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월스트리트' 여의도 금융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 다시 한번 살펴야 할, 중요하나 우리가 놓친 이슈들을 '왜(why)'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쉽게 풀어본다. -편집자 주 내 이름은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 세상이 달라진걸까. 요즘 이상하게 힘이 빠진다. 3월 주총시즌만 되면 드러나던 나의 미친(?) 존재감이 예전만 못하다. 전 세계 의결권 자문시장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갖는 날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출생의 비밀이 드러난건가. 아니면 우리 시스템의 헛점을 찾은걸까. 1985년생. 한국 나이로 38세, 미국 뉴욕 출신이다. 전 세계 1900여개 기관투자자들에게 온갖 기업 주총 안건에 대한 보고서를 써주고 의결권 행사 등을 자문한다. 건당 받는 수수료는 얼마 안되지만 워낙 독점적이다보니 날로 영향력이 커졌다. 점유율 20% 수준인 글래스루이스(GlassLewis&Co.) 정도가 신경쓰일뿐. 한국의 영세 의결권 자문사들에는 별 관심도 없다. 한국인들의 뼛속까지 물들어 있는 오랜 금융 사대주의. 그 덕에 우리가 산다. 기억하나. 한국내 나의 인지도를. 존재감을 화끈하게 높인 건 삼성 사태였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반대건으로 오너의 목줄을 들었다 놨다 하기도 했다. 삼성도 내 영향력에 혀를 내둘렀지. 결국 그 건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소송이 이어지는 걸 보니 말 다했다. 2018년 현대차 지배구조 변화 시도에도 내 영향력은 컸다. 내가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에 힘을 실어주자 결국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안을 없던 일로 되돌렸다. KT&G 백복인 사장 연임 논란 때도 IBK기업은행(기획재정부가 대주주)의 힘을 약화시킨 게 바로 나다. 앞서 2013년 시끌벅적했던 KB사태 역시 나한테 줄을 대려다 골로 간 사람이 여럿이었다. 그런데 요즘 분위기가 영 아니다. 최근 금융지주사들 주총 결과에 착찹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 버렸다. 난 하나금융 함영주 회장 사내이사 선임을 반대했다. 고공 실적과 성장세, 주주친화 정책은 나무랄 데 없었다. 허나 CEO의 사법 리스크는 우리 시스템상 건너뛰기 어렵다. 우리 시스템의 획일성이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이 외에도 우린 우리금융에 대해선 이원덕 행장의 비상임이사 선임건을 반대했다. 신한지주 사외이사 재선임안도, KB금융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 선임안도 모두 퇴짜를 놨다. 그런데 웬걸. 내 의견이 반영된 곳이 KB금융 사외이사 부결건 달랑 하나다. 가세가 기운걸까. 왜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거지. 정말 한국만의 정서와 현실을 우리가 면밀히 살피지 못한걸까. 요즘 한국의 의결권 자문사들도 꽤 올라오긴 했다. 대신ESG연구소, 서스틴베스트,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대부분 인력과 시스템 강화에 애쓰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다들 30~40명 이상의 기업분석 인력들을 채용해 나름 열심히 보고서를 내는 것 같긴 하다. 사실 전문인력급 한 두명에 주총 앞두고 매번 10여명 급하게 뽑은 인턴들로 꾸려나가는 나도 대단하다. 한국의 대형 생보사 자금운용팀장도 뽑아보고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뽑아봤다. 뭐 다들 능력 있다. 문제는 대학생, 휴학생 인턴들. 한국물 담당 전문인력을 늘리자고 그리 얘기했건만. 잡은 물고기에 먹이 주는 거 봤냐고 되레 호통이다. 전 세계를 커버하다보니 한국같은 마이너 시장에 집중할 여력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요즘들어 우리를 비난하는 곳이 많아졌다. 그래서 술김에 "왜 욕하면서 자꾸 우리한테 자문 용역을 주냐"고 내질러도 봤다. 한국 주식시장이야 사실 직접 투자한 한국 투자자들이 더 세세하게 알지, 포지션도 없는 우리가 더 잘 알 순 없지 않나. 용역비 받고 한 두 달 급하게 데이터 입력해 만들어 낸 보고서를 돈주고 사보는 한국의 연기금, 기관들은 정상일까. 하긴 뭐, 안팎으로 눈치봐야지, 매년 국감장 끌려가야 하는 숙명을 생각하면 그들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자신있게, 소신있게 제 목소리 내라고 하긴 한국내 상황이 만만찮다. 물론 보람도 있었다. 대기업과 금융지주사들의 과도한 오너십에 잽과 훅을 날리는 맛. 그건 해보지 않은 이는 잘 모른다. 공기업에 드리운 관치의 그림자를 걷어내는데도 사실 내 역할이 컸음을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정치권 등 외풍에 취약한 한국 기업들의 경영 환경을 생각하면 나같은 해외 의결권 자문사들은 존재만으로 의미가 있지 않나(너무 꼰대같은 생각인가). 그럼에도 이 지울수 없는 찜찜함. 갈수록 밀려나는 듯한 이 느낌. 뭔가 대대적인 혁신 없이는 우리도 더 이상 살아남기 어려워질 것이란 생각. 올해 금융권 주총을 끝낸 잔상이다.

[홍승훈의 Y] ISS가 던진 숙제

홍승훈 기자 승인 2022.04.04 06:00 | 최종 수정 2022.04.11 11:24 의견 0

'한국의 월스트리트' 여의도 금융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 다시 한번 살펴야 할, 중요하나 우리가 놓친 이슈들을 '왜(why)'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쉽게 풀어본다. -편집자 주


내 이름은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 세상이 달라진걸까. 요즘 이상하게 힘이 빠진다. 3월 주총시즌만 되면 드러나던 나의 미친(?) 존재감이 예전만 못하다. 전 세계 의결권 자문시장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갖는 날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출생의 비밀이 드러난건가. 아니면 우리 시스템의 헛점을 찾은걸까.

1985년생. 한국 나이로 38세, 미국 뉴욕 출신이다. 전 세계 1900여개 기관투자자들에게 온갖 기업 주총 안건에 대한 보고서를 써주고 의결권 행사 등을 자문한다. 건당 받는 수수료는 얼마 안되지만 워낙 독점적이다보니 날로 영향력이 커졌다. 점유율 20% 수준인 글래스루이스(GlassLewis&Co.) 정도가 신경쓰일뿐. 한국의 영세 의결권 자문사들에는 별 관심도 없다. 한국인들의 뼛속까지 물들어 있는 오랜 금융 사대주의. 그 덕에 우리가 산다.

기억하나. 한국내 나의 인지도를. 존재감을 화끈하게 높인 건 삼성 사태였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반대건으로 오너의 목줄을 들었다 놨다 하기도 했다. 삼성도 내 영향력에 혀를 내둘렀지. 결국 그 건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소송이 이어지는 걸 보니 말 다했다. 2018년 현대차 지배구조 변화 시도에도 내 영향력은 컸다. 내가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에 힘을 실어주자 결국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안을 없던 일로 되돌렸다. KT&G 백복인 사장 연임 논란 때도 IBK기업은행(기획재정부가 대주주)의 힘을 약화시킨 게 바로 나다. 앞서 2013년 시끌벅적했던 KB사태 역시 나한테 줄을 대려다 골로 간 사람이 여럿이었다.

그런데 요즘 분위기가 영 아니다. 최근 금융지주사들 주총 결과에 착찹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 버렸다. 난 하나금융 함영주 회장 사내이사 선임을 반대했다. 고공 실적과 성장세, 주주친화 정책은 나무랄 데 없었다. 허나 CEO의 사법 리스크는 우리 시스템상 건너뛰기 어렵다. 우리 시스템의 획일성이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이 외에도 우린 우리금융에 대해선 이원덕 행장의 비상임이사 선임건을 반대했다. 신한지주 사외이사 재선임안도, KB금융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 선임안도 모두 퇴짜를 놨다. 그런데 웬걸. 내 의견이 반영된 곳이 KB금융 사외이사 부결건 달랑 하나다. 가세가 기운걸까. 왜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거지. 정말 한국만의 정서와 현실을 우리가 면밀히 살피지 못한걸까.

요즘 한국의 의결권 자문사들도 꽤 올라오긴 했다. 대신ESG연구소, 서스틴베스트,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대부분 인력과 시스템 강화에 애쓰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다들 30~40명 이상의 기업분석 인력들을 채용해 나름 열심히 보고서를 내는 것 같긴 하다.

사실 전문인력급 한 두명에 주총 앞두고 매번 10여명 급하게 뽑은 인턴들로 꾸려나가는 나도 대단하다. 한국의 대형 생보사 자금운용팀장도 뽑아보고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뽑아봤다. 뭐 다들 능력 있다. 문제는 대학생, 휴학생 인턴들. 한국물 담당 전문인력을 늘리자고 그리 얘기했건만. 잡은 물고기에 먹이 주는 거 봤냐고 되레 호통이다.

전 세계를 커버하다보니 한국같은 마이너 시장에 집중할 여력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요즘들어 우리를 비난하는 곳이 많아졌다. 그래서 술김에 "왜 욕하면서 자꾸 우리한테 자문 용역을 주냐"고 내질러도 봤다. 한국 주식시장이야 사실 직접 투자한 한국 투자자들이 더 세세하게 알지, 포지션도 없는 우리가 더 잘 알 순 없지 않나. 용역비 받고 한 두 달 급하게 데이터 입력해 만들어 낸 보고서를 돈주고 사보는 한국의 연기금, 기관들은 정상일까. 하긴 뭐, 안팎으로 눈치봐야지, 매년 국감장 끌려가야 하는 숙명을 생각하면 그들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자신있게, 소신있게 제 목소리 내라고 하긴 한국내 상황이 만만찮다.

물론 보람도 있었다. 대기업과 금융지주사들의 과도한 오너십에 잽과 훅을 날리는 맛. 그건 해보지 않은 이는 잘 모른다. 공기업에 드리운 관치의 그림자를 걷어내는데도 사실 내 역할이 컸음을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정치권 등 외풍에 취약한 한국 기업들의 경영 환경을 생각하면 나같은 해외 의결권 자문사들은 존재만으로 의미가 있지 않나(너무 꼰대같은 생각인가).

그럼에도 이 지울수 없는 찜찜함. 갈수록 밀려나는 듯한 이 느낌. 뭔가 대대적인 혁신 없이는 우리도 더 이상 살아남기 어려워질 것이란 생각. 올해 금융권 주총을 끝낸 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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