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동지를 팔았나?"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 "16년전 임무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이라'를 지금 수행합니다." 광복 70주년이었던 지난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의 엔딩 장면이다. 배우 이정재가 연기한 염석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김구를 도와 경무국 대장을 역임할 정도로 독립군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그는 동지를 팔아넘긴 밀정이기도 했다. 일본제국의 경찰이 되어 승승장구했다. 해방후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그를 법정에 세웠다. 그는 증인을 죽이고, 증거를 인멸해 풀려났다. 엔딩 장면은 여기서 나온다. 염석진을 밀정으로 의심해 일본군 사사키를 만나면 죽이라는 김구의 임무를 받았던 명우는 16년 전 염석진에게 제압당했다. 죽은 줄 알았던 명우 그리고 안옥윤(배우 전지현)은 결국 염석진을 처단한다. 개봉 당시 이 영화는 광복절인 8월15일에 짜맞춘 것처럼 관객수 1000만명을 돌파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로도 흥행은 계속돼 1270만명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문형민 편집국장 2022년 광복절을 앞두고 운동권에서 경찰로 변신한 한 인물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그는 동지를 팔아먹은 프락치(밀정) 활동을 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 초대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에 임명된 김순호 치안감이 바로 그다. 김 국장은 1989년 '대공특채'로 경찰에 임용됐다. 그는 1981년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광주에서 태어나 고3이던 1980년 광주민주항쟁을 두 눈으로 목격한 그로서는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학생운동이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로인해 1983년3월 군에 강제 징집됐다. 같은해 11월에 국가보안사령부에 끌려가 심사를 받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이 운동권 학생들을 군대에 징집하고, 사상 재교육을 실시한 녹화사업의 피해자였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공장에 위장 취업하고 '인천·부천 민주노동자회(인노회)'에 가입하는 등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그러다 1989년 4월경 돌연 사라졌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인노회 활동에 회의를 느껴 절에 들어가서 고시 공부를 하다 치안본부를 찾아가 고백했다고 말했다. 동료들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의 동료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그가 노동운동 현장에서 사라진 전후로 인노회에 대한 경찰 수사가 전방위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1989년1월말부터 인노회 회원들이 치안본부에 연행됐다. 그리고 6월에 관련자 총 18명이 연행돼 15명이 구속됐다. 조사를 받았던 이들은 "진술을 거부하니 경찰이 전체적인 조직표를 보여줬고, 부천 몇몇 지역의 정보가 상세하게 적혀있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인노회의 부천지구 분회가 8개 정도에 달했고, 이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 지구장 김순호였다. 인노회 사건으로 구속되고, 고문 후유증으로 우울증과 정신분열증세를 보이다 분신(焚身)한 최동씨가 있다. 고인은 김 국장의 성균관대 1년 선배로서 '심산연구회'라는 학내 동아리를 만들고 함께 학생운동을 했다. 김 국장을 인노회로 이끌고 노동운동을 같이 한 동지였다. 두 사람은 친형제처럼 지냈다고 한다. 경찰로 변신한 김 국장은 최동씨의 장례식과 32번의 추모식에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침 8월7일은 최동씨의 추모식이었다. 추모식에 모인 동료들은 김 국장의 과거 의문스러운 행적에 대해 낱낱이 소명하고, '프락치' 활동과 관련한 의혹 제기에 진실로 답하라고 요구했다. 대법원은 지난 2020년 재심 판결에서 인노회를 이적단체가 아니라고 확정했다. 영화 속 얘기지만 해방될 지 몰랐으니 동지를 팔았다고 한다. 그리고 16년 전의 임무를 수행한 이들이 있다. 영화는 현실과 닮기도 한다. 문형민 편집국장

[데스크 칼럼] 초대 경찰국장과 동지 최동

문형민 기자 승인 2022.08.08 09:44 | 최종 수정 2022.08.08 11:25 의견 0

"왜 동지를 팔았나?"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
"16년전 임무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이라'를 지금 수행합니다."

광복 70주년이었던 지난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의 엔딩 장면이다. 배우 이정재가 연기한 염석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김구를 도와 경무국 대장을 역임할 정도로 독립군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그는 동지를 팔아넘긴 밀정이기도 했다. 일본제국의 경찰이 되어 승승장구했다. 해방후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그를 법정에 세웠다. 그는 증인을 죽이고, 증거를 인멸해 풀려났다.

엔딩 장면은 여기서 나온다. 염석진을 밀정으로 의심해 일본군 사사키를 만나면 죽이라는 김구의 임무를 받았던 명우는 16년 전 염석진에게 제압당했다. 죽은 줄 알았던 명우 그리고 안옥윤(배우 전지현)은 결국 염석진을 처단한다.

개봉 당시 이 영화는 광복절인 8월15일에 짜맞춘 것처럼 관객수 1000만명을 돌파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로도 흥행은 계속돼 1270만명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문형민 편집국장


2022년 광복절을 앞두고 운동권에서 경찰로 변신한 한 인물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그는 동지를 팔아먹은 프락치(밀정) 활동을 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 초대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에 임명된 김순호 치안감이 바로 그다. 김 국장은 1989년 '대공특채'로 경찰에 임용됐다. 그는 1981년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광주에서 태어나 고3이던 1980년 광주민주항쟁을 두 눈으로 목격한 그로서는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학생운동이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로인해 1983년3월 군에 강제 징집됐다. 같은해 11월에 국가보안사령부에 끌려가 심사를 받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이 운동권 학생들을 군대에 징집하고, 사상 재교육을 실시한 녹화사업의 피해자였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공장에 위장 취업하고 '인천·부천 민주노동자회(인노회)'에 가입하는 등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그러다 1989년 4월경 돌연 사라졌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인노회 활동에 회의를 느껴 절에 들어가서 고시 공부를 하다 치안본부를 찾아가 고백했다고 말했다. 동료들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의 동료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그가 노동운동 현장에서 사라진 전후로 인노회에 대한 경찰 수사가 전방위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1989년1월말부터 인노회 회원들이 치안본부에 연행됐다. 그리고 6월에 관련자 총 18명이 연행돼 15명이 구속됐다.

조사를 받았던 이들은 "진술을 거부하니 경찰이 전체적인 조직표를 보여줬고, 부천 몇몇 지역의 정보가 상세하게 적혀있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인노회의 부천지구 분회가 8개 정도에 달했고, 이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 지구장 김순호였다.

인노회 사건으로 구속되고, 고문 후유증으로 우울증과 정신분열증세를 보이다 분신(焚身)한 최동씨가 있다. 고인은 김 국장의 성균관대 1년 선배로서 '심산연구회'라는 학내 동아리를 만들고 함께 학생운동을 했다. 김 국장을 인노회로 이끌고 노동운동을 같이 한 동지였다. 두 사람은 친형제처럼 지냈다고 한다.

경찰로 변신한 김 국장은 최동씨의 장례식과 32번의 추모식에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침 8월7일은 최동씨의 추모식이었다. 추모식에 모인 동료들은 김 국장의 과거 의문스러운 행적에 대해 낱낱이 소명하고, '프락치' 활동과 관련한 의혹 제기에 진실로 답하라고 요구했다.

대법원은 지난 2020년 재심 판결에서 인노회를 이적단체가 아니라고 확정했다.

영화 속 얘기지만 해방될 지 몰랐으니 동지를 팔았다고 한다. 그리고 16년 전의 임무를 수행한 이들이 있다. 영화는 현실과 닮기도 한다.

문형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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