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13일. 타키사와(Takisawa)공작기계(이하 타키사와, 도쿄증시 6121)가 지난 7월 13일 일본전산(Nidec, 도코증시 6594)이 제시한 공개매수(TOB, Takeover Bid) 제안을 수용했다. 이는 일본전산을 넘어 변화된 일본 기업문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나가모리 시게노부 일본전산 회장 (사진=아사히신문) 일본전산은 초소형 모터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국내에는 2009년 출간된 '일본전산 이야기'라는 책으로 많이 알려졌다. 일본전산은 1973년 창업 이후 지속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을 확대했다. 최근에는 전기차 부품과 공작기계 사업을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이 중 공작기계사업은 2021년 미쓰비시의 공작기계 사업 인수를 시작으로 OKK와 PAMA 같은 기업들을 지속적으로 인수하는 등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다만 전체 공작기계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선반기계 분야에는 진출하지 못해 이 부분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타키사와는 올해로 101년 역사를 가진 전통의 공작기계회사다. 주력제품인 CNC선반을 주로 일본 자동차 관련 회사들에 납품한다. 작년 매출은 280억엔(한화 2522억원)이고 올해 6월말 시가총액은 대략 80억엔(한화 720억원) 남짓이다. 이 회사는 오랜 역사에 비해 실적이 부진했다. 작년 영업이익 11억엔과 당기순이익 3억엔에 그쳤다. 최근 특별한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체 겨우 흑자만 유지한 정도이며, 그 결과 올해 6월말 기준 PBR은 0.45 내외에 불과했다. 일본전산은 타키사와 제품의 주요 고객들 중 하나여서 타키사와를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타키사와 주력 제품이 자사 공작기계 사업에서 부재한 선반 기계인 점은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일본전산은 2022년 초 타키사와에 자회사로 편입할 것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리고 일본전산은 2023년 7월 13일 타키사와 측 의사와 무관하게 공개매수를 선언했다. 타키사와가 이를 수용할지 여부를 알려달라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즉 일본전산이 타키사와에 대해서 적대적인 공개 인수합병(M&A)을 선언한 것이다. 기자회견하는 타키사와 경영진들 (사진=일간공업신문) 한국에서도 상장사를 대상으로 한 적대적 인수합병은 흔하지 않다. 보수적인 일본에서도 이런 사건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번 사건을 보도한 9월 13일자 로이터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서 적대적 인수는 단 2건이었다. 이처럼 일본 사회에서 특이한 사건으로 초기부터 많은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이번 공개매수를 주도한 일본전산은 세상의 시선에 당당했다. 일본전산 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은 공개매수를 표명한지 며칠 지나 연간 결산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일본전산이 과거 매수한 기업들은 모두 적자였지만 순식간에 흑자를 기록했다”며 “중국에 지지 않게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작은 섬나라에서 고만고만한 회사들이 가득 있어서는 일본을 지킬 수 없다”며 업계 재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일본전산은 이번 인수 제안이 진행 중인 지난 8월에도 중대형 프레스기 주변 장치를 다루는 미국 공작기계 회사 3곳을 인수했다. 타키사와가 공개매수를 수용한 이후에는 타키사와와 함께 유럽 선반 기계 인수를 검토한다고 전했다. 이런 인수합병을 통해 일본전산의 공작기계 사업 매출액을 2022년 1785억엔에서 2030년 1조엔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번 공개매수로 일본 공작기계산업 업계 재편도 빨라질 전망이다. 일본 공작기계 산업은 100여개의 업체들의 난립에 따른 지속적 출혈경쟁이 이어져, 대다수 기업들이 장기 성장을 위한 투자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을 다룬 일간공업신문사의 9월 14일 기사에 따르면 일본 공작기계 업체 대부분은 “경쟁력이 부족해 저성장 싸이클에 빠진 상황”이었다. 그레서 업계 재편은 반드시 일어날 수 것이라는 의견이 제법 제기되었다. 물론 과거에도 정부 주도의 업계 재편은 종종 있었지만, 이제는 이런 변화가 시장 경쟁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사실 이번 인수가 이뤄질 수 있었던 데에는 일본 정부의 변화가 주효했다. 일본 증권거래소는 2023년 3월 31일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PBR 1배 미만인 기업들에 대해 장기적 관점에서 자발적으로 기업가치를 올릴 개선책을 요청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23년 6월 발표한 '기업 인수에 있어서 행동지침(안)'에서 주식공개매수(TOB)는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일본전산이 이번 공개매수를 시도한 것도 이런 분위기에 따른 결과다. 9월 13일 이번 인수 제안을 받아들인 타키사와의 대표가 일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장) 거절해도 앞날이 없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상이다. 일본 정부와 사회는 일본 기업들을 무한 경쟁에 내몰고 있다. 그리고 그 기준이 일본식이 아닌 미국식 글로벌 스탠다드 즉 기업가치 극대화다. 그동안 우리는 일본의 갈라파고스화를 지적하면서 일본은 변하지 않고 퇴보하는 나라로 치부하곤 했다. 하지만 일본전산에서 보듯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기반한 일본 기업의 변화는 한국에서도 터부시될 정도로 파격적이다. 그런 기업들이 모인 현재 일본 증시가 2000년대 이후 역사상 신고가 영역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필자 서병수 애널리스트는 하나증권 등 국내외 투자회사에서 주식 운용과 기업 분석 업무를 수행했으며, 특히 미래에셋증권에서 글로벌 섹터 담당 애널리스트로 활동했습니다. [편집자주] 뷰어스는 칼럼리스트의 분석과 관련한 투자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서병수의 글로벌 View] 일본전산, 적대적 M&A...일본 기업문화 바뀌었다

서병수 애널리스트 승인 2023.09.26 16:04 의견 0

2023년 9월 13일. 타키사와(Takisawa)공작기계(이하 타키사와, 도쿄증시 6121)가 지난 7월 13일 일본전산(Nidec, 도코증시 6594)이 제시한 공개매수(TOB, Takeover Bid) 제안을 수용했다. 이는 일본전산을 넘어 변화된 일본 기업문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나가모리 시게노부 일본전산 회장 (사진=아사히신문)


일본전산은 초소형 모터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국내에는 2009년 출간된 '일본전산 이야기'라는 책으로 많이 알려졌다. 일본전산은 1973년 창업 이후 지속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을 확대했다. 최근에는 전기차 부품과 공작기계 사업을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이 중 공작기계사업은 2021년 미쓰비시의 공작기계 사업 인수를 시작으로 OKK와 PAMA 같은 기업들을 지속적으로 인수하는 등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다만 전체 공작기계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선반기계 분야에는 진출하지 못해 이 부분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타키사와는 올해로 101년 역사를 가진 전통의 공작기계회사다. 주력제품인 CNC선반을 주로 일본 자동차 관련 회사들에 납품한다. 작년 매출은 280억엔(한화 2522억원)이고 올해 6월말 시가총액은 대략 80억엔(한화 720억원) 남짓이다. 이 회사는 오랜 역사에 비해 실적이 부진했다. 작년 영업이익 11억엔과 당기순이익 3억엔에 그쳤다. 최근 특별한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체 겨우 흑자만 유지한 정도이며, 그 결과 올해 6월말 기준 PBR은 0.45 내외에 불과했다.

일본전산은 타키사와 제품의 주요 고객들 중 하나여서 타키사와를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타키사와 주력 제품이 자사 공작기계 사업에서 부재한 선반 기계인 점은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일본전산은 2022년 초 타키사와에 자회사로 편입할 것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리고 일본전산은 2023년 7월 13일 타키사와 측 의사와 무관하게 공개매수를 선언했다. 타키사와가 이를 수용할지 여부를 알려달라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즉 일본전산이 타키사와에 대해서 적대적인 공개 인수합병(M&A)을 선언한 것이다.

기자회견하는 타키사와 경영진들 (사진=일간공업신문)

한국에서도 상장사를 대상으로 한 적대적 인수합병은 흔하지 않다. 보수적인 일본에서도 이런 사건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번 사건을 보도한 9월 13일자 로이터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서 적대적 인수는 단 2건이었다. 이처럼 일본 사회에서 특이한 사건으로 초기부터 많은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이번 공개매수를 주도한 일본전산은 세상의 시선에 당당했다. 일본전산 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은 공개매수를 표명한지 며칠 지나 연간 결산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일본전산이 과거 매수한 기업들은 모두 적자였지만 순식간에 흑자를 기록했다”며 “중국에 지지 않게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작은 섬나라에서 고만고만한 회사들이 가득 있어서는 일본을 지킬 수 없다”며 업계 재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일본전산은 이번 인수 제안이 진행 중인 지난 8월에도 중대형 프레스기 주변 장치를 다루는 미국 공작기계 회사 3곳을 인수했다. 타키사와가 공개매수를 수용한 이후에는 타키사와와 함께 유럽 선반 기계 인수를 검토한다고 전했다. 이런 인수합병을 통해 일본전산의 공작기계 사업 매출액을 2022년 1785억엔에서 2030년 1조엔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번 공개매수로 일본 공작기계산업 업계 재편도 빨라질 전망이다. 일본 공작기계 산업은 100여개의 업체들의 난립에 따른 지속적 출혈경쟁이 이어져, 대다수 기업들이 장기 성장을 위한 투자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을 다룬 일간공업신문사의 9월 14일 기사에 따르면 일본 공작기계 업체 대부분은 “경쟁력이 부족해 저성장 싸이클에 빠진 상황”이었다. 그레서 업계 재편은 반드시 일어날 수 것이라는 의견이 제법 제기되었다. 물론 과거에도 정부 주도의 업계 재편은 종종 있었지만, 이제는 이런 변화가 시장 경쟁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사실 이번 인수가 이뤄질 수 있었던 데에는 일본 정부의 변화가 주효했다. 일본 증권거래소는 2023년 3월 31일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PBR 1배 미만인 기업들에 대해 장기적 관점에서 자발적으로 기업가치를 올릴 개선책을 요청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23년 6월 발표한 '기업 인수에 있어서 행동지침(안)'에서 주식공개매수(TOB)는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일본전산이 이번 공개매수를 시도한 것도 이런 분위기에 따른 결과다. 9월 13일 이번 인수 제안을 받아들인 타키사와의 대표가 일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장) 거절해도 앞날이 없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상이다.

일본 정부와 사회는 일본 기업들을 무한 경쟁에 내몰고 있다. 그리고 그 기준이 일본식이 아닌 미국식 글로벌 스탠다드 즉 기업가치 극대화다. 그동안 우리는 일본의 갈라파고스화를 지적하면서 일본은 변하지 않고 퇴보하는 나라로 치부하곤 했다. 하지만 일본전산에서 보듯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기반한 일본 기업의 변화는 한국에서도 터부시될 정도로 파격적이다. 그런 기업들이 모인 현재 일본 증시가 2000년대 이후 역사상 신고가 영역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필자 서병수 애널리스트는 하나증권 등 국내외 투자회사에서 주식 운용과 기업 분석 업무를 수행했으며, 특히 미래에셋증권에서 글로벌 섹터 담당 애널리스트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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