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산업과 SK케미칼은 가습기살균제 관련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사진=연합뉴스) 지난 2011년,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질환으로 곳곳에서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사망자들은 공통적으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당시 시장에선 가습기를 살균할 수 있는 제품이라며 가습기살균제가 판매됐다. 해당 제품은 가습기 안에서 기화 돼 피해자들의 폐로 흡입되면서 문제를 일으켰다. 옥시와 롯데마트·홈플러스 관계자들은 사건 발생 5년 만인 2016년 재판에 넘겨졌고 2018년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반면 애경산업과 SK케미칼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기막힌 상황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는 지난 12일 애경산업과 SK케미칼의 가습기살균제와 피해 사이에 엄격한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전 SK케미칼 홍지호 대표와 전 애경산업 안용찬 대표, 전 이마트 상품본부장 홍씨 등 13명은 죄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제품들의 성분이 다르기 때문에 옥시와 롯데마트·홈플러스는 유죄, SK케미칼·애경산업은 무죄라는 입장이다. 당시 시장에 유통되던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성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옥시레킷벤키저(옥시)와 롯데마트·홈플러스 등이 주로 제조·판매한 제품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성분으로 이뤄졌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주로 제조·판매한 제품은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이다. 옥시 등이 제조·판매했던 제품의 원료 물질 PHMG를 만든 건 SK케미칼이다. SK케미칼은 지난 2004년 태국의 한 화학제품 제조사에 해당 물질을 수출하며 응급조치 사항에 ‘흡입했을 때 고통스러운 자극이 느껴지고, 이 자극이 30분 이상 지속되면 의료진을 찾아가라’는 경고문구를 삽입했다. PHMG는 흡입 시 위험할 수 있음을 인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 물질로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만들었던 것이다. 재판부는 SK케미칼이 PHMG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독성수치를 숨기고 허위 기재하고 성분 사용을 은폐하기 위해 실험보고서 제목을 조작한 사실에 대해서도 무죄라고 판결했다. 애경산업과 SK케미칼이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성분 CMIT, MIT 또한 이들이 만든 물질이다. SK케미칼은 지난 1991년 해당 물질을 개발해 가습기 살균제, 구강 청결제, 화장품, 샴푸 등 여러 생활화학제품에 사용해왔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지난 1991년 이미 ‘산업용 살충제’로 등록하고 2등급 흡입독성물질로 정해놓은 상태였다. 국내는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일어나고서야 다음해인 2012년 유독 물질로 지정했다. 재판부는 이 CMIT와 MIT 성분이 동물 흡입독성시험에서 비강·후두 등 상기도 염증이 관찰되긴 했지만 해당 성분이 폐질환을 유발·악화시키거나 폐까지 도달한 사실을 입증한 시험은 없었다고 말했다. 동물실험 결과 폐질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니 사람에게서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은 “보건의료계와 독성학계의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사람에 대한 노출피해가 우선이고 동물실험은 보조적이며 2차적’이라고 말한다”고 호소했다. 이미 제품에 노출된 피해자가 있으니 피해는 분명한 상황에서, 어떤 기전으로 제품이 건강피해를 유발하는지 확인하는 보조수단에 불과한 동물실험 결과만 가지고 무죄 판결을 내린 재판부의 결정에는 무리가 있다. 재판부는 이미 사망하거나 산소통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 피해자들이 800명 넘게 보고됐는데도, 동물실험 결과만을 가지고 그들의 피해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인애의 뒷담화] 법원 “애경산업·SK케미칼 가습기살균제 무죄”…피해자 짐승만도 못 한 취급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800명 넘게 죽거나 아팠는데 ‘동물실험 결과’만 보고 외면한 재판부
원료물질 독성 숨기고 공급했던 SK케미칼 ‘자꾸 무죄’

이인애 기자 승인 2021.01.14 15:17 의견 0

애경산업과 SK케미칼은 가습기살균제 관련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사진=연합뉴스)


지난 2011년,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질환으로 곳곳에서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사망자들은 공통적으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당시 시장에선 가습기를 살균할 수 있는 제품이라며 가습기살균제가 판매됐다. 해당 제품은 가습기 안에서 기화 돼 피해자들의 폐로 흡입되면서 문제를 일으켰다.

옥시와 롯데마트·홈플러스 관계자들은 사건 발생 5년 만인 2016년 재판에 넘겨졌고 2018년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반면 애경산업과 SK케미칼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기막힌 상황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는 지난 12일 애경산업과 SK케미칼의 가습기살균제와 피해 사이에 엄격한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전 SK케미칼 홍지호 대표와 전 애경산업 안용찬 대표, 전 이마트 상품본부장 홍씨 등 13명은 죄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제품들의 성분이 다르기 때문에 옥시와 롯데마트·홈플러스는 유죄, SK케미칼·애경산업은 무죄라는 입장이다.

당시 시장에 유통되던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성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옥시레킷벤키저(옥시)와 롯데마트·홈플러스 등이 주로 제조·판매한 제품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성분으로 이뤄졌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주로 제조·판매한 제품은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이다.

옥시 등이 제조·판매했던 제품의 원료 물질 PHMG를 만든 건 SK케미칼이다. SK케미칼은 지난 2004년 태국의 한 화학제품 제조사에 해당 물질을 수출하며 응급조치 사항에 ‘흡입했을 때 고통스러운 자극이 느껴지고, 이 자극이 30분 이상 지속되면 의료진을 찾아가라’는 경고문구를 삽입했다. PHMG는 흡입 시 위험할 수 있음을 인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 물질로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만들었던 것이다.

재판부는 SK케미칼이 PHMG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독성수치를 숨기고 허위 기재하고 성분 사용을 은폐하기 위해 실험보고서 제목을 조작한 사실에 대해서도 무죄라고 판결했다.

애경산업과 SK케미칼이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성분 CMIT, MIT 또한 이들이 만든 물질이다. SK케미칼은 지난 1991년 해당 물질을 개발해 가습기 살균제, 구강 청결제, 화장품, 샴푸 등 여러 생활화학제품에 사용해왔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지난 1991년 이미 ‘산업용 살충제’로 등록하고 2등급 흡입독성물질로 정해놓은 상태였다. 국내는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일어나고서야 다음해인 2012년 유독 물질로 지정했다.

재판부는 이 CMIT와 MIT 성분이 동물 흡입독성시험에서 비강·후두 등 상기도 염증이 관찰되긴 했지만 해당 성분이 폐질환을 유발·악화시키거나 폐까지 도달한 사실을 입증한 시험은 없었다고 말했다. 동물실험 결과 폐질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니 사람에게서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은 “보건의료계와 독성학계의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사람에 대한 노출피해가 우선이고 동물실험은 보조적이며 2차적’이라고 말한다”고 호소했다. 이미 제품에 노출된 피해자가 있으니 피해는 분명한 상황에서, 어떤 기전으로 제품이 건강피해를 유발하는지 확인하는 보조수단에 불과한 동물실험 결과만 가지고 무죄 판결을 내린 재판부의 결정에는 무리가 있다.

재판부는 이미 사망하거나 산소통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 피해자들이 800명 넘게 보고됐는데도, 동물실험 결과만을 가지고 그들의 피해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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