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라고 하면 보통 ‘옛 것’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먹을 갈 고, 화선지에 붓으로 눌러 쓰는 행위를 연상한다. 하지만 서예란 문자를 소재로 하는 조형예술이라는 폭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저 옛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11월 9일부터 12월 2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진행되는 ‘서예, 그 새로운 탄생’은 딱딱하고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서예를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예술로 바꾸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총 48명의 91점 작품이 준비됐다. 예술의전당이 서예를 주제로 개최한 전시기획 공모를 통해 선정된 3명의 작가가 각자 팀을 꾸려 3개의 각기 다른 시선으로 서예를 바라본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전통 서예를 시작으로, 미디어아트, 그라피티, 캘리그라피에 이르기까지 서(書)를 중심으로 예술의 확장을 선보인다.    전시의 시작을 여는 섹션은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작품은 임서와 창작을 통해 ‘법고’의 의미를 되새긴다. 최초의 문자가 시작된 갑골문자부터 시대의 흐름 순으로 글씨의 변화가 눈에 띈다.  ‘법고창신’ 섹션은 단순히 ‘서예, 그 새로운 탄생’의 시작으로 옛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 짓지 않았다. 서예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면서도, 그 속에서 작가들은 ‘창신’의 해석을 담아내고 있다. 놀라운 점은 각자의 개성을 중시하고 있으면서도, 법칙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법고창신’에서 습자가 아닌 예술이 되었다는 점은 2부인 ‘빛과 여백’을 통해 드러난다. 법에 갇이 문자를 넘어선 서법의 해체를 보여주고 있다. 이 섹션에서 작품은 액자가 아닌 거울을 통해 ‘보는 서예’를 만들어냈고, ‘조각한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2부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미디어 시대에 발맞춘 형식들로 미래 서예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영상 속의 글자가 각각의 물쟁반을 비추는 ‘물에 비친 글’에서는 ‘비추는 서예’를 만들었고, ‘즈려밟다’에서는 관람객이 서 있으면 글씨가 그들의 몸에 다가와 ‘입는 서예’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북과 먹을 넘어서 영상물과 설치작업을 통해 글자가 몸에 입혀지는 새로운 체험이다.  ‘한’의 프로젝트 레이어방법도 매우 인상적이다. 간격을 두고 설치된 여섯 장의 샤막에 높이가 일정 간격으로 다르게 설치된 1대의 빔 프로젝터를 통해 삼원색의 동일한 글자 및 서예 작업으로 구성된 영상을 투사한다. 한 글자가 각각의 레이어를 통해 삼원색으로 표현되는 형식이다.    ‘빛과 여백’이 서법의 해체를 담고 있다면, 마지막 ‘책상에서 걸어 나온 무법의 서예’는 의미의 해체를 보여준다. 거리로 나온 이들의 화선지는 종이나 영상 매체만이 나이다. 매트리스, 그물망 등 재료의 제한을 가뿐히 넘어선다. 캘리그라피티(캘리그라피+그라피티)를 선보이고 카메라를 통해 몸으로 글씨를 만들어낸다.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도 서예는 새로운 시도나 자유로운 발상이 금기시되어 온 경향이 있다. 이번 ‘무법의 서예’에서는 그 모든 금기를 깨부순다. 그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들과도 교류한다. 이번 전시는 서예가 그리는 세계가 각각 다르고, 소통의 네트워크도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차이를 존중하고 소통하면서 만들어진 이번 세 개의 섹션은 서예가 나아갈 방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전시를 읽다] ‘다름’의 존중에서 비롯된 예술의 확장…‘서예, 그 새로운 탄생’

‘서예, 그 새로운 탄생’展, 12월 29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박정선 기자 승인 2019.11.18 14:03 의견 0
 

‘서예’라고 하면 보통 ‘옛 것’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먹을 갈 고, 화선지에 붓으로 눌러 쓰는 행위를 연상한다. 하지만 서예란 문자를 소재로 하는 조형예술이라는 폭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저 옛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11월 9일부터 12월 2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진행되는 ‘서예, 그 새로운 탄생’은 딱딱하고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서예를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예술로 바꾸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총 48명의 91점 작품이 준비됐다. 예술의전당이 서예를 주제로 개최한 전시기획 공모를 통해 선정된 3명의 작가가 각자 팀을 꾸려 3개의 각기 다른 시선으로 서예를 바라본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전통 서예를 시작으로, 미디어아트, 그라피티, 캘리그라피에 이르기까지 서(書)를 중심으로 예술의 확장을 선보인다. 

 

전시의 시작을 여는 섹션은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작품은 임서와 창작을 통해 ‘법고’의 의미를 되새긴다. 최초의 문자가 시작된 갑골문자부터 시대의 흐름 순으로 글씨의 변화가 눈에 띈다. 

‘법고창신’ 섹션은 단순히 ‘서예, 그 새로운 탄생’의 시작으로 옛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 짓지 않았다. 서예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면서도, 그 속에서 작가들은 ‘창신’의 해석을 담아내고 있다. 놀라운 점은 각자의 개성을 중시하고 있으면서도, 법칙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법고창신’에서 습자가 아닌 예술이 되었다는 점은 2부인 ‘빛과 여백’을 통해 드러난다. 법에 갇이 문자를 넘어선 서법의 해체를 보여주고 있다. 이 섹션에서 작품은 액자가 아닌 거울을 통해 ‘보는 서예’를 만들어냈고, ‘조각한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2부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미디어 시대에 발맞춘 형식들로 미래 서예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영상 속의 글자가 각각의 물쟁반을 비추는 ‘물에 비친 글’에서는 ‘비추는 서예’를 만들었고, ‘즈려밟다’에서는 관람객이 서 있으면 글씨가 그들의 몸에 다가와 ‘입는 서예’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북과 먹을 넘어서 영상물과 설치작업을 통해 글자가 몸에 입혀지는 새로운 체험이다. 

‘한’의 프로젝트 레이어방법도 매우 인상적이다. 간격을 두고 설치된 여섯 장의 샤막에 높이가 일정 간격으로 다르게 설치된 1대의 빔 프로젝터를 통해 삼원색의 동일한 글자 및 서예 작업으로 구성된 영상을 투사한다. 한 글자가 각각의 레이어를 통해 삼원색으로 표현되는 형식이다. 

 

‘빛과 여백’이 서법의 해체를 담고 있다면, 마지막 ‘책상에서 걸어 나온 무법의 서예’는 의미의 해체를 보여준다. 거리로 나온 이들의 화선지는 종이나 영상 매체만이 나이다. 매트리스, 그물망 등 재료의 제한을 가뿐히 넘어선다. 캘리그라피티(캘리그라피+그라피티)를 선보이고 카메라를 통해 몸으로 글씨를 만들어낸다.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도 서예는 새로운 시도나 자유로운 발상이 금기시되어 온 경향이 있다. 이번 ‘무법의 서예’에서는 그 모든 금기를 깨부순다. 그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들과도 교류한다.

이번 전시는 서예가 그리는 세계가 각각 다르고, 소통의 네트워크도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차이를 존중하고 소통하면서 만들어진 이번 세 개의 섹션은 서예가 나아갈 방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