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엔비디아를 비롯해 미국의 반도체 업종이 약세 전환하며 조정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다. 기세를 올리던 성장주 내에서도 반도체와 나머지 업종간 밸류에이션 격차는 상당부분 벌어진 상태. 최근 나스닥, 특히 M7 등으로 쏠렸던 자금의 상당 부분이 빠져나올 것이란 우려가 곳곳에서 들린다.

성장주를 반도체 업종과 나머지 업종들로 나눠서 멀티플을 비교해 보면,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수준까지 멀티플 격차가 벌어져 있다. 나머지 업종들 대비 반도체 업종의 12개월 선행 P/E는 1.3배 수준까지 올라왔다. 2010년부터 2022년까지 이 수치는 0.5~0.8배 범위였으나 AI 수혜 기대가 떠오르면서 지난해부터 급등했다. 반도체 쏠림과 과열 우려가 충분히 나올 만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쏠림의 해소 과정이 반드시 큰 폭의 주가 하락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이 같은 주장의 근거는 2010년대 아마존이다.

KB증권은 12일 보고서를 통해 지금의 반도체 쏠림과 가장 유사한 사례가 2010년대 아마존 중심의 유통 업종 쏠림이라는 논리를 폈다. 2010년 이후 성장주 안에서 유통 업종과 나머지 업종들을 나눠보면, 당시 나머지 업종들 대비 유통 업종의 12개월 선행 P/E는 최고 2.3배까지 높아졌었다. 현재 반도체 업종의 상대 멀티플 1.3배를 크게 뛰어넘는 수준이다.

유통 업종의 쏠림이 유난히 강했던 시기는 2015년과 2018년. 두 시기 모두 아마존의 강한 성장 기대로 유통 업종의 장기 이익 성장 전망이 나머지 성장주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이익전망의 우위를 바탕으로 유통업종 주가는 나머지 성장주에 비해 더 빠르게 올랐고, 이 과정에서 유통 업종과 나머지 성장주의 멀티플 괴리가 벌어졌다.

안소은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유통업종 쏠림이 심화됐다는 사실이 당시 주가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다"며 "상대 멀티플이 고점을 찍었던 시기에 유통주 주가가 잠시 흔들렸지만 하락폭은 10% 미만이었다. 소폭 조정 후 주가는 다시 상승했다"고 전했다. 유통업종 사례를 통해 봤을 땐 과열 우려보다는 거시경제 변수가 주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당시 유통 업종 주가에 실질적으로 큰 타격을 준 것도 과도한 쏠림에 대한 우려보다는 거시경제 측면의 불안 요인이 컸다. 안 애널리스트는 "2018년 사례에서 짧은 조정이 지나간 뒤 유통 업종 주가는 30% 가까이 하락했는데, 연준이 시장 예상과 달리 통화긴축 기조를 이어나갈 것임을 시사했기 때문"이라며 "성장주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멀티플이 높았던 유통 업종이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성장주 안에서 반도체 쏠림이 강해졌지만, 지금 반도체 업종의 상대 멀티플 수준을 시장은 이미 겪어봤고, 쏠림이 지금보다 더 심화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고 추가 상승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익 펀더멘털의 우위가 계속되는 한, 엔비디아를 비롯한 반도체 업종 주가에 가장 큰 리스크는 쏠림이나 과열에 대한 우려보다는 통화정책 등 거시경제 관련 이슈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최근 미국 기술주의 랠리 강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경계감은 필수라는 시장 경고음 또한 이어지고 있다.

국내 기관투자자의 한 관계자는 "쏠림이 심화되면 변동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유동성 공급 이슈 등 미 증시의 조정 국면이 임박한 상황에서 현 시점 미 반도체주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는 위험해 보인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나스닥에서 M7으로 좁혀졌다 지금은 엔비디아 정도만 살아남은 상황"이라며 "엔비디아의 AI 리더십이 깨지기 어려운 상황임에는 동의하지만 단기 변동성은 더 커질 것이고 시장 경계감도 확산될 것"이라고 우려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