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레고랜드 발(發) 금융 경색으로 유동성 압박을 받던 건설사의 숨통이 트였다. 건설사들은 자금 시장에 온기가 돌면서 한시름을 던 눈치지만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미분양 리스크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다. 신사업과 해외 사업 확대 등이 업계 돌파구로 떠올랐으나 여력을 갖춘 대형 건설사와 중견 건설사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2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미분양 주택은 지난해 12월 기준 6만8107가구로 집계됐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달까지 발생한 미계약분을 따진다면 전체 미분양은 7만 가구를 이미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미분양 가구는 10만호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건설사들은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이후 자금줄이 마르자 유동성 위기 해소에 총력을 기울였고 올해는 미분양 리스크에 따른 실적 방어전에 나서는 모양새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끝나지 않은 금융경색, 현실화되는 미분양 리스크'라는 보고서를 통해 '건설산업 리스크 요인과 주요 이슈' 점검 내용을 공개했다.
한신평은 건설사들이 유동성 경색에서 벗어나는 등 자금 시장 환경이 양호해지고 있으나 분양실적 부진 우려를 드러냈다. 자금 시장 환경 관련해서는 롯데건설과 태영건설이 계열사와 금융권 협업 등을 통해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유동성 위기는 벗어났다.
또 지난해 건설사 실적 악화 요소로 꼽힌 원자잿값 상승분 반영은 올해부터 건자재 가격 상승 둔화로 수익성 개선 효과는 일정 부분 나타날 것이라고 봤다. 대신 공정진행에 따른 투입원가 부담 지속으로 건설사 이익을 잠식할 수 있는 요소로도 꼽혔다.
다만 분양실적 부진에 따른 영향은 본격화될 전망이다. 지난달 4개 현장에서 1342세대가 분양에 나섰으나 전국 기준 1, 2 순위 청약 경쟁률은 0.35:1에 그쳤다. 전체 분양 현장 4곳의 1순위 청약이 모두 미달돼 미청약 물량 756세대 발생했다. 10대 건설사 모두가 단 한군데도 분양에 나서지 않는 등 시장을 관망하고 있다. 부동산 침체기를 상징하는 단면이라는 평가다.
전지훈 한신평 기업평가본부 연구위원은 "분양경기 침체가 본격화되면서 분양실적부진 및 사업성 저하에 기인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보증 현실화가 주요위험요인으로 부각될 전망"이라며 "미착공 사업장 관련 우발채무 부담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분양가 할인·신사업 확대…중견 건설사는 '쉽지 않네'
미분양 리스크에 따른 PF 보증이 뇌관으로 떠오른 가운데 건설사들은 분양가 할인 카드도 고심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34%의 분양가를 할인할 여력이 있는 만큼 국내 증권사들의 PF 투자금 회수도 무리가 없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다만 건설업계에서는 분양가 할인율의 적정선을 놓고는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A대형건설사 관계자는 "30% 이상 할인은 다소 비정상적인 수치"라며 "시공사도 시공사이지만 시행사 측에서도 그 정도의 할인 분양에 동의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며 과거 할인 분양 당시에도 기존에 분양을 받은 이들과 할인 분양으로 입주한 이들 사이에 갈등도 만만치 않다"고 강조했다.
할인 분양은 가능하지만 대형건설사와 중견건설사에 기본 체력이 다른 만큼 일부 사업장에서는 PF 보증에 따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B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시행사와 협의가 필요하겠으나 최근 사업 체결 과정에서 시공사의 신용보강 등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인 만큼 30% 할인이 필요하다면 체력적 여유가 있는 대형건설사는 할 수 있다"며 "다만 사업 규모가 적건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는 중견 건설사나 중소 건설사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전지훈 연구위원도 "PF우발채무 리스크가 부각된 일부 건설사와 자금조달 수단이 제한적인 중견 이하 건설사, 부동산 경기가 저조한 지역에 소재한 사업장일수록 조달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중견 건설사들은 상대적으로 미흡한 원가 전가능력, 최근 수주를 확대한 물류센터나 비주거시설 등의 높은 원가율로 저조한 실적을 나타낼 것으로 보이며 소폭의 영업적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신사업 확대가 부동산 침체 대응 방안으로 떠올랐으나 대형건설사와 중소·중견건설사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GS건설은 수처리 기업인 GS이니마, DL이앤씨는 친환경탈탄소 사업을 영위하는 카본코 등을 통해 친환경 인프라 EPC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도 그린 솔루션 사업부를 신설하고 현대건설은 전력중개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이외에도 자원순환사업으로 2차 전지 사업 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강경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핵심 비즈니스가 부진할 것이란 시장의 우려가 많아 동시에 공백을 메워줄 새로운 사업에도 주목하고 있다"며 "규모와 빠르기에 차이가 있으나 전통 영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방향성은 건설사 모두 동일하다"고 말했다.
반면 주택사업체 치중된 포트폴리오를 갖춘 중견건설사는 신사업 확대를 위한 여력이 부족해 위기 대응이 쉽지 않다는 내부 목소리가 나온다.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금융이자 부담도 커지고 분양 실적에 따른 압박도 크다"며 "해외 시장 개척과 신사업 등이 업계 돌파구로 떠오르고 있으나 여력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