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랫만의 해외여행으로 면세쇼핑하려했는데 빈손으로 나온 것은 처음이에요. 너무 비싸서 살수가 없었어요." 가정주부 최씨(75)가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을 맞아 3년 반만에 동남아 여행길에 오르며 투덜댄 말이다. 모처럼의 여행길에 공항면세점에서 구매할 목록을 꼼꼼히 적어 갔음에도, 단 한품목도 살 수 없었던 이유는 가격 때문이었다. 면세업계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엔데믹으로 전환되며 하늘길은 열렸지만 '큰손' 중국인들의 소비패턴 변화에 더해 국내 해외여행객들도 높은 환율과 비싼 항공권 가격에 지갑을 열지 않고 있어서다. 국내에 들어오고 나가는 여행객할 것 없이 비우호적 환경에 휩싸여 좀처럼 기지개를 펴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제, 면세점은 '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불렸던 과거의 황금기는 커녕 코로나19 이전만도 못하다는 자조섞인 말들이 흘러나온다. 20일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내국인 출국자는 2억2716만명으로 코로나19 이전(2019년 2억8714만명) 수준의 약 90%까지 돌아왔다. 하지만 같은 기간 내국인의 면세점 매출은 약 66% 수준밖에 회복하지 못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2019년 4조456억원이었던 내국인의 면세점 매출은 지난해 2조6859억원을 보였고, 지난해 국내 면세점 전체 매출(13조7585억원) 역시 전년보다 오히려 22.7% 줄었다. ◆고사위기 탈출했는데, 여전한 보릿고개 #. 여행객 김씨(46)는 최근 인천공항면세점에서 평소 사용하는 조말론 런던 향수(100㎖)를 구매하려다 환율이 적용된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공항면세점에서 판매되는 가격은 152달러로 19일 기준 환율을 적용하면 20만원을 넘었기 때문이다. 반면, 온라인몰 등에서 살핀 같은 제품가격은 13만원~14만원선이었다. 김씨는 "코로나19 이전까지만해도 평소 향수, 화장품은 면세점이 30~40% 싸다고 생각했는데, 이 같은 인식은 과거형이었다"며 "(직원이) 여러개 사면 면세점 가격이 더 값싸다고 해 고민했으나 여행길 내내 들고다닐 무게를 생각해 구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면세업계에 '바닥은 면했다'는 빛이 드리워진 것은 엔데믹 전환이었다. 코로나19 확산에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고 3년여간 이어졌던 개점휴업 상태도 끝이 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엔데믹 전환 후 코로나19로 억눌렸던 해외여행 수요는 폭발했지만, 면세업계는 지난해 전년보다 20~30% 역성장해 실망감이 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고환율이 찬물을 끼얹고 있다. 내국인 출국자가 급증해도 고환율 영향에 구매력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어서다. 통상 면세점들은 서울외국환중개의 전일 환율을 적용해 상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환율이 높을수록 가격은 비싸질 수 밖에 없다. 앞선 사례자 최씨는 "명품 가방 하나 구매하려했는데 관세를 적용할 경우 시내 백화점보다 가격이 비쌌다"며 "선물용으로 사려던 신라면 한박스 가격은 6만원에 달했다"고 했다. 높아진 환율도 문제지만,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비싸진 항공권도 해외여행객들의 구매 욕구를 낮추는 데 한 몫하고 있다는 게 면세업계 설명이다. 고유가로 유류세가 상승한 가운데 코로나19 이후 장거리 노선은 여전히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항공권 가격이 고공행진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최근 소비자들은 전례없는 인플레이션으로 한정된 예산 안에서 여행만 즐기며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휴가 전 선글라스, 수영복 등 여행 관련 상품 매출 상승세가 뚜렸했는데 현재는 여행수요 증가에도 관련 상품소비가 부진하다"며 "치솟는 물가 탓에 극단적 소비가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현황을 전했다. ◆영업이익 좋아져도 웃지 못하는 속사정 물론 면세업계 회복에는 내국인 출국자보다 방한 외국인 영향이 더 크다. 특히 중국 '큰손' 의존도가 높은데, 중국내 경기부진이 길어지면서 중국 보따리상(다이궁), 단체 관광객(유커) 할 것 없이 기대했던 러쉬는 없고 효과도 지지부진하다는 게 문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국을 찾은 중국인들은 25만4000명으로 2019년의 50만9000명의 절반수준에 그쳤다. 이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로 단체관광이 막혔던 2017∼2019년 평균(월 41만6000명)에 비해서도 턱없이 줄어든 수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해 8월 중국 단체관광이 약 6년 반만에 재개되면서 4분기부터 나아질 것이란 장미빛 전망은 여지없이 빗겨갔고, 고스란히 실적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국내 면세점 4사의 수익성이 개선세를 보였다는 것도 속내를 들여다 보면 복잡하다. 지난해 '다이궁'에 지급하던 송객 수수료를 대폭 삭감한 결과기 때문이다. 업계는 중국 보따리상들의 비워진 자리를 개별관광객들(싼커)이 채워줄 것으로 기대하면서 지난해 초부터 매출 40% 이상을 차지했던 송객 수수료 비중을 단계적으로 줄여왔다. '다이궁'은 압도적인 바잉파워를 통해 면세점에게 높은 리베이트를 요구하기 때문에 수익성이 가장 낮다. 더군다나 주로 20~30대의 젊은 개별 관광객인 싼커의 발길은 오늘도 올리브영과 다이소로 향하고 있고 중국 국영면세점은 하이난을 '제2의 홍콩'으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빠르게 치고 올라서는 중이다. 이대로라면, 다이공, 유커, 싼커까지 자국내에서 면세를 해결할 날도 머지 않게 된다. 올해 인플레이션은 둔화되지만 경기침체가 전망된다는 점 역시 면세업계 앞날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물가상승에 따른 피로감으로 소비자들이 정말 생활에 필요한 아이템만 구매하고 소비 자체를 줄이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더욱 높아서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면세쇼핑에 대한 메리트가 이전보다 떨어졌다. 공항 이용률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의 90%까지 돌아왔지만 매출은 10%를 수준을 밑돈다는 것이 업계 현실"이라며 "상반기까지 이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면세점 시련의계절上] 보복여행 늘어도…'삼중고'에 웁니다

높아진 환율·값비싼 항공권에 해외여행객 지갑 '꽁꽁', 中 '큰손' 효과도 지지부진
예상보다 길어지는 더딘 회복세에 멀어지는 봄날, K-면세점 추락 위기

전지현 기자 승인 2024.02.20 06:00 | 최종 수정 2024.02.20 09:16 의견 1


#. "오랫만의 해외여행으로 면세쇼핑하려했는데 빈손으로 나온 것은 처음이에요. 너무 비싸서 살수가 없었어요."

가정주부 최씨(75)가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을 맞아 3년 반만에 동남아 여행길에 오르며 투덜댄 말이다. 모처럼의 여행길에 공항면세점에서 구매할 목록을 꼼꼼히 적어 갔음에도, 단 한품목도 살 수 없었던 이유는 가격 때문이었다.

면세업계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엔데믹으로 전환되며 하늘길은 열렸지만 '큰손' 중국인들의 소비패턴 변화에 더해 국내 해외여행객들도 높은 환율과 비싼 항공권 가격에 지갑을 열지 않고 있어서다. 국내에 들어오고 나가는 여행객할 것 없이 비우호적 환경에 휩싸여 좀처럼 기지개를 펴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제, 면세점은 '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불렸던 과거의 황금기는 커녕 코로나19 이전만도 못하다는 자조섞인 말들이 흘러나온다.

20일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내국인 출국자는 2억2716만명으로 코로나19 이전(2019년 2억8714만명) 수준의 약 90%까지 돌아왔다. 하지만 같은 기간 내국인의 면세점 매출은 약 66% 수준밖에 회복하지 못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2019년 4조456억원이었던 내국인의 면세점 매출은 지난해 2조6859억원을 보였고, 지난해 국내 면세점 전체 매출(13조7585억원) 역시 전년보다 오히려 22.7% 줄었다.

◆고사위기 탈출했는데, 여전한 보릿고개

#. 여행객 김씨(46)는 최근 인천공항면세점에서 평소 사용하는 조말론 런던 향수(100㎖)를 구매하려다 환율이 적용된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공항면세점에서 판매되는 가격은 152달러로 19일 기준 환율을 적용하면 20만원을 넘었기 때문이다. 반면, 온라인몰 등에서 살핀 같은 제품가격은 13만원~14만원선이었다.

김씨는 "코로나19 이전까지만해도 평소 향수, 화장품은 면세점이 30~40% 싸다고 생각했는데, 이 같은 인식은 과거형이었다"며 "(직원이) 여러개 사면 면세점 가격이 더 값싸다고 해 고민했으나 여행길 내내 들고다닐 무게를 생각해 구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면세업계에 '바닥은 면했다'는 빛이 드리워진 것은 엔데믹 전환이었다. 코로나19 확산에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고 3년여간 이어졌던 개점휴업 상태도 끝이 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엔데믹 전환 후 코로나19로 억눌렸던 해외여행 수요는 폭발했지만, 면세업계는 지난해 전년보다 20~30% 역성장해 실망감이 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고환율이 찬물을 끼얹고 있다. 내국인 출국자가 급증해도 고환율 영향에 구매력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어서다. 통상 면세점들은 서울외국환중개의 전일 환율을 적용해 상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환율이 높을수록 가격은 비싸질 수 밖에 없다. 앞선 사례자 최씨는 "명품 가방 하나 구매하려했는데 관세를 적용할 경우 시내 백화점보다 가격이 비쌌다"며 "선물용으로 사려던 신라면 한박스 가격은 6만원에 달했다"고 했다.


높아진 환율도 문제지만,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비싸진 항공권도 해외여행객들의 구매 욕구를 낮추는 데 한 몫하고 있다는 게 면세업계 설명이다. 고유가로 유류세가 상승한 가운데 코로나19 이후 장거리 노선은 여전히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항공권 가격이 고공행진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최근 소비자들은 전례없는 인플레이션으로 한정된 예산 안에서 여행만 즐기며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휴가 전 선글라스, 수영복 등 여행 관련 상품 매출 상승세가 뚜렸했는데 현재는 여행수요 증가에도 관련 상품소비가 부진하다"며 "치솟는 물가 탓에 극단적 소비가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현황을 전했다.

◆영업이익 좋아져도 웃지 못하는 속사정


물론 면세업계 회복에는 내국인 출국자보다 방한 외국인 영향이 더 크다. 특히 중국 '큰손' 의존도가 높은데, 중국내 경기부진이 길어지면서 중국 보따리상(다이궁), 단체 관광객(유커) 할 것 없이 기대했던 러쉬는 없고 효과도 지지부진하다는 게 문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국을 찾은 중국인들은 25만4000명으로 2019년의 50만9000명의 절반수준에 그쳤다.

이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로 단체관광이 막혔던 2017∼2019년 평균(월 41만6000명)에 비해서도 턱없이 줄어든 수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해 8월 중국 단체관광이 약 6년 반만에 재개되면서 4분기부터 나아질 것이란 장미빛 전망은 여지없이 빗겨갔고, 고스란히 실적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국내 면세점 4사의 수익성이 개선세를 보였다는 것도 속내를 들여다 보면 복잡하다. 지난해 '다이궁'에 지급하던 송객 수수료를 대폭 삭감한 결과기 때문이다. 업계는 중국 보따리상들의 비워진 자리를 개별관광객들(싼커)이 채워줄 것으로 기대하면서 지난해 초부터 매출 40% 이상을 차지했던 송객 수수료 비중을 단계적으로 줄여왔다. '다이궁'은 압도적인 바잉파워를 통해 면세점에게 높은 리베이트를 요구하기 때문에 수익성이 가장 낮다.

더군다나 주로 20~30대의 젊은 개별 관광객인 싼커의 발길은 오늘도 올리브영과 다이소로 향하고 있고 중국 국영면세점은 하이난을 '제2의 홍콩'으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빠르게 치고 올라서는 중이다. 이대로라면, 다이공, 유커, 싼커까지 자국내에서 면세를 해결할 날도 머지 않게 된다.

올해 인플레이션은 둔화되지만 경기침체가 전망된다는 점 역시 면세업계 앞날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물가상승에 따른 피로감으로 소비자들이 정말 생활에 필요한 아이템만 구매하고 소비 자체를 줄이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더욱 높아서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면세쇼핑에 대한 메리트가 이전보다 떨어졌다. 공항 이용률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의 90%까지 돌아왔지만 매출은 10%를 수준을 밑돈다는 것이 업계 현실"이라며 "상반기까지 이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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