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딥테크 분야 초기기업들과 회의를 하던 중 생성형 AI 발전의 눈부신 속도가 스타트업들의 적응력을 얼마나 시험에 들게 하는지 여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한두 해 전 정부 지원 사업에 선정돼 우수한 성과를 달성한 기업의 아이템이 고도화된 거대언어모델(LLM)이나 멀티모달 AI를 활용해 거의 무료에 가까운 서비스로 제공될 수 있다 보니 상시적으로 피보팅(Pivoting, 사업방향 전환)을 고민한다는 것이다. 함께 할 동료들도 단지 기존 기술에 의존하는 개발자 차원이 아닌, AI를 자유자재로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더할 인재들이 필요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의 인재 공급 시스템은 이런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관련 학과나 대학원이 딥테크 분야 스타트업들과 긴밀히 협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의견을 들으며 바로 든 생각은 ‘최근 속속 설치되는 AI 관련 학과나 대학원의 커리큘럼 안에 인턴십을 연결해서 기업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하고 빠르게 적응토록 하는 것이 역량 강화와 기업의 인력난을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겠구나’였고, 더 나아간 생각은 ‘앞으로 기업들이 인재 양성에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 AI, 비즈니스 모델 잠식...스타트업 '상시 피봇'

현황을 살펴보니 역시나 많은 빅테크 기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인재를 발굴, 교육, 지원하고 있었다. IBM의 SkillsBuild는 AI, 사이버보안, 데이터 분석 분야에서 1000개 이상의 무료 온라인 과정을 제공하고 있으며, 아마존은 2025년까지 30만명 직원의 기술 향상에 12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Global Skills Initiative는 2020년에 2500만명의 학습자를 목표로 디지털 기술교육을 시작했는데 1년도 채 되지 않아 3000만명을 돌파했다. LinkedIn Learning, GitHub와 이니셔티브를 통합, 비영리단체에 2000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원하며 실직으로 타격을 입을 사람들에 대한 디지털 기술교육을 지원하고 이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구글로, 얼마 전(7월 15일) 피츠버그에서 열린 펜실베이니아 에너지 및 혁신 서밋에서 미 전역(50개 주)의 근로자와 중소기업에 AI 기본 기술을 교육하는 ‘AI Works for America’라는 프로젝트를 공식 출범시켰다. 이는 지역(주) 정부, 도서관, 공공기관 등과 협력해 필수 AI 기술교육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으로, 이전 경험이나 학위에 상관없이 배우고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모듈형으로 설계됐다. 이수한 이들에게는 전문 자격증을 수여하고 장학금이나 취업으로까지 연결시켰다.

전문가들은 구글의 이 프로젝트가 전통적인 학위를 우회해 인재의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인재들을 미래의 고객으로 확장하는 전략적 프로젝트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테크 기업들이 더 이상 대학에 의해 육성된 인재를 기다리지 않고 고등교육을 대체하는 신호로 분석하고 있다.

■ 기업들, 기다리지 않고 직접 인재양성 나서

이러한 변혁적 신호가 최근 청년들의 실업 및 취업난에 어떻게 영향을 줄지 관심이 커지지 않을 수 없다. 올해 6월 기준 우리나라의 청년 고용률은 46.2%로 역대 최저 수준이며, 청년 실업률(6.1%)은 전체 실업률(2.8~3.2%)에 비해 2~3배 높다. 이는 관세 파동을 비롯해 대외정세에 민감한 우리의 경제난이 심화된 영향도 있겠으나, 기술의 급변 속 노동시장의 구조적 불안정성까지 겹쳤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일자리 호황을 누려온 미국 역시도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는 연령대의 신입 직원 채용이 후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해 6월 구인 건수(818만4000건)는 2022년 3월(1185만5000건)에 비해 30.9%나 감소했다. 게다가 올해 빅테크 기업들은 앞다퉈 직원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22~27세 대학 졸업생의 실업률이 전국 평균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이는 신입직 일자리가 줄어들고, 대학 임금 프리미엄이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술, 금융, 미디어 등 기존 신규 채용이 왕성했던 여러 분야의 취업 경로가 약화되고, 전통적인 노동력이 광범위하게 붕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기술 확산 속도가 빠른 사회에서 인턴이나 직장 경력 1년 차 미만이 담당해 왔던 일정 관리, 자료 조사, 보고서 작성, 데이터 관리 등 ‘반복적’이고 ‘보편적’인 업무들이 이미 상당 부분 AI에 의해 대체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술 낙관론자들이 주장한 첨단 기술에 의해 새로이 창출되는 일자리는 기존 관행과 경로를 따르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아직 피부에 와닿지 않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 미국도 예외 없는 청년실업...AI가 몰고온 변화

십수 년 전에 심각하게 보았던 골딘과 카츠의 ‘교육과 기술의 경쟁(The Race Between Education and Technology)’ 책 제목이 떠올랐다. 교육이 기술의 발전 속도를 쫓아가지 못할 경우 커지는 사회적 고통과 소득 불평등의 상황을 기득권이 없는 청년들부터 맞닥뜨릴 수 있겠구나 싶었다. 결국 우리 청년들은 부모 세대가 걸어왔던 익숙한 길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을 끄고,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대안적 길을 찾는 학습을 하고, 실행력을 키우는 이단아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전 세계가 연결된 첨단 사회에서는 대안이 ‘어느새’ 트렌드가 되는 것은 순식간일 수도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최근 여러 국가들의 제도적 지원에 힘입어 금융과 투자 분야의 뜨거운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갑자기 스테이블코인의 효용성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디지털화폐가 제도권으로 들어와 안착하면 당장 그 기술이 갖는 한계들(확장성, 처리 속도, 규제 불확실성, 실질적 수요 부족 등)이 상당히 극복되고, 이의 활용도가 커지면서 교육과 일의 혁신도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대표적인 글로벌 비즈니스·채용 네트워킹 플랫폼인 링크드인(LinkedIn)은 전 세계 200개 국가에 진출, 10억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기업과 전문가들을 연결하고 있다(물론 사람인, 잡코리아, 원티드랩 등 우리에게도 많은 구인구직 사이트들이 있다. 다만, 연결된 세계 무대를 전제로 우리 일과 학습의 미래에 대해 논하기 좋은 사례로 주목했음을 양해하시라). 많은 가입자들은 링크드인이 보내는 메일과 플랫폼을 통해 수시로 글로벌 기업들의 정보를 제공받고 전문가들의 각종 사안에 대한 견해를 접한다. 아울러 자신의 학습이력(자격증)부터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한 경력사항을 수시로 업데이트 하면 링크드인은 이를 원할 듯한 기업에 상시 추천한다.

이곳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링크드인에서 디지털 자격 증명을 보유한 학생들의 경우에는 채용 담당자와의 접촉이 40% 증가했으며, 구직활동 시간이 25%(평균 6개월에서 4.5개월로) 단축되었고, 60% 더 많은 면접에 초대받았다고 한다. 앞서 소개한 빅테크 기업들이 제공하는 최신 실무역량 강좌들의 ‘마이크로 크리덴셜(소단위 학위과정)’ 자격 증명이 확산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 대학 졸업장만 믿다간 낭패...나만의 '디지털 배지' 찾아라

장황한 소개였으나, 핵심은 개인이 대학이든 기업이든 다양한 주체가 제공하는 매우 유용한 인증된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그 증명을 블록체인으로 연결해 전 세계에 어필하는 시대가 이미 왔다는 것이다. 다른 측면으로는 대학의 교육 투자수익률(ROI)을 빈번히 문제 삼는 시대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변혁적으로 내달리는 시대에 달랑 학위 하나가 마르지도 닳지도 않는 방패가 될 순 없다.

서두에 언급한 딥테크 스타트업 대표의 절실함 앞에 보이는 건 대학이 아니라 필요한 역량을 갖춘 인재다. 교육 당국이 압박하기도 전에 이미 글로벌 기업을 비롯한 전 세계의 구인 시장에서 ‘디지털 배지’(학업·직무·역량·외부활동 등의 기록이 일목요연하게 디지털로 증빙·관리되는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를 요구하고 있다. 고답적인 성적증명서와 학·석·박사 학위증밖에 줄 게 없다는 대학은 과연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다행히 우리의 청년들은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다. 대학의 마이크로 강좌들을 스타트업 프로젝트와 연결시켜 스타트업의 문제들을 강의실로 가져오고, 학위를 쪼개어(micro) 학생들의 실전 경험을 디지털 배지에 축적해 그들의 가치를 널리 공유해 보자. SNS의 ‘좋아요’와 ‘별풍선’이 수많은 인플루언서를 만들었듯, 현실의 문제를 해결한 성취와 창출한 가치를 인정하고 확산시키는 시스템을 적극 실현할 때다.


■ 법학박사로 국회, 청와대, 공공기관을 두루 거치며 교육, 과학기술, 창업 정책을 다뤘다. 교육정책에 매진했을 당시에는 하나의 정책에 얼마나 많은 이해와 갈등이 얽히고설킬 수 있는지 깊이 체득했다. 한국과학창의재단 재직 시절엔 ‘창의교육’과 ‘교육기부’에, 창업진흥원에서는 ‘창업’과 ‘혁신’에 꽂혀 정부정책과 현장 사이에서 동분서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