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이 숭숭 뚫린 허점투성이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은 무용지물일 뿐이다."
지난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노동 현장에서 쏟아지는 불만의 목소리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없어지거나 확연히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감은 2달이 겨우 지났거만 실망감으로 돌아오고 있다. 철강·조선·건설업종 등 제조업 분야에서 잇달아 산재 사망사고 소식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죽음의 일터' 중 하나로 꼽히는 현대중공업이 대표적이다. 지난 2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폭발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해 협력업체 노동자 50대 A씨가 사망했다. 1월 24일 울산조선소에서는 이 회사 근로자 50대 B씨가 크레인으로 철판을 이송하는 작업을 하던 중 철판과 설비 기둥 사이에 끼는 사고를 당해 숨졌다.
고용노동부가 해당 작업에 대해 작업중지 조치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지만 별로 기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노동자 중심이 아닌 사업자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열어주고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창원 소재 두성산업 사례가 잘 보여준다. 지난 2월 말 급성 중독으로 인해 직업성 질병자 16명이 발생했다. 이에 수사당국은 두성산업 대표이사에 대해 법 시행 후 첫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영장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미 증거가 충분히 확보된 상황이라는 다소 이해하기 힘들 결정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경영주에 대한 이른바 '온정주의'가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기업들은 안전 관리 점검 및 재발 방지 총력 등으로 분주하지만 ‘공염불’이라는 지적을 받곤한다. 법 시행 후 기업들은 앞다퉈 안전최고책임자(CSO) 자리를 만들고 관련 조직 개편을 완료했음에도 사고는 반복되고 있이 이를 방증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주에게 가혹하다며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제기되고 있어 우려를 키우고 있다.
사업장 안전 관리감독의 주체인 고용노동부부터 이에 가세했다. 노동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한 기업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취지로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도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현장 우려 사항을 점검하고 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주요 경제단체장들은 윤석당선인을 만난 자리에서 이 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당선인은 이 법과 관련한 구체적인 공약을 따로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후보 시절 중대산업재해 예방이 필요하다면서도 이 법의 비합리적 부분은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권은 여전히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법의 비합리적인 부분을 부각하고 기업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은 법의 취지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나마 허점투성이 법을 누더기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