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단행된 재계의 정기 임원인사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성과와 실적을 기반으로 한 신상필벌 원칙은 통용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헌신해온 인사들을 예우하는 연공서열도 희미해졌다. 새로운 리더십은 글로벌 파고를 이겨내기 위해서 세대교체와 조직쇄신, 미래 먹거리 창출에 초점을 맞췄다. 뷰어스는 재계가 올해 인사를 통해 말하는 것을 분석해봤다. -편집자 주
노종완 SK하이닉스 사장(왼쪽), 박찬우 삼성전자 부사장, 추교웅 현대자동차 부사장, 신성은 LG전자 상무. (사진= 각 사)
재계의 2022년 임원 인사의 특징 하나는 미래 준비를 위해 3040 젊은 임원을 대거 발탁했다는 것. 더이상 임원 자리가 5060세대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젊은' 그룹 총수들이 인공지능(AI)·빅데이터·로보틱스 등 혁신 기술을 기반으로 한 변화의 물결이 휘몰아치는 상황에서 맞서기 이들을 내세웠다. 이들은 글로벌·디지털 역량과 전문성으로 무장했다. 최고경영자(CEO) 후보군으로서 미래시장 공략의 최전선에 나선 것이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2년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30대 상무 4명·40대 부사장 8명 등 젊은 리더를 대거 승진시켰다.
부사장으로는 ▲VD사업부 Service S/W Lab장 고봉준(49) ▲삼성리서치 Speech Processing Lab장 김찬우(45세) ▲생활가전사업부 IoT Biz그룹장 박찬우(48) ▲글로벌기술센터 자동화기술팀장 이영수(49) ▲무선사업부 UX팀장 홍유진(49) 등이 이름을 올렸다. 아울러 ▲메모리사업부 상품기획팀 손영수(47) ▲Foundry사업부 영업팀 신승철(48) ▲미주총괄 박찬익(49) 이 40대 부사장에 올랐다.
30대 임원도 4명 탄생했다. SET부문에서 VD사업부 선행개발그룹 소재민(38) 상무와 삼성리서치 Security 1Lab장 심우철(39) 상무, DS부문에서 메모리사업부 DRAM설계팀 김경륜(38) 상무, S.LSI사업부 SOC설계팀 박성범(37) 상무가 30대에 '별'을 달았다.
내년부터는 성과주의를 기반으로 약 10년의 '직급별 표준 체류 기간'을 전격 폐지돼 3040의 초고속 승진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올해 30대 임원이나 40대 부사장이 나왔지만 내년에는 3040에 대한 승진폭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앞으로도 부사장은 나이와 연공을 떠나 주요 경영진으로 성장 가능한 임원을 중심으로 승진시키고 핵심 보직에 전진 배치해 ‘미래 CEO 후보군’으로 경영자 자질을 배양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신규 임원 총 203명을 선임하면서 40대에선 3명 중 1명을 임명했다. 기존 임원 200여명이 물러난 대신 40대 부사장 등 203명의 젊은 피가 대거 수혈되는 등 사상 최대 규모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부사장 승진자 중에선 인포테인먼트개발센터장·전자개발센터장 추교웅 부사장이 40대 중반으로 가장 젊다.
2017년 38세에 그룹 최연소 임원에 올랐던 장웅준 자율주행사업부장은 4년 만에 전무로 승진해 정의선 회장의 현대차 기반을 다져나가고 있다.
정 회장은 전체 신규 임원 승진자의 37%를 연구개발(R&D) 부문에 집중 배치해 미래 먹거리 사업 강화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SK그룹에서는 2년 연속 40대 사장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SK E&S에서 1974년생인 추형욱 사장이 배출된데 이어 올해는 SK하이닉스가 1975년생인 노종원 부사장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했다.
LG그룹은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최대 규모의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132명의 신임 상무 가운데 40대가 82명으로 62%를 차지하는 등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젊은 임원들을 대거 발탁했다. 최연소 임원은 1980년생 41세인 신정은 LG전자 상무다. LG의 1970년대생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41%에서 올해 말 기준 52%로 절반을 넘어섰다.
롯데그룹은 40대 부사장은 없었으나 유니클로 국내 운영사인 에프알엘코리아에 1975년생인 정현석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그는 2000년 롯데백화점 고객전략팀장, 2013년 영업전략팀장, 2018년 중동점장, 2020년 롯데몰동부산점장 등을 역임했다. 다만 '외부수혈'로 파격을 줬지만 그룹 내 뿌리 깊은 보수적인 인사 문화로 인해 타 그룹에 비해 3040의 발탁은 눈에 띄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GS그룹에서는 오너가(家) 4세인 허서홍 (주)GS 부사장을 비롯해 2명의 40대 부사장이 임원 인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인사에서 GS그룹 총수 일가 중 승진자는 허 부사장이 유일하다. 허 부사장은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장남이다.
재계 관계자는 “엄중한 국내외 경영 환경을 감안해 기업들이 매머드급 인사를 통해 '젊은피 수혈'이라는 특단의 조치에 나선 것”이라며 “기존 승진체계를 모두 바꾸고 전문성을 토대로 한 공정 경쟁을 주문하는 MZ세대 요구가 맞물린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