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킹엔터테인먼트) [뷰어스=손예지 기자] 인생에서 ‘천직(天職)’을 찾기란 쉽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만큼 잘하게 되기까지, 스스로 갈고닦는 과정이 고되어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tvN ‘왕이 된 남자’(연출 김희원, 극본 김선덕)을 마치고 만난 윤종석에게서는 ‘배우가 천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윤종석은 예술가의 기질을 타고났다. 어릴 적부터 감수성이 남달랐다.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를 읽고 “너무 좋아 꿈까지 꿨을 정도”다. 당시를 떠올리며 “‘즐거운 편지’를 읽은 뒤로 나란 사람 자체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예쁜 마음을 갖게 됐다”고 설명하는 윤종석의 얼굴은 설렘으로 들떴다. 실제로 아직 그의 컴퓨터 깊숙한 곳에는 직접 쓴 시가 여러 편 저장됐다고 한다. 그런 그가 ‘글’ 대신 ‘연기’에 눈을 돌리게 된 건 10대의 끝 무렵이었다. “한계를 느꼈다”던 윤종석은 보다 폭 넓은 표현이 가능한 예술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됐다. 바로 영화와 드라마였다. “화면과 음악·소리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을 쓴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또 주위에서 어떤 배우의 연기를 통해 용기를 갖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영향력을 실감하기도 했고요. 누군가 나를 보고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변화한다는 건 굉장히 뜻깊고 뿌듯한 일이잖아요. 이런 일을 평생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부터 윤종석의 노력은 시작됐다. 우선 아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택하길 바랐던 부모님으로부터 제 꿈을 인정받기 위해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내가 이만큼 할 수 있으니 믿어달라’는 취지로 이를 악물었다. 윤종석은 “그때만큼 열심히 살았던 적이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자다가 눈 뜨면 바로 대사를 외웠을 정도”라며 “당시 집에서 연습실까지 10분 거리였는데 그 동안 10개의 독백을 안 끊기고 외울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 덕분에 모든 연기자 지망생들이 간절히 바란다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 입학했다. “막상 입학한 뒤에는 적응을 잘 못 했어요. 목표를 대입이라는, 너무 가까운 곳에 설정해 놓은 탓에 방황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 학교에 들어오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빨리 군대 다녀와서 정신 차려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죠” 윤종석이 무작정 영화 현장에 뛰어든 배경이다. 여러 장르 중 특히 영화를 좋아한다는 그는 “학교에서는 연극 기반으로 공부를 하는 탓에 영상 작업에 관해서는 자세하게 배울 기회가 부족했다”며 “영화를 찍으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 고민하다가 독립영화 작업으로 도움을 얻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모르겠는” 상황에 빠졌다고. 윤종석은 답을 찾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대학교 2학년 때 이미 40편이 넘는 단편영화에 출연했다. 덕분에 초반에는 오디션을 봐야지만 성사됐던 캐스팅이 점차 러브콜로 바뀌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며 윤종석이 배운 것은 무엇일까. “작품을 여러 편 출연하면 비슷한 인물을 또 맡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 새로운 인물에 대해 연구하지 않고 이전에 해봤던 경험대로 연기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결과물이 안 좋았어요. 모든 순간 연구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느꼈습니다. 특히 나를 변화하게 한 작품은 영화 ‘얼굴들’(감독 이강현)이에요. 당시에 선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척과 진짜 마음을 드러내는 것에 큰 차이가 있다는 걸 배웠어요. 늘 진심을 다해 연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는 계기였습니다”  (사진=영화 '얼굴들' 스틸컷) ‘얼굴들’은 올해 1월 24일 개봉했다. 촬영은 2016년 연말 시작해 2017년 초에 끝났지만, 작업이 마무리된 뒤 여러 영화제를 먼저 찾느라 국내 스크린에 걸리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 잔잔한 일상을 담은 ‘얼굴들’은 그 작품성을 인정 받아 ‘제29회 프랑스 마르세이유 국제영화제’ ‘제13회 런던한국영화제’ ‘제8회 뉴욕 뮤지엄 오브 무빙 이미지(MoMI) 퍼스트 룩 페스티벌(Museum of Moving Image First Look Festival)’ 등에 초청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윤종석은 “잊을 수 없는, 뜻깊은 기억”이라며 “태어나서 처음 레드카펫에 서 봤는데 기분이 좋았다. 특히 연기 잘하는 선배들을 통해 공부가 많이 된 작품이라 여러모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렇듯 도전으로 2019년의 문을 연 윤종석이다. ‘얼굴들’이 그의 첫 장편영화라면, 안방극장에서는 지난 4일 인기리에 종영한 tvN ‘왕이 된 남자’(연출 김희원, 극본 김선덕)으로 첫 사극에 나선 것이다. 왕의 호위무사 장무영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사극은 처음이라 걱정이 앞섰지만 김희원 PD님의 지도 편달 덕분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연기할 때 연구와 고민을 거듭하는 편이라 작품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든요. 혼자 머리 아파하고 스트레스 받는 모습을 보시고 PD님이 ‘종석이가 하는 무사 장무영은, 그만의 특별함과 느낌이 있을 테니 네가 잘하는 걸 하면 된다’고 하셨어요. 또 ‘너는 예민하고 기민한 편이라 캐치하는 것도 빠르다’면서 ‘무사는 어떻다는 정답이 없으니 너만의 표현법을 존중하겠다’고 해주셨습니다” 김희원 PD가 인정한 ‘예민하고 기민한’ 천성을 활용해 윤종석이 완성한 무영은 우직한 신하로서 끝내 ‘임금을 위해 목숨 바쳐 충성하다 장렬하게 죽는’ 꿈을 이룬 인물이다. 극 중 신분의 특성 상 주로 웃전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지만, 스스로 파멸하는 폭군 이헌(여진구) 대신 성군의 모습을 갖춰가는 광대 하선(여진구)을 주군으로 선택하는 데서 결단력과 의지를 느낄 수 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윤종석은 무영의 절제된 감정을 눈빛에 담아 시청자들에 전달했다.  “무영이 제일 중립적인 인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호위무사 무영은 이헌이 아니면 안 되는 인물이잖아요. 때문에 하선이 (궁에) 들어왔을 때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쉽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 했습니다. 연기할 때는 의리와 충심으로 굳은 심지를 가진 인물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고요. 시간이 지나 무영도 하선의 편으로 돌아서게 될 때에는 내가 생각했던 성군의 이미지에 부합한 사람이, 내가 바라왔던 나라를 조금씩 완성해 가는 모습에 자연스럽게 ‘입덕’하게 되었다고 해석했어요” 이런 가운데 윤종석의 연기가 돋보인 장면이 있다. ‘왕이 된 남자’ 8회, 무영이 어명을 어기고 하선을 살린 데 대해 이헌으로부터 죽음을 명 받는 대목이었다. 무너져 버린 주군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무영의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바. 이에 대해 윤종석은 “연기할 때 ‘무영이 왕을 너무 사랑한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왕이 힘이 없어 벌벌 떨리는 손으로 칼을 들이밀 때, 무영은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무너졌을까’라는 감정과 ‘어쩌면 이 왕을 더는 섬기지 못하겠다’는 비탄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눈물이 흘렀다고도 덧붙였다. (사진=OCN, tvN) 무엇보다 ‘왕이 된 남자’에서의 윤종석은 전작 OCN ‘손 the guest’(연출 김홍선, 극본 권소라 서재원)의 잔상을 완벽히 씻어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윤종석은 지난해 방송된 ‘손 the guest’에서 악귀에 씌인 최신부 역을 맡아 소름 돋는 빙의 연기를 보여준 바 있다. ‘손 the guest’ 당시 김홍선 PD로부터 “엄청난 예쁨을 받았다”고 자랑한 윤종석은 “실제 대학 선배이기도 한 김동욱(윤화평 역) 선배도 많이 챙겨주셨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동욱 선배가 후배들에게 술을 사주신 적이 있다. 그때 ‘선배와 꼭 같이 연기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했었는데 기회가 와 감개무량했다”는 특별한 인연도 공개했다. “‘손 the guest’ 때는 이제껏 보지 못한 인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시청자들이 어디에 더 집중할까 고민해보니 비주얼이 제일 중요할 것 같더군요. 때문에 기괴한 모습을 만들려고 허리를 굽히고 목을 꺾었는데, 몸은 힘들었지만 다들 좋아해주셔서 고마웠죠. 다만 여기에 익숙해져 있다가 ‘왕이 된 남자’로 새로운 장르와 캐릭터를 맡게 돼 어렵기도 했습니다. 최신부를 연기하는 동안 구부정한 자세로 다녔는데 (장무영은) 어깨를 피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하니까 힘들었죠. 그래서 ‘왕이 된 남자’ 촬영 초반에는 어깨 보정 기구를 착용한 채 연기하기도 했어요. 많이 갑갑했는데 나중에는 적응이 돼고 실제로 어깨도 많이 펴지더라고요. 물론 지금의 나는 어깨 피고 당당히 다닐 수 있게 됐어요(웃음)” 이렇듯 작품마다 만나게 되는 여러 인물에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윤종석이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 있다. “나, 윤종석과 멀어지는 것”이다. 보통 자신과 캐릭터의 닮은 점을 찾아 연기에 반영하는 배우들이 많은 것과 상반된다. 그는 “시청자들은 윤종석이라는 사람이 연기하는 게 궁금한 게 아니다. 그 인물의 삶이 궁금한 거다. 때문에 그들에게 캐릭터로서 기억에 남게끔 외형은 물론 내면까지 신경쓴다. ‘윤종석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텐데’가 아니라 ‘이 사람이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좀 더 고민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스스로에 대해 욕심이 엄청 많고 기준점이 높은 편이에요. 원하는 곳까지 올라가지 못하면 극도로 불안해하고요. 잘해야 한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도 심하게 느끼죠. 그래서 데뷔하기 전까지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에 시달렸어요. 나중에는 엄청 피폐해져서는 혼자 ‘연기는 내 길이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도 했고요”  자기 압박에 시달리다 보면 자칫 슬럼프나 깊은 늪에 빠져버릴 위험도 크다. 그때마다 윤종석은 자신만의 감성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첫 번째 방법은 향(香)이다. 불안감을 덜고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조향에 취미를 두기 시작, “집에 재료를 사두고 틈날 때마다 향수나 캔들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미술대학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한 어머니를 따라 어깨너머로 배운 그림도 윤종석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주로 작품에 들어가기 전후로 그 당시 내 모습을 그립니다. 추상화의 형태로요. 최근에는 ‘손 the guest’를 준비할 때 그렸어요. 당시에 최신부와 닿아있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컸거든요. 인물이 어둡다 보니 나도 같이 축축 쳐지는 거예요. 거기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아 숨고 싶고 공허한 순간들을 그림에 담았어요” 윤종석은 캔버스에 그린 그림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바다를 연상케 하는 짙은 파랑으로 얼굴을 그리고 그 절반을 어두운 나뭇잎으로 덮었다. 눈이 있어야 할 곳에는 새하얀 보름달 모양이 자리했고 목 부근은 밝은 오렌지 빛깔로 칠해졌다. 머리 위에 날아다니는 새의 모양까지. 표현과 색감이 독특한 작품이었다. 무거운 캐릭터를 준비하며 느꼈을 그의 중압감과 밝은 곳으로 향하고자 하는 열망이 동시에 느껴졌다. 윤종석은 “이렇게 나를 그리다 보면 스스로의 현주소를 잘 알게 된다”면서 “‘내가 지금 이렇게 처절하구나’ 혹은 ‘그때의 내가 이렇구나’ 기억할 수 있다. 덕분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비답이 내려지기도 한다. 스트레스 해소도 된다”고 덧붙였다. (사진=킹엔터테인먼트) 예술로 겪는 고뇌를, 또 다른 예술로 승화시키는 배우. 그는 이 같은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건강한 배우’로 성장하기를 꿈꾼다고 했다. “향기에 비유하자면 풀잎 향이 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플로럴 계열에 오디 향을 섞으면 숲 냄새가 나요. 숲이라고 하면 안식과 평안의 이미지가 떠오르잖아요. 초록도 마음의 안정을 주는 색깔이고요. 나로 하여금 보는 이들이 건강한 마음을 갖게 되는 배우가 되기를 바라요. 그러기 위해 지금처럼 고민하고 연구하며, 동료들과 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마주보기] 윤종석, 타고난 예술가

손예지 기자 승인 2019.03.11 11:09 | 최종 수정 2138.05.21 00:00 의견 0
(사진=킹엔터테인먼트)
(사진=킹엔터테인먼트)

[뷰어스=손예지 기자] 인생에서 ‘천직(天職)’을 찾기란 쉽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만큼 잘하게 되기까지, 스스로 갈고닦는 과정이 고되어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tvN ‘왕이 된 남자’(연출 김희원, 극본 김선덕)을 마치고 만난 윤종석에게서는 ‘배우가 천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윤종석은 예술가의 기질을 타고났다. 어릴 적부터 감수성이 남달랐다.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를 읽고 “너무 좋아 꿈까지 꿨을 정도”다. 당시를 떠올리며 “‘즐거운 편지’를 읽은 뒤로 나란 사람 자체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예쁜 마음을 갖게 됐다”고 설명하는 윤종석의 얼굴은 설렘으로 들떴다. 실제로 아직 그의 컴퓨터 깊숙한 곳에는 직접 쓴 시가 여러 편 저장됐다고 한다.

그런 그가 ‘글’ 대신 ‘연기’에 눈을 돌리게 된 건 10대의 끝 무렵이었다. “한계를 느꼈다”던 윤종석은 보다 폭 넓은 표현이 가능한 예술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됐다. 바로 영화와 드라마였다.

“화면과 음악·소리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을 쓴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또 주위에서 어떤 배우의 연기를 통해 용기를 갖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영향력을 실감하기도 했고요. 누군가 나를 보고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변화한다는 건 굉장히 뜻깊고 뿌듯한 일이잖아요. 이런 일을 평생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부터 윤종석의 노력은 시작됐다. 우선 아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택하길 바랐던 부모님으로부터 제 꿈을 인정받기 위해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내가 이만큼 할 수 있으니 믿어달라’는 취지로 이를 악물었다. 윤종석은 “그때만큼 열심히 살았던 적이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자다가 눈 뜨면 바로 대사를 외웠을 정도”라며 “당시 집에서 연습실까지 10분 거리였는데 그 동안 10개의 독백을 안 끊기고 외울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 덕분에 모든 연기자 지망생들이 간절히 바란다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 입학했다.

“막상 입학한 뒤에는 적응을 잘 못 했어요. 목표를 대입이라는, 너무 가까운 곳에 설정해 놓은 탓에 방황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 학교에 들어오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빨리 군대 다녀와서 정신 차려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죠”

윤종석이 무작정 영화 현장에 뛰어든 배경이다. 여러 장르 중 특히 영화를 좋아한다는 그는 “학교에서는 연극 기반으로 공부를 하는 탓에 영상 작업에 관해서는 자세하게 배울 기회가 부족했다”며 “영화를 찍으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 고민하다가 독립영화 작업으로 도움을 얻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모르겠는” 상황에 빠졌다고. 윤종석은 답을 찾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대학교 2학년 때 이미 40편이 넘는 단편영화에 출연했다. 덕분에 초반에는 오디션을 봐야지만 성사됐던 캐스팅이 점차 러브콜로 바뀌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며 윤종석이 배운 것은 무엇일까.

“작품을 여러 편 출연하면 비슷한 인물을 또 맡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 새로운 인물에 대해 연구하지 않고 이전에 해봤던 경험대로 연기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결과물이 안 좋았어요. 모든 순간 연구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느꼈습니다. 특히 나를 변화하게 한 작품은 영화 ‘얼굴들’(감독 이강현)이에요. 당시에 선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척과 진짜 마음을 드러내는 것에 큰 차이가 있다는 걸 배웠어요. 늘 진심을 다해 연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는 계기였습니다” 

(사진=영화 '얼굴들' 스틸컷)
(사진=영화 '얼굴들' 스틸컷)

‘얼굴들’은 올해 1월 24일 개봉했다. 촬영은 2016년 연말 시작해 2017년 초에 끝났지만, 작업이 마무리된 뒤 여러 영화제를 먼저 찾느라 국내 스크린에 걸리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 잔잔한 일상을 담은 ‘얼굴들’은 그 작품성을 인정 받아 ‘제29회 프랑스 마르세이유 국제영화제’ ‘제13회 런던한국영화제’ ‘제8회 뉴욕 뮤지엄 오브 무빙 이미지(MoMI) 퍼스트 룩 페스티벌(Museum of Moving Image First Look Festival)’ 등에 초청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윤종석은 “잊을 수 없는, 뜻깊은 기억”이라며 “태어나서 처음 레드카펫에 서 봤는데 기분이 좋았다. 특히 연기 잘하는 선배들을 통해 공부가 많이 된 작품이라 여러모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렇듯 도전으로 2019년의 문을 연 윤종석이다. ‘얼굴들’이 그의 첫 장편영화라면, 안방극장에서는 지난 4일 인기리에 종영한 tvN ‘왕이 된 남자’(연출 김희원, 극본 김선덕)으로 첫 사극에 나선 것이다. 왕의 호위무사 장무영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사극은 처음이라 걱정이 앞섰지만 김희원 PD님의 지도 편달 덕분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연기할 때 연구와 고민을 거듭하는 편이라 작품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든요. 혼자 머리 아파하고 스트레스 받는 모습을 보시고 PD님이 ‘종석이가 하는 무사 장무영은, 그만의 특별함과 느낌이 있을 테니 네가 잘하는 걸 하면 된다’고 하셨어요. 또 ‘너는 예민하고 기민한 편이라 캐치하는 것도 빠르다’면서 ‘무사는 어떻다는 정답이 없으니 너만의 표현법을 존중하겠다’고 해주셨습니다”

김희원 PD가 인정한 ‘예민하고 기민한’ 천성을 활용해 윤종석이 완성한 무영은 우직한 신하로서 끝내 ‘임금을 위해 목숨 바쳐 충성하다 장렬하게 죽는’ 꿈을 이룬 인물이다. 극 중 신분의 특성 상 주로 웃전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지만, 스스로 파멸하는 폭군 이헌(여진구) 대신 성군의 모습을 갖춰가는 광대 하선(여진구)을 주군으로 선택하는 데서 결단력과 의지를 느낄 수 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윤종석은 무영의 절제된 감정을 눈빛에 담아 시청자들에 전달했다. 

“무영이 제일 중립적인 인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호위무사 무영은 이헌이 아니면 안 되는 인물이잖아요. 때문에 하선이 (궁에) 들어왔을 때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쉽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 했습니다. 연기할 때는 의리와 충심으로 굳은 심지를 가진 인물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고요. 시간이 지나 무영도 하선의 편으로 돌아서게 될 때에는 내가 생각했던 성군의 이미지에 부합한 사람이, 내가 바라왔던 나라를 조금씩 완성해 가는 모습에 자연스럽게 ‘입덕’하게 되었다고 해석했어요”

이런 가운데 윤종석의 연기가 돋보인 장면이 있다. ‘왕이 된 남자’ 8회, 무영이 어명을 어기고 하선을 살린 데 대해 이헌으로부터 죽음을 명 받는 대목이었다. 무너져 버린 주군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무영의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바. 이에 대해 윤종석은 “연기할 때 ‘무영이 왕을 너무 사랑한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왕이 힘이 없어 벌벌 떨리는 손으로 칼을 들이밀 때, 무영은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무너졌을까’라는 감정과 ‘어쩌면 이 왕을 더는 섬기지 못하겠다’는 비탄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눈물이 흘렀다고도 덧붙였다.

(사진=OCN, tvN)
(사진=OCN, tvN)

무엇보다 ‘왕이 된 남자’에서의 윤종석은 전작 OCN ‘손 the guest’(연출 김홍선, 극본 권소라 서재원)의 잔상을 완벽히 씻어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윤종석은 지난해 방송된 ‘손 the guest’에서 악귀에 씌인 최신부 역을 맡아 소름 돋는 빙의 연기를 보여준 바 있다. ‘손 the guest’ 당시 김홍선 PD로부터 “엄청난 예쁨을 받았다”고 자랑한 윤종석은 “실제 대학 선배이기도 한 김동욱(윤화평 역) 선배도 많이 챙겨주셨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동욱 선배가 후배들에게 술을 사주신 적이 있다. 그때 ‘선배와 꼭 같이 연기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했었는데 기회가 와 감개무량했다”는 특별한 인연도 공개했다.

“‘손 the guest’ 때는 이제껏 보지 못한 인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시청자들이 어디에 더 집중할까 고민해보니 비주얼이 제일 중요할 것 같더군요. 때문에 기괴한 모습을 만들려고 허리를 굽히고 목을 꺾었는데, 몸은 힘들었지만 다들 좋아해주셔서 고마웠죠. 다만 여기에 익숙해져 있다가 ‘왕이 된 남자’로 새로운 장르와 캐릭터를 맡게 돼 어렵기도 했습니다. 최신부를 연기하는 동안 구부정한 자세로 다녔는데 (장무영은) 어깨를 피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하니까 힘들었죠. 그래서 ‘왕이 된 남자’ 촬영 초반에는 어깨 보정 기구를 착용한 채 연기하기도 했어요. 많이 갑갑했는데 나중에는 적응이 돼고 실제로 어깨도 많이 펴지더라고요. 물론 지금의 나는 어깨 피고 당당히 다닐 수 있게 됐어요(웃음)”

이렇듯 작품마다 만나게 되는 여러 인물에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윤종석이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 있다. “나, 윤종석과 멀어지는 것”이다. 보통 자신과 캐릭터의 닮은 점을 찾아 연기에 반영하는 배우들이 많은 것과 상반된다. 그는 “시청자들은 윤종석이라는 사람이 연기하는 게 궁금한 게 아니다. 그 인물의 삶이 궁금한 거다. 때문에 그들에게 캐릭터로서 기억에 남게끔 외형은 물론 내면까지 신경쓴다. ‘윤종석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텐데’가 아니라 ‘이 사람이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좀 더 고민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스스로에 대해 욕심이 엄청 많고 기준점이 높은 편이에요. 원하는 곳까지 올라가지 못하면 극도로 불안해하고요. 잘해야 한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도 심하게 느끼죠. 그래서 데뷔하기 전까지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에 시달렸어요. 나중에는 엄청 피폐해져서는 혼자 ‘연기는 내 길이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도 했고요” 

자기 압박에 시달리다 보면 자칫 슬럼프나 깊은 늪에 빠져버릴 위험도 크다. 그때마다 윤종석은 자신만의 감성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첫 번째 방법은 향(香)이다. 불안감을 덜고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조향에 취미를 두기 시작, “집에 재료를 사두고 틈날 때마다 향수나 캔들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미술대학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한 어머니를 따라 어깨너머로 배운 그림도 윤종석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주로 작품에 들어가기 전후로 그 당시 내 모습을 그립니다. 추상화의 형태로요. 최근에는 ‘손 the guest’를 준비할 때 그렸어요. 당시에 최신부와 닿아있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컸거든요. 인물이 어둡다 보니 나도 같이 축축 쳐지는 거예요. 거기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아 숨고 싶고 공허한 순간들을 그림에 담았어요”

윤종석은 캔버스에 그린 그림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바다를 연상케 하는 짙은 파랑으로 얼굴을 그리고 그 절반을 어두운 나뭇잎으로 덮었다. 눈이 있어야 할 곳에는 새하얀 보름달 모양이 자리했고 목 부근은 밝은 오렌지 빛깔로 칠해졌다. 머리 위에 날아다니는 새의 모양까지. 표현과 색감이 독특한 작품이었다. 무거운 캐릭터를 준비하며 느꼈을 그의 중압감과 밝은 곳으로 향하고자 하는 열망이 동시에 느껴졌다. 윤종석은 “이렇게 나를 그리다 보면 스스로의 현주소를 잘 알게 된다”면서 “‘내가 지금 이렇게 처절하구나’ 혹은 ‘그때의 내가 이렇구나’ 기억할 수 있다. 덕분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비답이 내려지기도 한다. 스트레스 해소도 된다”고 덧붙였다.

(사진=킹엔터테인먼트)
(사진=킹엔터테인먼트)

예술로 겪는 고뇌를, 또 다른 예술로 승화시키는 배우. 그는 이 같은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건강한 배우’로 성장하기를 꿈꾼다고 했다.

“향기에 비유하자면 풀잎 향이 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플로럴 계열에 오디 향을 섞으면 숲 냄새가 나요. 숲이라고 하면 안식과 평안의 이미지가 떠오르잖아요. 초록도 마음의 안정을 주는 색깔이고요. 나로 하여금 보는 이들이 건강한 마음을 갖게 되는 배우가 되기를 바라요. 그러기 위해 지금처럼 고민하고 연구하며, 동료들과 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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