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래 다우그룹 회장(좌), 황현순 키움증권 대표이사 사장(우)
1. 폭풍성장 진격의 '미래에셋'
2. 독 품은 반전의 '한투'
3. 변화한 아픈 손가락 '삼성'
4. 울타리 넘은 저력의 'NH'
5. 실리 또 실리의 '키움'
실리(實利)에서는 따라올 자가 없다.
아무도 몰랐다. 2000년 주식중개 전문으로 등장한 작은 증권사 키움증권이 이렇게 클 줄. 지점 하나 없이 '영웅문'이란 이름의 HTS(홈트레이딩시스템) 하나로 증권가를 접수할 줄. 어느새 영업이익 1조원을 넘어서 키움이 증권 빅5에 진입했다.
그의 성공 비결은 IT와 금융의 조합이다. 핀테크가 본격화되기 한참 전의 도전이다. 당시 주식중개 수수료를 1/10 토막내며 등장했던 키움증권은 지점 비용을 들이지 않고 IT 기반의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아낌없는 전산투자, 확 후려친 수수료 전략으로 단기간내 개미들의 투자 성지가 됐다. 당시만 해도 주식투자는 지점 방문을 통한 오프라인 영업이 대세였던 시절이니 다들 '설마설마' 했다. 그렇게 키움은 증권업계 패러다임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꿔놨다. 물론 증권업계 내부에선 "상도를 깼다"는 비난과 질시도 감수해야 했다.
앞만 보고 내달렸다. 키움은 설립 5년도 안된 2005년부터 지금껏 16년동안 위탁매매 점유율 1위 자리를 한번도 놓지지 않았다. 50여개가 넘는 증권사 중 30%에 달하는 압도적인 점유율로 실리를 챙겼다. 대형사들이 뒤늦게 수수료 경쟁에 나섰지만 키움은 건재했다. 그렇게 세를 불린 키움이 빅5 증권사에 진입, '규모의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 영업이익 1조원 첫 돌파
지난해 키움증권은 1조2089억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창사이래 첫 1조원 돌파다. 실적으로는 한투에 이어 5위지만 2~5위 격차는 100억원 수준에 불과해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다. 수탁수수료 수익은 8795억원으로 전년비 31.7% 늘었다. 전년(2020년)에 잠시 미래에셋과 삼성에 밀려 3위로 내려앉았다가 다시 선두로 올라섰다. 거래대금 증가에 따른 개인위탁매매 점유율 상승, 해외주식투자 증가 등의 영향이다.
지난해 4분기 기준 국내 주식 리테일 약정 점유율은 29.6%. 해외주식 약정 점유율 역시 29.5%로 압도적이다. IB부문은 여전히 빅5 수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점진적 상승을 꾀하는 중이다. IB부문 이익은 1992억원으로 전년비 15%, 투자운용(PI)도 1999억원으로 8% 가량 증가했다.
■ 키움만의 'HTS 경쟁력' 비결
키움의 힘은 리테일에서 나온다. 국내 주식시장이 죽지 않는 한 키움의 자생력은 충분하다. 최근 수년간 대형사들이 '수수료 제로'를 무기로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의미있는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키움의 무기는 IT 기반의 경쟁력이다. 주식차트, 조건검색 등 HTS 상의 모든 것이 키움의 자체 기술이다. 고객 니즈가 있으면 즉각 조치가 가능하다. 반면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이 같은 기술적인 부분을 외부업체에 위탁한다. 대응이 더딜 수밖에 없다. 키움이 IB와 WM에 있어 대형사들을 따라잡기 힘들듯 대형사 역시 키움의 HTS, MTS 경쟁력에선 키움을 따라잡기 힘든 이유다.
각 사들이 집행하는 전산투자 비용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공시된 각 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빅5사의 전산운용비는 삼성(822억원), 키움(764억원), 미래에셋(667억원), 한투(333억원), NH(310억원) 순이다. 삼성에 이어 두 번째지만 실질적인 투자는 키움이 압도적이다. 대형사들의 경우 대면 금융상품, 입출금 위주의 오프라인 지점 시스템에 쓰는 전산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또 CMA(종합자산관리계좌), ELS(주가연계증권) , DLS(파생결합증권), 사모펀드 등의 상품을 구축하는데 대형사들은 전산비용의 대부분을 들인다. 반면 키움은 모든 비용을 주식선물옵션매매시스템에 집중할 수 있다.
■ 위험한 경쟁자 '토스와 카카오'
결국 이 같은 투자와 비용의 차이로 인해 여타 증권사들과 키움의 기술 격차는 좁혀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안심할 건 아니다. 새로운 경쟁자에 대한 경계감이 생겼다. 카카오와 토스증권 등 IT 기반의 신생사들이 공세에 나선다면 키움의 온라인 최강자 위치도 언제 어떻게 바뀔 지 모른다.
토스증권은 1년전 MTS(모바일 트레이딩시스템)을 출시해 9개월만에 400만 계좌 이상 계설했다. 230만이 넘는 월간활성사용자(MAU)를 달성했다. 점유율은 작년말 기준 1.5% 안팎으로 추정된다. 카카오페이증권도 베타버전에 이어 조만간 정식 서비스를 출시한다. 일단 카카오의 목표 점유율은 2% 수준이다. 다만 카카오페이증권의 경우 3700만명에 달하는 가입자를 두고 있어 토스에 비해 점유율 증가가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
■ 새 술은 새 부대, '세대교체' 전격 단행
키움 오너 김익래 회장은 최근 키움증권의 CEO를 이현 대표(66)에서 황현순 대표(56)로 교체했다. 전격적인 세대교체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의 황 대표는 키움의 창업 멤버. 전략과 기획은 물론 IB(기업금융)와 PI(자기자본 투자) 등을 거친 젊은 재원이다. 전임 대표가 구축해온 탄탄한 리테일 입지에 WM(고객자산관리)을 강화하고, IB를 신무기로 장착하기 위한 일환으로 풀이된다. 내외부와의 소통 강화, 금융당국과의 교감 차원에서도 젊은 CEO로의 세대교체 필요성이 있다고 김 회장은 판단했다.
김익래 회장은 20년 업력과 실리 경영으로 덩치와 내실을 다진 키움증권을 종합금융투자회사로 키울 생각을 갖고 있다. 지난해 6월 4400억원 유상증자를 통해 키움의 자기자본은 3조원을 넘었고 올해 4조원대의 자본력을 갖추게 된다. 종합금융투자회사가 되면 기업 신용공여, 헤지펀드 상대의 프라임브로커리지(PBS) 비즈니스도 가능하다. 지금껏 붙었던 온라인 리테일증권 꼬리표도 확실히 뗄 수 있다.
사실 키움은 가장 큰 리스크는 과도한 리테일 의존도다. 주식 시황 변화에 이익 변동성이 크다는 것이 결정적 약점으로 꼽혀 왔다. 물론 키움의 리테일이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중심이다보니 상대적인 민감도는 덜하지만 키움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사업 다각화는 절실했다. 이에 키움은 최근 IB 강화를 위해 전문인력 수혈에 주력해 왔다. 덕분에 과거 증권업계 최저 수준의 직원들 임금 수준도 어느정도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규모와 숫자로 키움을 위협하는 곳들은 여전히 많다. 빅4는 물론 꾸준한 성장곡선을 그리며 빅5 모두를 위협하는 메리츠증권, 대형 금융지주 계열의 KB, 신한금융투자, 하나금융투자와도 경쟁해야 한다. 과연 온라인 특화사로 출발한 키움이 대형사들과의 피터지는 경쟁 속에서도 실리와 효율을 끌어내며 종합사로 거듭날 수 있을까. '실리의 고수' 키움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는 국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