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이 만든 10대 플랫폼 ‘리브 넥스트’ (사진=KB국민은행)

앞다퉈 "혁신"을 외치던 은행들이 유행에 편승하기 위한 서비스만 내놓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시작한 서비스를 따라하거나 다른 은행이 개발한 상품을 베끼는 식이다. 창의적인 개발이 없인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최근 10대 고객들을 대상으로 ‘리브 넥스트’ 플랫폼을 출시했다. 10대의 ‘금융 독립’에 초점을 맞춘 ‘리브 넥스트’는 걸그룹 에스파를 광고 모델로 섭외해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리브 넥스트’는 신분증·계좌·수수료 없이 본인 명의 휴대폰 인증만으로 선불전자지급수단 ‘리브포켓’을 통해 송금과 입·출금 거래를 할 수 있다. 이용 한도는 일 30만원, 월 200만원, 보유 한도는 50만원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미래 금융 주역인 Z세대 고객 의견에 귀를 기울여 더욱 새로운 금융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리브 넥스트’는 앞서 출시된 카카오뱅크의 ‘mini(미니)’ 서비스와 비슷하다. 지난해 10월 카카오뱅크가 시작한 mini 서비스는 계좌가 필요 없이 결제를 할 수 있으며 온·오프라인 결제용 카드 발급 등도 가능하다. 10대 청소년을 미래 고객으로 품으려는 카카오뱅크의 전략은 적중했고 1년 만에 100만명 넘는 mini 고객을 확보했다.

KB국민은행에 앞서 신한은행도 신한카드와 함께 10대 청소년을 위한 선불카드 ‘신한밈(Meme)’을 내놓았다. 출시 1개월 만에 10만 고객을 확보했다.

또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면서 관련 서비스가 인기를 얻자 지난 8월 KB국민은행은 자사 플랫폼 KB스타뱅킹에 ‘반려동물 정보 등록’ 서비스를 신설했다. ‘반려동물 정보 등록’ 서비스는 품종, 생일 등 정보를 등록하면 향후 보험, 적금 등 반려가구 전용 금융정보와 함께 양육에 필요한 비금융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서비스가 인기를 끌자 신한은행도 신한 쏠(SOL)을 통해 반려동물 특화 플랫폼 ‘쏠 펫(SOL PET)’을 선보였다. ‘쏠 펫’은 반려동물의 일상과 양육 정보 등을 공유하고 중고장터도 이용할 수 있다. 더불어 ‘쏠 펫’을 통해 보험과 적금 등 반려동물 관련 금융 서비스도 제공된다.

신한은행의 반려동물 특화 플랫폼 ‘쏠 펫(SOL PET)’ (사진=신한은행)

■ 은행권 ‘유행 따라잡기’, 어제오늘 일 아냐

은행권의 ‘유행 따라잡기’는 이전에도 만연했다. 핀테크 붐이 일었던 2016년 우리은행은 메신저 서비스인 ‘위비톡’을 공개하고 서비스에 들어갔다. 당시 이광구 우리은행장의 야심작으로 평가받았던 ‘위비톡’은 가입자 100만명을 넘으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자 KB국민은행도 이듬해 대화형 뱅킹 플랫폼 ‘리브똑똑’을 선보였다. 비밀대화 기능까지 추가했던 ‘리브똑똑’은 잠시 이슈가 됐다. 하지만 결국 카카오톡, 텔레그램 등 전용 메신저들에 밀려 이용자가 급감했다.

인터넷 은행 1호 케이뱅크는 후발주자인 카카오뱅크의 추격에 대응해 상품 내용부터 이름까지 카카오뱅크와 똑같은 ‘비상금 대출’을 출시하기도 했다.

또 카카오뱅크가 파트너사와 제휴를 맺고 개발한 ‘26주 적금’이 연일 이슈가 되자 신한은행 ‘쏠XGS 백만원 챌린지 적금’, SC제일은행 ‘GS25와 함께하는 적금 이벤트’, 부산은행 ‘40주 챌린지 with CGV’ 등 유사상품이 쏟아졌다.

■ ‘우선 판매권’ 있지만 유명무실

금융권에도 특허와 비슷한 ‘우선 판매권’이 있다. 지난 2001년 전국은행연합회와 은행이 새로 개발한 상품의 독창성을 인정해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우선 판매권’을 얻으면 최대 6개월간 판매 보호를 받을 수 있고 판매 중지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은행은 까다로운 허가 과정 때문에 개발은 물론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이후 기발한 상품 및 서비스가 쏟아지기 시작했던 지난 2017년부터 현재까지 최근 5년간 우선 판매권 신청은 0건이다.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의 상품 개발은 이어지지 않았다. 개발 대신 인기 상품을 모방하는 방식의 마케팅만 이어졌다. ‘디지털 혁신’을 외쳤지만 따라잡기에만 급급했고 완전히 새로운 상품·서비스는 점점 더 줄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우선 판매권이 있지만 오히려 그 소식이 퍼지면 비슷한 상품을 만들기에 급급하다”며 “지금 상황에서 혁신을 찾는 건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