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사이클을 이끌 혁신은 과연 어떤 산업에서 나오게 될까.
현재의 인플레이션 상황을 감안할때 차기 주도주 후보군은 제조업 위주로 출현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지금 겪는 인플레이션이 캐파와 공급망 부족이라는 물리적 한계에서 비롯됐기 때문인데, 이를 극복할 산업군으로는 반도체, 재생에너지, 첨단소재, 로봇, AI, 모빌리티, 우주산업 등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29일 신한금융투자는 '주도주의 탄생'을 주제로 한 글로벌전략 보고서를 통해 차기 주도주가 될 산업군을 추렸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이후 대반전을 어떻게 일궈냈는지, 혁신과 창조적 파괴로 생산성을 높인 기업들이 어떻게 장기간 주도주로 군림했는지 등을 통해 잠재적 주도주를 분석했다.
김성환 스트레터지스트(전략 전문가)는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전후 기업들의 변화 과정을 보면 차기 주도주를 살피는데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면서 "수십년 창조적 파괴를 이끌 기업들이 70년대말 스태그플레이션 와중에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생겨난 기업으로 테크산업을 주도한 마이크로소프트가 우선 꼽힌다. 개인용 PC의 급성장과 소프트웨어의 개발 가능성을 눈여겨봤던 창업자 빌 게이츠는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하고 Altair를 구동하는 프로그램(인터프리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경험을 토대로 마이크로소프트는 IBM PC에 운영체제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역사적인 딜을 따냈다. 1986년 상장한 마이크로소프트 주가는 닷컴버블이 정점에 다다른 2000년까지 470배 상승한다.
애플 역시 초기 PC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견인했다. 스티브 잡스는 1976년 Altair보다 더 나은 컴퓨터를 만들어보자며 워즈니악와 애플을 창업했다. 애플이 내놓은 애플II는 가격이나 기능 측면에서 공히 누구나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든, PC 시대를 일으킨 획기적인 제품이란 평가를 받았다. 애플II는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PC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했다. 다만 본격적인 주가 상승은 테크 버블 이후에 찾아왔다.
테크산업 외에도 혁신을 일궈낸 기업들이 줄줄이 출현했다. 물류 혁신을 주도한 페덱스, 대량조사법을 기반으로 블록버스터를 다수 출시한 화이자, 금융결제 분야의 혁신을 촉진시킨 비자, 전국구 프랜차이즈로 발전한 스타벅스 등이 대표적이다.
김성환 스트레터지스트는 "나스닥이 역사상 가장 큰 초과성과를 발생시킨 시기는 테크 버블이 아니라 스태그플레이션 후반부"라며 "기업가 정신과 창업, 혁신으로 무장한 신생 기업들은 NYSE의 엄격한 상장 조건을 피해 나스닥에 모여들었다"고 강조했다.
지금과 유사한 어려움에 처했던 당시 미국 기업들의 대반전은 무엇을 시사할까. 대반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다름아닌 생산성 충격과 이로 인한 긍정적 의미의 디스인플레이션이라고 보고서는 설명한다. 김 스트레터지스트는 "스태그플레이션 시기 출현한 혁신기업들은 생산성 저하의 문제를 해결했다"며 "결과적으로 이들은 장기간 주도주로 부상했고 구경제와의 선순환까지 나타나며 경제 전체를 부양할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이에 만약 역사가 반복된다면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게 해줄 기업들이 이후 펼쳐질 강세장에서 주도주가 될 것이란게 이 보고서의 주장이다.
어떤 산업이 혁신을 이끌고, 경제가 직면한 물리적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까. 보고서에 따르면 우선 IT 산업에서 속도와 사이즈라는 물리적 장벽을 극복할 열쇠는 결국 반도체에서 찾아야 한다. 화석 에너지 대체와 기후 변화 문제는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분야에서의 추가 혁신을 기대해 볼만하다고 했다. 첨단소재에서 나타날 수 있는 발전은 다양한 산업에 걸쳐 효율성을 끌어올릴 기틀이 된다고도 했다.
보고서는 이어 인력 부족과 기업 생산성 문제는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에서 단초가 마련되고 있으며, 복잡해진 도심, 운송 용량 한계와 관련한 문제는 모빌리티 산업이 열쇠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더 빠른 속도로 통신하고, 인류의 활동 공간을 지구 밖으로 확장시켜주는 기술 개발 활동은 우주산업에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보고서는 끝으로 "이들 산업은 다음 사이클의 주도주 후보군이 될 잠재력을 지녔지만 당장은 인플레이션의 역풍 속 대개 고전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들이 경제가 겪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한다면 가져갈 과실 또한 커질 것이다. 이들이 어떤 혁신을 통해 역풍을 극복할 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