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지난 1990년대 초반 학생과 노동자들이 분신 등 죽음이 잇달아 발생하자 소설가 이문열이 게재한 한 사설의 제목이다. 이 글로 무수한 논란이 회자됐지만 2022년 대한민국의 노동 현장은 아직도 '죽음의 굿판'을 벌이고 있다. 그 죽음의 굿판은 유독 하청 노동자들에게 집중돼 있다. 지난 21일 경북 포항시 남구 대송면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작업 중이던 30대 노동자 A씨가 벨트에 몸이 감기는 사고가 발생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A씨 몸과 와이어 원통 사이에 연결된 추락 방지용 안전벨트가 감기면서 사고가 난 것이다. 동국제강 협력업체 소속인 A씨는 동료들과 고철을 옮기는 천장 크레인을 정비하던 중에 이 같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망사고와 관련해 동국제강 측은 “매우 참담하고 송구스럽다”면서 “회사 차원에서 당국의 조사에 최대한 협조하고 있으며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고 있다. 동국제강의 산재는 1년여 전에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해 동국제강 부산공장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승강기 끼임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여 만이었다. 2021년 1·2월 연이어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동국제강. 지난 10일 고용노동부가 공표한 '2019년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서 동국제강 인천공장은 '원하청 통합 사고 사망 만인율이 가장 높은 사업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장세주 부회장 등 회사 경영진 중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안타까운 것은 철강업계 전반에서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일 충남 예산군 현대제철 예산공장에서는 근로자 1명이 철골 구조물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앞서 지난 2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하청 노동자 1명이 내부 온도 약 460도 가량인 아연을 녹이는 대형 용기에 추락해 사망했다. 이번에도 현대제철 측은 "위탁사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고용노동부와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처럼 입장을 반복했다. 문제는 또 있다. 관계당국의 안이한 대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신속한 법 집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노동부와 경찰은 현장을 압수수색한다면 떠들썩하지만 이후 국민들의 기억에서 가물가물할 때쯤 슬그머니 기업 경영진이 아닌 현장 책임자만을 불구속 입건 등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할 뿐이다. 이로 인해 철강업계의 고질인 산업재해 근절 약속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갖는 시각이 커지고 있다. 사고 발생 불과 1주일 전 정부와 철강업계는 현장의 안전 강화 방안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지만 '공염불'에 그쳤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더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현장 사고 예방을 위해 안전 관련 대응 조직을 격상하고 예산을 확대하고 있다. 전 직원 대상 안전교육 강화, 작업장 안전관리요원 배치 확대, 현장 위험성 평가제도 강화, 불완전한 현장 신고제 운영 등 안전 관리에도 힘쓰고 있다"며 "철강업계를 너무 왜곡된 시선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철강업계의 자정 노력을 언론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작업장과 노동자들의 안전에 더욱 세심한 배려를 기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산업화 시대 동력이자 국민의 기대와 지지를 받았던 포항제철의 영화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장원주의 시선] 철강업계 '죽음의 행렬' 멈출 수 있나…동국제강 산재가 보여준 현주소

장원주 기자 승인 2022.03.22 16:40 | 최종 수정 2022.03.22 18:03 의견 0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지난 1990년대 초반 학생과 노동자들이 분신 등 죽음이 잇달아 발생하자 소설가 이문열이 게재한 한 사설의 제목이다. 이 글로 무수한 논란이 회자됐지만 2022년 대한민국의 노동 현장은 아직도 '죽음의 굿판'을 벌이고 있다. 그 죽음의 굿판은 유독 하청 노동자들에게 집중돼 있다.

지난 21일 경북 포항시 남구 대송면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작업 중이던 30대 노동자 A씨가 벨트에 몸이 감기는 사고가 발생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A씨 몸과 와이어 원통 사이에 연결된 추락 방지용 안전벨트가 감기면서 사고가 난 것이다. 동국제강 협력업체 소속인 A씨는 동료들과 고철을 옮기는 천장 크레인을 정비하던 중에 이 같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망사고와 관련해 동국제강 측은 “매우 참담하고 송구스럽다”면서 “회사 차원에서 당국의 조사에 최대한 협조하고 있으며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고 있다.

동국제강의 산재는 1년여 전에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해 동국제강 부산공장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승강기 끼임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여 만이었다. 2021년 1·2월 연이어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동국제강. 지난 10일 고용노동부가 공표한 '2019년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서 동국제강 인천공장은 '원하청 통합 사고 사망 만인율이 가장 높은 사업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장세주 부회장 등 회사 경영진 중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안타까운 것은 철강업계 전반에서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일 충남 예산군 현대제철 예산공장에서는 근로자 1명이 철골 구조물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앞서 지난 2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하청 노동자 1명이 내부 온도 약 460도 가량인 아연을 녹이는 대형 용기에 추락해 사망했다.

이번에도 현대제철 측은 "위탁사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고용노동부와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처럼 입장을 반복했다.

문제는 또 있다. 관계당국의 안이한 대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신속한 법 집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노동부와 경찰은 현장을 압수수색한다면 떠들썩하지만 이후 국민들의 기억에서 가물가물할 때쯤 슬그머니 기업 경영진이 아닌 현장 책임자만을 불구속 입건 등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할 뿐이다.

이로 인해 철강업계의 고질인 산업재해 근절 약속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갖는 시각이 커지고 있다. 사고 발생 불과 1주일 전 정부와 철강업계는 현장의 안전 강화 방안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지만 '공염불'에 그쳤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더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현장 사고 예방을 위해 안전 관련 대응 조직을 격상하고 예산을 확대하고 있다. 전 직원 대상 안전교육 강화, 작업장 안전관리요원 배치 확대, 현장 위험성 평가제도 강화, 불완전한 현장 신고제 운영 등 안전 관리에도 힘쓰고 있다"며 "철강업계를 너무 왜곡된 시선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철강업계의 자정 노력을 언론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작업장과 노동자들의 안전에 더욱 세심한 배려를 기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산업화 시대 동력이자 국민의 기대와 지지를 받았던 포항제철의 영화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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