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웨스팅하우스가 공동으로 글로벌 확대 추진 중인 대형원전 AP1000® 조감도. (사진=현대건설)

올해 정비사업 수주로 자본력을 입증한 삼성물산, 현대건설 등 국내 주요 건설사들은 불안정한 국내 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나 탈현장화(OSC) 공법, 인공지능(AI) 기반 스마트 안전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아 건설기술 혁신기업으로 대전환에 나서고 있다.

■ 불확실성 시대 '신성장 동력' 찾아 나선 건설 공룡들

2025년 정비사업 시장에서 승자 독식 구도를 굳힌 1군 건설사들은 이제 안주 대신 포트폴리오 대수술을 택했다. 국내 주택·정비사업 경기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로는 금리·정책에 따른 실적 변동을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에너지 인프라를 비롯해 해외 디벨로퍼 사업, 모듈러, 스마트 안전 등으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이 흐름의 공통분모는 기술을 중심에 둔 가치 전환이다. 수주 경쟁에서 드러난 브랜드 및 기술 격차를 바탕으로 친환경 에너지·OSC·AI 안전이라는 세 축에서 장기 성장 스토리를 쌓아가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 그린 인프라 전환, 수소·SMR로 글로벌 EPC 판도 바꿔

넷제로(Net Zero)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메이저 건설사들의 시선은 대규모 에너지 인프라로 향하고 있다. 도로·주택 중심의 전통적인 SOC 수주에서 벗어나 수소·원전·재생에너지 인프라를 직접 기획·개발·시공하는 디벨로퍼형 EPC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현대건설은 미국 홀텍(Holtec)과 소형모듈원전(SMR), 원전 해체, 사용후핵연료 관리 전반에 걸친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미국 미시간주 팔리세이즈(Palisades) 부지의 SMR 프로젝트 시공 파트너 참여를 추진 중이다.

지난 2009년 이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1~4호기 시공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온 타임·위딘 버짓으로 완공한 경험은 현대건설의 대표 레퍼런스로, 2025년 들어 한국·UAE 간 ‘바라카 모델’ 제3국 확장 합의가 이뤄지면서 중동·아프리카 신규 원전 수주 기대도 커지고 있다.

현대건설은 여기에 더해 한국재료연구원과 대형원전·SMR용 특수 소재·용접 공법 개발을 위한 기술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유럽·미국 시장을 겨냥한 원전 시공 표준·공급망 공동 개발에 나서고 있다.​

27일 일본 IHI 요코하마 공장에서 진행된 SC 모듈 실증 기념 인도 행사에서 삼성물산을 비롯한 루마니아 SMR 프로젝트 관련 글로벌 기업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물산)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호주 브리즈번 그린수소 프로젝트와 별도로, 루마니아 SMR 프로젝트의 기본설계(FEED)에 참여하며 원전 밸류체인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올해 5월에는 일본 요코하마 IHI 공장에서 SMR용 강판 콘크리트(SC) 벽체를 모듈 단위로 제작·조립하는 공법 실증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사업주 로파워와 뉴스케일, 플루어 등과 함께 성능을 검증했다.

삼성물산은 "SC 모듈 실증을 통해 SMR 건설 분야의 기술력과 사업 수행 역량을 입증한 만큼 루마니아 SMR 사업은 물론 향후 글로벌 SMR 프로젝트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디벨로퍼형 에너지 인프라 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기홍 하나증권 연구원은 "바라카 원전을 성공적으로 완공한 경험과 미국·유럽에서의 SMR·대형 원전 프로젝트 참여는 현대건설을 K-원전 패키지의 핵심 플레이어로 만든 요인"이라며 "루마니아·미국·중동 등에서 수주가 현실화될 경우, 단순 건축·주택 사이클과 다른 독자적인 성장 궤적을 그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OSC 혁신과 주택 생애주기 관리, 모듈러·리모델링 뜬다

정비사업에서 드러난 기술 격차는 주택 건설 공법과 생애주기 관리로 확장되고 있다. 현장 작업을 최소화하는 탈현장화(OSC, Off-Site Construction)와 노후 주택 리모델링 시장이 대표적인 무대다.

GS건설은 사전제작 콘크리트(PC) 제조 자회사 GPC와 목조 모듈러 전문 자회사 자이가이스트(XiGEIST)를 앞세워 모듈러·프리패브 사업을 키우고 있다.

자이가이스트는 강원도 춘천 엘리시안 강촌 리조트 내에 목조 모듈러로 조성한 직원 기숙사 단지 ‘드림 포레스트’를 준공했다고 8일 밝혔다. (사진=GS건설)

자이가이스트는 공장에서 구조체와 마감재를 생산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의 모듈러 단독주택과 공공 기숙사·주거시설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시공 기간 단축과 품질 표준화, 현장 소음·폐기물 저감을 동시에 노리고 있다.

GS건설 관계자는 "프리패브·모듈러 기술을 통해 공동주택 시장의 변화를 선도해 나갈 계획"이라며 "이러한 기술은 향후 프리미엄 아파트 브랜드 자이(Xi)에도 단계적으로 적용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아파트의 노후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리모델링 시장도 구조적인 성장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형 건설사들이 리모델링·대수선 전담 조직과 상품을 잇따라 내놓는 배경도 노후 주택 수선, 리모델링을 통해 장기 수익 기반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15층 안팎의 중층 단지는 기존 용적률이 높아 재건축을 해도 사업성이 낮은 편이어서 리모델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며 "재건축 규제가 엄격한 지역일수록 리모델링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 안전이 경쟁력…AI·BIM으로 중대재해 예측 시대 노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은 수주 경쟁과 브랜드 평판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됐다. 주요 정비사업 조합과 공공 발주처가 반복 사고 기업에 대해 감점·참여 제한을 검토하면서 주요 건설사들은 AI·BIM·웨어러블을 접목한 스마트 안전 시스템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등은 AI 영상분석과 각종 센서를 결합한 스마트 안전 기술을 현장에 확대 적용 중이다. 현대건설은 자체 개발한 시스템을 통해 CCTV 영상으로 AI가 실시간 분석해 건설장비와 작업자의 위치·이동을 동시에 인식하고, 협착·충돌 가능성이 커질 경우 경고하는 기능을 구현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구조물 변위 계측 시스템에 대해 "교량 처짐과 진동, 흙막이벽·옹벽의 거동 이력을 영상 기반으로 추적·감시해 붕괴 위험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향후 대우건설이 참여하는 현장에 도입해 말뚝 관입량 계측, 동바리·흙막이 계측 등으로 확대 적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화 건설부문이 스마트 안전진단 장비와 연계된 모니터링 대시보드를 통해 와이어로프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한화 건설부문)

한화 건설부문은 고위험 통합관제 시스템 H-HIMS를 구축해 전국 현장의 CCTV 영상을 본사 관제실에서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올해는 여기에 AI 영상분석을 접목해 개구부·타워크레인 하부 등 위험구역 접근과 안전시설물 훼손을 자동 감지하는 기능을 시범 적용하고 있다. 자체 모바일 안전관리 시스템 HS2E를 통해 현장 근로자들이 위험요소 사진을 즉시 공유하고,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해 사고 패턴을 사전에 차단하는 체계도 운영 중이다.

DL이앤씨는 BIM·드론·IoT를 연계한 스마트 공사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토공·파일 작업의 3D 시뮬레이션과 공정 모니터링을 수행하고, 장비 충돌 방지 센서·수평 상태 경보기·웨어러블 장비 등으로 고위험 작업 안전관리를 고도화하고 있다.​​

롯데건설은 2021년부터 360도 촬영이 가능한 넥밴드형 웨어러블 카메라와 스마트 안전관리 애플리케이션을 도입해 현장 안전관리를 고도화하고 있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웨어러블 카메라 도입으로 타워크레인 설치·해체 등 고위험 작업을 사무실에서도 실시간 확인할 수 있게 됐다"며 "스마트 안전관리 앱과 연계해 점검 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교육 자료로도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딥러닝 기반 영상, 데이터 분석은 반복되는 사고 패턴을 학습해 위험이 커지는 작업, 환경을 사전에 경고할 수 있다"며 "산업 안전의 패러다임이 사고 이후 조사에서 AI를 활용한 예측, 예방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