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맛있는 집들이 많아졌다. 아니, 원래 많았는데 유행처럼 많은 이들이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에서의 음식은 사실 역사적 배경으로 진중하고 길게 유지되어 오는 것이 아니라 유행에 따라 들불처럼 일어났다가 쌀겨 다 태운 자리처럼 사그라지지 않는가. ‘만두’라고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면 검색 결과 중 가장 정답률이 높다고 나오는 결과다. “제갈공명이 강의 풍랑을 위로하기 위해 ...어쩌고 저쩌고....이하. ‘한식진흥원’” ”정확한 유래는 알수 없으나 우리에게는 고려 즈음에 들어와서 쌍화점이 어쩌고 저쩌고...이하 ‘한국학진흥연구원’“ 그리고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 책 ‘음식디미방’ 음식이 만들어진 유래나 창시자가 확실할 경우 이 경우에 가장 근접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당대의 유명한 요리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음식을 상표등록해서 한신포차 닭발처럼 대박을 쳤거나. 저 서사 자체가 지어낸 이야기 일 가능성. 물론 삼국지에 나온 구절은 맞는 말일 것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그 나라들은 실존한 나라들이다. 물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삼국지연의’다. 호메로스의 오딧세이는 서사를 기록했지만 역사적인 사실을 증빙하는 자료는 아니다. 물론 맹획을 만나는 거친 서사에 만두가 개입되니 맹획의 도주와 정복을 탐닉하는 제갈량의 행동이 풍성한 이야기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전사에 기록된 자료에 살을 붙이니 단지 ‘포슬포슬한 만두가 위로의 음식’이 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제갈량이라는 인물이 만두까지 개발했다면 그 역시 가혹한 상상이다. 제갈량은 삼국의 역사에서 이미 약자이며 전략가이며 반전의 이야기가 충분하다. 음식 개발은 백종원 씨에게 맡겨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럼 어떤 서사가 가장 가능성이 높은가. 우선 만두의 기본 형태를 보자. 딤섬, 파오즈, 물만두, 귀만두, 걸레만두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공통점은 “곡식으로 만든 피 또는 반죽에 소를 넣어서 찌거나 삶거나 구워서 먹는 것” 정도가 되겠다. 그렇다면 거꾸로 생각을 해본다. 당시 실크로드가 활성화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무역 길은 있었고 밀가루 같은 것이 서역으로부터 전해지거나 비슷한 음식들이 촉의 제갈공명에게도 전달이 되었고 일상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유행이 되고 있었다는 추측 말이다. 위에 인용한 한식진흥원은 단호하게 정의한다. “만두는 중국이 그 시초이며 이것이 일본과 한국에 전해져서 3국의 전통음식으로 발전되었다” 라고 말이다. 이탈리아 파스타 종류 중 “라비올리” 라는 것도 있는데. 위에서 상상하고 있는 제갈량 만두 창작설에 따르면 제갈량의 군대가 서역으로 진군하여 이탈리아 까지 가야 할 것이 아닌가. 아니면 최소한 제갈량 또는 동양으로부터 왔다는 문양정도는 남아있어야 제갈량 만두 창작설을 뒷받침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 더 보자 터키의 ‘만티’ 몽골의 ‘보쯔’ 같은 음식들. 발생연도나 장소는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지만 (이게 정상이다.) 만두의 큰 범주에 든다. 제갈량이 강가에서 만두를 만들어 남만의 억울한 죽음을 기리려고 했다는 이야기는 ‘삼국지연의’ 안에서만 유효하게 하자. 만두는 당시 비슷한  곡식재배가 가능한 지역에서  비슷한 조리방법을 바탕으로 발전한 음식이다. 어떤 서사가 정답인지는 만두를 들고 있는 사람의 몫이겠다. 물론 모든 음식이 역사적으로 성골이 가져야 하는 출생지를 가질 필요는 없다.    음식의 역사는 지리적인 특성과 인문학적인 관계에서 비롯된다. 역사가 없으면 없다고 하면 되지 왜 자꾸 ‘음식디미방’과 ‘시의전서’만 괴롭히는가. 요즘 많이 먹는 라면들. 그 중에 하나, 예능 방송에서 나와서 한국야쿠르트에게 힘을 실어주었던 경우. 이경규가 만든 꼬꼬면. 예능을 진지하게 보는 분들께 물어보고 싶다. 한 회사의 생산라인이 예능에서 순식간에 만든 아이템에 맞춰서 아주 짧은 시간에 출시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이야기가 필요한 기업과 공신력을 추가해서 리얼 예능의 요소를 강화하고 싶어 하던 예능인과의 콜라보가 아닐까? 라는 상상을 해본다.  음식은 인과가 가장 가열 차게 결합되어 있다. 선농단에서 설렁탕 나오는 것처럼 그냥 허술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음식을 전공하지 않은 필부의 입장에서 책과 여타의 자료를 찾아 호기심을 해결하려 할 때 큰 벽을 만난다. 위서에 가까운 음식서적을 돌려막기처럼 활용하는 학자들. ‘음식디미방’과 ‘시의전서’만 인용하면 단군신화처럼 허례의 역사를 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글쓰는 이들. 음식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기 바란다. 음식은 위로를 위해 만들어졌다. 권위를 원하는 음식은 없을 것이다. 맛있는 집보다는 저렴하면서도 위로를 받는 만두집들이 있다. 어머니를 모시고 갔던 만둣국 집, 직장 선배가 아침에 실적 없다고 깨진 신입후배를 데리고 먼 길 까지 가서 사준 분식집 만두, 운동선수로 살았지만 부상으로 제2의 삶을 살던 친구가 넘어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기 위해 홍콩까지 가서 주방에서 일하면서 배워온 만두. 우리의 역사가 담겨있는 만두집 몇 곳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 한다. 수원 보영만두, 인천 원보, 연남동 이품만두, 자하손만두, 신사동 딩딤1968

[윤종훈의 히스토요리] 제갈량의 위로, 만두

윤종훈 작가 승인 2019.11.28 11:26 의견 1
 


만두 맛있는 집들이 많아졌다. 아니, 원래 많았는데 유행처럼 많은 이들이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에서의 음식은 사실 역사적 배경으로 진중하고 길게 유지되어 오는 것이 아니라 유행에 따라 들불처럼 일어났다가 쌀겨 다 태운 자리처럼 사그라지지 않는가.

‘만두’라고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면 검색 결과 중 가장 정답률이 높다고 나오는 결과다.

“제갈공명이 강의 풍랑을 위로하기 위해 ...어쩌고 저쩌고....이하. ‘한식진흥원’” ”정확한 유래는 알수 없으나 우리에게는 고려 즈음에 들어와서 쌍화점이 어쩌고 저쩌고...이하 ‘한국학진흥연구원’“ 그리고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 책 ‘음식디미방’

음식이 만들어진 유래나 창시자가 확실할 경우 이 경우에 가장 근접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당대의 유명한 요리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음식을 상표등록해서 한신포차 닭발처럼 대박을 쳤거나. 저 서사 자체가 지어낸 이야기 일 가능성.

물론 삼국지에 나온 구절은 맞는 말일 것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그 나라들은 실존한 나라들이다. 물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삼국지연의’다. 호메로스의 오딧세이는 서사를 기록했지만 역사적인 사실을 증빙하는 자료는 아니다. 물론 맹획을 만나는 거친 서사에 만두가 개입되니 맹획의 도주와 정복을 탐닉하는 제갈량의 행동이 풍성한 이야기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전사에 기록된 자료에 살을 붙이니 단지 ‘포슬포슬한 만두가 위로의 음식’이 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제갈량이라는 인물이 만두까지 개발했다면 그 역시 가혹한 상상이다. 제갈량은 삼국의 역사에서 이미 약자이며 전략가이며 반전의 이야기가 충분하다. 음식 개발은 백종원 씨에게 맡겨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럼 어떤 서사가 가장 가능성이 높은가. 우선 만두의 기본 형태를 보자. 딤섬, 파오즈, 물만두, 귀만두, 걸레만두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공통점은 “곡식으로 만든 피 또는 반죽에 소를 넣어서 찌거나 삶거나 구워서 먹는 것” 정도가 되겠다. 그렇다면 거꾸로 생각을 해본다.

당시 실크로드가 활성화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무역 길은 있었고 밀가루 같은 것이 서역으로부터 전해지거나 비슷한 음식들이 촉의 제갈공명에게도 전달이 되었고 일상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유행이 되고 있었다는 추측 말이다. 위에 인용한 한식진흥원은 단호하게 정의한다. “만두는 중국이 그 시초이며 이것이 일본과 한국에 전해져서 3국의 전통음식으로 발전되었다” 라고 말이다.

이탈리아 파스타 종류 중 “라비올리” 라는 것도 있는데. 위에서 상상하고 있는 제갈량 만두 창작설에 따르면 제갈량의 군대가 서역으로 진군하여 이탈리아 까지 가야 할 것이 아닌가. 아니면 최소한 제갈량 또는 동양으로부터 왔다는 문양정도는 남아있어야 제갈량 만두 창작설을 뒷받침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 더 보자 터키의 ‘만티’ 몽골의 ‘보쯔’ 같은 음식들. 발생연도나 장소는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지만 (이게 정상이다.) 만두의 큰 범주에 든다.

제갈량이 강가에서 만두를 만들어 남만의 억울한 죽음을 기리려고 했다는 이야기는 ‘삼국지연의’ 안에서만 유효하게 하자. 만두는 당시 비슷한  곡식재배가 가능한 지역에서  비슷한 조리방법을 바탕으로 발전한 음식이다. 어떤 서사가 정답인지는 만두를 들고 있는 사람의 몫이겠다. 물론 모든 음식이 역사적으로 성골이 가져야 하는 출생지를 가질 필요는 없다. 

 


음식의 역사는 지리적인 특성과 인문학적인 관계에서 비롯된다. 역사가 없으면 없다고 하면 되지 왜 자꾸 ‘음식디미방’과 ‘시의전서’만 괴롭히는가.

요즘 많이 먹는 라면들. 그 중에 하나, 예능 방송에서 나와서 한국야쿠르트에게 힘을 실어주었던 경우. 이경규가 만든 꼬꼬면. 예능을 진지하게 보는 분들께 물어보고 싶다.

한 회사의 생산라인이 예능에서 순식간에 만든 아이템에 맞춰서 아주 짧은 시간에 출시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이야기가 필요한 기업과 공신력을 추가해서 리얼 예능의 요소를 강화하고 싶어 하던 예능인과의 콜라보가 아닐까? 라는 상상을 해본다. 

음식은 인과가 가장 가열 차게 결합되어 있다. 선농단에서 설렁탕 나오는 것처럼 그냥 허술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음식을 전공하지 않은 필부의 입장에서 책과 여타의 자료를 찾아 호기심을 해결하려 할 때 큰 벽을 만난다. 위서에 가까운 음식서적을 돌려막기처럼 활용하는 학자들. ‘음식디미방’과 ‘시의전서’만 인용하면 단군신화처럼 허례의 역사를 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글쓰는 이들. 음식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기 바란다. 음식은 위로를 위해 만들어졌다. 권위를 원하는 음식은 없을 것이다.

맛있는 집보다는 저렴하면서도 위로를 받는 만두집들이 있다. 어머니를 모시고 갔던 만둣국 집, 직장 선배가 아침에 실적 없다고 깨진 신입후배를 데리고 먼 길 까지 가서 사준 분식집 만두, 운동선수로 살았지만 부상으로 제2의 삶을 살던 친구가 넘어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기 위해 홍콩까지 가서 주방에서 일하면서 배워온 만두. 우리의 역사가 담겨있는 만두집 몇 곳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 한다. 수원 보영만두, 인천 원보, 연남동 이품만두, 자하손만두, 신사동 딩딤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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