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 이미 작가가 됐지만 글을 쓰는 공간과 지면이 협소해 등단을 하고서도 몇 년이나 글을 쓰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던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다. 출판사 및 포털사이트를 필두로 다양한 문학 플랫폼이 등장하고 웹소설 등을 통한 등단의 기회가 넓어지고 있다. 질량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국민 모두가 작가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그런데 이 가운데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단순히 작가들의 기회 증가와 독자들의 접근성으로 새로운 문학 플랫폼을 대하자니 작품의 퀄리티와 수준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등단이 필요 없어진 시대에서 움베르토 에코나 조정래 작가 같은 걸출한 문학인이 나올 수 있겠느냐고 걱정하고 있다. 새로운 문학 플랫폼의 범람시대, 이로 인한 이점과 우리가 당면할 수도 있는 문학 퇴보에 대한 문학계 우려를 조명한다.-편집자주   (사진=영화 '어댑테이션' 스틸컷) “제 주변에 젊은 작가들을 만나보면 어휘력이 부족합니다. 그들은 인터넷에 글을 쓸 수 있고 디지털 책인 이북(E-book)을 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생각이 깊지 않아요. 100년 뒤 새로운 움베르토 에코가 나타날까요?” ‘사라진 책의 역사’(2006)의 저자 뤼시앵 폴라스트롱이 tvN ‘시프트(Shift)’를 통해 한 말이다. 그는 종이책이 아닌 다른 루트를 통한 글쓰기와 독서를 하는 이들에게 이같은 질문을 던졌다. 폴라스트롱은 보수적인 종이책 선호자로 나서 이같은 말을 했지만 작가가 될 수 있는 길이 폭넓어진 문학 플랫폼 범람 시대에서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겠다. 실제로 SNS나 웹소설 등 새로운 방식을 통해 작가가 되고 책이 나오는 시대에 적지 않은 이들이 폴라스트롱과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같은 플랫폼 출신 작품들에 대한 시선은 이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졌지만 그 질적 측면을 두고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전통적 방식을 고수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시선과 성향의 작품이 도서시장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의견은 새로운 문학 플랫폼을 지지한다. 그런가 하면 이렇듯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나온 책들로 인해 평균 퀄리티가 저하되고 독자의 외면이 이어지지는 않을까, 오히려 도서시장을 침체시키지는 결과를 낳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카카오페이지 '넥스트페이지' 공모전 (사진=카카오페이지) ■ 작가 양산하는 新 플랫폼, 독자 선택권 존중해야 우선 새로운 문학 등단 플랫폼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반기는 이들은 작가가 많아질수록 세상의 현실과 사람들의 생각을 담아내는 다양한 포맷과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 늘어난다는 입장이다. 기존 등단 방식은 좁은 등용문을 통과해야 하기에 다채로운 색채의 작품들을 담아낼 수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사회성과 현실성, 예술성, 사유의 깊이까지 담아내야 하는 전통방식에서 벗어나 더 자유로운 세계가 펼쳐졌다는 것이다. 한 출판사 대표는 비등단 작가들의 책 출간에 긍정적 입장을 보이면서 “한국 문학은 장르가 협소하고 대부분 처절하거나 숨막히는 현실을 담아내야 ‘괜찮다’고 평가받는 현실이 이어져왔다. 오래 전부터 출판일을 하며 장르문학이 넘쳐나는 일본의 도서 생태계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앞으로 한국도 기존의 순문학 틀은 유지하되 독자들이 진정으로 재밌다고 생각하고 소장하고 싶어 구매하는 책들이 더 많이 나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즐기는 문학으로의 발전이 결국은 도서시장의 활성화에도 기여하지 않겠는가”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출판사 대표로서 이같은 책들은 수익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관계자가 아닌 독자 입장에서도 꼭 무거운 주제의 책만 읽으라 강요하는 듯한 등단 시스템 구조가 깨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그는 “요즘 다양한 재미와 참신한 작가들의 면모에 빠져들고 있다”면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출간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형서점 관계자 역시 비슷한 입장을 보이며 다양한 통로를 통한 작가 배출과 책 출간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연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의 저자인 글배우의 경우는 SNS에 짤막한 글귀들을 올리며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했고 작가로 발전한 케이스다. 그는 정식으로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글쓰기에 특출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배우의 글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고 힐링을 선사했다”며 “시대가 원하는 글을 쓰는 것도 작가의 재능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글배우를 예로 들었다. 특히 그는 “초반에는 SNS 출신 작가들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유수 문학상을 받았다고 해도 한번 반짝하고 마는 여느 작가들과 달리 그의 책들이 출간될 때마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다는 점은 그가 작가로서 재능이 충분하고 대중의 마음을 충족시켰다고 봐야 한다는 말과 같다. 무엇보다 독자들이 책을 보며 무언가를 얻었다고 한다면 그 작가가 어떻게 등단했는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세간의 편견에 대해 꼬집었다. 그런가 하면 오랜 시간 등단을 꿈꾸다 결국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책을 내게 된 작가 A씨는 원하는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새로운 플랫폼들의 등장으로 마련됐다고 주장한다. A씨는 “어릴 적부터 글을 잘 써 각종 상을 많이 받았지만 등단은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심각한 주제나 우아한 문체보다는 현실의 작은 일을 재기발랄하게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이 아마 기존 문학상 기준과 격차를 벌이지 않았을까 싶다”면서 “그러던 중에 문학 동아리에서 알게 된 플랫폼에 글을 올리게 됐고 책을 냈다. 작가로 불리는 건 둘째치고 독자들의 반응에 무척 뭉클했다. 동질감이 느껴졌다거나 내가 했던 생각이나 경험에 공감이 돼서 함께 울었다거나 하는 반응들을 보면서 등단 실패로 무너졌던 자존감이 되살아났고 글쓰기가 다시 즐거워졌다. 독자도 원하는 장르의 글을 읽듯 작가도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쓸 때 더 잘 쓰고 공감가는 글을 쓸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점에서 더 세분화되고 다양한 문학 플랫폼들이 생겨나줬으면 한다”고 바람을 밝혔다.   (사진=픽사베이) ■ “질적 콘텐츠 찾기 힘들다, 종국엔 도서시장 침체 부를 것” 새로운 형태의 작가 탄생 등용문이 생긴 것을 반기는 이들은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 많아지는 공급 현상에 수요도 따라서 늘어나기에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출판계에도 좋은 일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 선 이들은 도리어 이같은 현상이 완성도면에서 ‘책’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글들을 양산하게 될 것이고 종국엔 독자들이 더 다양한 책들을 시도해볼 생각을 하지 않게 될 것이라 우려한다. 실제 서점가에 있는 몇몇 책들의 경우 홍보가 화려하지만 내용적 면에서 가치가 없는 책들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일례로 직접 만나 보기도 했던 한 작가의 경우는 책에 내용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작가로서의 철학이나 독자와의 소통 어느 것도 중요시하지 않는 태도로 실망을 안긴 바 있다. 아직 새로운 플랫폼 작가들의 책을 출간해본 적은 없다는 한 출판사는 이렇듯 다양한 이야기들을 써내는 작가들이 많아진 시점에서야말로 더욱 철저하게 선별하고 골라내는 작업이 바로 출판사가 가져야 할 임무라고 말했다. 이 출판사 관계자는 “개인사, 직업에 대한 이야기부터 소설까지 다양한 글들이 하루에도 수천 개 씩 온라인상에 올라오고 있으며 플랫폼을 통한 출간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회사 역시 플랫폼을 통한 출간을 계획해보고 참여도 해봤지만 일단 좀 더 두고 보자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이 중에 대박 작품도 있을 테고 일시적 수익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보다는 손실이 나는 책들이 더 많을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면서 “우리는 문학 전문 출판사이기도 하지만 가치가 떨어지는 글을 당장 인기가 좋다고 해서 출판 제안을 하고 편집 등 인력을 투입해 출간할 수는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한 SNS플랫폼 등단 작가에 대해 언급하며 온라인상에서만 읽히는 글과 종이책 시장으로 옮겨온 글은 현실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문이 열린 건 좋지만 대체 이걸 왜 사람들이 좋아하나 싶은 글들도 많다. 아무리 호응이 좋아도 이건 출간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글도 있다. 그런 글들 중 하나가 타 출판사에서 출간된 바 있다. 일러스트까지 섭외해 비용을 들이고 예쁘게 책을 만들었지만 결국 판매부수보다 더 많은 재고가 창고로 들어간 것으로 안다. 그 책이 출간될 때 다른 출판사에서 그 작가에게 계약을 제안해 또다른 책을 냈는데 그 책은 더 참패했다. 출판사도 책을 사는 독자도 일회성 이슈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온라인상에서 인기가 좋았던 글을 종이책으로 출간했다가 낭패를 본 출판사가 적지 않다. 이 중 온라인 플랫폼 작가들을 발굴하고 전담하는 업무를 해왔던 한 편집자는 “초반에는 발굴한다는 성취감이 있었다. 반응이 폭발적이기도 했다. 그러다 요즘은 우후죽순 워낙 많은 글들이 생산되고 있고 대형 출판사와 포털까지 가담하며 경쟁률도 치열해졌다. 이 가운데 옥석을 가려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출간한 책들은 대부분 ‘평타’를 쳤다고 할 수 있지만 전체 시장으로 봤을 때 말 그대로 폭삭 망한 책들이 더 많다. 특히 소설의 경우가 더 심했던 것 같다. 에세이류나 일상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글도 온라인상의 특정층 호감도와 달리 보편적 대중의 공감을 얻기 쉽지 않은데 소설은 더하다. 요즘 독자들은 날카롭고 예리하게 책을 읽기 때문에 어줍잖은 책을 내놨을 땐 바로 온라인 후기 등으로 피드백이 나온다. 온라인상에 존재했을 때 좋아요나 구독자 수가 따라붙던 와 출간시 책을 읽는 독자층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많이 느낀다”고 편집자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카카오 브런치 독자들도 이를 체감하는 분위기다. 온라인상 독자들의 책 후기들을 살펴볼라치면 “10만 독자의 호응을 받았다기에 샀는데 뭐 이런 책이 있나 싶었다” “허접 쓰레기 많다”는 등 부정적 반응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학창시절부터 십년 넘게 독서 동호회를 운영해온 이 모(39)씨는 “책을 아주 많이 읽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고전부터 유명작가들 책은 무조건 읽는 편인데 솔직히 요즘 책들의 질이 많이 떨어졌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동호회원들과도 책을 선별하기 쉽지 않다며 이런 부분에 대해 말한 적 있는데 플랫폼이 다양해진 것은 좋지만 독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은 별로 없다는 데에 대다수가 동의했다. 오히려 읽을만한 책을 고를 때 혼란스러운 일이 더 많아졌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존 문학상이나 문예지도 수익에 의존해 오로지 작품만 보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는 있지만 적어도 1차적으로 걸러내고 평가하는 틀을 통해 독자에게 선별된 책을 제공해왔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점에서 작가 등단이나 글 게재 플랫폼이 많아졌다는 것에만 좋아할 게 아니라 어떻게 독자들에게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할 것인지에 집중해 선별의 틀을 정립해줬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내놨다. 책시장은 이전에 비해 분명 확대됐다. 독자들 역시 종이책이 아닌 다양한 콘텐츠를 읽고 즐기는 빈도 수가 늘었다고 할 수 있다. 작가가 되기를 원하는 이들이나 무명작가들에게 좋은 기회임도 분명하다. 이와 동시에 읽을만한 책, 좋은 책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며 온라인에서 뿌리를 박고 탄생한 책들로 인해 질적 면에서 우월한 책들이 밀리는 현상까지 발생한다. 때문에 읽기의 가치를 즐거움이냐, 배움이냐에 두는 것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는 있겠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 독자가 책을 읽는 이유다. 이 점을 인지할 때 현재의 난상토론도 끝이 날 수 있지 않을까.

[문학 新플랫폼의 범람] ② "가치와 인기는 다르다"…'누구나' 작가시대에 쏟아지는 '질적' 우려

문다영 기자 승인 2020.01.20 10:36 의견 0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 이미 작가가 됐지만 글을 쓰는 공간과 지면이 협소해 등단을 하고서도 몇 년이나 글을 쓰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던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다. 출판사 및 포털사이트를 필두로 다양한 문학 플랫폼이 등장하고 웹소설 등을 통한 등단의 기회가 넓어지고 있다. 질량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국민 모두가 작가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그런데 이 가운데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단순히 작가들의 기회 증가와 독자들의 접근성으로 새로운 문학 플랫폼을 대하자니 작품의 퀄리티와 수준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등단이 필요 없어진 시대에서 움베르토 에코나 조정래 작가 같은 걸출한 문학인이 나올 수 있겠느냐고 걱정하고 있다. 새로운 문학 플랫폼의 범람시대, 이로 인한 이점과 우리가 당면할 수도 있는 문학 퇴보에 대한 문학계 우려를 조명한다.-편집자주

 

(사진=영화 '어댑테이션' 스틸컷)


“제 주변에 젊은 작가들을 만나보면 어휘력이 부족합니다. 그들은 인터넷에 글을 쓸 수 있고 디지털 책인 이북(E-book)을 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생각이 깊지 않아요. 100년 뒤 새로운 움베르토 에코가 나타날까요?”

‘사라진 책의 역사’(2006)의 저자 뤼시앵 폴라스트롱이 tvN ‘시프트(Shift)’를 통해 한 말이다. 그는 종이책이 아닌 다른 루트를 통한 글쓰기와 독서를 하는 이들에게 이같은 질문을 던졌다. 폴라스트롱은 보수적인 종이책 선호자로 나서 이같은 말을 했지만 작가가 될 수 있는 길이 폭넓어진 문학 플랫폼 범람 시대에서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겠다.

실제로 SNS나 웹소설 등 새로운 방식을 통해 작가가 되고 책이 나오는 시대에 적지 않은 이들이 폴라스트롱과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같은 플랫폼 출신 작품들에 대한 시선은 이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졌지만 그 질적 측면을 두고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전통적 방식을 고수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시선과 성향의 작품이 도서시장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의견은 새로운 문학 플랫폼을 지지한다. 그런가 하면 이렇듯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나온 책들로 인해 평균 퀄리티가 저하되고 독자의 외면이 이어지지는 않을까, 오히려 도서시장을 침체시키지는 결과를 낳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카카오페이지 '넥스트페이지' 공모전 (사진=카카오페이지)


■ 작가 양산하는 新 플랫폼, 독자 선택권 존중해야

우선 새로운 문학 등단 플랫폼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반기는 이들은 작가가 많아질수록 세상의 현실과 사람들의 생각을 담아내는 다양한 포맷과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 늘어난다는 입장이다. 기존 등단 방식은 좁은 등용문을 통과해야 하기에 다채로운 색채의 작품들을 담아낼 수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사회성과 현실성, 예술성, 사유의 깊이까지 담아내야 하는 전통방식에서 벗어나 더 자유로운 세계가 펼쳐졌다는 것이다.

한 출판사 대표는 비등단 작가들의 책 출간에 긍정적 입장을 보이면서 “한국 문학은 장르가 협소하고 대부분 처절하거나 숨막히는 현실을 담아내야 ‘괜찮다’고 평가받는 현실이 이어져왔다. 오래 전부터 출판일을 하며 장르문학이 넘쳐나는 일본의 도서 생태계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앞으로 한국도 기존의 순문학 틀은 유지하되 독자들이 진정으로 재밌다고 생각하고 소장하고 싶어 구매하는 책들이 더 많이 나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즐기는 문학으로의 발전이 결국은 도서시장의 활성화에도 기여하지 않겠는가”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출판사 대표로서 이같은 책들은 수익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관계자가 아닌 독자 입장에서도 꼭 무거운 주제의 책만 읽으라 강요하는 듯한 등단 시스템 구조가 깨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그는 “요즘 다양한 재미와 참신한 작가들의 면모에 빠져들고 있다”면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출간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형서점 관계자 역시 비슷한 입장을 보이며 다양한 통로를 통한 작가 배출과 책 출간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연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의 저자인 글배우의 경우는 SNS에 짤막한 글귀들을 올리며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했고 작가로 발전한 케이스다. 그는 정식으로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글쓰기에 특출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배우의 글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고 힐링을 선사했다”며 “시대가 원하는 글을 쓰는 것도 작가의 재능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글배우를 예로 들었다. 특히 그는 “초반에는 SNS 출신 작가들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유수 문학상을 받았다고 해도 한번 반짝하고 마는 여느 작가들과 달리 그의 책들이 출간될 때마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다는 점은 그가 작가로서 재능이 충분하고 대중의 마음을 충족시켰다고 봐야 한다는 말과 같다. 무엇보다 독자들이 책을 보며 무언가를 얻었다고 한다면 그 작가가 어떻게 등단했는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세간의 편견에 대해 꼬집었다.

그런가 하면 오랜 시간 등단을 꿈꾸다 결국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책을 내게 된 작가 A씨는 원하는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새로운 플랫폼들의 등장으로 마련됐다고 주장한다. A씨는 “어릴 적부터 글을 잘 써 각종 상을 많이 받았지만 등단은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심각한 주제나 우아한 문체보다는 현실의 작은 일을 재기발랄하게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이 아마 기존 문학상 기준과 격차를 벌이지 않았을까 싶다”면서 “그러던 중에 문학 동아리에서 알게 된 플랫폼에 글을 올리게 됐고 책을 냈다. 작가로 불리는 건 둘째치고 독자들의 반응에 무척 뭉클했다. 동질감이 느껴졌다거나 내가 했던 생각이나 경험에 공감이 돼서 함께 울었다거나 하는 반응들을 보면서 등단 실패로 무너졌던 자존감이 되살아났고 글쓰기가 다시 즐거워졌다. 독자도 원하는 장르의 글을 읽듯 작가도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쓸 때 더 잘 쓰고 공감가는 글을 쓸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점에서 더 세분화되고 다양한 문학 플랫폼들이 생겨나줬으면 한다”고 바람을 밝혔다.

 

(사진=픽사베이)

■ “질적 콘텐츠 찾기 힘들다, 종국엔 도서시장 침체 부를 것”

새로운 형태의 작가 탄생 등용문이 생긴 것을 반기는 이들은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 많아지는 공급 현상에 수요도 따라서 늘어나기에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출판계에도 좋은 일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 선 이들은 도리어 이같은 현상이 완성도면에서 ‘책’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글들을 양산하게 될 것이고 종국엔 독자들이 더 다양한 책들을 시도해볼 생각을 하지 않게 될 것이라 우려한다.

실제 서점가에 있는 몇몇 책들의 경우 홍보가 화려하지만 내용적 면에서 가치가 없는 책들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일례로 직접 만나 보기도 했던 한 작가의 경우는 책에 내용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작가로서의 철학이나 독자와의 소통 어느 것도 중요시하지 않는 태도로 실망을 안긴 바 있다.

아직 새로운 플랫폼 작가들의 책을 출간해본 적은 없다는 한 출판사는 이렇듯 다양한 이야기들을 써내는 작가들이 많아진 시점에서야말로 더욱 철저하게 선별하고 골라내는 작업이 바로 출판사가 가져야 할 임무라고 말했다. 이 출판사 관계자는 “개인사, 직업에 대한 이야기부터 소설까지 다양한 글들이 하루에도 수천 개 씩 온라인상에 올라오고 있으며 플랫폼을 통한 출간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회사 역시 플랫폼을 통한 출간을 계획해보고 참여도 해봤지만 일단 좀 더 두고 보자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이 중에 대박 작품도 있을 테고 일시적 수익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보다는 손실이 나는 책들이 더 많을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면서 “우리는 문학 전문 출판사이기도 하지만 가치가 떨어지는 글을 당장 인기가 좋다고 해서 출판 제안을 하고 편집 등 인력을 투입해 출간할 수는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한 SNS플랫폼 등단 작가에 대해 언급하며 온라인상에서만 읽히는 글과 종이책 시장으로 옮겨온 글은 현실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문이 열린 건 좋지만 대체 이걸 왜 사람들이 좋아하나 싶은 글들도 많다. 아무리 호응이 좋아도 이건 출간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글도 있다. 그런 글들 중 하나가 타 출판사에서 출간된 바 있다. 일러스트까지 섭외해 비용을 들이고 예쁘게 책을 만들었지만 결국 판매부수보다 더 많은 재고가 창고로 들어간 것으로 안다. 그 책이 출간될 때 다른 출판사에서 그 작가에게 계약을 제안해 또다른 책을 냈는데 그 책은 더 참패했다. 출판사도 책을 사는 독자도 일회성 이슈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온라인상에서 인기가 좋았던 글을 종이책으로 출간했다가 낭패를 본 출판사가 적지 않다. 이 중 온라인 플랫폼 작가들을 발굴하고 전담하는 업무를 해왔던 한 편집자는 “초반에는 발굴한다는 성취감이 있었다. 반응이 폭발적이기도 했다. 그러다 요즘은 우후죽순 워낙 많은 글들이 생산되고 있고 대형 출판사와 포털까지 가담하며 경쟁률도 치열해졌다. 이 가운데 옥석을 가려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출간한 책들은 대부분 ‘평타’를 쳤다고 할 수 있지만 전체 시장으로 봤을 때 말 그대로 폭삭 망한 책들이 더 많다. 특히 소설의 경우가 더 심했던 것 같다. 에세이류나 일상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글도 온라인상의 특정층 호감도와 달리 보편적 대중의 공감을 얻기 쉽지 않은데 소설은 더하다. 요즘 독자들은 날카롭고 예리하게 책을 읽기 때문에 어줍잖은 책을 내놨을 땐 바로 온라인 후기 등으로 피드백이 나온다. 온라인상에 존재했을 때 좋아요나 구독자 수가 따라붙던 와 출간시 책을 읽는 독자층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많이 느낀다”고 편집자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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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도 이를 체감하는 분위기다. 온라인상 독자들의 책 후기들을 살펴볼라치면 “10만 독자의 호응을 받았다기에 샀는데 뭐 이런 책이 있나 싶었다” “허접 쓰레기 많다”는 등 부정적 반응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학창시절부터 십년 넘게 독서 동호회를 운영해온 이 모(39)씨는 “책을 아주 많이 읽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고전부터 유명작가들 책은 무조건 읽는 편인데 솔직히 요즘 책들의 질이 많이 떨어졌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동호회원들과도 책을 선별하기 쉽지 않다며 이런 부분에 대해 말한 적 있는데 플랫폼이 다양해진 것은 좋지만 독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은 별로 없다는 데에 대다수가 동의했다. 오히려 읽을만한 책을 고를 때 혼란스러운 일이 더 많아졌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존 문학상이나 문예지도 수익에 의존해 오로지 작품만 보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는 있지만 적어도 1차적으로 걸러내고 평가하는 틀을 통해 독자에게 선별된 책을 제공해왔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점에서 작가 등단이나 글 게재 플랫폼이 많아졌다는 것에만 좋아할 게 아니라 어떻게 독자들에게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할 것인지에 집중해 선별의 틀을 정립해줬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내놨다.

책시장은 이전에 비해 분명 확대됐다. 독자들 역시 종이책이 아닌 다양한 콘텐츠를 읽고 즐기는 빈도 수가 늘었다고 할 수 있다. 작가가 되기를 원하는 이들이나 무명작가들에게 좋은 기회임도 분명하다. 이와 동시에 읽을만한 책, 좋은 책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며 온라인에서 뿌리를 박고 탄생한 책들로 인해 질적 면에서 우월한 책들이 밀리는 현상까지 발생한다. 때문에 읽기의 가치를 즐거움이냐, 배움이냐에 두는 것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는 있겠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 독자가 책을 읽는 이유다. 이 점을 인지할 때 현재의 난상토론도 끝이 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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