를 좋아해요. 그분들이 다루는 기조가 아주 긴장하면서도 그 안에 유머 있으니까 긴장이 증폭되죠. 봉준호 감독도 이미 활용을 하셨고. 아마도 그런 식의 영화들을 생각하며 이 길을 가고 있지 싶습니다.”

# 감독 김용훈에게 있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요.

“아, 어렵네요. 사실은 영화감독, 어렸을 때부터 되고 싶었고 찍고 싶었는데. 그 기회를 어떻게 잡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죠, 문턱이 높으니까. 데뷔하고 나면 고민이 심플 해질 줄 알았어요. 첫 작품 끝나면, 이후엔 그동안 준비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펼치면 되겠지 했는데. 아니에요. 되레 이제 내가 어떤 색깔을 가져야 하나, ‘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라는 작품이 좀 다르게 보이는 영화가 된다면’이라는 전제하에 방향성을 고민하게 된 거예요. 리셋 되더라고요. 그전의 고민과 다르게 향후의 ‘어떤 선택’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한국영화를 넘어 비미국권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쓰며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쥔 오늘. 아카데미 첫 본선 진출에 국제장편영화상뿐 아니라 감본상, 감독상까지 총 4개 부문을 석권한 오늘의 영광이 내일로 이어지기 위해선 재기발랄한 신예 감독의 층이 두터워야 한다. 그 연장 선상에서 관객에게 새로운 밥상을 차려 드리고픈 김용훈 감독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길, 김용훈이라는 이름 석 자를 관객이 알게 되기를 희망한다.

홍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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