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 마지막 날인 22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만나 환담을 나눈 뒤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당시 미국에 대한 통 큰 투자를 결정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4일 대한상공회의소의 한 행사장에서 만난 정 회장은 이와 관련해 기자의 질의에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더 주목됐다.

이어 정 회장은 국내에도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한국과 미국을 비롯해 올해 초 공장을 세운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시장 ‘전기차 거점 전략’을 가늠케 했다.

■ 미 조지아주, 관련 산업 모여있어…북미 전기차 시장 공략 최적지

현대차그룹은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방한 기간에 맞춰 지난 21일 미 조지아주(州)에 2025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연간 30만대 규모의 전기차 생산 공장과 배터리셀 공장을 새로 설립한다고 밝혔다. 투자규모는 약 50억 달러(6조3000억원)로, 북미 전기차 시장 거점으로 낙점했다.

현대차가 세울 전기차 부지는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 지역으로 축구장 1656개 크기인 1183만㎡에 이른다. 이는 내년 상반기에 착공을 시작한다.

현대차는 이곳을 통해 북미 전기차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선다. 전기차 다차종을 생산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생산 효율성과 원가 경쟁력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통해 전동화 추세에 전략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앨라배마주 현대차 공장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이미 이곳에 터를 잡고 있는 현대차 앨라배마주 공장과 기아의 조지아주 내연기관 생산공장과 시너지도 전망된다. 기아의 조지아주 미국생산법인(기아 조지아)은 현대차가 새로 지을 공장과 약 400km 거리에 위치했다.

앨라배마주에 있는 현대차 미국생산법인(HMMA)의 경우는 올해 12월부터 제네시스 GV70 전기차를 생산할 예정이다. 지난달 중순경 HMMA 관계자는 “앨라배마주와 관련 협약을 체결했다”며 “전기차 생산을 위해 현지 공장에 3억달러(약 3681억원)를 투자하고 일자리 200개를 창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새로 설립될 현대차 조지아 공장은 기아 조지아와 HMMA와 함께 부품 협력사와 물류 시스템 등을 공유해 공급망 효율을 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 조지아주가 ‘기업하기 좋은 지역’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선호하는 점도 북미 생산 거점으로 선정된 이유로 분석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조지아주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500대 기업 중 18개 기업 본사가 위치했다. 전기 픽업트럭 분야의 ‘테슬라’로 불리는 리비안은 이곳에 50억 달러를 투자해 20만대 생산 규모의 전기차 공장을 짓기도 했다.

국내기업 중에는 전기차 배터리 회사 SK온이 2020년 조지아 커머스에 배터리 공장을 설립했다. SKC는 이곳에 반도체 부품 생산을 위한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현대차도 이곳에 배터리 전용 공장을 세워 현지에서 필요한 핵심 부품을 확보할 계획이다.

코트라 관계자는 “조지아주 애틀란타 지역에 미국 유명 기업이 포진해 있고, 전기차 회사도 생산 거점으로 삼고 있어 국내외 기업들이 사업에 적합한 지역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 조지아주로부터 세제 혜택과 정책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점도 거점 이유다.

미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신차 판매에서 전동화 차량이 차지하는 비중을 50%까지 확대하고 관련 충전설비 50만기 설치와 보조금 증대 등의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을 통해 자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유리한 조치를 단행할 방침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조지아주 투자 계획과 관련해 “조지아주 정부는 현대차그룹의 투자 결정에 대해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 제공과 지속적인 제반 지원을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현대차그룹 측은 “2030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총 323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해 약 12% 수준의 시장점유율을 달성할 것”이라고 목표를 밝혔다.

현대차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 생산라인 (사진=현대자동차그룹)


■ 韓, 연구개발 등 ‘전기차 초격차’ 거점…인니, 아세안 공략 요충지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국내 전기차 분야에는 21조원을 투자해 현재 35만대 수준인 국내 전기차 생산량을 4배 이상인 144만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한국을 글로벌 전기차 분야 초격차 중심지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2030년까지 글로벌 생산목표인 323만대 중 45%인 144만대를 국내 공장에서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해외 투자 계획을 밝힐 당시 현대차 노조 등은 “노조와 상의 없이 결정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러한 노조의 우려를 잠재우면서 동시에 한국을 전기차 등 친환경차 초격차를 달성할 수 있는 연구개발 중심지로 삼겠다는 전략이 내포돼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위해 국내에선 배터리 연구센터와 고성능 충전기 인프라 시험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서울대학교와 함께 배터리 공동연구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현대차그룹은 향후 10년간 300억원 이상 지원할 계획이다. 올해 말까지 배터리공동연구센터 전용 연구공간을 마련하고 관련 실험 장비를 구축한다.

초고속 전기차 충전소 인프라 구축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3월 전기차 초고속 충전 브랜드 ‘이피트(E-pit)’를 출범하고, 올해 4월엔 전기차 충전 서비스 플랫폼 ‘이씨에스피(E-CSP)’도 론칭했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전국 주요 도심에 초고속 충전기 5000기를 설치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판도를 뒤바꾸는 게임체인저이자 퍼스터무버로 도약해나가기 위해 국내·외 지속적인 투자를 해나갈 예정”이라며 “연구개발을 통해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 물결에 민첩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생산 거점도 이번 한국, 미국 투자와 함께 주목된다. 아세안 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차 ‘아이오닉5’는 울산 1공장에서, 기아 전기차 EV6는 화성3공장에서 생산하며 전기차 물량 대부분을 국내에서 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 수요가 급증할 예정이어서 추가 생산시설 확보가 시급하다. 인도네시아는 이를 충족하면서 동시에 아세안 지역 생산·수출 거점으로 적합하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초 인도네시아 델타마스 공단 지역엔 15억5000만달러를 들여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를 함께 생산할 수 있는 방식의 생산 거점을 마련했다.

현재는 내연기관차 생산이 더 많지만 향후 전기차 수요에 맞춰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생산능력도 연산 15만대에서 25만대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맨발로 다니는 이에게 신발 판다는 말이 있다. 인도네시아는 6억명 이상의 인구가 있고 아직 전기차 판매가 활발하지 않아 판매 잠재성이 풍부하다. 인도네시아를 통해 아세안 지역을 선점한다는 현대차그룹의 목표를 내다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