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월스트리트' 여의도 금융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 다시 한번 살펴야 할, 중요하나 우리가 놓친 이슈들을 '왜(why)'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쉽게 풀어본다. -편집자 주 처음 들었을 땐 '뭐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싶었습니다. 대형 시중은행 본점에서 직원 한 명이 빼돌린, 무려 600억원대 회삿돈을 10년이 지난 시점에 겨우 알아챘습니다. 우리은행은 자체 내부감사를 통해 알았다지만 자의적인 자체 감사라기보단 상황에 쫓긴 조사로 파악됩니다. 지난 10년간 11차례 금융감독원의 검사도 무용지물로 드러났습니다. 회계감사를 맡았던 안진, 삼일회계법인 역시 낌새조차 눈치채지 못했지요. 정부는 횡령한 직원에게 도리어 표창장까지 줬답니다. 영화 시나리오라 해도 '이게 말이 돼?' 할 정도의 상식밖의 상황이 현실이 됐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A차장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동안 세 차례에 걸쳐 614억원을 개인 계좌로 인출했습니다. 이 돈은 2011년 자산관리공사가 최대주주로 있던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이 불발되면서 이란 다야니 가문이 소유한 가전업체 엔텍합으로부터 몰취한 계약금(578억원)이라는데요. 이를 당시 주채권은행이자 매각주관사인 우리은행이 맡아뒀고 지금은 이자가 붙어 600억원대로 불었습니다. 이후 다야니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 소송(ISD)을 냈고 지난 2019년 우리 정부가 패소, 돈을 돌려줘야 할 상황에 놓입니다. 다만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국제송금을 할 수 없어 미뤄지다 다야니의 2차 소송끝에 올해 1월 우리 정부가 배상금 특별허가서를 발급하면서 덜미가 잡히게 된 사건입니다. 일단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우리은행뿐 아니라 금융당국, 회계법인, 정부의 전방위적 헛발질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입니다. 물론 중심에는 우리은행이 있습니다. 자금을 보관, 인출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절차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일간 단위는 아니더라도 월단위, 연단위 정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지요. 업무 특성상 장기근속이 이어지는 인력과 부서에 대한 관리도 부실했습니다. 물론 우리은행만의 얘기는 아닐 겁니다. 이번 횡령 사고직후 금융당국이 시중은행들에게 모든 법인계좌를 꼼꼼히 확인하도록 지시한 것도 이런 우려에서일 겁니다. 불행 중 다행일까요. 고객 피해가 전방위적이지 않고 이란 기업에 되돌려주기만 하면 되는 돈이니 복잡하게 꼬인 사건은 아닙니다. 물론 돈의 주인이 이란이다보니 국제적 망신살은 뻗쳤습니다. 한국 은행들의 글로벌 신뢰 추락도 감수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가야할 한 가지 지점이 있는데요. 이번 사건은 고객 돈을 횡령했다던가, 여수신 등 은행 고유의 통상적 범위의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지금까지 은행 전체의 리스크관리 시스템의 결함으로 보지 않았던 분야, 범죄 사각지대에서 일어난 사고입니다. 내부통제 시스템을 못 만든게 아니라 감시망을 조여두지 않아 생긴 사건일 수 있습니다. 범죄 예방 등을 이유로 우리는 대개 CCTV를 설치하는데요. 나름의 규정과 기준이 있습니다. 예컨대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도로나 골목에 CCTV를 설치하냐 마냐를 두고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비용과 효율성의 이슈입니다. 즉 이번 사건이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에 CCTV를 설치하지 않았다가 갑자기 벌어진 살인사건이라고 하면 과한 비유일까요. 사실 은행 등 금융회사의 경우 데일리 정산관리는 잘 이뤄지는 편입니다. 반면 투자부문, 특히 해외관련 투자나 운용에 대한 관리는 상대적으로 소홀했습니다. 여수신같이 일상적인 업무가 아니다보니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여기고 그들에게 온전히 맡기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십수년을 기업구조조정 업무만 해온 전문가들. 주로 정상적인 기업이 아닌 채권단으로 넘어간 부실기업을 관리하고, 이를 정상화하거나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것이 그들의 주요 업무입니다. 부실기업 관리나 채권 정리가 단기에 끝나지도 않고 여러 건이 동시다발적이다보니 부서 로테이션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직원 개개인에 대한 믿음, 책임감에 기댄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 같은 계좌, 특수한 업무에 사용되는 것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감시의 필요성도 절감했을 겁니다. 각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시스템에 대한 강도높은 재점검과 대책마련도 당연한 수순이겠지요. 사족을 달자면 이러한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자에 대한 경계도 필요한 시점입니다. 최근 윤석렬 정부의 인수위와 국회서도 이번 사태가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는데요. 관련법안을 만들어 규제하자는 정치인도 속속 등장합니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23년만에 완전 민영화에 어렵게 성공한 우리은행이 다시 관치의 늪으로 빠지게 되는 건 아닐 지 걱정입니다. 새 정부는 이참에 금융회사 군기를 확실히 잡으려 할테고 나름의 명분도 생겼습니다. 현 시점을 우리은행을 포함한 금융회사에 대한 낙하산 인사의 기회로 이용하려는 이들도 스멀스멀 생겨날 것입니다.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대책마련도 시급한 일이지만 이를 이용한 '무자격자의 무임승차' 역시 우리가 주의깊게 살펴야 할 사안입니다.

[홍승훈의 Y] 우리은행 횡령 뒤에서 웃는 자들

홍승훈 기자 승인 2022.05.03 11:00 | 최종 수정 2022.05.03 11:09 의견 0

'한국의 월스트리트' 여의도 금융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 다시 한번 살펴야 할, 중요하나 우리가 놓친 이슈들을 '왜(why)'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쉽게 풀어본다. -편집자 주


처음 들었을 땐 '뭐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싶었습니다. 대형 시중은행 본점에서 직원 한 명이 빼돌린, 무려 600억원대 회삿돈을 10년이 지난 시점에 겨우 알아챘습니다. 우리은행은 자체 내부감사를 통해 알았다지만 자의적인 자체 감사라기보단 상황에 쫓긴 조사로 파악됩니다. 지난 10년간 11차례 금융감독원의 검사도 무용지물로 드러났습니다. 회계감사를 맡았던 안진, 삼일회계법인 역시 낌새조차 눈치채지 못했지요. 정부는 횡령한 직원에게 도리어 표창장까지 줬답니다. 영화 시나리오라 해도 '이게 말이 돼?' 할 정도의 상식밖의 상황이 현실이 됐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A차장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동안 세 차례에 걸쳐 614억원을 개인 계좌로 인출했습니다. 이 돈은 2011년 자산관리공사가 최대주주로 있던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이 불발되면서 이란 다야니 가문이 소유한 가전업체 엔텍합으로부터 몰취한 계약금(578억원)이라는데요. 이를 당시 주채권은행이자 매각주관사인 우리은행이 맡아뒀고 지금은 이자가 붙어 600억원대로 불었습니다.

이후 다야니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 소송(ISD)을 냈고 지난 2019년 우리 정부가 패소, 돈을 돌려줘야 할 상황에 놓입니다. 다만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국제송금을 할 수 없어 미뤄지다 다야니의 2차 소송끝에 올해 1월 우리 정부가 배상금 특별허가서를 발급하면서 덜미가 잡히게 된 사건입니다.

일단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우리은행뿐 아니라 금융당국, 회계법인, 정부의 전방위적 헛발질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입니다. 물론 중심에는 우리은행이 있습니다. 자금을 보관, 인출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절차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일간 단위는 아니더라도 월단위, 연단위 정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지요. 업무 특성상 장기근속이 이어지는 인력과 부서에 대한 관리도 부실했습니다. 물론 우리은행만의 얘기는 아닐 겁니다. 이번 횡령 사고직후 금융당국이 시중은행들에게 모든 법인계좌를 꼼꼼히 확인하도록 지시한 것도 이런 우려에서일 겁니다.

불행 중 다행일까요. 고객 피해가 전방위적이지 않고 이란 기업에 되돌려주기만 하면 되는 돈이니 복잡하게 꼬인 사건은 아닙니다. 물론 돈의 주인이 이란이다보니 국제적 망신살은 뻗쳤습니다. 한국 은행들의 글로벌 신뢰 추락도 감수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가야할 한 가지 지점이 있는데요. 이번 사건은 고객 돈을 횡령했다던가, 여수신 등 은행 고유의 통상적 범위의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지금까지 은행 전체의 리스크관리 시스템의 결함으로 보지 않았던 분야, 범죄 사각지대에서 일어난 사고입니다. 내부통제 시스템을 못 만든게 아니라 감시망을 조여두지 않아 생긴 사건일 수 있습니다.

범죄 예방 등을 이유로 우리는 대개 CCTV를 설치하는데요. 나름의 규정과 기준이 있습니다. 예컨대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도로나 골목에 CCTV를 설치하냐 마냐를 두고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비용과 효율성의 이슈입니다. 즉 이번 사건이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에 CCTV를 설치하지 않았다가 갑자기 벌어진 살인사건이라고 하면 과한 비유일까요.

사실 은행 등 금융회사의 경우 데일리 정산관리는 잘 이뤄지는 편입니다. 반면 투자부문, 특히 해외관련 투자나 운용에 대한 관리는 상대적으로 소홀했습니다. 여수신같이 일상적인 업무가 아니다보니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여기고 그들에게 온전히 맡기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십수년을 기업구조조정 업무만 해온 전문가들. 주로 정상적인 기업이 아닌 채권단으로 넘어간 부실기업을 관리하고, 이를 정상화하거나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것이 그들의 주요 업무입니다. 부실기업 관리나 채권 정리가 단기에 끝나지도 않고 여러 건이 동시다발적이다보니 부서 로테이션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직원 개개인에 대한 믿음, 책임감에 기댄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 같은 계좌, 특수한 업무에 사용되는 것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감시의 필요성도 절감했을 겁니다. 각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시스템에 대한 강도높은 재점검과 대책마련도 당연한 수순이겠지요.


사족을 달자면 이러한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자에 대한 경계도 필요한 시점입니다. 최근 윤석렬 정부의 인수위와 국회서도 이번 사태가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는데요. 관련법안을 만들어 규제하자는 정치인도 속속 등장합니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23년만에 완전 민영화에 어렵게 성공한 우리은행이 다시 관치의 늪으로 빠지게 되는 건 아닐 지 걱정입니다.

새 정부는 이참에 금융회사 군기를 확실히 잡으려 할테고 나름의 명분도 생겼습니다. 현 시점을 우리은행을 포함한 금융회사에 대한 낙하산 인사의 기회로 이용하려는 이들도 스멀스멀 생겨날 것입니다.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대책마련도 시급한 일이지만 이를 이용한 '무자격자의 무임승차' 역시 우리가 주의깊게 살펴야 할 사안입니다.

저작권자 ⓒ뷰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