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국정농단' 사태로 구속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는 13일 가석방으로 풀려나지만 보호관찰 처분으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취업제한이 유지되며 장기간 해외출장도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석방된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정부가 비판 목소리를 지나치게 의식해 손발을 묶어놓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11일 법무부 수원보호관찰심사위원회는 광복절 기념 가석방 예정자들에 관해 보호관찰 결정을 했다. 형법과 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률은 가석방될 경우 원칙적으로 보호관찰을 받도록 규정한다. 다만 범죄의 내용이나 남은 형기, 실효성 등을 고려해 중환자, 고령자, 추방 예정인 외국인은 예외가 인정된다.
이 부회장의 경우 보호관찰을 받게 되면 경영활동을 위해 출국이 어려워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재계에서 나왔다. 하지만 법무부가 원칙을 고수함에 따라 이 부회장은 가석방 이후 주거지를 옮기거나 1개월 이상 국내·외 여행을 할 때는 미리 보호관찰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법무부는 "가석방 보호관찰은 정해진 형기를 마치기 전 선행을 유지하고 일정한 준수사항을 지킬 것을 조건으로 석방하는 것"이라며 "보호관찰제를 잘 운영해 가석방자가 재범 없이 건전하게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 일각에서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위해선 사면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가석방은 사면과 달리 취업 제한과 해외 출장과 관련해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지난 2월 취업 제한 5년을 통보받았다. 다만 법무부에 취업 제한 예외 신청을 해 장관 승인을 받으면 취업이 가능하다. 재계는 제한을 해제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이유다. 해외 출국 시 법무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점도 기밀성이 유지돼야 하는 경영 행보가 사전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이날 이 삼성전자 부회장의 취업제한 및 해외출국 제한 등과 관련 "(홍남기) 부총리가 챙기고 있다"고 밝혔다. 손 회장은 이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 경제 5단체장 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는지 묻는 질문에 "(언급)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손 회장은 다만 이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 결정에 대해 "감사하다고 얘기했다"고만 했다.
홍 부총리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 이 부회장이 향후 경제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제약이 없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회장은 "(홍 부총리가 이재용 부회장 경영활동에 대해) 불편 없이 잘 해달라고 하는 말씀을 법무장관에게도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 장관은 12일 정부과천청사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현재까지 이 부회장의 취업 제한 해제 문제와 관련 "검토하거나 고려한 바가 없다"고 답했다. 박 장관은 또 전날 홍 부총리취업 제한 해제를 요청했다는 보도에 대해선 "어떤 말도 들은 게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박 "사면이나 가석방 관련해서 경제부총리는 물론이고 정부 당국자 누구로부터 어떤 요청이나 얘길 들은 바가 없다"며 "그건 법무부의 정책"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법무부의 결정이 "대선을 앞두고 '집토끼'인 진보세력의 비판에서 모면하랴다 보니 내린 고육책"이라며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놓고 '국가과 국민에게 빚을 졌으니 이제 갚아야 할 때'라고 했으면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꼬았다.
실제로 이 부회장의 가석방 결정에 여당 내부와 진보진영은 '민주주의 후퇴', '촛불정신의 배신'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김두관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민주당이 촛불국민을 배신하고 기득권 카르텔과 손을 잡는 신호탄”이라고 지적했다. 박용진 의원도 “재벌총수에 대한 0.1% 특혜 가석방은 공정한 일이 아니다”고 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국정농단 세력의 꿀단지가 된 정경유착 공범에 대한 2년6개월의 실형도 무겁다고 법무부가 조기 가석방의 시혜를 베풀었다. 곱빼기 사법 특혜를 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참여연대는 "이번 결정은 기회는 불평등하고 과정은 불공정하며 결과도 정의롭지 못한 최악의 특혜이며 사법정의에 대한 사망선고"라고 규정했다. 이어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국정농단의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가석방이 된다면 앞으로 어떤 재벌 총수가 법을 지킬 것이며, 어떤 중범죄자에게 가석방을 불허할 수 있겠냐"라고 했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출소 이후 머지않은 시점에 경영에 복귀해 삼성이 총수 공백을 해소하고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 건설을 위한 20조원대 투자 프로젝트 확정을 앞두고 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모바일, 인공지능, 5세대 이동통신 등 주력 및 신사업을 비롯해 삼성SDI의 첫 미국 배터리 공장 신설, 코로나19 백신 확보 등 여러 현안에서 이 부회장이 역할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경제단체들은 이 부회장이 이같은 취업제한 이슈 걸림돌 없이 경영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도록 별도 승인, 나아가 사면이 필요하다고 보고 정부 측에 계속 건의한다는 방침이다. 삼성 측은 이 부회장 가석방과 관련한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가석방 비판 여론도 있지만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라는 취지에 부합하려면 이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활동을 해야 한다"며 "이 부회장의 출소 후 정중동(靜中動) 행보 시일이 길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