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성산동의 한 기사식당 성북동 연탄 돼지불백, 연남동 불백 정식, 송림동 불백 볶음밥. 세 곳은 방송에도 소개되었고, 그 이전부터 이미 많은 이들에게 ‘값싸고 맛있는 집’ 으로 알려져 왔다.  우선 성북동 돼지불백은 양념이 달큰하게 배인 돼지 살을 연탄위에서 석쇠에 정성껏 구워 생마늘 몇 쪽과 시원한 콩나물국을 함께 맛볼 수 있다. 접시위에 놓인 고기를 보면 “양이 너무 적은데” 라며 젓가락질을 시작하지만 식사를 마치고 나면 ‘딱 든든한 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즈넉한 성북동 일대에도 고급주택들 사이로 속칭 문화의 아이콘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잡았다. 버스 종점의 한적함을 느끼던 예전의 성북동이 아니다. 비둘기도 시끄러운지 오히려 산 아래로 내려갔다.  북악 스카이웨이 옆길을 넘어 삼청동 길을 지나 서울의 서쪽 홍대쪽으로 향한다. 연남동은 2000년 중반까지도 동네주민들의 산책 이외에는 도보로 이동하는 이를 찾기 힘든 한적한 동네였다. 지금은 주차하기도 어려운 도심 한가운데의 모습을 갖고 있다.  예능 프로에 나와서 유명해져 버린 연남동 돼지불백집, 성북동 보다 탄내가 좀 더 깊게 스며있는 역시 간장 양념의 돼지구이집이다. 쌈을 싸먹기 위해 손을 닦고 찬과 곁들이는 고기쌈 한입이다. ‘한상차림’이라 부르는 과한 찬의 나열은 아니지만 고기와 밥 그리고 아삭한 쌈이 어우러지니 혼자 받는 밥상의 품격과 위로가 올라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일행들과 온 사람들은 반주를 곁들이며 한입가득 포만이 느껴지는 식사를 하고 있다.  반주 이후 햇살이 좋으니까 ’연트럴 파크‘라는 옛 중앙선 길을 따라 가을볕을 만나러 갈듯하다. 청춘이 부러운 것은 볕을 만나는 시간도 오롯이 자기의지다. 누군가 그리 말했다. ’낙엽이 싫어지고 눈이 내리는 길이 두려워지면 생물학적 나이와 상관없이 청춘은 사그라진 것 이라고‘   서울 동쪽이다. 복개된 땅위로 달리는 지하철 2호선은 서울을 그리는 것처럼 둥그렇게 돌고 있다. 지금은 백화점과 고층 아파트가 있는 지하철 역 뒤쪽 자양동.  아직은 한적해 보이는 예전 주택가 옆에 주차타워가 인상적인 식당이 있다. 식당에 들어서면 손가락으로 ‘한명 또는 두명’을 수신호로 전하면 손님이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불백 한상이 준비되어 허기를 반긴다. 이곳의 불백은 자작한 국물이 있는 양념고기를 두꺼운 철판에 올려 볶아서 먹는 식이다. 화력 좋기로 알려진 기사식당 특유의 가스버너. 주황색 레버를 만지는 것도 이곳에서는 손님의 공력이다. 그냥 불백을 볶아서 먹어도 좋지만 이곳에서는 손님들이 만들어낸 볶음밥이 있다. 우선 고기 양념이 졸아 들기 전에 반찬으로 나온 채소들을 가위로 마구 자른다. 고기는 아직 익지 않았으니 나중에 자르도록 하자. 마늘도 좋다. 운이 나쁘면 미처 익지 않은 마늘을 씹어 혓바닥 옆쪽이 아려오겠지만 돼지고기 볶음에 마늘은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는 궁합이다. 김치도 넣는다. 고추장도 담뿍 떠서 집어넣고 재료를 볶다가 고기양념이 졸아 들고 본격적으로 철판 볶음밥의 형상을 띄기 시작하면 밥을 넣고 소싯적 닭갈비집 아르바이트를 해봤다는 농담을 증명하듯이 철판과 뜨거운 싸움을 시작한다. 이것이 같은 한 끼를 지루하지 않게 먹겠다는 기사식당 손님들이 만들어낸 ‘볶음밥’ 이다. 레시피를 몰라도 상관없다.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앉은 다른 테이블의 손놀림을 따라하면 실패할리 만무하다. 이때 일행이 있다면 ‘셀프’로 떠다 먹는 선짓국을 가져오는 수고를 해도 좋다. 공짜로 제공되는 선짓국 중에 가장 상급의 맛을 낼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내려와 계산을 할 때 주인 할머니가 주시는 ‘요구르트 한 병’ 은 딱히 거절하지 말자. 노동자의 식당에서 노동자를 위로하는 작은 선물이다.  기사식당은 오후 네 시 경에 사람이 많다. 운전을 한다는 것이 그렇다. 제 시간에 움직이는 사람들을 태우고 움직이니 정작 기사는 식사시간을 뒤로 미루어야 한다. 법인 택시라면 교대 시간 전후가 될 터이니, 일을 마치는 오전 근무자는 식사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후 근무자라면 어둠을 만나기 전 오후 볕에 시선을 달구면서 첫 식사를 한다. 기사식당에는 기사들을 위해 마실 물을 준비해 놓기도 하고 길에서 만날 사람들과 수다라도 나눌 때 이야기 재료로 쓰라고 신문도 준비해 놓는다.  기사식당 메뉴판은 다른 식당에서 최소 2인 이상이 주문해야 할 전골 류나 조림 류도 1인분을 내어준다. 솜씨 좋은 찬을 만들어주는 기사식당은 기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금세 붐비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사들은 운전을 해온 시간동안 사랑방처럼 익숙해진 곳에서 하루 중에 가장 긴 식사시간을 보낸다. 무뚝뚝해진 손님들과 나눌 이야기도 별로 없으니 이곳에서 미리 하루의 말거리를 소진하고 나간다.  기사식당에 대한 오해 중 ‘기사식당 음식은 조미료를 너무 많이 넣는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오해다. 음식솜씨가 시원치 않거나 뜨내기를 많이 상대하는 곳은 설령 그렇게 준비할 수 있어도 기사들이 많이 찾는 곳은 가급적 ‘집밥’에 가깝게 준비하려 한다. 거꾸로 기사들이 말하는 속설이 있다 ‘조미료가 많은 곳의 음식을 먹게 되면 쉬이 졸려서 운전에 방해가 된다’. 조미료와 졸음의 상관관계 보다는 개인의 건강상태와 당분이 주는 포만감이 더 사실에 가깝겠지만 속설과 속설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국이다. 차라리 이렇게 생각을 하자. 하루에 가장 밥다운 밥을 먹는 시간이다. 서로 정성을 다해 주고 있다고 말이다.  성북동, 연남동, 자양동. 서울에서 번잡한곳 바로 뒤에 있던 동네들이다. 번잡한 곳으로 사람을 태워 나르는 기사들은 그곳 바로 뒤에서 한 끼를 채우며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도시를 달린다는 것은 낭만이 거세된 철저한 노동이다. 노동자를 위로하는 한상. 요즘 기사식당에는 노동자와 노동자가 되려는 사람, 그리고 이제는 노동에서 배제되었지만 그 밥상이 그리워서 오는 사람. 그리고 혼자 오는 이들에게 여유 있는 밥상을 나누는 식당주인이 있다. 가격도 노동자들에게 어울리니 여전히 기사식당은 커피자판기처럼 유효하다. 위로가 된다.

[윤종훈의 히스토요리] ‘노동의 밥상’이 있는 곳, 기사식당

윤종훈 작가 승인 2019.11.08 10:38 의견 0
사진=성산동의 한 기사식당


성북동 연탄 돼지불백, 연남동 불백 정식, 송림동 불백 볶음밥. 세 곳은 방송에도 소개되었고, 그 이전부터 이미 많은 이들에게 ‘값싸고 맛있는 집’ 으로 알려져 왔다. 

우선 성북동 돼지불백은 양념이 달큰하게 배인 돼지 살을 연탄위에서 석쇠에 정성껏 구워 생마늘 몇 쪽과 시원한 콩나물국을 함께 맛볼 수 있다. 접시위에 놓인 고기를 보면 “양이 너무 적은데” 라며 젓가락질을 시작하지만 식사를 마치고 나면 ‘딱 든든한 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즈넉한 성북동 일대에도 고급주택들 사이로 속칭 문화의 아이콘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잡았다. 버스 종점의 한적함을 느끼던 예전의 성북동이 아니다. 비둘기도 시끄러운지 오히려 산 아래로 내려갔다. 

북악 스카이웨이 옆길을 넘어 삼청동 길을 지나 서울의 서쪽 홍대쪽으로 향한다. 연남동은 2000년 중반까지도 동네주민들의 산책 이외에는 도보로 이동하는 이를 찾기 힘든 한적한 동네였다. 지금은 주차하기도 어려운 도심 한가운데의 모습을 갖고 있다. 

예능 프로에 나와서 유명해져 버린 연남동 돼지불백집, 성북동 보다 탄내가 좀 더 깊게 스며있는 역시 간장 양념의 돼지구이집이다. 쌈을 싸먹기 위해 손을 닦고 찬과 곁들이는 고기쌈 한입이다. ‘한상차림’이라 부르는 과한 찬의 나열은 아니지만 고기와 밥 그리고 아삭한 쌈이 어우러지니 혼자 받는 밥상의 품격과 위로가 올라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일행들과 온 사람들은 반주를 곁들이며 한입가득 포만이 느껴지는 식사를 하고 있다. 

반주 이후 햇살이 좋으니까 ’연트럴 파크‘라는 옛 중앙선 길을 따라 가을볕을 만나러 갈듯하다. 청춘이 부러운 것은 볕을 만나는 시간도 오롯이 자기의지다. 누군가 그리 말했다. ’낙엽이 싫어지고 눈이 내리는 길이 두려워지면 생물학적 나이와 상관없이 청춘은 사그라진 것 이라고‘  
서울 동쪽이다. 복개된 땅위로 달리는 지하철 2호선은 서울을 그리는 것처럼 둥그렇게 돌고 있다. 지금은 백화점과 고층 아파트가 있는 지하철 역 뒤쪽 자양동. 

아직은 한적해 보이는 예전 주택가 옆에 주차타워가 인상적인 식당이 있다. 식당에 들어서면 손가락으로 ‘한명 또는 두명’을 수신호로 전하면 손님이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불백 한상이 준비되어 허기를 반긴다. 이곳의 불백은 자작한 국물이 있는 양념고기를 두꺼운 철판에 올려 볶아서 먹는 식이다. 화력 좋기로 알려진 기사식당 특유의 가스버너. 주황색 레버를 만지는 것도 이곳에서는 손님의 공력이다. 그냥 불백을 볶아서 먹어도 좋지만 이곳에서는 손님들이 만들어낸 볶음밥이 있다.

우선 고기 양념이 졸아 들기 전에 반찬으로 나온 채소들을 가위로 마구 자른다. 고기는 아직 익지 않았으니 나중에 자르도록 하자. 마늘도 좋다. 운이 나쁘면 미처 익지 않은 마늘을 씹어 혓바닥 옆쪽이 아려오겠지만 돼지고기 볶음에 마늘은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는 궁합이다. 김치도 넣는다. 고추장도 담뿍 떠서 집어넣고 재료를 볶다가 고기양념이 졸아 들고 본격적으로 철판 볶음밥의 형상을 띄기 시작하면 밥을 넣고 소싯적 닭갈비집 아르바이트를 해봤다는 농담을 증명하듯이 철판과 뜨거운 싸움을 시작한다. 이것이 같은 한 끼를 지루하지 않게 먹겠다는 기사식당 손님들이 만들어낸 ‘볶음밥’ 이다. 레시피를 몰라도 상관없다.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앉은 다른 테이블의 손놀림을 따라하면 실패할리 만무하다. 이때 일행이 있다면 ‘셀프’로 떠다 먹는 선짓국을 가져오는 수고를 해도 좋다. 공짜로 제공되는 선짓국 중에 가장 상급의 맛을 낼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내려와 계산을 할 때 주인 할머니가 주시는 ‘요구르트 한 병’ 은 딱히 거절하지 말자. 노동자의 식당에서 노동자를 위로하는 작은 선물이다. 

기사식당은 오후 네 시 경에 사람이 많다. 운전을 한다는 것이 그렇다. 제 시간에 움직이는 사람들을 태우고 움직이니 정작 기사는 식사시간을 뒤로 미루어야 한다. 법인 택시라면 교대 시간 전후가 될 터이니, 일을 마치는 오전 근무자는 식사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후 근무자라면 어둠을 만나기 전 오후 볕에 시선을 달구면서 첫 식사를 한다. 기사식당에는 기사들을 위해 마실 물을 준비해 놓기도 하고 길에서 만날 사람들과 수다라도 나눌 때 이야기 재료로 쓰라고 신문도 준비해 놓는다. 

기사식당 메뉴판은 다른 식당에서 최소 2인 이상이 주문해야 할 전골 류나 조림 류도 1인분을 내어준다. 솜씨 좋은 찬을 만들어주는 기사식당은 기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금세 붐비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사들은 운전을 해온 시간동안 사랑방처럼 익숙해진 곳에서 하루 중에 가장 긴 식사시간을 보낸다. 무뚝뚝해진 손님들과 나눌 이야기도 별로 없으니 이곳에서 미리 하루의 말거리를 소진하고 나간다. 

기사식당에 대한 오해 중 ‘기사식당 음식은 조미료를 너무 많이 넣는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오해다. 음식솜씨가 시원치 않거나 뜨내기를 많이 상대하는 곳은 설령 그렇게 준비할 수 있어도 기사들이 많이 찾는 곳은 가급적 ‘집밥’에 가깝게 준비하려 한다. 거꾸로 기사들이 말하는 속설이 있다 ‘조미료가 많은 곳의 음식을 먹게 되면 쉬이 졸려서 운전에 방해가 된다’. 조미료와 졸음의 상관관계 보다는 개인의 건강상태와 당분이 주는 포만감이 더 사실에 가깝겠지만 속설과 속설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국이다. 차라리 이렇게 생각을 하자. 하루에 가장 밥다운 밥을 먹는 시간이다. 서로 정성을 다해 주고 있다고 말이다. 

성북동, 연남동, 자양동. 서울에서 번잡한곳 바로 뒤에 있던 동네들이다. 번잡한 곳으로 사람을 태워 나르는 기사들은 그곳 바로 뒤에서 한 끼를 채우며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도시를 달린다는 것은 낭만이 거세된 철저한 노동이다. 노동자를 위로하는 한상. 요즘 기사식당에는 노동자와 노동자가 되려는 사람, 그리고 이제는 노동에서 배제되었지만 그 밥상이 그리워서 오는 사람. 그리고 혼자 오는 이들에게 여유 있는 밥상을 나누는 식당주인이 있다. 가격도 노동자들에게 어울리니 여전히 기사식당은 커피자판기처럼 유효하다.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