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기야 대통령이 은행을 ‘공공재’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들만의 돈 잔치’를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이미 정부는 은행의 예대금리차를 줄이기 위해 대출금리 인하를 강조해왔습니다. ‘약자 보호’와 ‘고통 분담’이라는 명분도 그럴듯했습니다. 은행도 호응했습니다. 대출금리가 많이 내렸답니다. 그런데 대출금리를 내리면 은행의 ‘예대마진’이 줄어들 거라는 정부의 계산과는 다른 당황스러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예대금리차는 오히려 커지고 있습니다. 은행의 수익이 더 늘었다는 의미입니다. 은행이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요? 비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대출금리를 내리면서 예대금리차를 줄이려면 예금금리를 올리든가, 내리더라도 대출금리보다는 덜 내려야합니다. 그런데 은행은 예금금리를 대출금리보다 더 내렸습니다. 오히려 마진이 커진 겁니다. 정부가 당했습니다. 은행이 한 수 위였습니다. 약자 보호와 고통 분담 차원에서 대출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입장에도 고민이 필요합니다. 은행에서 대출받은 사람이 ‘약자’입니까?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 의사, 변호사, 교사 등 전문직 종사자, 공무원, 공기업과 대기업의 임직원. 우리 사회에서 은행 대출이 가능한 사람들입니다. 약자라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진짜 약자에게 은행의 대출 문턱은 ‘넘사벽’입니다. 대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제2금융권, 대부금융권, 심지어 불법 사채시장을 전전하고 있는 것이 약자들의 현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은행 대출은 ‘강자의 특권’라고 보는 게 더 현실적입니다. 약자가 아니니, ‘고통 분담’이라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지만, 어쨌든 은행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걸까요?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대출금리가 많이 내렸다는 내용인데, 제목이 ‘영끌족, 살길이 보인다’ 였습니다. 강자들이 은행 돈으로 ‘투기’에 열중하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할 뻔했습니다. 개인이 은행에서 빌린 돈 중 많은 부분이 투기판으로 흘러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부동산이 대표적입니다. ‘영끌족’도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투기에 나선 사람들입니다. 영끌족이 투기를 하고 있다는 말은 좀 과하다고요? 원칙적으로 밥을 사 먹거나, 옷을 사는 행위, 그리고 거주를 위해 집을 사는 행위는 투자도, 투기도 아닙니다. 일상적인 거래이고 생활이지요. 영끌족도 거주를 위해 집을 샀다고 주장할 테고, 다주택이 아니니 영 틀린 말도 아닙니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수긍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빚으로 한 끼에 수십만 원짜리 식사를 즐기고, 한 벌에 수백만 원짜리 옷을 입는다면, ‘필요’를 넘어 ‘과시’ 같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을 사기 위해 평생 갚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거금을 주저 없이 빌립니다. 이자 지출이 너무 많아 ‘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도 개의치 않습니다. 생활을 포기하고 살 집을 샀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이유가 거주를 위해서라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힘들더라도 버티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와 확신 때문이라고 봅니다. 결국, 영끌족이 집을 산 목적은 ‘시세차익’입니다. 시세차익을 노리는 행위가 ‘투기’입니다. 물론 아직은 살고 있는 집 한 채이니, ‘투기꾼’까지는 아니겠지만, 영끌족이 성공하면 투기꾼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성공으로 확인된 자신의 통찰력(?)에 대한 우월감에 시세차익의 달콤함까지 알았으니, 이제 남은 건 자신과 우리 사회를 다치게 하는 아픈 결말뿐입니다. 어쨌든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 부담은 커지고, 부동산 전망은 어두워지자 영끌족을 포함한 투기꾼들이 고통스러웠던가 봅니다. 이제 금리가 내리고 있으니, ‘살길이 보인다’는 말이 나온 거겠지요. 정부가 한국은행의 금리정책을 무력화시켜가면서까지 압박해온 대출금리 인하가 투기꾼들에게 부활의 기회를 줬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대출받은 사람이 약자가 아니라면, 예금하는 사람은 어떨까요? 돈 많은 강자일까요? 답을 얻기 위해 저축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살펴봐야겠습니다. ‘개미와 베짱이’를 아시지요? 개미는 여름 내내 열심히 일하고 저축했지만, 베짱이는 노래하고 놀기만 했습니다. 결과는 다 아시는 대로입니다. 이 이야기는 저축을 미덕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 개미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티끌은 모아도 티끌’이라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저축만 열심히 한 어리석은 개미는 추운 겨우내 보일러도 제대로 켤 수 없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 한 마리 시키는 것도 몇 번을 망설이다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저 굶지는 않는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지요. 베짱이는 목청을 갈고 닦아 드디어 음반을 냈습니다. ‘대박’이 터졌지요. 개미가 평생 구경도 못 할 큰돈을 노래 하나로 벌었습니다. 추운 겨울이 되자 베짱이는 아예 따뜻한 하와이로 ‘한달살기’를 떠났답니다. 퍼스트 클래스를 탔다는 말도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베짱이에게 열광하고 있습니다. 돈은 베짱이처럼 버는 거라는군요. ‘투자’, ‘재테크’라는 멋진 말을 앞세운 ‘투기’가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등 대상을 가리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말이 당연시되고, 정부는 ‘저축의 날’을 없애버렸습니다. ‘저축왕‘은 전설 속으로 사라졌지요. 이젠 개미도 주식을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자본의 생리도 이해 못하고, ‘투자의 시대’에 뒤처진 스마트하지 못한 사람들, 돈을 일하게 하지 못하고 스스로 돈을 위해 일하는 무지한 사람들... 저축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듣고 보니 이들이 약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개미의 복권이 필요합니다. 오랜 저금리 탓에 저축에 대한 보상이 너무 미미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투기판만 커졌지요.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습니다. 적절한 보상으로 개미가 일할 맛이 나도록 해야 합니다. 은행의 예대마진을 줄이는 방법은 우선 예금금리를 높이고, 그다음 대출금리를 낮추거나, 덜 높이는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무의미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은행인데, 은행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니면, 세월이 약이겠지요? 여론이 어떻든, 정부가 뭐라든 은행이 자발적으로 자기 밥그릇을 줄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그게 기업, 주식회사의 본질입니다. 은행은 주식회사입니다. 오히려 정부가 생각은 복잡하고 마음은 급해졌습니다. 은행은 예대마진을 줄인 게 아니라 키워놨고, 눈총을 받던 성과급에 이어 퇴직금 잔치까지 벌였습니다. 고임금, 장기근속 탓에 이미 높아진 퇴직금에 거액의 위로금까지 붙어 희망퇴직자의 퇴직금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입니다. 칼을 뽑았으니 뭐라도 보여줘야 하는데, 마땅치가 않습니다. 언급했듯이 은행은 사기업, 주식회사입니다. 게다가 외국인 지분이 60~70%입니다.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근거도 애매하고, 명분도 부족합니다. 은행이 공공재라는 논리도 민영화, 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자유시장’을 강조하는 우파 정권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고민 중이라니 기다려봐야겠지만, 별다른 방법이 나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은행의 ‘이자 장사’는 어쩔 수 없으니, 방관하자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예대마진은 줄여야 합니다. 예대마진은 금융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고, 많은 경우 불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적용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별다른 방법이 없을 거라면서, 예대마진은 줄여야 한다고 주장만 할 게 아니라 방법을, 대책을 얘기하라고요? 맞는 지적입니다. 저의 비책(?)을 공개하겠습니다. 오늘은 아닙니다. 뜸을 좀 들여야지요. 조만간 얘기를 이어 가겠습니다. ■ 작가 한동희는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ROTC 23기로 군복무를 마친 후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했다. 중앙개발과 삼성증권에서 인사, 법인영업을 거쳐 지점장으로 10년간 근무했다. 30여년 삼성맨을 마무리한 그는 퇴직한 후에도 여전히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 네이버 블로그 '까칠한 이야기'를 통해 돈, 금융 그리고 세상에 대한 '썰'을 재밌게 풀어내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 글은 뷰어스에서 우선적으로 게재하며, 추후 작가의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다.

[한동희의 까칠한이야기] ‘예대마진’ 마법, 은행이 한 수 위

한동희 승인 2023.04.17 13:00 | 최종 수정 2023.04.17 13:55 의견 0


급기야 대통령이 은행을 ‘공공재’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들만의 돈 잔치’를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이미 정부는 은행의 예대금리차를 줄이기 위해 대출금리 인하를 강조해왔습니다. ‘약자 보호’와 ‘고통 분담’이라는 명분도 그럴듯했습니다.

은행도 호응했습니다. 대출금리가 많이 내렸답니다. 그런데 대출금리를 내리면 은행의 ‘예대마진’이 줄어들 거라는 정부의 계산과는 다른 당황스러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예대금리차는 오히려 커지고 있습니다. 은행의 수익이 더 늘었다는 의미입니다.

은행이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요? 비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대출금리를 내리면서 예대금리차를 줄이려면 예금금리를 올리든가, 내리더라도 대출금리보다는 덜 내려야합니다. 그런데 은행은 예금금리를 대출금리보다 더 내렸습니다. 오히려 마진이 커진 겁니다. 정부가 당했습니다. 은행이 한 수 위였습니다.

약자 보호와 고통 분담 차원에서 대출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입장에도 고민이 필요합니다. 은행에서 대출받은 사람이 ‘약자’입니까?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 의사, 변호사, 교사 등 전문직 종사자, 공무원, 공기업과 대기업의 임직원. 우리 사회에서 은행 대출이 가능한 사람들입니다. 약자라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진짜 약자에게 은행의 대출 문턱은 ‘넘사벽’입니다. 대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제2금융권, 대부금융권, 심지어 불법 사채시장을 전전하고 있는 것이 약자들의 현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은행 대출은 ‘강자의 특권’라고 보는 게 더 현실적입니다.

약자가 아니니, ‘고통 분담’이라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지만, 어쨌든 은행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걸까요?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대출금리가 많이 내렸다는 내용인데, 제목이 ‘영끌족, 살길이 보인다’ 였습니다.

강자들이 은행 돈으로 ‘투기’에 열중하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할 뻔했습니다. 개인이 은행에서 빌린 돈 중 많은 부분이 투기판으로 흘러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부동산이 대표적입니다. ‘영끌족’도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투기에 나선 사람들입니다. 영끌족이 투기를 하고 있다는 말은 좀 과하다고요?

원칙적으로 밥을 사 먹거나, 옷을 사는 행위, 그리고 거주를 위해 집을 사는 행위는 투자도, 투기도 아닙니다. 일상적인 거래이고 생활이지요. 영끌족도 거주를 위해 집을 샀다고 주장할 테고, 다주택이 아니니 영 틀린 말도 아닙니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수긍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빚으로 한 끼에 수십만 원짜리 식사를 즐기고, 한 벌에 수백만 원짜리 옷을 입는다면, ‘필요’를 넘어 ‘과시’ 같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을 사기 위해 평생 갚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거금을 주저 없이 빌립니다. 이자 지출이 너무 많아 ‘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도 개의치 않습니다.

생활을 포기하고 살 집을 샀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이유가 거주를 위해서라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힘들더라도 버티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와 확신 때문이라고 봅니다. 결국, 영끌족이 집을 산 목적은 ‘시세차익’입니다. 시세차익을 노리는 행위가 ‘투기’입니다.

물론 아직은 살고 있는 집 한 채이니, ‘투기꾼’까지는 아니겠지만, 영끌족이 성공하면 투기꾼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성공으로 확인된 자신의 통찰력(?)에 대한 우월감에 시세차익의 달콤함까지 알았으니, 이제 남은 건 자신과 우리 사회를 다치게 하는 아픈 결말뿐입니다.

어쨌든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 부담은 커지고, 부동산 전망은 어두워지자 영끌족을 포함한 투기꾼들이 고통스러웠던가 봅니다. 이제 금리가 내리고 있으니, ‘살길이 보인다’는 말이 나온 거겠지요. 정부가 한국은행의 금리정책을 무력화시켜가면서까지 압박해온 대출금리 인하가 투기꾼들에게 부활의 기회를 줬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대출받은 사람이 약자가 아니라면, 예금하는 사람은 어떨까요? 돈 많은 강자일까요? 답을 얻기 위해 저축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살펴봐야겠습니다. ‘개미와 베짱이’를 아시지요? 개미는 여름 내내 열심히 일하고 저축했지만, 베짱이는 노래하고 놀기만 했습니다. 결과는 다 아시는 대로입니다. 이 이야기는 저축을 미덕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 개미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티끌은 모아도 티끌’이라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저축만 열심히 한 어리석은 개미는 추운 겨우내 보일러도 제대로 켤 수 없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 한 마리 시키는 것도 몇 번을 망설이다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저 굶지는 않는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지요.

베짱이는 목청을 갈고 닦아 드디어 음반을 냈습니다. ‘대박’이 터졌지요. 개미가 평생 구경도 못 할 큰돈을 노래 하나로 벌었습니다. 추운 겨울이 되자 베짱이는 아예 따뜻한 하와이로 ‘한달살기’를 떠났답니다. 퍼스트 클래스를 탔다는 말도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베짱이에게 열광하고 있습니다. 돈은 베짱이처럼 버는 거라는군요.

‘투자’, ‘재테크’라는 멋진 말을 앞세운 ‘투기’가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등 대상을 가리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말이 당연시되고, 정부는 ‘저축의 날’을 없애버렸습니다. ‘저축왕‘은 전설 속으로 사라졌지요. 이젠 개미도 주식을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자본의 생리도 이해 못하고, ‘투자의 시대’에 뒤처진 스마트하지 못한 사람들, 돈을 일하게 하지 못하고 스스로 돈을 위해 일하는 무지한 사람들... 저축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듣고 보니 이들이 약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개미의 복권이 필요합니다. 오랜 저금리 탓에 저축에 대한 보상이 너무 미미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투기판만 커졌지요.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습니다. 적절한 보상으로 개미가 일할 맛이 나도록 해야 합니다. 은행의 예대마진을 줄이는 방법은 우선 예금금리를 높이고, 그다음 대출금리를 낮추거나, 덜 높이는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무의미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은행인데, 은행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니면, 세월이 약이겠지요? 여론이 어떻든, 정부가 뭐라든 은행이 자발적으로 자기 밥그릇을 줄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그게 기업, 주식회사의 본질입니다. 은행은 주식회사입니다.

오히려 정부가 생각은 복잡하고 마음은 급해졌습니다. 은행은 예대마진을 줄인 게 아니라 키워놨고, 눈총을 받던 성과급에 이어 퇴직금 잔치까지 벌였습니다. 고임금, 장기근속 탓에 이미 높아진 퇴직금에 거액의 위로금까지 붙어 희망퇴직자의 퇴직금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입니다. 칼을 뽑았으니 뭐라도 보여줘야 하는데, 마땅치가 않습니다.

언급했듯이 은행은 사기업, 주식회사입니다. 게다가 외국인 지분이 60~70%입니다.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근거도 애매하고, 명분도 부족합니다. 은행이 공공재라는 논리도 민영화, 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자유시장’을 강조하는 우파 정권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고민 중이라니 기다려봐야겠지만, 별다른 방법이 나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은행의 ‘이자 장사’는 어쩔 수 없으니, 방관하자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예대마진은 줄여야 합니다. 예대마진은 금융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고, 많은 경우 불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적용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별다른 방법이 없을 거라면서, 예대마진은 줄여야 한다고 주장만 할 게 아니라 방법을, 대책을 얘기하라고요? 맞는 지적입니다. 저의 비책(?)을 공개하겠습니다. 오늘은 아닙니다. 뜸을 좀 들여야지요. 조만간 얘기를 이어 가겠습니다.

■ 작가 한동희는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ROTC 23기로 군복무를 마친 후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했다. 중앙개발과 삼성증권에서 인사, 법인영업을 거쳐 지점장으로 10년간 근무했다. 30여년 삼성맨을 마무리한 그는 퇴직한 후에도 여전히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 네이버 블로그 '까칠한 이야기'를 통해 돈, 금융 그리고 세상에 대한 '썰'을 재밌게 풀어내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 글은 뷰어스에서 우선적으로 게재하며, 추후 작가의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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