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SVB)이 망한 이유로 뱅크런을 꼽고, 우리도 그 대책으로 예금자보호한도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적절할까요? 문제는 없을까요? 지난 얘기에서 답하지 못한 질문입니다. 오늘은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우선 SVB 사태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SVB는 많은 돈을 국채를 포함한 채권으로 운용했답니다. 운 나쁘게 금리가 치솟자, 평가손은 눈덩이처럼 커졌고, 와중에 경기 악화로 사정이 어려워진 법인 고객들이 맡겨둔 돈을 찾기 시작합니다. 현금이 부족해진 은행은 채권을 팔 수밖에 없었고, 엄청난 손실이 현실화됐지요. 이 소식에 불안해진 고객들이 출금을 시작합니다. 뱅크런이 벌어집니다. 단 하루 만에 우리 돈 기준 56조원이 빠져나갔고, 이틀이 못 되어 은행은 문을 닫았습니다. 팩트체크가 필요하지만, 은행으로 달려갈 필요도 없는 ‘모바일 뱅크런’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뱅크런이 은행을 망하게 한 근본 원인은 아니었지만,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은 확실히 보여줬습니다. 뱅크런을 막기 위한 대책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예금자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올리는 것이 대책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보다 훨씬 높은 25만 달러가 보호한도인 미국도 뱅크런을 막지 못했습니다. 법인 때문이란 지적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거액을 예금한 법인들에게 25만 달러의 보호는 무의미했다는 거지요. 이런 이유로 므누신 전 재무장관은 보호한도를 2500만 달러로 100배 올리자고 주장합니다. 우리 돈으로 약 330억원입니다. 법인이 복병인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5000만원 이상의 예금을 보유한 은행 고객은 2%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보유한 예금은 전체의 약 64%를 차지합니다. 많은 부분 법인으로 추정됩니다. 불안감에 거액의 법인자금이 이탈하기 시작하면 은행은 속수무책일 가능성이 큽니다. 뱅크런 방지책이 오늘의 주제는 아니니, 두 가지만 지적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첫째, 예금자보호한도를 올려서 뱅크런을 막겠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입니다. 둘째, 뱅크런을 일으키는 예금자의 불안감은 금융권과 정부에 대한 신뢰, 믿음이 없다면 해결할 수 없습니다. 뱅크런에 대한 대책 외에도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을 주장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주요국의 보호한도가 우리 돈 기준 1억원이 넘는 데 비해 우리는 2001년 이후 5000만원으로 동결돼 화폐가치의 변화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너무 적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다른 나라의 한도가 높으니 우리도 올리자는 주장은 비논리적이고, 설득력도 떨어집니다. 화폐가치의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은 언뜻 그럴듯하지만, 가치관의 문제를 배제하고 산술적으로 접근하기에는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성인 자녀에 대한 비과세 증여 한도는 5000만원으로 9년간 동결입니다. 종합과세 대상인 금융소득은 2000만원 초과분이지요. 이 금액도 10년간 변동이 없습니다. 화폐가치의 변화를 감안해서 올려야 합니까.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의 모습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먼저 아닐까요. 어쨌거나 우리의 보호 한도가 너무 적은 건 아닌지 따져볼 필요는 있습니다. 언급했듯 은행 고객의 98%가 예금자보호대상이고, 새마을금고, 신협의 경우는 99%를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보호한도가 적어서 문제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현상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여유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폐가치가 떨어졌다지만 실수입도 줄고 있는 현실에서 서민이 5000만원이 넘는 예금이 있기가 쉽지 않습니다. 둘째, 예금자들이 보호한도를 의식해 돈을 나눠 거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금자보호한도는 은행별, 금융협동조합별로 계산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국내은행만 19개, 저축은행 79개에 2000여 개의 새마을금고와 신협이 있습니다. 5000만원씩 나누면 1000억원 정도는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을 예금자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요. 별 필요성도 없는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에는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비용입니다. 설명했듯 예금자보호의 핵심은 기금입니다. 보호한도를 올리면, 당연히 은행의 보험료, 금고의 출연금도 올려야 하는데, 이 비용은 누가 부담할까요. 예금금리를 내리든, 대출금리를 올리든 어떤 형태로든 예금자 부담이 될 게 확실합니다. 결국 극소수의 부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치를 위해 모든 사람이 비용을 분담하는 모양새가 됩니다.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은 서민들에게 부담이 될 뿐입니다. 비용의 문제를 지적하자 인상론자들의 묘한 반론이 등장합니다. 보호한도는 올리되, 보험료율은 현행대로 유지하면 추가 부담은 없다는 겁니다. 눈 가리고 아웅 하자는 겁니다. 기금의 확충 없이 보호한도만 올렸다가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 세금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궁금합니다. 명분도, 실익도 없는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을 누가, 왜 주장하는 걸까요? 관계자들의 입장을 살펴봐야겠습니다. 당사자인 금융권은 업권별은 물론, 같은 업권내에서도 각각의 이해관계가 다양하고 불확실합니다. 결국 의견은 제각각이고, 목소리도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금융권과 달리, 정치권에서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은 ‘의견일치’입니다. 의아한 일입니다. 보수의 시각에서 예금자보호제도는 ‘자유시장’과 거리가 있습니다. 폐지, 최소한 한도 축소를 주장하는 게 보수답습니다. 정치권의 이런 분위기는 정부의 입장과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정부는 구체적인 일정까지 제시하며 적극적입니다. 오는 8월까지 보호한도를 포함한 예금자보호제도 전반에 걸친 개선책을 내놓겠답니다. 왜 이렇게 적극적일까요. 답을 구하지 못해 생각이 길어지던 중에 언뜻 생각나는 얘기가 있습니다. ‘땅 짚고 헤엄치기’식 금리 장사로 떼돈을 번 은행이 ‘돈 잔치’로 국민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자 대통령까지 나섰습니다. 은행을 공공재로 규정하고, 방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현실적으로 뾰족한 방법이 없을 거라는 얘기, 기억하시지요? 정부는 은행의 ‘공공성’ 제고를 위해 경쟁체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이를 위해 진입장벽을 낮추기로 한 것 같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시간이 너무 걸리는 일입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당장 체감할 수 있는 직접적인 조치라는 것을 정부가 모를 리는 없습니다. 성과급 지급기준, 채용 규모와 기부를 포함한 사회공헌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는데, 정부가 참견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이 갖는 장점이 정부를 적극적으로 만든 것 아닐까요? 어떤 장점일까요? 보호한도 인상은 은행이 독주하고 있는 판세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은행은 한도 인상에 반대하고 있지요. 저축은행이 최대 수혜자가 될 거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변화의 정도를 점치기는 어렵지만, 은행에 ‘경고’가 될 수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정부가 생각하는 금융시장의 경쟁체제 도입은 새로 시장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가능해집니다. 보호한도 인상은 이런 측면에서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즉, 보호한도 인상이 정부가 그리는 큰 그림의 포석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 보호한도 인상은 그럴듯한(?) 명분 때문에 반대론이 약합니다. 정치권의 ‘의견일치’가 이를 잘 보여주지요. 비용의 문제만 ‘예금자에게 전가하지 않겠다’는 말다짐으로 넘어가면, 예금자보호 확대와 금융시장안정에 기여하는 ‘훌륭한 정책’으로 포장할 수 있습니다.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은 ‘은행 바로잡기’를 위한 정부의 궁여지책이 아닌가 합니다. ‘바로잡기’라는 말이 생소하지만, 은행의 ‘공공성 제고’, ‘예대금리 축소’와 일맥상통합니다. 지탄받는 은행의 행태는 금융소비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바로잡아야만 합니다. 문제는 당연히 그 논의와 관련 정책의 결정 과정에서 중심에 있어야 할 금융소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금자보호한도 인상과 관련된 논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걸 정부에 맡겨두면 되는 걸까요? 오늘 얘기도 의문부호를 남기고 마무리합니다. ■ 작가 한동희는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ROTC 23기로 군복무를 마친 후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했다. 중앙개발과 삼성증권에서 인사, 법인영업을 거쳐 지점장으로 10년간 근무했다. 30여년 삼성맨을 마무리한 그는 퇴직한 후에도 여전히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 네이버 블로그 '까칠한 이야기'를 통해 돈, 금융 그리고 세상에 대한 '썰'을 재밌게 풀어내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 글은 뷰어스에서 우선적으로 게재하며, 추후 작가의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다.

[한동희의 까칠한이야기] 예금자보호한도 5000만원으로 부족한가요?

한동희 승인 2023.06.01 10:44 의견 0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망한 이유로 뱅크런을 꼽고, 우리도 그 대책으로 예금자보호한도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적절할까요? 문제는 없을까요? 지난 얘기에서 답하지 못한 질문입니다. 오늘은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우선 SVB 사태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SVB는 많은 돈을 국채를 포함한 채권으로 운용했답니다. 운 나쁘게 금리가 치솟자, 평가손은 눈덩이처럼 커졌고, 와중에 경기 악화로 사정이 어려워진 법인 고객들이 맡겨둔 돈을 찾기 시작합니다. 현금이 부족해진 은행은 채권을 팔 수밖에 없었고, 엄청난 손실이 현실화됐지요.

이 소식에 불안해진 고객들이 출금을 시작합니다. 뱅크런이 벌어집니다. 단 하루 만에 우리 돈 기준 56조원이 빠져나갔고, 이틀이 못 되어 은행은 문을 닫았습니다. 팩트체크가 필요하지만, 은행으로 달려갈 필요도 없는 ‘모바일 뱅크런’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뱅크런이 은행을 망하게 한 근본 원인은 아니었지만,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은 확실히 보여줬습니다. 뱅크런을 막기 위한 대책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예금자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올리는 것이 대책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보다 훨씬 높은 25만 달러가 보호한도인 미국도 뱅크런을 막지 못했습니다. 법인 때문이란 지적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거액을 예금한 법인들에게 25만 달러의 보호는 무의미했다는 거지요. 이런 이유로 므누신 전 재무장관은 보호한도를 2500만 달러로 100배 올리자고 주장합니다. 우리 돈으로 약 330억원입니다.

법인이 복병인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5000만원 이상의 예금을 보유한 은행 고객은 2%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보유한 예금은 전체의 약 64%를 차지합니다. 많은 부분 법인으로 추정됩니다. 불안감에 거액의 법인자금이 이탈하기 시작하면 은행은 속수무책일 가능성이 큽니다.

뱅크런 방지책이 오늘의 주제는 아니니, 두 가지만 지적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첫째, 예금자보호한도를 올려서 뱅크런을 막겠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입니다. 둘째, 뱅크런을 일으키는 예금자의 불안감은 금융권과 정부에 대한 신뢰, 믿음이 없다면 해결할 수 없습니다.

뱅크런에 대한 대책 외에도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을 주장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주요국의 보호한도가 우리 돈 기준 1억원이 넘는 데 비해 우리는 2001년 이후 5000만원으로 동결돼 화폐가치의 변화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너무 적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다른 나라의 한도가 높으니 우리도 올리자는 주장은 비논리적이고, 설득력도 떨어집니다. 화폐가치의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은 언뜻 그럴듯하지만, 가치관의 문제를 배제하고 산술적으로 접근하기에는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성인 자녀에 대한 비과세 증여 한도는 5000만원으로 9년간 동결입니다. 종합과세 대상인 금융소득은 2000만원 초과분이지요. 이 금액도 10년간 변동이 없습니다. 화폐가치의 변화를 감안해서 올려야 합니까.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의 모습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먼저 아닐까요.

어쨌거나 우리의 보호 한도가 너무 적은 건 아닌지 따져볼 필요는 있습니다. 언급했듯 은행 고객의 98%가 예금자보호대상이고, 새마을금고, 신협의 경우는 99%를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보호한도가 적어서 문제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현상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여유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폐가치가 떨어졌다지만 실수입도 줄고 있는 현실에서 서민이 5000만원이 넘는 예금이 있기가 쉽지 않습니다. 둘째, 예금자들이 보호한도를 의식해 돈을 나눠 거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금자보호한도는 은행별, 금융협동조합별로 계산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국내은행만 19개, 저축은행 79개에 2000여 개의 새마을금고와 신협이 있습니다. 5000만원씩 나누면 1000억원 정도는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을 예금자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요.

별 필요성도 없는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에는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비용입니다. 설명했듯 예금자보호의 핵심은 기금입니다. 보호한도를 올리면, 당연히 은행의 보험료, 금고의 출연금도 올려야 하는데, 이 비용은 누가 부담할까요.

예금금리를 내리든, 대출금리를 올리든 어떤 형태로든 예금자 부담이 될 게 확실합니다. 결국 극소수의 부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치를 위해 모든 사람이 비용을 분담하는 모양새가 됩니다.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은 서민들에게 부담이 될 뿐입니다.

비용의 문제를 지적하자 인상론자들의 묘한 반론이 등장합니다. 보호한도는 올리되, 보험료율은 현행대로 유지하면 추가 부담은 없다는 겁니다. 눈 가리고 아웅 하자는 겁니다. 기금의 확충 없이 보호한도만 올렸다가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 세금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궁금합니다. 명분도, 실익도 없는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을 누가, 왜 주장하는 걸까요? 관계자들의 입장을 살펴봐야겠습니다. 당사자인 금융권은 업권별은 물론, 같은 업권내에서도 각각의 이해관계가 다양하고 불확실합니다. 결국 의견은 제각각이고, 목소리도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금융권과 달리, 정치권에서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은 ‘의견일치’입니다. 의아한 일입니다. 보수의 시각에서 예금자보호제도는 ‘자유시장’과 거리가 있습니다. 폐지, 최소한 한도 축소를 주장하는 게 보수답습니다. 정치권의 이런 분위기는 정부의 입장과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정부는 구체적인 일정까지 제시하며 적극적입니다. 오는 8월까지 보호한도를 포함한 예금자보호제도 전반에 걸친 개선책을 내놓겠답니다. 왜 이렇게 적극적일까요. 답을 구하지 못해 생각이 길어지던 중에 언뜻 생각나는 얘기가 있습니다.

‘땅 짚고 헤엄치기’식 금리 장사로 떼돈을 번 은행이 ‘돈 잔치’로 국민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자 대통령까지 나섰습니다. 은행을 공공재로 규정하고, 방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현실적으로 뾰족한 방법이 없을 거라는 얘기, 기억하시지요?

정부는 은행의 ‘공공성’ 제고를 위해 경쟁체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이를 위해 진입장벽을 낮추기로 한 것 같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시간이 너무 걸리는 일입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당장 체감할 수 있는 직접적인 조치라는 것을 정부가 모를 리는 없습니다.

성과급 지급기준, 채용 규모와 기부를 포함한 사회공헌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는데, 정부가 참견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이 갖는 장점이 정부를 적극적으로 만든 것 아닐까요? 어떤 장점일까요?

보호한도 인상은 은행이 독주하고 있는 판세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은행은 한도 인상에 반대하고 있지요. 저축은행이 최대 수혜자가 될 거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변화의 정도를 점치기는 어렵지만, 은행에 ‘경고’가 될 수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정부가 생각하는 금융시장의 경쟁체제 도입은 새로 시장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가능해집니다. 보호한도 인상은 이런 측면에서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즉, 보호한도 인상이 정부가 그리는 큰 그림의 포석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 보호한도 인상은 그럴듯한(?) 명분 때문에 반대론이 약합니다. 정치권의 ‘의견일치’가 이를 잘 보여주지요. 비용의 문제만 ‘예금자에게 전가하지 않겠다’는 말다짐으로 넘어가면, 예금자보호 확대와 금융시장안정에 기여하는 ‘훌륭한 정책’으로 포장할 수 있습니다.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은 ‘은행 바로잡기’를 위한 정부의 궁여지책이 아닌가 합니다. ‘바로잡기’라는 말이 생소하지만, 은행의 ‘공공성 제고’, ‘예대금리 축소’와 일맥상통합니다. 지탄받는 은행의 행태는 금융소비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바로잡아야만 합니다.

문제는 당연히 그 논의와 관련 정책의 결정 과정에서 중심에 있어야 할 금융소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금자보호한도 인상과 관련된 논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걸 정부에 맡겨두면 되는 걸까요? 오늘 얘기도 의문부호를 남기고 마무리합니다.

■ 작가 한동희는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ROTC 23기로 군복무를 마친 후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했다. 중앙개발과 삼성증권에서 인사, 법인영업을 거쳐 지점장으로 10년간 근무했다. 30여년 삼성맨을 마무리한 그는 퇴직한 후에도 여전히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 네이버 블로그 '까칠한 이야기'를 통해 돈, 금융 그리고 세상에 대한 '썰'을 재밌게 풀어내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 글은 뷰어스에서 우선적으로 게재하며, 추후 작가의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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