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결국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결혼인가보다. 나이가 되면 당연히 할 것이라고 여겼던 결혼이 요즘 세대들에게는 포기의 대상이자 선망이고, 무덤이 됐다.  바야흐로 김지영의 시대다. ‘페미니즘 도서’로 낙인찍혀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던 내내 갈등 요인이 됐던 ‘82년생 김지영’이 영화가 되어 다시 찾아 왔다. 읽어봤다면 그런 비하를 할 수 없을 만큼 책은 ‘사람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서점가에서는 ‘82년생 김지영’을 필두로 소설 판매율이 급증했다고 하고, 평단에서는 ‘82년생 김지영’이 시대의 페미니즘을 이야기 한다고 논한다. 하지만 이 책을 집어든 여성들, 적어도 1982년 이전에 태어난 여성들에게 이 책은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이다.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해 어떻게든 아들을 낳으려 둘째, 셋째, 넷째도 마다하지 않았던 시대. 남아 출산율이 높아 성비마저 무너졌던 1980년대에 태어나, 여학생들에게‘만’ 정숙과 단정을 강요했던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취업난이 막 시작됐던 2000년대에 사회에 발을 내딛어, 3포-4포-5포…말도 많은 2010년대에 결혼과 출산을 한 여성들의 현실이다.  그들은 여전한 남성우월주의와 여성비하가 만연한 시대에 직업을 가졌고, 결혼을 했고, 출산을 했다. 그 대가는 자아와 책임 사이에서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를 견뎌내야 하는 것으로 돌아왔다. 경제는 어려워져 남자 혼자서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이른바 ‘외벌이’로는 힘들다고 하면서도 이 사회는 능력 있는, 그래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을 피곤해 한다.  어디 가족 내에서라고 다를까. 아내와 남편, 모두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 ‘바깥양반’이면서도 집안일과 육아에 있어서는 유독 여성에게만 ‘안 사람’이기를 강요하는 사회다. 남성의 집안일과 육아는 ‘도움’이라 미화되고, 여성의 경제 활동은 ‘당연’시 되고 있는 게 지금의 우리 사회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분노했다면, 혹은 반박하고 싶다는 톨스토이가 쓴 ‘결혼’으로 이어가보길 추천한다.  ■ 남성의 시선으로 역설하는 ‘결혼’ 이 책 '결혼'은 아내를 살해한 남자의 결혼에 대한 역설을 통해 독자를 역발상하게 만esek. 그래서 결국 결혼이란, 아내란,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되새기게 한다. 사랑으로 결합된 결혼이어야만 한다는 중요가치를 역설(逆說)을 통해 역설((力說)하는 작품이다.  질투심에 불탄 한 인간의 이야기는 ‘사랑의 완성으로서의 결혼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묻는 러시아 대 문호의 작품이다. 사랑과 결혼, 배우자의 부정과 여성해방, 자녀문제 등을 진지하게 거론하면서 진정한 남녀평등의 길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또한 책은 ‘결혼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랑의 실체는 육체의 욕망이며 결혼은 그 욕망의 충족일 뿐이라고 믿는 남자. 그 결혼이 사랑의 실체이며 전부라고 믿는 여자. 서로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체, 진정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 결혼생활은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톨스토이의 자전적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치 톨스토이의 질문에 답을 던지는 듯한 책이 있다. 맨부커상 수상의 영예를 작가 한강에게 안겨준 소설 ‘채식주의자’다.      ■ 일종의 동업자 관계로서의 부부사이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를 읽다보면 내 여성에게 광폭한 세계를 혐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상 주인공이면서 끝까지 주변인인 듯 한 언니에게는, 작가조차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그저 영혜의 언니이고, 예술가의 아내였으며, 폭력적인 아버지의 딸이었다. 지우의 엄마였으며 화장품가게 경영자로...그녀는 끝까지 이름을 불리지 못했다.  성폭행이라 이름 할 수 없는 남편의 강제, 영혼이 빠져나간 듯 허깨비가 돼 가고 있는 동생, 그 동생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모든 것을 걸고 예술을 한다는 명목으로 처제와 자신의 몸에 그림을 그린 채 교합하는 영상 작업을 하는 남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너질 수 없게 하는 지우(5세, 아들)라는 책임감. 세상은 엄마에게, 언니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지독히도 폭력적이다. 가족이라는 계약관계 속에서, 희생을 강요당하고 때로는 그 영혼이 짓밟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범죄다, 폭력이다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가족이므로. “더 이상의 군말없이 통화는 끝났다. 아이를 통해 연결된, 군더더기 없는, 일종의 동업자의 관계” 간혹 이것이 부부일 수 있다는 사실을 냉혹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1년에 56권] 부부는 일종의 동업 관계인가?

톨스토이 '결혼' / 한강 '채식주의자'

박진희 기자 승인 2020.02.12 10:50 의견 0
(사진=픽사베이)

결국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결혼인가보다. 나이가 되면 당연히 할 것이라고 여겼던 결혼이 요즘 세대들에게는 포기의 대상이자 선망이고, 무덤이 됐다. 

바야흐로 김지영의 시대다. ‘페미니즘 도서’로 낙인찍혀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던 내내 갈등 요인이 됐던 ‘82년생 김지영’이 영화가 되어 다시 찾아 왔다. 읽어봤다면 그런 비하를 할 수 없을 만큼 책은 ‘사람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서점가에서는 ‘82년생 김지영’을 필두로 소설 판매율이 급증했다고 하고, 평단에서는 ‘82년생 김지영’이 시대의 페미니즘을 이야기 한다고 논한다. 하지만 이 책을 집어든 여성들, 적어도 1982년 이전에 태어난 여성들에게 이 책은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이다.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해 어떻게든 아들을 낳으려 둘째, 셋째, 넷째도 마다하지 않았던 시대. 남아 출산율이 높아 성비마저 무너졌던 1980년대에 태어나, 여학생들에게‘만’ 정숙과 단정을 강요했던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취업난이 막 시작됐던 2000년대에 사회에 발을 내딛어, 3포-4포-5포…말도 많은 2010년대에 결혼과 출산을 한 여성들의 현실이다. 

그들은 여전한 남성우월주의와 여성비하가 만연한 시대에 직업을 가졌고, 결혼을 했고, 출산을 했다. 그 대가는 자아와 책임 사이에서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를 견뎌내야 하는 것으로 돌아왔다. 경제는 어려워져 남자 혼자서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이른바 ‘외벌이’로는 힘들다고 하면서도 이 사회는 능력 있는, 그래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을 피곤해 한다. 

어디 가족 내에서라고 다를까. 아내와 남편, 모두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 ‘바깥양반’이면서도 집안일과 육아에 있어서는 유독 여성에게만 ‘안 사람’이기를 강요하는 사회다. 남성의 집안일과 육아는 ‘도움’이라 미화되고, 여성의 경제 활동은 ‘당연’시 되고 있는 게 지금의 우리 사회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분노했다면, 혹은 반박하고 싶다는 톨스토이가 쓴 ‘결혼’으로 이어가보길 추천한다. 

■ 남성의 시선으로 역설하는 ‘결혼’

이 책 '결혼'은 아내를 살해한 남자의 결혼에 대한 역설을 통해 독자를 역발상하게 만esek. 그래서 결국 결혼이란, 아내란,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되새기게 한다. 사랑으로 결합된 결혼이어야만 한다는 중요가치를 역설(逆說)을 통해 역설((力說)하는 작품이다. 

질투심에 불탄 한 인간의 이야기는 ‘사랑의 완성으로서의 결혼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묻는 러시아 대 문호의 작품이다. 사랑과 결혼, 배우자의 부정과 여성해방, 자녀문제 등을 진지하게 거론하면서 진정한 남녀평등의 길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또한 책은 ‘결혼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랑의 실체는 육체의 욕망이며 결혼은 그 욕망의 충족일 뿐이라고 믿는 남자. 그 결혼이 사랑의 실체이며 전부라고 믿는 여자. 서로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체, 진정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 결혼생활은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톨스토이의 자전적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치 톨스토이의 질문에 답을 던지는 듯한 책이 있다. 맨부커상 수상의 영예를 작가 한강에게 안겨준 소설 ‘채식주의자’다. 


 

 


■ 일종의 동업자 관계로서의 부부사이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를 읽다보면 내 여성에게 광폭한 세계를 혐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상 주인공이면서 끝까지 주변인인 듯 한 언니에게는, 작가조차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그저 영혜의 언니이고, 예술가의 아내였으며, 폭력적인 아버지의 딸이었다. 지우의 엄마였으며 화장품가게 경영자로...그녀는 끝까지 이름을 불리지 못했다. 

성폭행이라 이름 할 수 없는 남편의 강제, 영혼이 빠져나간 듯 허깨비가 돼 가고 있는 동생, 그 동생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모든 것을 걸고 예술을 한다는 명목으로 처제와 자신의 몸에 그림을 그린 채 교합하는 영상 작업을 하는 남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너질 수 없게 하는 지우(5세, 아들)라는 책임감. 세상은 엄마에게, 언니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지독히도 폭력적이다. 가족이라는 계약관계 속에서, 희생을 강요당하고 때로는 그 영혼이 짓밟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범죄다, 폭력이다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가족이므로.

“더 이상의 군말없이 통화는 끝났다. 아이를 통해 연결된, 군더더기 없는, 일종의 동업자의 관계” 간혹 이것이 부부일 수 있다는 사실을 냉혹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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