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역대급 성장 속에 290조원대를 돌파했다. 연간 70%에 육박하는 증가세를 보인 시장에서 자산운용사들은 고객들에게 과연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들의 1년 성적표를 돌아봤다. -편집자주
(이미지=Google Gemini)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했던 시장의 열기가 한 김 사그러들었다. 지난해 근소한 차이로 좁혀졌던 1위 쟁탈전의 열기는 새정부 출범과 함께 불어온 국내 증시 훈풍을 타고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현재(12/4기준) 삼성자산운용의 ETF 순자산 규모는 110조5052억원을 기록 중이다. 이는 지난해 말(66조2508억원) 대비 66.8% 증가한 수준으로 시장 전체 성장률(67.13%)과 비슷하다.
반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지난해 말(62조641억원) 대비 51.7% 증가에 그치며 현재 95조295억원을 기록 중이다. 1년 전 불과 1.5%p, 5조원대까지 좁혀졌던 삼성운용과의 격차는 다시 5%p대, 15조원 수준까지 벌어졌다. 특히 미래에셋운용의 ETF 순자산 증가율은 상위 5개사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 KODEX, 'TIGER 독무대'였던 개인 시장 잡다
삼성자산운용의 질주는 상반기 시작과 함께 시작됐다. 지난해 추격에 진땀을 뺐던 삼성운용은 미국 대표지수형을 포함한 해외 ETF 시장 성장세와 함께 국내 증시 호황까지 더해지며 국내 ETF 원조라는 브랜드 파워 효과를 누렸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주도권을 잡고 있던 개인 시장에서부터 반격의 조짐이 일었다. 지난 2월 삼성운용의 개인 순매수 규모(6101억원)가 미래에셋운용(5858억원)을 앞서면서 ▲3월 47.2% vs 27.6% ▲4월 39.9% vs 39.4% ▲6월 43.6% vs 18.9% ▲7월 51.8% vs 17.2% 등 뒤집기에 성공했다.
증시 상승에 자금 유입까지 이어지며 순자산은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KODEX ETF 순자산은 지난 9월 90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한달 만인 10월 100조원대도 돌파하면서 ETF 출범 이후 처음으로 순자산 100조원을 넘긴 자산운용사라는 타이틀도 거머쥐게 됐다.
ETF 시장에 카피캣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새로운 유형의 상품을 출시한 것도 의미있는 성과다. 지난 3월 삼성운용은 아시아 최초 버퍼형 ETF인 ‘KODEX 미국S&P500버퍼3월액티브’를 상장하며 하락장에서 손실을 완충하고 상승장에도 참여하는 상품을 선보였다. 이 ETF의 수익률은 지난 4월 폭락장 당시 대비 30% 수준을 기록 중이다.
이밖에도 ‘K방산TOP10’, ‘KODEX 차이나휴머노이드로봇’, ‘KODEX차이나테크TOP10’, ‘KODEX금융고배당TOP10’, ‘KODEX 미국원자력SMR’ 등 투자 수요가 있는 다양한 테마형 ETF들도 출시하면서 라인업 보강에 주력하면서 시장 주도권을 강화했다.
■ 흔들린 TIGER, 재정비의 한해
반면 지난해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던 미래에셋운용은 연초부터 꼬인 스텝에 반강제적 숨고르기에 진입해야 했다.
지난 2월 미래에셋자산운용 ETF의 효자 상품인 미국 대표지수형 ETF들에 대한 분배금 이슈로 잡음이 시작된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핵심 인력 이탈이 이어지면서 조직은 내부 재정비가 불가피했다. 조직 내 팀워크 강화 및 투자자 신뢰 구축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내세웠던 팀 타이거에게는 새로운 위기이기도 했다.
시장 점유율은 팀워크 불안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지난해 말 36.1% 수준이었던 ETF 시장 점유율은 올해 시작과 함께 8개월 연속 하락하며 32.9%까지 떨어졌다. 연초 2.6%p 수준이던 삼성운용과 격차가 5.7%p까지 벌어진 것이다. 특히 지난 6월 개인 순매수 규모가 2561억원에 그치며 동기간 삼성운용(6099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데 이어 7월에는 무려 ⅓ 토막 수준으로 축소되기도 했다.
다만, 혼란과 조바심의 흐름 속에서도 글로벌 분산투자에 대한 미래에셋의 방향키는 유지하고자 집중했다. 지난 3월 세계 최초 패시브형 TDF ETF인 ‘TIGER TDF2045’를 출시한 데 이어 6월에는 글로벌 시장에 균형있게 분산 투자하는 ‘TIGER 토탈월드스탁액티브’를 선보였다. 전세계 주식시장에 한번에 분산 투자한다는 컨셉의 이 ETF는 연금 시장에 가장 적합한 상품으로도 주목받으며 꾸준한 자금 유입을 이어가고 있다.
■ 주력 상품들 잇딴 기록 경신, 내년 판도는?
지난해 말 170조원 규모였던 ETF 시장이 290조원대를 넘어섰고 주식시장에서 ETF 거래대금은 코스피 대비 43%에 육박할 정도로 커졌다. 시장의 양대축을 맡고 있는 삼성운용과 미래에셋운용 역시 올 한해 ‘큰 형님’ 다운 다양한 기록들을 세웠다.
미래에셋운용의 ‘TIGER 미국S&P500’은 지난 10월 국내 ETF 역사상 최초로 순자산 10조원을 돌파하며 상장 5년 만에 ‘국민 ETF’로 등극했다. ‘TIGER 미국S&P500’는 개인 투자자 연금 계좌 내에서 높은 선호도를 받고 있어 지속적인 효자 상품으로 꼽힌다. 또다른 대표지수형인 ‘TIGER 미국나스닥100’ 역시 최근 7조원대를 넘어서며 장기투자 대표 상품으로서 주축이 되고 있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200’은 올해 개인투자자들에게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은 상품으로 꼽힌다. 연초 이후 수익률이 무려 90%에 육박하는 기록을 달성하면서 투자 초보자 뿐 아니라 적립식 투자층까지 다양한 수요가 KODEX200로 몰리면서 올해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상품에 올라 있다. 최근에는 코스닥시장 관련 정책 지원 기대감으로 KODEX 코스닥 시리즈에도 개인들의 순매수세가 증가하는 추세다.
숨가쁠 정도로 빨랐던 ETF 성장의 열기 대비 약간은 느슨했던 1위권 쟁탈전의 긴장감은 내년에도 지속될까.
전열을 가다듬은 미래에셋운용의 TIGER ETF는 최근 다시 신발끈을 조이는 모양새다. 연초 이후 단 한번도 월간 순자산 증가 규모 기준 KODEX를 이기지 못했던 TIGER는 지난달 4조4024억원 증가를 회복하며 KODEX 증가규모(2조8992억원)를 앞섰다. 끝없이 떨어지던 점유율도 다시 0.4%p 반등하며 마침내 흐름을 끊어냈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금리 인하와 정부 정책 등의 효과로 내년에도 새로운 자금이 투자시장으로 지속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ETF는 연금시장과 함께 새로운 주식 투자층까지 저변이 넓어지고 있어 내년에도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며 “다만 양사의 경쟁력이 다른 만큼 국내 정부 정책의 지속성과 속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시장의 향방에 따라 ETF 시장 판도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