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사진=연합뉴스) "흠. 그정도인가요?" 최근 늘어나고 있는 미분양 물량에 대해 분양업계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미분양 사태가 심각한 게 아니냐고 물으니 시큰둥한 답변이 돌아왔다. 태산명동서일필 수준까지야 아니래도 아직까지는 심각하지 않다고 본다는 의미로 곧장 이해됐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1월 주택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미분양은 7만5359가구다. 이는 지난 2012년 12월(7만5000가구) 이후 10년 1개월 만에 최고치다. 전문가들이 적정한 미분양 물량 수준을 5만가구에서 6만 가구 수준으로 본다는 점에서 많이 쌓였다는 건 분명하다. 다만 미분양 물량이 얼만큼 심각하냐라는 문제는 다른 차원이다. 물론 건설사들은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당장 폐업하는 건설사의 숫자가 만만치 않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종합건설사 폐업 신고(변경·정정·철회 포함)는 362건이다. 미분양 물량이 현재 수준과 비슷했던 지난 2012년을 거치면서 이듬해 404건의 폐업 신고가 있던 점과 유사한 흐름이다. 고용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해 온 건설사의 줄폐업은 국가 경제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일각에서는 건설사의 '엄살'이라고도 지적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엄살은 건설사의 재정 악화와 폐업 등의 고통이 엄살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건설사의 줄도산 사태가 미칠 영향을 두고 과도하게 부풀려 정부의 지원을 재촉하고 있다는 거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대규모 미분양 발생 때마다 많은 건설사가 사라지기했으나 건설업 자체가 폭삭 주저 앉아서 회복 불능 상태로 되지는 않았다. 그 시기를 버티거나 새롭게 만들어진 건설사들은 지난 몇 년간 역대급 주택사업 호황기를 누렸고 지금 보릿고개를 다시 맞았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아직은 미분양 위기는 시작도 안했다. 수 년 내로 악성 미분양이 쌓이는 순간이 진짜 위기"라고 말했다. 미분양 증가에 따른 위험성을 경고한 메시지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결국 아직은 위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등 미분양에 따른 위기 사례를 봤을 때 문제가 된 수치는 악성 미분양이라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이었다. 건설업계를 덮쳤던 지난 2009년 3월 전년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5만1796가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현재 시점에서 1월 기준으로 준공 후 미분양 가구는 7546가구으로 7분의 1 수준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엄살이 아니라며 억울함을 토로한다. 호미로 막을 일을 추후에 가래로 막겠냐며 정부의 빠른 미분양 해소를 위한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낸다. 현재의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2~3년 안에 악성 미분양은 빠르게 늘 수 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여전히 업계 일각에서 주장하는 정부 차원에서의 미분양 매입은 동의하기 힘들다. 땅이 가지는 공공재적인 성격과 주택 공급에 대해 정부가 관여한다는 차원에서는 민간 건설사들의 정부 지원 요청도 일견 이해는 된다. 그렇지만 그게 민간 건설사의 사업 실패 책임을 정부가 떠안을 이유가 되는 지는 의문이다. 건설사가 아파트를 분양하는 배경에는 수요층이 있고 이들이 사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주택의 공공재 성격을 고려하면 정말 필요한 수만큼 공급해야겠지만 이미 지방 아파트 시장은 사실상 공급 과잉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미분양 문제만 하더라도 서울은 결국 해소되겠지만 지방이 심각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그런데도 지방에 아파트를 짓고 분양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투기 수요가 이를 뒷받침할 것이라는 믿음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는 집이 있더라도 집을 추가적으로 살 것이라는 믿음이다. 지극히 시장경제적인 논리에서 출발한 사업에서 정부의 도움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닌가 싶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결국 정부가 고심 끝에 건설사가 다시 사들이는 조건으로 미분양 물량을 매입했으나 해당 건설사가 폐업하면서 되팔지 못한 경우도 부지기수였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는 문제기도 하다. 정부의 공급 정책에서 민간 건설사의 역할도 있는 만큼 상부상조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소위 말해서 아파트를 짓는 능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게 그동안의 업계 목소리였다. 일부 건설사가 무너지더라도 정부의 공급 정책 자체에 큰 무리는 없다. 대체할 수 있는 건설사는 적지 않다. 얼어붙은 시장이 문제라면 부동산 규제 완화 등 정책적인 차원에서 풀어나갈 문제다. 실제로 정부는 '둔촌주공 살리기'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1.3 대책과 특례보금자리론 시행 등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 이미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시장에서도 거래량은 조금씩 살아나는 분위기다. 물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청약 시장이 양극화 되고 이에 따른 지방 미분양 물량 해소 어려움 등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책임은 사업 조건을 따지고 들어간 건설사와 시행사 등이 우선 짊어질 일이다. 건설사 유동성 뇌관으로 작용한 부동산 PF 리스크를 막기 위해 28조4000억원도 투입했다. 이 같은 대책의 효과를 지켜봐야 할 때다. 정부 차원에서는 충분히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도움만 받으려는 모습보다는 건설사의 적극적인 자구책이 필요하다. 실제로도 건설사와 시행사들은 합의점을 찾고 할인 분양 등에 나서고 있다. 건설사 차원에서도 그동안 문제가 된 무리한 책임 준공 의무를 피하는 방향으로 계약에 나설 필요가 있겠다.

[정지수의 랜드마크] 미분양 해소, ‘놀부 심보’는 안된다

정지수 기자 승인 2023.03.08 14:28 의견 0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사진=연합뉴스)

"흠. 그정도인가요?"

최근 늘어나고 있는 미분양 물량에 대해 분양업계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미분양 사태가 심각한 게 아니냐고 물으니 시큰둥한 답변이 돌아왔다. 태산명동서일필 수준까지야 아니래도 아직까지는 심각하지 않다고 본다는 의미로 곧장 이해됐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1월 주택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미분양은 7만5359가구다. 이는 지난 2012년 12월(7만5000가구) 이후 10년 1개월 만에 최고치다. 전문가들이 적정한 미분양 물량 수준을 5만가구에서 6만 가구 수준으로 본다는 점에서 많이 쌓였다는 건 분명하다.

다만 미분양 물량이 얼만큼 심각하냐라는 문제는 다른 차원이다. 물론 건설사들은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당장 폐업하는 건설사의 숫자가 만만치 않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종합건설사 폐업 신고(변경·정정·철회 포함)는 362건이다. 미분양 물량이 현재 수준과 비슷했던 지난 2012년을 거치면서 이듬해 404건의 폐업 신고가 있던 점과 유사한 흐름이다.

고용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해 온 건설사의 줄폐업은 국가 경제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일각에서는 건설사의 '엄살'이라고도 지적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엄살은 건설사의 재정 악화와 폐업 등의 고통이 엄살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건설사의 줄도산 사태가 미칠 영향을 두고 과도하게 부풀려 정부의 지원을 재촉하고 있다는 거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대규모 미분양 발생 때마다 많은 건설사가 사라지기했으나 건설업 자체가 폭삭 주저 앉아서 회복 불능 상태로 되지는 않았다. 그 시기를 버티거나 새롭게 만들어진 건설사들은 지난 몇 년간 역대급 주택사업 호황기를 누렸고 지금 보릿고개를 다시 맞았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아직은 미분양 위기는 시작도 안했다. 수 년 내로 악성 미분양이 쌓이는 순간이 진짜 위기"라고 말했다. 미분양 증가에 따른 위험성을 경고한 메시지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결국 아직은 위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등 미분양에 따른 위기 사례를 봤을 때 문제가 된 수치는 악성 미분양이라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이었다. 건설업계를 덮쳤던 지난 2009년 3월 전년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5만1796가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현재 시점에서 1월 기준으로 준공 후 미분양 가구는 7546가구으로 7분의 1 수준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엄살이 아니라며 억울함을 토로한다. 호미로 막을 일을 추후에 가래로 막겠냐며 정부의 빠른 미분양 해소를 위한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낸다. 현재의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2~3년 안에 악성 미분양은 빠르게 늘 수 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여전히 업계 일각에서 주장하는 정부 차원에서의 미분양 매입은 동의하기 힘들다.

땅이 가지는 공공재적인 성격과 주택 공급에 대해 정부가 관여한다는 차원에서는 민간 건설사들의 정부 지원 요청도 일견 이해는 된다. 그렇지만 그게 민간 건설사의 사업 실패 책임을 정부가 떠안을 이유가 되는 지는 의문이다. 건설사가 아파트를 분양하는 배경에는 수요층이 있고 이들이 사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주택의 공공재 성격을 고려하면 정말 필요한 수만큼 공급해야겠지만 이미 지방 아파트 시장은 사실상 공급 과잉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미분양 문제만 하더라도 서울은 결국 해소되겠지만 지방이 심각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그런데도 지방에 아파트를 짓고 분양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투기 수요가 이를 뒷받침할 것이라는 믿음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는 집이 있더라도 집을 추가적으로 살 것이라는 믿음이다. 지극히 시장경제적인 논리에서 출발한 사업에서 정부의 도움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닌가 싶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결국 정부가 고심 끝에 건설사가 다시 사들이는 조건으로 미분양 물량을 매입했으나 해당 건설사가 폐업하면서 되팔지 못한 경우도 부지기수였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는 문제기도 하다.

정부의 공급 정책에서 민간 건설사의 역할도 있는 만큼 상부상조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소위 말해서 아파트를 짓는 능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게 그동안의 업계 목소리였다. 일부 건설사가 무너지더라도 정부의 공급 정책 자체에 큰 무리는 없다. 대체할 수 있는 건설사는 적지 않다. 얼어붙은 시장이 문제라면 부동산 규제 완화 등 정책적인 차원에서 풀어나갈 문제다.


실제로 정부는 '둔촌주공 살리기'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1.3 대책과 특례보금자리론 시행 등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 이미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시장에서도 거래량은 조금씩 살아나는 분위기다. 물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청약 시장이 양극화 되고 이에 따른 지방 미분양 물량 해소 어려움 등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책임은 사업 조건을 따지고 들어간 건설사와 시행사 등이 우선 짊어질 일이다. 건설사 유동성 뇌관으로 작용한 부동산 PF 리스크를 막기 위해 28조4000억원도 투입했다. 이 같은 대책의 효과를 지켜봐야 할 때다.

정부 차원에서는 충분히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도움만 받으려는 모습보다는 건설사의 적극적인 자구책이 필요하다. 실제로도 건설사와 시행사들은 합의점을 찾고 할인 분양 등에 나서고 있다. 건설사 차원에서도 그동안 문제가 된 무리한 책임 준공 의무를 피하는 방향으로 계약에 나설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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