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석파정서울미술관 제공 차마 말하지 못해 부재중 통화가 되어버린 이야기들이 있다. 말하지 못할 비밀일 수 있고, 때론 말하고 싶어도 그 대상이 사라져 버린 경우일 수 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영원히 가슴 속에 묻고 살아야 한다. 어떤 비난이나 충고 없이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 누구나 한 번쯤은 세상에 그런 공간이 존재하길 희망한다.  2020년 2월 29일까지 석파정서울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설은아 작가의 개인전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는 이런 이야기를 홀가분하게 내려놓고 올 수 있는 일종의 ‘대나무숲’ 역할을 한다. 이 전시 공간은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곳이다.  전시회장에는 아날로그 전화기가 다수 전시되어 있다. 이따금 울리는 벨소리에 수화기를 집어 들면 과거에 녹음된 누군가의 음성메시지들이 시공간을 넘어 들려온다. 어린 시절 엄마·아빠 대신 날 키워주셨던 할머니께, 세상을 뜬 아버지에게, 현재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스스로에게 남긴 이야기들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관람객은 감정적 몰입과 감응을 고조시키고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전하는 짧은 사과부터, 부모님에게 전화는 긴 음성 편지 그리고 자신의 부재중 통화를 듣게 되는 다수의 사람에게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까지. 파도소리와 함께 전해지는 누군가의 부재중 통화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묘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지게 한다.  사진=석파정서울미술관 제공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마음이 동요된 관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건 전시장 한 편에 놓인 공중전화 박스다.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면 설은아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어 녹음이 시작된다. 관람객들은 누군가 들어줬으면 하는, ‘하지 못한 말’을 남기고 홀가분하게 공중전화 박스를 나선다.  전시장을 나서기 전, 지난해 전시회에 방문했던 사람들이 남긴 음성들을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서 자유롭게 놓아주는 퍼포먼스를 진행한 필름이 상영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크린 앞에 마련된 헤드폰을 통해 작가가 ‘부재중 통화’를 놓아주는 그 여정을 함께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2018년 12월 12일부터 2019년 10월 22일까지 총 4만 1324여통의 부재중 통화가 남겨졌고, 총 24만 1000번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전달됐다. 내년 초에는 올해 수신된 목소리를 세상의 끝, ‘사하라 사막’의 고요 속으로 자유롭게 놓아주고 올 계획이다.  사진=석파정서울미술관 제공 설은아 작가는 미디어아트와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구현 중인 인터렉티브 스토리텔러이자 웹디자이너다. 칸광고제에서 사이버부문 황금사자상을 비롯한 각종 국제 수상제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올해 ‘대한민국 디자인 대상’에서 최고영예인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이번 전시는 관람객이 자신의 개인적 추억과 진솔한 이야기를 직접 가공할 수 있는 형태의 인터렉티브 감성 미디어아트 작품으로 채웠다. 디지털 시대의 소외된 ‘소통’에 주목하는 작가인 만큼, 누군가와 진정한 소통으로 연결될 때 우리 모두는 서로의 치유자가 될 수 있음을 느끼게 한다.

[전시를 읽다] 차마 전하지 못한 말,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

설은아 작가, 디지털 시대에 소외된 ‘소통’에 주목

박정선 기자 승인 2019.12.02 14:12 | 최종 수정 2019.12.03 11:48 의견 0
사진=석파정서울미술관 제공

차마 말하지 못해 부재중 통화가 되어버린 이야기들이 있다. 말하지 못할 비밀일 수 있고, 때론 말하고 싶어도 그 대상이 사라져 버린 경우일 수 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영원히 가슴 속에 묻고 살아야 한다. 어떤 비난이나 충고 없이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 누구나 한 번쯤은 세상에 그런 공간이 존재하길 희망한다. 

2020년 2월 29일까지 석파정서울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설은아 작가의 개인전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는 이런 이야기를 홀가분하게 내려놓고 올 수 있는 일종의 ‘대나무숲’ 역할을 한다. 이 전시 공간은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곳이다. 

전시회장에는 아날로그 전화기가 다수 전시되어 있다. 이따금 울리는 벨소리에 수화기를 집어 들면 과거에 녹음된 누군가의 음성메시지들이 시공간을 넘어 들려온다. 어린 시절 엄마·아빠 대신 날 키워주셨던 할머니께, 세상을 뜬 아버지에게, 현재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스스로에게 남긴 이야기들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관람객은 감정적 몰입과 감응을 고조시키고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전하는 짧은 사과부터, 부모님에게 전화는 긴 음성 편지 그리고 자신의 부재중 통화를 듣게 되는 다수의 사람에게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까지. 파도소리와 함께 전해지는 누군가의 부재중 통화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묘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지게 한다. 

사진=석파정서울미술관 제공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마음이 동요된 관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건 전시장 한 편에 놓인 공중전화 박스다.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면 설은아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어 녹음이 시작된다. 관람객들은 누군가 들어줬으면 하는, ‘하지 못한 말’을 남기고 홀가분하게 공중전화 박스를 나선다. 

전시장을 나서기 전, 지난해 전시회에 방문했던 사람들이 남긴 음성들을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서 자유롭게 놓아주는 퍼포먼스를 진행한 필름이 상영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크린 앞에 마련된 헤드폰을 통해 작가가 ‘부재중 통화’를 놓아주는 그 여정을 함께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2018년 12월 12일부터 2019년 10월 22일까지 총 4만 1324여통의 부재중 통화가 남겨졌고, 총 24만 1000번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전달됐다. 내년 초에는 올해 수신된 목소리를 세상의 끝, ‘사하라 사막’의 고요 속으로 자유롭게 놓아주고 올 계획이다. 

사진=석파정서울미술관 제공

설은아 작가는 미디어아트와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구현 중인 인터렉티브 스토리텔러이자 웹디자이너다. 칸광고제에서 사이버부문 황금사자상을 비롯한 각종 국제 수상제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올해 ‘대한민국 디자인 대상’에서 최고영예인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이번 전시는 관람객이 자신의 개인적 추억과 진솔한 이야기를 직접 가공할 수 있는 형태의 인터렉티브 감성 미디어아트 작품으로 채웠다. 디지털 시대의 소외된 ‘소통’에 주목하는 작가인 만큼, 누군가와 진정한 소통으로 연결될 때 우리 모두는 서로의 치유자가 될 수 있음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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