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고(3高)’가 코로나19 터널에서 빠져나와 회복을 꿈꾸던 한국 경제의 속을 쓰리게 하고 있다. 물가, 금리, 환율이 주범이다. 이른바 ‘푸틴플레이션(푸틴+인플레이션)’은 국제 유가와 곡물가 등 원자재 가격을 높였다. 이는 그대로 수입돼 국내 소비자물가 고공행진으로 이어졌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한국은행은 잇따라 기준금리를 올려야했다. 전세계가 같은 고통을 겪는 사이 ‘안전자산’인 달러화의 인기가 높아져 원화 환율은 1300원 목전까지 올랐다. 7월 2일 창간 7주년을 맞는 뷰어스는 [3高 위기를 넘자]라는 주제로 창간기획을 준비했다. -편집자 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가운데)이 지난달 30일 오전 세종시 산울동 6-3생활권 M2 블록 주택건설 현장에서 열린 '건설산업 공급망 점검 회의'에 앞서 현장 개요 등을 보고 받은 뒤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건설사 다수가 올해 물가상승과 금리인상에 따라 보수적인 수주 전략을 취하고 있으나 당장의 수익성 관리에도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다. 정상화보다는 수익성 방어에만 '올인' 해야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수주산업이 기반인 건설사 입장에서는 자재값을 바로 공사비에 반영할 수 없는 만큼 인플레이션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초 기준으로 철근 가격(국산 유통가)은 톤당 114만원으로 전년동기대비 35% 이상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이달에는 120만원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콘크리트 원료인 시멘트 가격도 같은 달 톤당 7만8800원에서 9만3000원으로까지 올랐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라 주요 건설사들도 1분기 휘청였다. 10대건설사 중 선방했다고 평가받는 건설사는 삼성물산과 대우건설 뿐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1분기 매출은 3조190억원(이하 연결 기준)으로 전년 동기(2775억원) 대비 8.8% 증가했다. 영억입익은 1550억원으로 전년 동기(1350억원) 대비 14.8% 늘었다.
대우건설은 매출 2조2495억원, 영업이익 2213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매출은 16%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2294억원) 대비 3.5% 감소했다. 영업이익이 소폭 감소했으나 경쟁사 대비 감소폭이 크지 않았다.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직격탄을 맞은 대형건설사는 DL이앤씨다. 자회사인 DL건설이 부진한 실적을 보이면서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7% 줄었다.
현대건설과 GS건설도 영업이익 각각 1715억원, 153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6%, 13% 하락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감소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1분기 매출액은 1조6414억원, 영업이익은 1363억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6.3%(1조 7524억원), 23.4%(1779억원) 감소했다.
롯데건설도 영업이익이 크게 줄었다. 롯데건설의 1분기 영업이익은 58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 줄었다.
서울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사진=연합뉴스)
■ 신공법 찾아 나섰지만, 당장 믿을 건 현장
이처럼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영업이익 감소에 건설사들은 원가 관리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원가절감을 위한 대체 자재 개발이나 공기를 단축할 수 있는 신공법 개발은 물론 현장에서는 선발주를 통해 대응할 수 있는 부분은 대응하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언제나 그렇지만 원가율을 낮추는 게 건설사들의 가장 큰 숙제"라며 "또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공사비 증액에 대한 협의는 어느 현장에서나 다 진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주 전략도 선별 수주 전략을 내세우면서 철저하게 수익이 되는 사업지에만 들어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공사비 인상이 없으면 수주도 없다는 게 업계 목소리다.
공사비 문제로 부산 해운대구우동3구역 재개발사업이 연달아 유찰되고 경기도성남시 수진1구역 재개발사업과 신흥1구역 재개발사업도 시공사를 찾지 못했다.
부곡2구역 재개발사업에서는 GS건설이 물가 연동 공사비를 제안하고 포스코건설은 정반대의 확정 공사비를 제안하는 등 급격히 높아진 물가에 조합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다양한 조건도 나오고 있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환경을 바꿀 수 없는 노릇이니 답답하긴 하다"며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은 기존의 사업수행능력과 현장관리 능력을 토대로 비용을 최소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지난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첫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인플레이션 상황, 자재비 급등에 구원투수로 나선 정부
인플레이션에 따른 공사비 인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가 직접 구원투수로 나섰다.
지난 21일 국토교통부는 건축비 산정·고시제도도 기존 ‘3개월·15%’ 원칙을 완화하기로 했다. 기본형 건축비는 매년 3월·9월 두 차례 정기고시하고 고시 3개월 뒤 주요 자재 가격이 15% 이상 변동하면 재고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왔다. 그러나 최근 원자재값 폭등으로 레미콘, 철근 등 주요 건축자재값 상승분을 제때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안팎에서 나왔다.
정부는 기본형 건축비 항목 4종(레미콘·철근·PHC파일·동관) 중 공법 변화로 사용빈도가 줄어든 PHC파일, 동관을 제외하고 창호유리, 강화합판 마루, 알루미늄 거푸집 등 3종을 새로 추가했다.
또 단일품목 가격 15% 상승 시 외에 기본형 건축비 비중 상위 2개 자재(레미콘·철근) 가격 상승률 합이 15% 이상이거나 하위 3개 자재(창호유리·마루·거푸집) 상승률 합이 30% 이상인 경우 정기고시 시점과 관계없이 기본형 건축비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해서 공사비 인상에 따른 대응을 언제든 가능하게 한다.
이외에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고분양가 심사 시 자재비 급등요인을 반영하기 위한 ‘자재비 가산제도’도 신설한다. 최종분야가를 결정할 때 자재값이 단기간에 급등하면 가산비율을 산정해 기존 방식으로 정한 분양가에 가산비를 추가하는 식이다.
국내 최대 공공 발주처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움직임을 보였다.
LH가 발주하는 공공사는 관련 법령에 따라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을 조정할 수 있다. LH는 내부지침으로도 물가상승률이 3% 이상일 때 시공사가 90일 주기로 공사비 증액을 요청할 수 있는 '에스컬레이션 조항'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
다만 건설사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LH의 공사비 인상이 실제로 적용되기까지는 어려움이 있다는 게 업계 목소리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그동안 LH가 시행을 한 사업지는 원자재값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에 대한 요구를 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인상이 이뤄지는 경우는 잘 없었다"며 "다만 지금 같은 극심한 물가 상승 등을 고려했을 때 이제는 공사비 인상 안하면 진짜로 사업을 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LH도 조금 더 적극적인 움직임을 약속했다. 김현준 LH 사장은 지난달 18일 시공업계 간담회를 열고 "자재가격 급등과 관련해 업계의 애로사항을 공감하고 있다"며 "LH가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차질 없이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