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선 지하도에서   인도 사람이 액세서리를 팔고 있다   푸른 팔찌, 붉은 목걸이, 흰 귀걸이   형형색색 푸짐하다   눈물 모양의 초록빛 목걸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상인은 대뜸   이 목걸이는 낙타의 뼈를 쪼아서 만들었어요 했다   귀한 낙타 뼈를 어찌 이렇게 만들었을꼬 했더니   한국 돈으로 사십만 원 주면   낙타 한 마리 사요 했다   아, 그래서 네가 이곳까지 흘러왔구나   그래, 한 마리 낙타야   뜨거운 사막을 고행과 봉사로 살더니   죽어서 뼛가루는 나를 찾아와   내 가슴이 무덤이 되는구나   그래서 너와 나는 뼈로 만나   서로를 알아보는구나   오늘은 너의 푸른 뼈를 눈물이라고 썼다.                           (이희정, 「낙타의 눈물」)   (사진=뷰어스DB) 일상이 시요, 시가 일상인 시인  여름이 흐르고 있었다. 사당동 출구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촐촐히 등때기를 타고 흐르는 땀을 느끼면서 이희정 시인을 기다렸다. 때맞춰 도착한 시인에게선 여름 한철 피어난 산사의 수국 냄새가 풍겨왔다. 배롱나무를 좋아한다는 시인과 마주하고는 어떻게 시를 창작하는지를 물었다.    "어려운 게 아니고, 시 창작은 일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기쁨이든 슬픔이든 뭐든 나한테 닥치면 불현듯 내 머릿속에 들어와서 그 현상들이 저절로 나와요. 나는 타고난 시인인가 봐요. 호호. 그런데 그 나오는 시간이 새벽이에요. 광주교육대학 부속국민학교를 나왔거든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전교백일장에서, 지금도 제목은 생생해, 나뭇잎에 대해서 쓰라고 했는데, ‘아빠 나뭇잎은 빨간 나뭇잎 / 엄마 나뭇잎은 노란 나뭇잎 / 서로 먼저 떨어지지 않으려고 싸움을 하지 / 엄마 나뭇잎 이겼다 / 아빠 나뭇잎 약 오르겠지.’ 그게 시였는데 전교백일장에서 일등을 했지요. 그때부터 뭔가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요. 나는 타고난 시인이여요. 호호. 아마도 이런 시적 재능을 주신 것은 부모님인 듯해요. 아버지는 서무과에서 일하셨는데, 100평이나 되는 집 정원을 손수 가꾸셨어요, 그리고 금붕어가 뛰노는 연못도 손수 만드셨고요. 엄마는 노래를 이미자 뺨치게 잘하셨어요. 제가 시를 쓰고 요즘 색소폰도 잘 부는 것은 우리 부모님한테 물려받았겠죠" 이희정 시인은 시 창작을 하는 방식을 이처럼 답변했다. 특별한 사건을 취재하거나 심도 있게 고민하여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日常)’이 곧 ‘시’가 된다는 표현이다. 언뜻 조주 스님이 남전 선사에게 도(道)를 물었을 때 나온 “평상심(平常心)이 도다.”라는 말이 떠오르고, “행하여 나아가려고 하면 벌써 도에서 어긋난다. 도를 알게 되면 마치 허공이 탁 트인 것과 같으니 이 경지에 다다르면 옳고 그름의 외적 증거로 인위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세계가 된다.”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시인의 말마따나 그가 내놓은 시편들은 지극히 일상에서 빚어진 것들이다. 행하고 머물고 앉고 눕고 말과 말없음, 움직임과 머묾, 곧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의 생활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선이라는 했으니 그의 시편들 속에는 일상이 빚어놓은 깨달음들이 활짝 피어 있다.   그는 분당선 지하도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인도사람에게서 눈물 모양의 초록빛 목걸이 하나를 구입하게 되는데, 그게 낙타의 뼈를 쪼아 만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때 시인은 “그래, 한 마리 낙타야 / 뜨거운 사막을 고행과 봉사로 살더니 / 죽어서 뼛가루는 나를 찾아와 / 내 가슴이 무덤이 되는구나 / 그래서 너와 나는 뼈로 만나 / 서로를 알아보는구나 / 오늘은 너의 푸른 뼈를 눈물이라고 썼다.”(낙타의 눈물)라고 노래한다. ‘고행’과 ‘봉사’로 삶을 산 낙타가 시인의 가슴을 무덤 삼아 맺어지는 인연. 그 인연 앞에서 흩뿌리는 눈물이 있다. 분당선 지하도에서 발견한 깨달음. 이희정 시인에게는 이와 같이 일상에 시가 있고, 일상에 깨달음이 있다. 그리고 그런 시적 재능의 기원을 너른 정원을 가꾸셨던 아버지, 노래를 잘 부르셨던 어머니라고 얘기한다.    "둘이 결혼하는 걸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졸업반 때 서울로 사랑의 도피를 했어요. 그래서 수업 이수는 다 했는데, 졸업장만 못 받았어요. 살다가 나중에는 사회복지사가 되려고, 무료해서 고려대를 갔지요. 상담심리학과와 사회복지학과 복수 전공했어요" 시인은 젊은 시절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그리고 아이 셋 낳고 평범한 주부에서 사회복지사로, 시인으로 활동하게 된 내력도 말하였다. 노인들을 주로 대하는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으며, 수많은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말하고 있는 일상은 그가 떠올렸던 낙타처럼 타인들을 향한 ‘고행’과 ‘봉사’ 속에 살아 있었다.  그의 시 '치매병동'에는 그런 그의 직업적 면모가 잘 살아 있다. 치매 병동에서 할머니들의 모습을 그리던 시인은 “그래요 할머니들, 사는 것은 밥이어서 뱃속에 도둑도 생기고 집 나간 재옥이도 생기고 그러겠지요 배만 부르면 이 세상이 시끄럽다가도 조용해질 것이에요…(중략)…우리들 뱃속에 밥만 있다면 불끈 일어서서 걸어가겠지요 갈현동 가야 한다고,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보따리 풀었다 쌌다 하는 종순이 할머니도, 손 안에 밥을 사는 돈을 드리면 갈현동 사는 딸네 집 한숨에 달려갈지 누가 알아요 숟가락 거꾸로 잡은 할머니가 옳게 잡은 할머니에게, 숟가락 거꾸로 잡았다고 깔깔 웃는 복례 할머니도 밥 많이 드렸다면 가슴 울리는 말 거둘지 누가 알아요.”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메꽃'이라는 시에서는 8월의 틈새에 피어난 연보랏빛 메꽃을 보며 “언젠가 그 연보랏빛 윗도리 하나를 / 엄마께 사 드린 적이 있다. / 그 옷을 알아보지 못하고 / 외상환자로 누워 있는 / 엄마의 베개 머리맡에도 / 요즘 연보랏빛 메꽃 핀 흔적이 있다. // 어쩌다 우리 엄마는 / 벌써 메꽃이 되었을까? / 핏기 없는 메꽃 그 언덕에 / 화색 도는 날 있을랑가.”라고 읊조린다. 노모가 외상환자로 누워 메꽃이 되어가는 요즘인가 보다. 시인에게 어머니를 포함한 노인들의 삶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사회복지사가 아니라면, 아니 시인 사회복지사가 아니라면 그려낼 수 없는 이야기들이 웅숭깊게 살아 꿈틀댄다. 어쩌면 노쇠해져가는 몸을 지탱하면서 생의 의미를 불꽃처럼 내뿜는 노인들의 삶은 그에게 부처와 같은 것이다.  (사진=뷰어스DB) 낱낱이 의미를 갖는 화엄적 시 세계 "불교와의 인연이요? 어머니는 삼천리 방방곡곡 설악산 봉정암 낙산사 여러 군데 불사를 다 하신 분이에요. 남는 게 뭐 있겠어요?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머니의 교육이 자식에게 내려온 것이었어요. 능인선원 불교대학 7기인데, 그때 불교 공부를 조금 했지요" 배워서 아는 것은 머리에 남는 것이고, 몸으로 아는 것은 온몸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불교를 따로 배워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를 쓰며 살다 보니 시가 저절로 나오고, 그렇게 나온 시가 불교와 가까웠던 것이다. 그의 시편들을 가만 들여다보면 불교적 사유가 강하게 똬리를 틀고 있음을 본다.  그것은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화엄’과 관련을 맺는다. “생이란 이렇듯 / 가만히 서서도 길을 내는 / 숨결이 간곡한 인연이어서 / 아직도 질척거림의 사랑이라든가 / 마른자리에서도 피어나는 들꽃이라든가 / 행불행을 알 수 없는 눈물이라든가 / 모습대로 흔들리는 길섶이다 / 오늘은 혼자 취한 학골리에서 / 몸엣것 내 세상이 / 섧어도 아름다운 화엄이다.”(학곡마을에 들다)와 같은 표현으로도 나타나고, “궁색한 계절의 맹세 앞에 / 설사 삶이 무거워도 / 몸속에 숨은 세상만은 화엄이다 / 삼매에 든 인연을 깨우며 / 길고 추운 그림자를 눈자위에 부린다”(석불처럼)와 같이 나타나기도 한다.  형형색색, 만물들 하나하나가 생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 의미를 낱낱이 캐어내는 작업을 이희정 시인은 간단없이 수행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 수행에 대해 허형만은 “시인의 수행은 결국 자기를 찾아가기 위함이다. 시를 쓰는 행위 또한 시인이 자기를 찾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듯이.”(이희정 시집 『아름다운 여자』 해설에서)라고 말한다. 낱낱이 살아 있는 의미를 지니면서 인연연기로 맺어져 하나인 것이 화엄이다. 어쩌면 이희정 시인이 건져 올린 시편들은 사물 하나하나가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생명의 존엄함과 인연 지어져서 자기 자신과 하나임을 노래하는 화엄 그 자체다.  그러나 화엄을 말하려고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시를 쓰는 세계 속에 화엄이 자리한 것이다. 시적 긴장과 형상화가 사물을 대하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과 온몸으로 일체화가 되었을 때에야 시는 다가선다. 그래서 시인의 말처럼 저절로 시가 와야 시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평범한 일상을 도저하게 살아내는 것, 그것을 형상화하는 것이 시일 것이다. "불교의 깨달음이란 출가자든 재가자든 삼매에 들어가는 수행을 의미하는데, 그 수행을 하다 보면 지혜가 생기고 자기의식을 자각하며, 소멸시켜야 하는 의식도 사라지게 되며, 내 자신이나 또는 중생에게 해당하는 진리를 알게 되고, 자아의 인격에서 해탈하며 자유롭게 되고, 불보살적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했어요. 하지만 개인마다 그 깨달음은 다양하죠. 나 같은 경우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의 일을 정리 점검하고, 일기를 쓰며 반성하기도 하고, 잘못된 것과 잘된 것을 말없이 생각하게 돼요. 내 경우에는 시도 마찬가지예요. 살면서 느끼는 현상들을 깊이 생각하며 지면 위에 써내려가다 은유와 상징의 짧은 기법으로 그것들을 표현하는 거예요" 이희정 시인이 말하는 불교와 시 창작은 일상화된 세계 속에 침잠하지 않고, 부단히 반성하고 점검하는 데서 비롯된다. 거기에 은유와 상징이라는 수사를 넣음으로써 미적 형상성을 지니게 만드는 작업이 시로 화한다고 본다.   지금, 여기 짧은 만남 긴 여운이 자리한다. 풀풀한 웃음 웃는 이희정 시인의 시심과 시적 삶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가 요즘에 빠져 있는, 아니 또 하나의 삶이자 기쁨이 되어 있는 색소폰 연주를 직접 듣는 시간을 갖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희정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심상'으로 등단 후, 한국불교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집 '그리운 서역국', '아름다운 여자', '하늘말나리가 있었네' 등 8권의 개인시집을 펴냈다. 이제 9번째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

[마주보기] 시 창작과 불교의 상관성을 묻다

오대혁(시인, 문화비평가) 승인 2020.08.04 10:07 의견 1

  분당선 지하도에서
  인도 사람이 액세서리를 팔고 있다
  푸른 팔찌, 붉은 목걸이, 흰 귀걸이
  형형색색 푸짐하다
  눈물 모양의 초록빛 목걸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상인은 대뜸
  이 목걸이는 낙타의 뼈를 쪼아서 만들었어요 했다
  귀한 낙타 뼈를 어찌 이렇게 만들었을꼬 했더니
  한국 돈으로 사십만 원 주면
  낙타 한 마리 사요 했다
  아, 그래서 네가 이곳까지 흘러왔구나
  그래, 한 마리 낙타야
  뜨거운 사막을 고행과 봉사로 살더니
  죽어서 뼛가루는 나를 찾아와
  내 가슴이 무덤이 되는구나
  그래서 너와 나는 뼈로 만나
  서로를 알아보는구나
  오늘은 너의 푸른 뼈를 눈물이라고 썼다.


                          (이희정, 「낙타의 눈물」)

 

(사진=뷰어스DB)


일상이 시요, 시가 일상인 시인

 여름이 흐르고 있었다. 사당동 출구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촐촐히 등때기를 타고 흐르는 땀을 느끼면서 이희정 시인을 기다렸다. 때맞춰 도착한 시인에게선 여름 한철 피어난 산사의 수국 냄새가 풍겨왔다. 배롱나무를 좋아한다는 시인과 마주하고는 어떻게 시를 창작하는지를 물었다.  

 "어려운 게 아니고, 시 창작은 일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기쁨이든 슬픔이든 뭐든 나한테 닥치면 불현듯 내 머릿속에 들어와서 그 현상들이 저절로 나와요. 나는 타고난 시인인가 봐요. 호호. 그런데 그 나오는 시간이 새벽이에요. 광주교육대학 부속국민학교를 나왔거든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전교백일장에서, 지금도 제목은 생생해, 나뭇잎에 대해서 쓰라고 했는데, ‘아빠 나뭇잎은 빨간 나뭇잎 / 엄마 나뭇잎은 노란 나뭇잎 / 서로 먼저 떨어지지 않으려고 싸움을 하지 / 엄마 나뭇잎 이겼다 / 아빠 나뭇잎 약 오르겠지.’ 그게 시였는데 전교백일장에서 일등을 했지요. 그때부터 뭔가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요. 나는 타고난 시인이여요. 호호. 아마도 이런 시적 재능을 주신 것은 부모님인 듯해요. 아버지는 서무과에서 일하셨는데, 100평이나 되는 집 정원을 손수 가꾸셨어요, 그리고 금붕어가 뛰노는 연못도 손수 만드셨고요. 엄마는 노래를 이미자 뺨치게 잘하셨어요. 제가 시를 쓰고 요즘 색소폰도 잘 부는 것은 우리 부모님한테 물려받았겠죠"

이희정 시인은 시 창작을 하는 방식을 이처럼 답변했다. 특별한 사건을 취재하거나 심도 있게 고민하여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日常)’이 곧 ‘시’가 된다는 표현이다. 언뜻 조주 스님이 남전 선사에게 도(道)를 물었을 때 나온 “평상심(平常心)이 도다.”라는 말이 떠오르고, “행하여 나아가려고 하면 벌써 도에서 어긋난다. 도를 알게 되면 마치 허공이 탁 트인 것과 같으니 이 경지에 다다르면 옳고 그름의 외적 증거로 인위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세계가 된다.”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시인의 말마따나 그가 내놓은 시편들은 지극히 일상에서 빚어진 것들이다. 행하고 머물고 앉고 눕고 말과 말없음, 움직임과 머묾, 곧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의 생활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선이라는 했으니 그의 시편들 속에는 일상이 빚어놓은 깨달음들이 활짝 피어 있다. 

 그는 분당선 지하도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인도사람에게서 눈물 모양의 초록빛 목걸이 하나를 구입하게 되는데, 그게 낙타의 뼈를 쪼아 만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때 시인은 “그래, 한 마리 낙타야 / 뜨거운 사막을 고행과 봉사로 살더니 / 죽어서 뼛가루는 나를 찾아와 / 내 가슴이 무덤이 되는구나 / 그래서 너와 나는 뼈로 만나 / 서로를 알아보는구나 / 오늘은 너의 푸른 뼈를 눈물이라고 썼다.”(낙타의 눈물)라고 노래한다. ‘고행’과 ‘봉사’로 삶을 산 낙타가 시인의 가슴을 무덤 삼아 맺어지는 인연. 그 인연 앞에서 흩뿌리는 눈물이 있다. 분당선 지하도에서 발견한 깨달음. 이희정 시인에게는 이와 같이 일상에 시가 있고, 일상에 깨달음이 있다. 그리고 그런 시적 재능의 기원을 너른 정원을 가꾸셨던 아버지, 노래를 잘 부르셨던 어머니라고 얘기한다.
  
"둘이 결혼하는 걸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졸업반 때 서울로 사랑의 도피를 했어요. 그래서 수업 이수는 다 했는데, 졸업장만 못 받았어요. 살다가 나중에는 사회복지사가 되려고, 무료해서 고려대를 갔지요. 상담심리학과와 사회복지학과 복수 전공했어요"

시인은 젊은 시절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그리고 아이 셋 낳고 평범한 주부에서 사회복지사로, 시인으로 활동하게 된 내력도 말하였다. 노인들을 주로 대하는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으며, 수많은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말하고 있는 일상은 그가 떠올렸던 낙타처럼 타인들을 향한 ‘고행’과 ‘봉사’ 속에 살아 있었다. 

그의 시 '치매병동'에는 그런 그의 직업적 면모가 잘 살아 있다. 치매 병동에서 할머니들의 모습을 그리던 시인은 “그래요 할머니들, 사는 것은 밥이어서 뱃속에 도둑도 생기고 집 나간 재옥이도 생기고 그러겠지요 배만 부르면 이 세상이 시끄럽다가도 조용해질 것이에요…(중략)…우리들 뱃속에 밥만 있다면 불끈 일어서서 걸어가겠지요 갈현동 가야 한다고,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보따리 풀었다 쌌다 하는 종순이 할머니도, 손 안에 밥을 사는 돈을 드리면 갈현동 사는 딸네 집 한숨에 달려갈지 누가 알아요 숟가락 거꾸로 잡은 할머니가 옳게 잡은 할머니에게, 숟가락 거꾸로 잡았다고 깔깔 웃는 복례 할머니도 밥 많이 드렸다면 가슴 울리는 말 거둘지 누가 알아요.”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메꽃'이라는 시에서는 8월의 틈새에 피어난 연보랏빛 메꽃을 보며 “언젠가 그 연보랏빛 윗도리 하나를 / 엄마께 사 드린 적이 있다. / 그 옷을 알아보지 못하고 / 외상환자로 누워 있는 / 엄마의 베개 머리맡에도 / 요즘 연보랏빛 메꽃 핀 흔적이 있다. // 어쩌다 우리 엄마는 / 벌써 메꽃이 되었을까? / 핏기 없는 메꽃 그 언덕에 / 화색 도는 날 있을랑가.”라고 읊조린다. 노모가 외상환자로 누워 메꽃이 되어가는 요즘인가 보다. 시인에게 어머니를 포함한 노인들의 삶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사회복지사가 아니라면, 아니 시인 사회복지사가 아니라면 그려낼 수 없는 이야기들이 웅숭깊게 살아 꿈틀댄다. 어쩌면 노쇠해져가는 몸을 지탱하면서 생의 의미를 불꽃처럼 내뿜는 노인들의 삶은 그에게 부처와 같은 것이다. 

(사진=뷰어스DB)


낱낱이 의미를 갖는 화엄적 시 세계

"불교와의 인연이요? 어머니는 삼천리 방방곡곡 설악산 봉정암 낙산사 여러 군데 불사를 다 하신 분이에요. 남는 게 뭐 있겠어요?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머니의 교육이 자식에게 내려온 것이었어요. 능인선원 불교대학 7기인데, 그때 불교 공부를 조금 했지요"

배워서 아는 것은 머리에 남는 것이고, 몸으로 아는 것은 온몸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불교를 따로 배워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를 쓰며 살다 보니 시가 저절로 나오고, 그렇게 나온 시가 불교와 가까웠던 것이다. 그의 시편들을 가만 들여다보면 불교적 사유가 강하게 똬리를 틀고 있음을 본다. 

그것은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화엄’과 관련을 맺는다. “생이란 이렇듯 / 가만히 서서도 길을 내는 / 숨결이 간곡한 인연이어서 / 아직도 질척거림의 사랑이라든가 / 마른자리에서도 피어나는 들꽃이라든가 / 행불행을 알 수 없는 눈물이라든가 / 모습대로 흔들리는 길섶이다 / 오늘은 혼자 취한 학골리에서 / 몸엣것 내 세상이 / 섧어도 아름다운 화엄이다.”(학곡마을에 들다)와 같은 표현으로도 나타나고, “궁색한 계절의 맹세 앞에 / 설사 삶이 무거워도 / 몸속에 숨은 세상만은 화엄이다 / 삼매에 든 인연을 깨우며 / 길고 추운 그림자를 눈자위에 부린다”(석불처럼)와 같이 나타나기도 한다. 

형형색색, 만물들 하나하나가 생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 의미를 낱낱이 캐어내는 작업을 이희정 시인은 간단없이 수행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 수행에 대해 허형만은 “시인의 수행은 결국 자기를 찾아가기 위함이다. 시를 쓰는 행위 또한 시인이 자기를 찾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듯이.”(이희정 시집 『아름다운 여자』 해설에서)라고 말한다. 낱낱이 살아 있는 의미를 지니면서 인연연기로 맺어져 하나인 것이 화엄이다. 어쩌면 이희정 시인이 건져 올린 시편들은 사물 하나하나가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생명의 존엄함과 인연 지어져서 자기 자신과 하나임을 노래하는 화엄 그 자체다. 

그러나 화엄을 말하려고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시를 쓰는 세계 속에 화엄이 자리한 것이다. 시적 긴장과 형상화가 사물을 대하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과 온몸으로 일체화가 되었을 때에야 시는 다가선다. 그래서 시인의 말처럼 저절로 시가 와야 시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평범한 일상을 도저하게 살아내는 것, 그것을 형상화하는 것이 시일 것이다.

"불교의 깨달음이란 출가자든 재가자든 삼매에 들어가는 수행을 의미하는데, 그 수행을 하다 보면 지혜가 생기고 자기의식을 자각하며, 소멸시켜야 하는 의식도 사라지게 되며, 내 자신이나 또는 중생에게 해당하는 진리를 알게 되고, 자아의 인격에서 해탈하며 자유롭게 되고, 불보살적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했어요. 하지만 개인마다 그 깨달음은 다양하죠. 나 같은 경우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의 일을 정리 점검하고, 일기를 쓰며 반성하기도 하고, 잘못된 것과 잘된 것을 말없이 생각하게 돼요. 내 경우에는 시도 마찬가지예요. 살면서 느끼는 현상들을 깊이 생각하며 지면 위에 써내려가다 은유와 상징의 짧은 기법으로 그것들을 표현하는 거예요"

이희정 시인이 말하는 불교와 시 창작은 일상화된 세계 속에 침잠하지 않고, 부단히 반성하고 점검하는 데서 비롯된다. 거기에 은유와 상징이라는 수사를 넣음으로써 미적 형상성을 지니게 만드는 작업이 시로 화한다고 본다.  

지금, 여기 짧은 만남 긴 여운이 자리한다. 풀풀한 웃음 웃는 이희정 시인의 시심과 시적 삶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가 요즘에 빠져 있는, 아니 또 하나의 삶이자 기쁨이 되어 있는 색소폰 연주를 직접 듣는 시간을 갖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희정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심상'으로 등단 후, 한국불교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집 '그리운 서역국', '아름다운 여자', '하늘말나리가 있었네' 등 8권의 개인시집을 펴냈다. 이제 9번째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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