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현 삼성SDI 부회장. (사진=삼성SDI)

최근 단행된 각 그룹의 정기 임원인사에서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는 모두 중량급 부회장들을 전진 배치됐다. 그만큼 각 그룹 내에서 높아진 배터리 사업 부문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그룹 총수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어 배터리 사업 육성에 그룹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유럽 등 해외 경쟁업체들이 국내 배터리 핵심인재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이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 미련에 부심하고 있다.

9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지난 7일 전영현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고 최윤호 삼성전자 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전 부회장이 삼성SDI 전반을 총괄하고 최 사장이 글로벌 시장 공략과 재무 등을 책임지는 투톱 구성이다. 삼성SDI에서 부회장급이 탄생한 것은 창사 51년 만에 처음이다.

최 사장은 1987년 삼성전자 가전사업부 입사 후 주로 글로벌 무대에서 역량을 쌓았으며 재무 쪽에서도 유능한 모습을 보여왔다. 최 사장은 옛 미래전략실 출신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복심'으로 통하며 그룹 내 ‘전략통’, ‘재무통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50여년 역사의 삼성SDI에서 창사 이래 처음으로 부회장이 나온 것”이라며 “배터리 사업에 그만큼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 (사진=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3사 가운데 가장 먼저 임원 인사를 발표한 LG에너지솔루션은 LG그룹 내 독보적인 2인자인 권영수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맞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두고 중국 CATL과 증설 경쟁이 한창이다. 내년 초 기업공개(IPO)를 성공적으로 마쳐야 하는 숙제도 권 부회장에게 주어졌다.

그는 2012년부터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을 맡아 아우디, 다임러 등 완성차 업체로부터 수주를 이끌어내며 취임 2년 만에 전기차 배터리 고객사를 10여개에서 20여개로 확대했고 전기차 등에 사용되는 중대형 배터리를 시장 1위 지위에 올려 놓은 입지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날로 경쟁이 심화되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구광모 회장을 보좌해 LG가 대규모 투자·수주 전략을 긴밀하게 전개하는 데 권 부회장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사진=SK이노베이션)

SK 역시 지난 2일 배터리 부문 자회사를 두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의 김준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이뿐 아니라 SK온은 오는 15~16일경 이사회를 개최해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출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태원 SK 회장의 동생인 최 수석부회장의 최종 행선지가 SK온으로 결정될 경우 주요 그룹 중 처음으로 오너가가 직접 배터리 사업 지휘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최 수석부회장은 배터리 사업 초기 단계부터 개발을 주도했으며 2018년 3월 헝가리 코마롬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부문(현 SK온)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기공식에 참석하는 등 배터리 사업에 많은 열의를 보여왔다.

이를 기반으로 배터리 3사는 국내 배터리시장 점유율 경쟁, 글로벌 배터리시장 공략을 통해 자웅을 겨룰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주요 과제로 꼽히는 배터리 품질 리스크 최소화·글로벌 투자 확대·차세대 기술 개발 등에서 조기 성과를 거두는 것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배터리업계는 현재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외 투자와 재무 전략을 모두 성공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이 때문에 각 그룹마다 핵심 인물을 새 경영진으로 전진 배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신사업인 배터리 사업은 당장 수익이 나지 않아도 꾸준히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경영진의 판단이 중요한 시점이고, 그룹과 교감하기 위해 무게감 있는 인물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배터리 3사는 핵심인력 지키기에 부심하고 있다. 최근 임원인사에서 30대 상무 및 40대 부사장을 대거 발탁한 배경도 이들 인력들에게 자신들도 '별'을 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업계에 의하면 세계 완성차 1위 업체 폭스바겐그룹이 투자한 스웨덴 배터리 스타트업 노스볼트는 최근 삼성SDI 직원들을 대거 영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스볼트는 2019년에도 30여명의 한국, 일본 직원들이 자사에서 근무 중이라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한국인 직원은 주로 2016년 창립 초기에 이직한 LG에너지솔루션 출신들이었다.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자사 전기차 80%에 각형 배터리를 탑재할 계획이다. 이에 노스볼트는 각형 배터리가 주력인 삼성SDI 출신 엔지니어 영입에 나선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년간은 중국 업체들이 국내 기업보다 3~4배 많은 연봉을 제시해 배터리 인재들 수백명을 스카웃해갔다”며 “폭스바겐을 중심으로 유럽 기업들이 배터리 시장에 진출하면서 최근에는 유럽행을 원하는 한국 직원들이 많다. 기술자들이 대거 넘어가면 기술 격차가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국내외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는 배터리 3사로서는 현재도 1000여명이 부족한 인력을 지키는 것이 관건이다. 국내 대학과 계약학과 설립에 나서고 있지만 인력 배출까지는 3년여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