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함이 지속되면 임기 전에 은퇴할 각오도 갖고 있다."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의 발언 수위가 높아졌다. 지난달 크래프톤 정기주주총회에서 많은 지지를 받으면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됐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분위기가 좋지 못했다. 김 대표의 재선임 안건 동의율은 무려 98.5%였으나 주총에 참석한 소액주주들의 반발은 컸다. 소액주주들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결집하면서 김창한 대표는 물론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에 대한 재선임 반대 의결권 행사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들이 나선 이유는 주가 하락에 대한 책임을 경영진에게 묻기 위해서다. 크래프톤의 주가는 19만원 선에서 거래 중이다. 49만8000원이었던 공모가와 비교하면 약 60% 하락한 것. 김창한 대표도 "주가가 많이 하락했고 지난해 출시한 게임의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 것은 사실"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하며 주주 달래기에 진땀을 뺐다. 정보통신(IT)업계는 최근 주주들의 행동주의 바람에 긴장하고 있다. 컴투스도 소액주주들의 집단 행동에 이주환 대표가 직접 사과를 했다. 컴투스는 지난 12일 홈페이지에 주주 안내문을 게시하고 "현재의 주가 상황이 주주님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중장기적인 회사 성장 비전과 주주가치 제고방안 등을 언급했다. 컴투스의 액션도 소액주주들의 거센 반발을 맞은 탓이다. 컴투스 소액주주 연합인 '컴투스 주주행동 모임'은 지난 3일 회사에 공개 주주 서한을 발송했다. 컴투스의 경영전략 및 기업가치 제고 실패 원인과 송병준 의장과 송재준 대표에게 각각 27억원, 14억4000만원의 급여를 지급한 기준을 물었다. 네이버도 정기주주총회 현장에서 배당금을 둘러싼 주주들의 반발이 나오자 김남선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네이버와 같이 성장하는 인터넷 혁신 회사들은 대체로 배당을 거의 안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이해한다"면서도 "올해 상반기 내로 주주환원 정책을 경정해 말씀드리겠다"고 달랬다. 행동주의 바람은 주주에서 그치지 않는다. 회사 내부 조직 차원에서 노조 설립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10일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엔씨소프트 지회 '우주정복'이 출범했다. 게임업계에서는 5번째 사례다. 엔씨소프트 노조는 "가족경영에 기반을 둔 수직적, 관료적 문화는 실패와 악덕을 덮었고 책임과 피해를 사우에게 전가했다"며 회사에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이와 함께 ▲고용 안정 ▲수평적인 조직문화 ▲투명한 평가 및 보상체계 등을 요구했다. 구글코리아 직원들도 지난 11일 역삼역 본사 인근 회의실에서 총회를 개최하고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구글코리아지부를 설립했다. 최근 IT 업계를 휩쓸고 있는 추가 인원감축 바람에 고용불안을 느낀 직원들이 노조를 설립한 것이다. 지난 2018년 10월 100명 수준으로 시작한 카카오 노조도 지난 1월 기준 조합원 수는 전체 직원의 50%가 넘는 1900여명 가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주나 노동자나 행동주의 바람을 주도하는 이유는 당장 자신의 이익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구성원 행동주의에 대해 단기적인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며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회사의 경영 상황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들을 벌인다고도 지적한다. 이에 더해 일부 강성노조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더해지면서 행동하는 주주나 노조에 대한 비난은 이기주의자를 욕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간다. 다만 주주 행동주의나 노조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비판에 동의하기 어렵다. 주주는 회사 주식을 보유하면서 보유한 지분의 가치 변화가 당장 자신의 경제 상황과 연관된다. 회사로부터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두말할 것도 없다. 지금까지 IT업계의 주주나 노조가 벌이는 구성원 행동주의 모습을 봤을 때 이들이 거창한 이념적 투쟁을 벌이는 것도 아니다.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좌파의 조건으로 '멀리 내다보는 것'을 전제로 했다. 반대로 좌파가 아니라는 건 내 앞에 있는 세계에 집중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액주주의 집단적 움직임이나 노조 설립 등은 사내에서 어떤 이념적 갈등, 정치적 갈등의 유발로 회사에 피해를 끼치는데 목적이 있지는 않을 거다. 결국 구성원 행동주의는 자신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생존은 처절하다. 구성원 행동주의는 먹고 살기 위한 싸움이며 당연한 현상이다. IT 업계에 불쑥 찾아온 행동주의 바람은 그래서 반갑다. 자신의 생존 문제를 특정 주주와 경영진에게 일임하기에는 그들이 내 생활을 다 책임져주지 않는다.

[정지수의 랜드마크] IT 업계에 부는 행동주의 바람

정지수 기자 승인 2023.04.14 13:23 의견 0


"무능함이 지속되면 임기 전에 은퇴할 각오도 갖고 있다."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의 발언 수위가 높아졌다. 지난달 크래프톤 정기주주총회에서 많은 지지를 받으면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됐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분위기가 좋지 못했다. 김 대표의 재선임 안건 동의율은 무려 98.5%였으나 주총에 참석한 소액주주들의 반발은 컸다.

소액주주들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결집하면서 김창한 대표는 물론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에 대한 재선임 반대 의결권 행사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들이 나선 이유는 주가 하락에 대한 책임을 경영진에게 묻기 위해서다. 크래프톤의 주가는 19만원 선에서 거래 중이다. 49만8000원이었던 공모가와 비교하면 약 60% 하락한 것.

김창한 대표도 "주가가 많이 하락했고 지난해 출시한 게임의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 것은 사실"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하며 주주 달래기에 진땀을 뺐다.

정보통신(IT)업계는 최근 주주들의 행동주의 바람에 긴장하고 있다.

컴투스도 소액주주들의 집단 행동에 이주환 대표가 직접 사과를 했다. 컴투스는 지난 12일 홈페이지에 주주 안내문을 게시하고 "현재의 주가 상황이 주주님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중장기적인 회사 성장 비전과 주주가치 제고방안 등을 언급했다.

컴투스의 액션도 소액주주들의 거센 반발을 맞은 탓이다. 컴투스 소액주주 연합인 '컴투스 주주행동 모임'은 지난 3일 회사에 공개 주주 서한을 발송했다. 컴투스의 경영전략 및 기업가치 제고 실패 원인과 송병준 의장과 송재준 대표에게 각각 27억원, 14억4000만원의 급여를 지급한 기준을 물었다.

네이버도 정기주주총회 현장에서 배당금을 둘러싼 주주들의 반발이 나오자 김남선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네이버와 같이 성장하는 인터넷 혁신 회사들은 대체로 배당을 거의 안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이해한다"면서도 "올해 상반기 내로 주주환원 정책을 경정해 말씀드리겠다"고 달랬다.

행동주의 바람은 주주에서 그치지 않는다. 회사 내부 조직 차원에서 노조 설립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10일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엔씨소프트 지회 '우주정복'이 출범했다. 게임업계에서는 5번째 사례다.

엔씨소프트 노조는 "가족경영에 기반을 둔 수직적, 관료적 문화는 실패와 악덕을 덮었고 책임과 피해를 사우에게 전가했다"며 회사에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이와 함께 ▲고용 안정 ▲수평적인 조직문화 ▲투명한 평가 및 보상체계 등을 요구했다.

구글코리아 직원들도 지난 11일 역삼역 본사 인근 회의실에서 총회를 개최하고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구글코리아지부를 설립했다. 최근 IT 업계를 휩쓸고 있는 추가 인원감축 바람에 고용불안을 느낀 직원들이 노조를 설립한 것이다.

지난 2018년 10월 100명 수준으로 시작한 카카오 노조도 지난 1월 기준 조합원 수는 전체 직원의 50%가 넘는 1900여명 가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주나 노동자나 행동주의 바람을 주도하는 이유는 당장 자신의 이익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구성원 행동주의에 대해 단기적인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며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회사의 경영 상황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들을 벌인다고도 지적한다.

이에 더해 일부 강성노조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더해지면서 행동하는 주주나 노조에 대한 비난은 이기주의자를 욕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간다.

다만 주주 행동주의나 노조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비판에 동의하기 어렵다. 주주는 회사 주식을 보유하면서 보유한 지분의 가치 변화가 당장 자신의 경제 상황과 연관된다. 회사로부터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두말할 것도 없다.

지금까지 IT업계의 주주나 노조가 벌이는 구성원 행동주의 모습을 봤을 때 이들이 거창한 이념적 투쟁을 벌이는 것도 아니다.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좌파의 조건으로 '멀리 내다보는 것'을 전제로 했다. 반대로 좌파가 아니라는 건 내 앞에 있는 세계에 집중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액주주의 집단적 움직임이나 노조 설립 등은 사내에서 어떤 이념적 갈등, 정치적 갈등의 유발로 회사에 피해를 끼치는데 목적이 있지는 않을 거다. 결국 구성원 행동주의는 자신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생존은 처절하다. 구성원 행동주의는 먹고 살기 위한 싸움이며 당연한 현상이다. IT 업계에 불쑥 찾아온 행동주의 바람은 그래서 반갑다. 자신의 생존 문제를 특정 주주와 경영진에게 일임하기에는 그들이 내 생활을 다 책임져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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