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시청각실 제공 레트로, 뉴트로 열풍이 서울 골목길 풍경을 바꿔 놓았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노포에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가요계도 영향을 미쳤다. 싱글 앨범을 수시로 내놓는 가수들도 특별하게 LP, 혹은 테이프를 제작한다. 모두 옛 추억을 되살리거나, 그 때의 소재를 끌어와 추억을 재가공하는 것들이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의 촬영소 사거리에서도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 ‘시청각실’ 때문이다. 촬영소 사거리라 불리는 이 곳은 1960년대 촬영의 명소로 불렸다. 지금은 옛 촬영소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한적한 주택가다. 그 자리에 비디오 테이프로 명화와 만화를 보고, 술과 간단한 안주를 즐길 수 있는 ‘시청각실’이 들어선 것이다.  서른다섯의 두 청년, 김영용 씨와 강문규 씨는 영화 상영회를 정기적으로 하는 카페와 독립영화 감독의 스튜디오 옆 스무 평 남짓한 폐공장에 손수 페인트를 칠하고, 가구를 들여놓으면서 누군가의 추억을 되살리기로 했다. 함께 보냈던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시청각실에 담아놓음으로써 말이다.   사진=시청각실 제공 “거창한 계획을 가지고 시청각실을 만든 건 아니었어요. 술 한 잔 하면 보통 옛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우리도 여느 초등학교 동창생처럼 겹치는 추억의 공간들을 이야기하다가 그 때의 모습을 담은 아지트를 만들고 싶었어요. 때마침 뉴트로가 유행이기도 하니 ‘잘됐다’싶더라고요. 저는 비디오테이프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고, 친구는 와인 바를 하고 싶어 했어요. 큰 뜻 없이 각자 좋아하는 두 가지를 결합한 게 시청각실이에요. 비디오를 보면서 와인, 위스키, 맥주 등의 술과 간단한 안주를 곁들일 수 있죠”(이하 김영용 사장) “깊게 생각을 안 하는 스타일”이라는 두 사람이지만 곳곳에 세심함이 묻어났다. 시청각실은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목재 테이블 몇 개와 비디오 진열대, 바 테이블, 그리고 TV가 오밀조밀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좁은 문을 통해 들어서면 또 하나의 시청각실이 있는데 이곳은 분리된 공간처럼 꾸며져 ‘프라이빗’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너무 올드하지도, 너무 세련되지도 않게 꾸미고자 했어요.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요. 기본적으로 비디오가 주요 콘셉트지만 단순히 ‘비디오 가게’ ‘술집’의 느낌이 나지 않게 하는 것이 목표였죠. 기존에 틀을 부수고 직접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는데, 총 3주 정도의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벌써 6개월 전의 일이네요. 술 먹으며 상상했던 공간이 실제로 만들어지니까 진짜 아지트 같고,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사진=시청각실 제공 일종의 큐레이션도 존재한다. 김 사장은 싸게는 4000원, 비싸게는 15만원을 훌쩍 넘는 비디오 테이프를 무려 1000여 개가량 소장하고 있다. 시청각실에는 그중 일부분이 비치된다. ‘나홀로집에’ ‘타이타닉’ ‘레옹’ 등 고전 명화, 그리고 ‘세일러문’ ‘영심이’ ‘우뢰매’ ‘후레쉬맨’ 등 만화영화로 나뉘어져 있다. 손님들은 자유롭게 구경하고, 직접 보고 싶은 작품을 선택해 시청하는 시스템이다.  “새로운 비디오 테이프를 구하면 채워 넣고, 기존에 비치해놨던 것들 중에서 손님들이 많이 찾지 않는 것들을 빼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손님들이 좋아하는 것들은 늘 비치해 두고, 다른 것들은 꾸준히 로테이션 시키고 있죠. 어떤 손님은 시청각실의 콘셉트를 모르고 왔다가 너무 반가워하시더라고요. 오빠한테 영상통화로 시청각실에 있는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는데, 소위 ‘현실남매’처럼 무뚝뚝했던 오빠가 사르르 녹더라고요. 그런 걸 보니까 정말 뿌듯했어요. 차가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게 바로 추억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이들은 시청각실을 해질 무렵의 노을빛에 비유했다. 김 사장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집에 돌아가야 하는 시간, 그 무렵의 하늘을 보는 마음이 시청각실과 닮아 있다. 당시 사랑했던 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시청각실은 그 아쉬움을 간직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공간의 맛] 추억을 간직하고, 공유하는 공간…촬영소사거리 ‘시청각실’

비디오 테이프 자유롭게 시청
간단한 술과 안주도 곁들일 수 있어

박정선 기자 승인 2019.12.17 16:20 | 최종 수정 2019.12.18 13:42 의견 0
사진=시청각실 제공

레트로, 뉴트로 열풍이 서울 골목길 풍경을 바꿔 놓았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노포에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가요계도 영향을 미쳤다. 싱글 앨범을 수시로 내놓는 가수들도 특별하게 LP, 혹은 테이프를 제작한다. 모두 옛 추억을 되살리거나, 그 때의 소재를 끌어와 추억을 재가공하는 것들이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의 촬영소 사거리에서도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 ‘시청각실’ 때문이다. 촬영소 사거리라 불리는 이 곳은 1960년대 촬영의 명소로 불렸다. 지금은 옛 촬영소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한적한 주택가다. 그 자리에 비디오 테이프로 명화와 만화를 보고, 술과 간단한 안주를 즐길 수 있는 ‘시청각실’이 들어선 것이다. 

서른다섯의 두 청년, 김영용 씨와 강문규 씨는 영화 상영회를 정기적으로 하는 카페와 독립영화 감독의 스튜디오 옆 스무 평 남짓한 폐공장에 손수 페인트를 칠하고, 가구를 들여놓으면서 누군가의 추억을 되살리기로 했다. 함께 보냈던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시청각실에 담아놓음으로써 말이다.  

사진=시청각실 제공

“거창한 계획을 가지고 시청각실을 만든 건 아니었어요. 술 한 잔 하면 보통 옛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우리도 여느 초등학교 동창생처럼 겹치는 추억의 공간들을 이야기하다가 그 때의 모습을 담은 아지트를 만들고 싶었어요. 때마침 뉴트로가 유행이기도 하니 ‘잘됐다’싶더라고요. 저는 비디오테이프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고, 친구는 와인 바를 하고 싶어 했어요. 큰 뜻 없이 각자 좋아하는 두 가지를 결합한 게 시청각실이에요. 비디오를 보면서 와인, 위스키, 맥주 등의 술과 간단한 안주를 곁들일 수 있죠”(이하 김영용 사장)

“깊게 생각을 안 하는 스타일”이라는 두 사람이지만 곳곳에 세심함이 묻어났다. 시청각실은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목재 테이블 몇 개와 비디오 진열대, 바 테이블, 그리고 TV가 오밀조밀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좁은 문을 통해 들어서면 또 하나의 시청각실이 있는데 이곳은 분리된 공간처럼 꾸며져 ‘프라이빗’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너무 올드하지도, 너무 세련되지도 않게 꾸미고자 했어요.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요. 기본적으로 비디오가 주요 콘셉트지만 단순히 ‘비디오 가게’ ‘술집’의 느낌이 나지 않게 하는 것이 목표였죠. 기존에 틀을 부수고 직접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는데, 총 3주 정도의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벌써 6개월 전의 일이네요. 술 먹으며 상상했던 공간이 실제로 만들어지니까 진짜 아지트 같고,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사진=시청각실 제공

일종의 큐레이션도 존재한다. 김 사장은 싸게는 4000원, 비싸게는 15만원을 훌쩍 넘는 비디오 테이프를 무려 1000여 개가량 소장하고 있다. 시청각실에는 그중 일부분이 비치된다. ‘나홀로집에’ ‘타이타닉’ ‘레옹’ 등 고전 명화, 그리고 ‘세일러문’ ‘영심이’ ‘우뢰매’ ‘후레쉬맨’ 등 만화영화로 나뉘어져 있다. 손님들은 자유롭게 구경하고, 직접 보고 싶은 작품을 선택해 시청하는 시스템이다. 

“새로운 비디오 테이프를 구하면 채워 넣고, 기존에 비치해놨던 것들 중에서 손님들이 많이 찾지 않는 것들을 빼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손님들이 좋아하는 것들은 늘 비치해 두고, 다른 것들은 꾸준히 로테이션 시키고 있죠. 어떤 손님은 시청각실의 콘셉트를 모르고 왔다가 너무 반가워하시더라고요. 오빠한테 영상통화로 시청각실에 있는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는데, 소위 ‘현실남매’처럼 무뚝뚝했던 오빠가 사르르 녹더라고요. 그런 걸 보니까 정말 뿌듯했어요. 차가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게 바로 추억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이들은 시청각실을 해질 무렵의 노을빛에 비유했다. 김 사장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집에 돌아가야 하는 시간, 그 무렵의 하늘을 보는 마음이 시청각실과 닮아 있다. 당시 사랑했던 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시청각실은 그 아쉬움을 간직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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