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금융사 경영진 선임에 운용사가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것은 사실상 업계 최초다. 지난 4일 라이프자산운용이 BNK금융지주에 보낸 서한은 그만큼 이례적이었고, 무성한 뒷말을 남겼다.

필자는 지난 10월 17일, 기고문 <금융지주 회장 선임, 지금이 관행 바꿀 적기다>를 통해 다음과 같이 썼다.

"상장회사 경영진은 주주의 대리인이다. (중략) 밀실이 아닌 열린 공간에서, 모든 주주가 함께 지켜보는 ‘투명한 축제’의 장에서 한국 금융의 미래를 이끌 리더가 탄생하길 바란다. 금융지주가 진정한 상장회사로서 주주 중심의 경영을 실현하는 순간, 한국 자본시장을 둘러싼 구조적 디스카운트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BNK금융지주에 대한 장기투자자이자 파트너로서, 이번 임추위가 시대가 요구하는 '축제'가 되기를 고대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현실은 관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망하고 주식을 팔아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회피는 답이 아니다. 코스피 5000을 향하는 역사적 길목에서, 우리는 다른 희망을 걸고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아래는 우리가 왜 공개 주주서한이라는 낯선 카드를 꺼내 들었는지에 대한 솔직한 답변이다.

이번 공개서한은 기존의 행동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지금껏 한국의 주주행동주의는 대개 '소액주주 대 대주주'의 싸움이었다. 이번 사태와 자주 비교되는 JB금융지주-얼라인파트너스 사례 역시, 본질은 주주 간 경영권 분쟁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공개서한은 주주 간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 이것은 주주 전체가 경영진과 이사회를 향해 보내는 '주주를 배제하지 말라'는 정당한 요구다.

표면적으로 임추위는 주주의 권한을 위임받은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을 추천하는 기구다. 그러나 BNK의 현실은 달랐다. 사외이사 전원이 현 회장과 함께 임기를 시작하거나, 임기 중에 선임되었고 7명 중 6명이 역시 현 회장과 함께 임기를 마친다. 운명공동체다.

더 심각한 것은 '스킨 인 더 게임(Skin in the game)'의 부재다. 이들 중 BNK 주식을 단 한 주라도 보유한 사람은 없다. 주주의 이익보다 경영진의 안위를 살피는 거수기로 전락하기 딱 좋은 구조다.

결과는 뻔했다. 최종 후보군(숏리스트)에 외부 인사는 전무했다. 이찬진 금감원장이 국감에서 지적한 표현 그대로, 내부자끼리 '참호를 구축하고' 경쟁을 원천 봉쇄했다. 규정은 지켰을지 몰라도, 정당성은 잃었다. 라이프자산운용이 지난 10월부터 지속적으로 "임추위 과정에 실질적 주인인 주주를 참여시켜 달라"고 신사적으로 요청해온 이유다.

그러나, 일정 공유는 거부됐고, 모든 과정이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기습적으로 발표됐다. 주주가 추천한 임추위 자문위원단을 구축하자는 요청도 감독당국 핑계로 묵살됐다. 결국 '내부자들만의 밀실 연임'이라는 구태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현재 최대주주인 롯데의 지분율을 넘어서는, 도합 10% 이상의 주주들이 우려에 공감했다. 아마 롯데그룹 역시, 대리인을 뽑는 과정에서 정작 주인이 배제되는 현실을 정상이라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이것은 특정 세력의 공격이 아니다. 무시당해온 주주들의 공통된 항의다.

민주주의가 1인 1표라면, 자본주의는 1주 1표다. 표의 등가성은 다르지만, '주권자'를 무시하면 시스템이 병든다는 점은 민주주의에서나 자본주의에서나 똑같다. 주인 없는 회사(소유분산기업)의 진짜 주인은 경영진이 아니라 주주다. 이 상식이 무시된 결과가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BNK처럼 근본적 경영 혁신이 필요한 기업일수록, 이 원칙은 더욱 뼈아프게 지켜져야 한다.

BNK에는 "진짜" 경영혁신이 필요하다

체격은 두 배인데 몸값은 같다. 2025년 3분기 말 기준, BNK의 자기자본은 10조 7000억원으로 JB금융지주(5조 8000억원)의 두 배에 달한다. 총자산 역시 158조원 대 71조원으로 압도적이다. 하지만 시가총액은 비슷하다.

이유는 명확하다. JB가 높은 효율성으로 성장을 거듭하는 동안, BNK는 빈대인 회장 취임 전(2021~22년)의 이익 규모조차 넘어서지 못했다. 시장 평가는 냉정하다. 금융지주 밸류에이션의 척도인 PBR(주가순자산비율)을 보면 JB는 0.8배, BNK는 0.45배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PBR이 낮은 회사는 시장의 물을 흐리는 것이니 정리해야 한다"고 일갈한 바 있다. 코스피 5000 시대를 논하는 지금, 대형 금융지주의 PBR 0.4배는 부끄러운 성적표다.

두 회사 모두 지방은행을 기반으로 한다. 오히려 조선/방산 같은 최근 호황을 누리는 '부울경'을 텃밭으로 둔 BNK이기에 상대적 부진이 뼈아프다. 여기에 임직원 횡령 사고와 대규모 부실 대출이 반복된다. 자본효율성, 성장성, 수익성, 리스크 관리, 주주환원 등 모든 지표가 업계 최하위다. 역설적이지만, 이것은 BNK가 조금만 혁신해도 기업가치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3년, 은행업 전반의 호황 덕에 BNK 주가도 올랐다. 현 회장은 이것을 연임의 명분으로 삼을지 모른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올해 상승장 속에서도 BNK의 수익률은 상장 은행지주사 중 꼴찌였다.

우리는 이 참담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투자 기간 내내 다음 세 가지 혁신안을 요구해왔다.

(1) 비용 효율화: 낭비를 없애라
BNK의 비용 효율성은 바닥이다. 자산 580조원의 KB국민은행 임원이 30명대 중반인데, 자산 135조원의 부산·경남은행 임원은 합쳐서 50명이 넘는다. 모바일뱅킹 무한경쟁 시대에 두 은행은 앱조차 따로 만든다. 쪼개진 비효율을 합치고, 인력과 영업점의 생산성을 경쟁사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2) 성과 중심주의: 순혈주의를 깨라
금융은 결국 사람 장사다. 소프트파워가 없으면 제 살 깎아먹는 금리 경쟁뿐이다. 이것이 BNK의 현주소다. 실력 있는 외부 인재를 영입하려면 보상 체계부터 바꿔야 한다. 회장과 임원진부터 스톡옵션이나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로 주주와 같은 배를 타야 한다. 대출성장률 채우기가 아닌, 철저한 마진관리와 이익 기여도에 따른 파격적 보상만이 뒤쳐진 경쟁력을 회복시킬 수 있다.

(3) 주주 추천 이사제: 감시자를 세워라
BNK가 경영혁신의 필요성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이미 ROE 10%, 주주환원 50% 같은 구호는 외친다. 문제는 실행이다. 내부의 복잡한 이해관계 탓에 혁신은 번번이 좌초됐다. 이를 돌파하려면 주주와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이사가 필요하다. BNK의 주주구성은 특정 대주주가 있는 재벌가족기업이 아닌, 다수의 주요 주주들이 존재하는 과점주주 체제다. 따라서 3% 이상 지분을 가진 주요 주주들에게 사외이사 추천권을 부여해야 한다. 그래야만 주주의 열망이 이사회에 닿고, 혁신의 속도를 낼 수 있다.

갈림길에 서서

우리의 요구는 거창하지 않다. "최소한 경쟁사만큼만 해달라"는 것이다. 시급한 경영 혁신을 통한 기업가치 정상화,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전부다. 하지만 이 오래된 요구들이 기존 경영 체제 하에서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에 BNK의 경영혁신은 경영진 스스로의 혁신이기도 하다.

주주를 배제한 참호 속 연임은 BNK가 혁신없이 영원한 '저PBR 주식'으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준다. 우리가 무거운 마음으로 임추위 중단과 이사진 교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게 된 배경이다.

지금 BNK는 한국 주식시장의 재평가 길목에서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가 될지, 도약의 엔진이 될지를 가르는 분수령에 서 있다. 어떤 운명을 택할지는 경영진의 몫이지만, 회사의 진정한 주인인 주주의 노력 또한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주주로서,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강대권 대표는 현재 라이프자산운용을 이끌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산업경제학 전공)를 마쳤고, 서울대 가치투자 동아리 '스믹(SMIC)' 출신으로도 유명하다. 가치투자 2세대 스타 펀드매니저인 강 대표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을 거쳐 유경PSG자산운용에서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역임했다. 당시 국내 운용사 최연소 CIO다. 지난 2016년, 2020년 국내 주식형 운용사 수익률 1위를 기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