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 있잖아요” 한 TV프로그램에서 성 소수자인 아들과 그의 엄마가 마주 앉았다. 여성처럼 화장을 하고 앉은 아들을 마주보는 엄마의 눈에서는 눈물이 글썽인다. 제작진과 인터뷰에서 엄마는 성수수자가 된 아들을 받아들일 수 있냐는 질문에 “제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 상담을 했어요. 얼마 전에 목사님 자제 분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거든요.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래도 살아 있잖아요’ 였어요.”라고 말한다. 성소수자의 길을 걷는 아들의 삶, 그 하나로 엄마는 모든 것을 포용한다.  우리는 어떤 고통을 당할 때도 그보다 큰 고통을 앞에서는 위로를 받는다. 그렇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의 더 큰 고통 속에서 위로 받는 존재일지 모른다. 이 영화 ‘벌새’ 속 고통은 이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속 고통과 비교할 수 없다.  영화 '벌새' 스틸컷 ■ 고통 속에서 성장하는 소녀, 영화 ‘벌새’ 영화 ‘벌새’는 너무나 평범한 14세 은희(박지후)의 일상을 따라간다. 때론 수업 시간에 친구와 쪽지로 잡담을 나누는가 하면, 가끔은 남자친구의 변심에 상처를 받는다. 자식들을 돌볼 시간 없이 돈 벌이에 급급해 무심한 부모에게 받는 상처는 뜻하지 않는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보다는 덜 하다.  영화 ‘벌새’ 속 은희는 평범한 일상 속 소소한 고통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간다. 카메라가 따라가는 은희의 일상은 14세 소녀가 겪을 수 있는 세상의 차가움을 묵묵히 보여준다.  가족과 사회(그것이 학교 일지라도)의 냉랭함 속에 학원 선생님의 따뜻한 품을 파고 들어보는 은희는 어른의 세상을 숨기지 않고 영지(김새벽)에게 정을 느낀다. 여기에 대해 영지가 자신의 치유처라 믿고 있는 은희는 어느 날 갑자기 학원을 떠난 영지를 만나기 위해 분투한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영지의 집 그리고 성수대교 붕괴…영지의 엄마는 딸을 찾는 어린 손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만 끝내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지 못한다. 1994년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살고 있는 은희네 가족 구성원들 역시 성수대교 붕괴로 친구들을 잃는다. 그리고 은희네 집 식탁, 밥숟가락을 입에 채 넣지도 못한 채 오열하는 오빠와 눈에 초점을 잃은 언니는 제 각각 큰 고통을 가슴에 묻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1994년 그때로 돌아가 은희를 꼭 안아주고 싶게 만들었던 ‘벌새’.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는 각자의 고통은 가슴에 묻고 흡사 전투처럼 살아내야 하지만 언젠가는 누구에게든 위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은희는 그 위로를 영지에게 받았으며 또한 더 큰 고통과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리하여 일상의 소소한 고통은 잊히기 마련이다.  도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 총격 사건 가해자 엄마가 써내려간 고백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영화 ‘벌새’를 보면서 은희를 안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는 어떤 고통 앞에서 숙연해져야 하는가를 떠올리게 됐다. 동시에 몇 달 전 읽었던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떠올려 본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1999년 4월 미국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격 사건 가해 학생 두 명 중 한 명의 엄마가 써 내려간 책이다. 당시 총기 난사로 학생과 교사 13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24명이 부상을 당했다. 두 명의 가해 학생 역시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미국의 총기 난사 사건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 이 사건 이후로 모방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정도로 영향이 컸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사건 발생 17년 후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가 쓴 책이다. 딜런 클리볼드가 태어나서 사건을 벌이기까지의 17년, 또 사건 발생 후 17년, 총 34년간의 일을 정리하고 있다. 사건의 발생 이유, 사건을 벌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가해자 가족들이 겪은 생각과 감정들이 솔직하게 정리되어 있다. 책은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이 아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폭력성과 마주한 인간이 그것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또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쓴 책이다.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차갑게 고발하는 여타의 책과 달리, 바탕에 부정할 수 없는 ‘사랑’을 깔고 있는 어머니가 써내려간 글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독특하고 설득력 있다.

[미디어셀러] 큰 고통은 소소한 고통을 잊게 한다

고통을 극복케 하는 극심한 고통, 영화 ‘벌새’와 도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박진희 기자 승인 2020.02.11 09:30 의견 0

“그래도 살아 있잖아요”

한 TV프로그램에서 성 소수자인 아들과 그의 엄마가 마주 앉았다. 여성처럼 화장을 하고 앉은 아들을 마주보는 엄마의 눈에서는 눈물이 글썽인다. 제작진과 인터뷰에서 엄마는 성수수자가 된 아들을 받아들일 수 있냐는 질문에 “제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 상담을 했어요. 얼마 전에 목사님 자제 분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거든요.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래도 살아 있잖아요’ 였어요.”라고 말한다. 성소수자의 길을 걷는 아들의 삶, 그 하나로 엄마는 모든 것을 포용한다. 

우리는 어떤 고통을 당할 때도 그보다 큰 고통을 앞에서는 위로를 받는다. 그렇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의 더 큰 고통 속에서 위로 받는 존재일지 모른다. 이 영화 ‘벌새’ 속 고통은 이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속 고통과 비교할 수 없다. 

영화 '벌새' 스틸컷

■ 고통 속에서 성장하는 소녀, 영화 ‘벌새’

영화 ‘벌새’는 너무나 평범한 14세 은희(박지후)의 일상을 따라간다. 때론 수업 시간에 친구와 쪽지로 잡담을 나누는가 하면, 가끔은 남자친구의 변심에 상처를 받는다. 자식들을 돌볼 시간 없이 돈 벌이에 급급해 무심한 부모에게 받는 상처는 뜻하지 않는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보다는 덜 하다. 

영화 ‘벌새’ 속 은희는 평범한 일상 속 소소한 고통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간다. 카메라가 따라가는 은희의 일상은 14세 소녀가 겪을 수 있는 세상의 차가움을 묵묵히 보여준다. 

가족과 사회(그것이 학교 일지라도)의 냉랭함 속에 학원 선생님의 따뜻한 품을 파고 들어보는 은희는 어른의 세상을 숨기지 않고 영지(김새벽)에게 정을 느낀다. 여기에 대해 영지가 자신의 치유처라 믿고 있는 은희는 어느 날 갑자기 학원을 떠난 영지를 만나기 위해 분투한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영지의 집 그리고 성수대교 붕괴…영지의 엄마는 딸을 찾는 어린 손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만 끝내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지 못한다. 1994년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살고 있는 은희네 가족 구성원들 역시 성수대교 붕괴로 친구들을 잃는다. 그리고 은희네 집 식탁, 밥숟가락을 입에 채 넣지도 못한 채 오열하는 오빠와 눈에 초점을 잃은 언니는 제 각각 큰 고통을 가슴에 묻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1994년 그때로 돌아가 은희를 꼭 안아주고 싶게 만들었던 ‘벌새’.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는 각자의 고통은 가슴에 묻고 흡사 전투처럼 살아내야 하지만 언젠가는 누구에게든 위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은희는 그 위로를 영지에게 받았으며 또한 더 큰 고통과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리하여 일상의 소소한 고통은 잊히기 마련이다. 

도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 총격 사건 가해자 엄마가 써내려간 고백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영화 ‘벌새’를 보면서 은희를 안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는 어떤 고통 앞에서 숙연해져야 하는가를 떠올리게 됐다. 동시에 몇 달 전 읽었던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떠올려 본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1999년 4월 미국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격 사건 가해 학생 두 명 중 한 명의 엄마가 써 내려간 책이다. 당시 총기 난사로 학생과 교사 13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24명이 부상을 당했다. 두 명의 가해 학생 역시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미국의 총기 난사 사건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 이 사건 이후로 모방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정도로 영향이 컸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사건 발생 17년 후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가 쓴 책이다. 딜런 클리볼드가 태어나서 사건을 벌이기까지의 17년, 또 사건 발생 후 17년, 총 34년간의 일을 정리하고 있다. 사건의 발생 이유, 사건을 벌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가해자 가족들이 겪은 생각과 감정들이 솔직하게 정리되어 있다.

책은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이 아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폭력성과 마주한 인간이 그것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또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쓴 책이다.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차갑게 고발하는 여타의 책과 달리, 바탕에 부정할 수 없는 ‘사랑’을 깔고 있는 어머니가 써내려간 글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독특하고 설득력 있다.
 

저작권자 ⓒ뷰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