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은 지난 24일 ‘신기업가정신협의회(ERT, Entrepreneurship Round Table)’를 출범시켰다. 최 회장은 미국의 대기업 협의체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과 같은 ‘한국판 BRT’라고 소개했다. 최 회장은 ERT가 기존의 이윤 추구에만 그치지 않고 ‘친환경 경영’, ‘기업문화 향상’, ‘지역사회와 상생’ 등 환경적·사회적 가치를 더한 ‘새로운 기업가정신’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행사에선 기존의 형식을 벗고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딱딱한 행사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 마치 제품을 출시하듯이 최 회장은 “‘언팩(Unpack)’행사”라며 “오늘의 신제품 ERT를 소개합니다”라고 말했다. 참석 인사들도 대기업 위주가 아닌 젊은 감각과 새로움으로 무장한 유니콘 기업들이 함께 했다. 행사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하범종 LG 사장, 이동우 롯데지주 부회장 등 대기업 임원진만 아니라 김봉진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의장,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대표, 김슬아 컬리(마켓컬리) 대표 등의 유니콘 기업 대표들도 참석했다. 최 회장은 “그간 사회공헌 활동을 가지고 기후변화, 공급망에 대한 재편, 사회양극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는 어렵다”면서 “기업들이 모여 혁신으로 풀어가자”며 취지를 설명했다. 기대가 커서였을까. 어쩐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최태원식 ERT는 더 흐릿하게 느껴졌다. 환경·사회적 가치 관련 일부 기업들의 몇몇 사례는 있었지만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없었다. 최 회장은 “무엇이든지 좋다. 실천하고 공유하자”며 아직 구체화된 게 없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한상의가 전문가, 국민, 기업들과 1년의 시간을 들여 많은 토의를 거쳐서 이 자리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순으로 자리를 배치한 것도 혁신적이지 않았다. 토스를 창시하고 수평적인 기업문화를 만든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맨 뒤에 앉아서 영상 카메라 기자들을 피해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행사를 보고 있었다. 차라리 진짜 라운드테이블에 둘러 앉아 격의 없이 그에게 기업문화의 혁신에 대해서 경청했으면 어땠을까. 최 회장이 ‘한국판 BRT’라고 칭한 부분도 꺼림칙했다. ‘미국 BRT’는 사회적 가치실현에 실패하고 기업 대변 단체로 변질됐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미 BRT는 지난 2019년 8월 미국 경제계가 구성해 소비자·근로자·협력사·지역사회·주주를 위한 가치 창출 등 5가지를 약속하면서 출범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BRT는 미국 내 거대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해 미 정부와 국제기구에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로 취지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지난 2020년엔 기업 이익을 위한 법안 통과를 위해 BRT 회원기업들이 로비 자금 1000억 달러를 마련했다는 말도 있다. 이뿐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기업 성과를 평가하는 TCP(The Test of Corporate Purpose)의 2020년 9월 보고서에 따르면, BRT 성명서에 서명한 기업들은 여기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들보다 일자리와 직원 안전을 보호하는 데 성과를 내지 못했다. BRT가 처음에 약속한 사회적 가치 실현보다 기업 이익만을 위한 일에 혈안이 된 모습을 보인 셈이다. 한국판 BRT라고 칭한 최 회장의 ERT는 다를까. 대기업 등 상장기업들은 2025년부터, 코스피 기업들은 2030년부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기업공시를 의무로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앞두고 기업들은 ERT를 통해 정부에 기업 위주의 필요사항을 강하게 요구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달 말 대한상의가 개최한 새 정부 인수위원회 초청 ESG 특별좌담회 토론장에선 ‘ESG 공시기준 정립 시 기업의견 반영’ 등 기업 위주의 건의가 나오기도 했다. 최태원표 ERT는 미 BRT처럼 앞에선 사회적 가치를 외치고 뒤에선 기업 이익만을 추구하는 단체로 변질되지 않았으면 한다. 환경·사회 가치가 곧 기업 이익 가치가 될 수 있도록 진정성 있는 ‘신기업가정신’이 깃들었길 바란다.

[손기호의 줌 인] 알맹이 없는 최태원의 ‘신기업가정신(ERT) 언팩’ 이벤트

‘사회적가치 추구’ 초심 버린 ‘미국 BRT’ 답습하지 말아야

손기호 기자 승인 2022.05.26 06:00 | 최종 수정 2022.05.27 11:49 의견 0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은 지난 24일 ‘신기업가정신협의회(ERT, Entrepreneurship Round Table)’를 출범시켰다. 최 회장은 미국의 대기업 협의체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과 같은 ‘한국판 BRT’라고 소개했다.

최 회장은 ERT가 기존의 이윤 추구에만 그치지 않고 ‘친환경 경영’, ‘기업문화 향상’, ‘지역사회와 상생’ 등 환경적·사회적 가치를 더한 ‘새로운 기업가정신’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행사에선 기존의 형식을 벗고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딱딱한 행사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 마치 제품을 출시하듯이 최 회장은 “‘언팩(Unpack)’행사”라며 “오늘의 신제품 ERT를 소개합니다”라고 말했다.

참석 인사들도 대기업 위주가 아닌 젊은 감각과 새로움으로 무장한 유니콘 기업들이 함께 했다. 행사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하범종 LG 사장, 이동우 롯데지주 부회장 등 대기업 임원진만 아니라 김봉진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의장,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대표, 김슬아 컬리(마켓컬리) 대표 등의 유니콘 기업 대표들도 참석했다.

최 회장은 “그간 사회공헌 활동을 가지고 기후변화, 공급망에 대한 재편, 사회양극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는 어렵다”면서 “기업들이 모여 혁신으로 풀어가자”며 취지를 설명했다.

기대가 커서였을까. 어쩐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최태원식 ERT는 더 흐릿하게 느껴졌다.

환경·사회적 가치 관련 일부 기업들의 몇몇 사례는 있었지만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없었다. 최 회장은 “무엇이든지 좋다. 실천하고 공유하자”며 아직 구체화된 게 없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한상의가 전문가, 국민, 기업들과 1년의 시간을 들여 많은 토의를 거쳐서 이 자리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순으로 자리를 배치한 것도 혁신적이지 않았다. 토스를 창시하고 수평적인 기업문화를 만든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맨 뒤에 앉아서 영상 카메라 기자들을 피해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행사를 보고 있었다. 차라리 진짜 라운드테이블에 둘러 앉아 격의 없이 그에게 기업문화의 혁신에 대해서 경청했으면 어땠을까.

최 회장이 ‘한국판 BRT’라고 칭한 부분도 꺼림칙했다. ‘미국 BRT’는 사회적 가치실현에 실패하고 기업 대변 단체로 변질됐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미 BRT는 지난 2019년 8월 미국 경제계가 구성해 소비자·근로자·협력사·지역사회·주주를 위한 가치 창출 등 5가지를 약속하면서 출범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BRT는 미국 내 거대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해 미 정부와 국제기구에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로 취지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지난 2020년엔 기업 이익을 위한 법안 통과를 위해 BRT 회원기업들이 로비 자금 1000억 달러를 마련했다는 말도 있다.

이뿐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기업 성과를 평가하는 TCP(The Test of Corporate Purpose)의 2020년 9월 보고서에 따르면, BRT 성명서에 서명한 기업들은 여기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들보다 일자리와 직원 안전을 보호하는 데 성과를 내지 못했다. BRT가 처음에 약속한 사회적 가치 실현보다 기업 이익만을 위한 일에 혈안이 된 모습을 보인 셈이다.

한국판 BRT라고 칭한 최 회장의 ERT는 다를까.

대기업 등 상장기업들은 2025년부터, 코스피 기업들은 2030년부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기업공시를 의무로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앞두고 기업들은 ERT를 통해 정부에 기업 위주의 필요사항을 강하게 요구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달 말 대한상의가 개최한 새 정부 인수위원회 초청 ESG 특별좌담회 토론장에선 ‘ESG 공시기준 정립 시 기업의견 반영’ 등 기업 위주의 건의가 나오기도 했다.

최태원표 ERT는 미 BRT처럼 앞에선 사회적 가치를 외치고 뒤에선 기업 이익만을 추구하는 단체로 변질되지 않았으면 한다. 환경·사회 가치가 곧 기업 이익 가치가 될 수 있도록 진정성 있는 ‘신기업가정신’이 깃들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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