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애플, 넷플릭스 로고. (이미지=각 사 홈페이지)

애플, 구글, 넷플릭스 등 해외 IT 공룡 기업들이 국회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앞두고 경쟁적으로 '상생' 방안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국내 정부기관이나 기업 및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고자세를 유지하며 '마이 웨이'식 영업 행태를 보였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 유럽 등 전세계적으로 구글·애플 등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분위기에서 기존의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는 분석이다. 또한 '갑질 횡포'에 대한 국내 여론이 싸늘하고 세계 최초로 시행된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을 감안해 '갑질 논란'에 '물타기'를 하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28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다음달 5일 예정된 방송통신위원회 국감 증인으로 김경훈 구글코리아 대표, 정기현 페이스북코리아 대표, 윤구 애플코리아 대표 등을 채택됐다. 연주환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 팀장도 증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애플은 국내 통신 3사에 연간 200억~300억원 규모의 광고비, 무상 수리 비용을 떠넘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사후서비스(A/S)를 거부하거나 제대로 응대하지 않는다는 ‘갑질’ 논란에 지속적으로 휘말리고 있다. 이로 인해 애플은 지난 2016년부터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이에 애플은 공정위에 처벌 대신 스스로 원상회복, 소비자 피해구제 등 시정방안을 제안해 사건을 종결하는 동의의결제도를 신청했다.

구글은 올 상반기 최대 30%에 달하는 수수료를 물리는 인앱(자체)결제 시스템 도입을 의무화하려다 ‘갑질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구글은 최근 공정위로부터 삼성전자 등 스마트 기기 제조사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만 사용하도록 강제했다는 혐의로 2000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됐다.

넷플릭스는 영상 전송에 따르는 네트워크 이용 대가를 두고 작년부터 SK브로드밴드와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를 두고 IT 업계에서는 네트워크 '무임승차'라는 지적이 쇄도했다. 자체적으로 트래픽(데이터 전송량)을 줄이고 있으니 망 사용료를 내지 않겠다는 게 넷플릭스의 논리다. SK브로드밴드가 2019년 방송통신위원회에 협상 중재 신청을 했지만 넷플릭스가 이를 거부하고 소송을 제기했다가 지난 6월 말 1심에서 패소했다.

그동안 높은 점유율을 앞세워 한국 시장을 지배해온 글로벌 IT 공룡들이 국감을 앞두고 내년에 시행될 예정인 상생 방안을 앞다퉈 쏟아내고 있다.

넷플릭스는 오는 29일 국내 기업과의 협업 사례를 홍보하는 ‘넷플릭스 파트너데이’를 연다. “국내 창작 생태계와 넷플릭스의 동반 성장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라는 설명이다. 넷플릭스는 이 자리에서 넷플릭스 서비스의 국내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도 추산해 발표할 예정이다. 특히 넷플릭스는 미국 내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오징어 게임'과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킹덤: 아신전’을 앞세워 국내 드라마 생태계와 '상생'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어필할 것으로 전망된다.

넷플릭스는 최근 SK브로드밴드와의 망 사용료 소송을 두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당초 지난 10일까지였던 항소이유서 제출 기한을 오는 11월 5일까지로 연장해달라고 신청하고 했다. 이에 따라 항소 재판 일정도 두 달여간 밀리게 됐다.

애플은 지난 27일 경상북도 포항시 및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와 손잡고 내년에 '애플 디벨로퍼(개발자) 아카데미'와 '제조업 R&D 지원센터'를 개소한다고 발표했다.

애플 개발자 아카데미는 앱 개발자,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문 교육을 제공한다. 9개월 과정으로 진행되는 교육 프로그램은 무료로 제공되며 19세 이상의 한국 거주자면 학력과 코딩 경력 여부와 관계 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200여명이 선발될 예정이며 프로그램 신청 접수는 수개월 내에 진행된다.

제조업 R&D 지원센터는 국내 중소기업에 스마트공정·친환경 기술 관련 교육을 제공한다. 국내 제조업 중소기업에 애플의 전문가와 장비를 직접 지원해 중소기업이 자사 기술과 공정, 제품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구글코리아도 같은 날 높은 성장 가능성을 지닌 초기 단계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8주간 ‘구글 포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구글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구글의 기술과 제품, 글로벌 인재 및 프로그램 등을 기반으로 맞춤화 교육을 지원한다. 예들 들어 멘토 연결, 프로젝트성 기술 지원, 마케팅·리더십 역량 관련 분석 및 워크숍을 제공한다. 지원 자격은 한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시드·시리즈 A단계 스타트업이다. 디지털 콘텐츠 분야에서 구글의 제품, 서비스, 운영 시스템 등의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환경 이슈를 해결 중인 스타트업이 대상이다.

구글은 지난 15일에는 ‘한국을 위한 구글(구글 포 코리아)’ 행사를 열기도 했다. 구글은 이날 매년 국내 기업에 제공하는 사업적 편익 규모가 10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구글은 지난달엔 국내 대형 여론조사 기업을 통해 구글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한 설문조사도 했다.

해외 IT 공룡들의 저자세에 대해 글로벌 빅테크 규제 움직임이 강해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국감을 앞두고 빅테크 관련 주요 법안 여러 개가 통과·시행됐다. 특히 지난달 말엔 국회가 구글·애플 등에 특정 결제 방식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애플에 이어 구글까지 자사 앱마켓에 입점한 앱 개발사들에게 인앱결제만 사용하도록 강제하면서 수수료로 매출의 30%를 받아갔다.

이를 두고 '앱 통행세'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우리 국회는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인앱결제 강제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연간 2조3000억원의 앱 개발비용이 줄어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인앱결제는 모바일 게임, 웹툰 등 앱을 이용하면서 유료 콘텐츠를 구매할 때 구글, 애플 등 앱 마켓 사업자가 제공하는 시스템을 통해서만 결제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구글, 애플 등 사업자는 직접 수수료율을 정하고 수익을 가져갈 수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구글, 애플 등 빅테크를 겨냥해 규제의 칼을 꺼내들었다. '빅테크 저격수'로 불린 리나 칸 컬럼비아대 교수가 6월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수장으로 취임한 데 이어 8월 상·하원에선 구글과 애플을 겨냥해 인앱결제 강제 금지 조항을 담은 ‘열린 앱 장터 법안'이 발의됐다. 국내에서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자 미 상원 의원들이 환영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유럽연합(EU)도 비슷한 내용을 담은 디지털시장법 등을 논의하고 있다.

또한 IT 공룡기업들이 국내 중소기업·스타트업과의 상생안으로 악화된 여론을 반전시키려는 의도적인 '꼼수'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IT 업계 한 관계자는 "국감 직전 상생 이미지를 최대한 부각하기 위해 상생안을 제시하고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들 빅테크 기업에 대한 국내 인식은 싸늘하다 못해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이라며 "강도 높은 질타가 예상되는 만큼 국감에서 뭐라도 할 말을 마련하기 위해 현 시잠에서 상생안을 내놓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이야 국감을 앞두고 부랴부랴 바짝 엎드리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언제 기존의 영업 행태로 돌아갈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애플이 발표한 상생방안에서 구체적인 투자 금액을 밝히지 않은 점이나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 시행 후 이들 기업이 결제 방식에 대해 별다른 후속 조치를 내놓지 않은 것을 볼 때 '일단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식의 '꼼수'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혹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