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강이슬 작가 제공 tvN ‘SNL코리아’ ‘인생술집’ ‘놀라운 토요일’. 작가 인터뷰에서 왜 TV예능 프로그램을 말하는가 하면 이번에 만난 작가가 이 프로그램들의 방송 작가이기 때문이다. 비록 왕작가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막내급 작가인데다 2시간 출연에 80만원을 받아간 앵무새보다도 못한 급여를 받으며 일했지만 앞서 말한 프로그램들에 지대한 애정을 품었고 분명 일조한 부분이 있기에 강이슬 작가 프로필에 당당히 소개되어야 마땅한 이력이다.  이제 겨우 스물 아홉, 돌아오는 2020년에 서른이 되는 강 작가는 세상의 나이로는 어리지만 산전수전 다 겪으며 팍팍한 서울살이와 미디어에서 가장 척박하다는 방송작가 7년차를 보내며 내면이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났다. 그 경험들을 그러모아 써내려간 작품이 바로 ‘안 느끼한 산문집’이다. 제목부터 통통 튀는 이 에세이는 무명의 작가로선 드물게 5쇄까지 찍어내며 1만부 판매 고지 앞에 서 있다. 이는 요즘 에세이 트렌드라고도 할 수 있는 일회성, 소비성 글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어리다면 한창 어리다 할 수 있는 20대 막내작가의 글에는 삶을 관통하는 통찰력과 깊이 있는 사유, 탄식과 웃음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그만의 시선이 담겨 독자들을 매료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 24일, 본인의 작업실로 종종 이용한다는 서울 합정 근처 한 카페에서 강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안 느끼한 산문집’ 제목이 독특합니다. 느끼하다는 것이 작가님 책에선 ‘이상적’이라는 표현으로 읽힙니다만 여튼 느끼한 목표나 희망보다 당장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라 생각되는데 스스로는 어떠신가요, 정말 ‘안 느끼하게’ 써진 것 같나요? “스스로는 느끼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썼고요, 지금 봤을 때는 부끄럽지는 않아요. 다만 시간을 믿을 수는 없겠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금의 내가 겪은 일들이고 솔직한 감정이라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겠지만 예전 싸이월드에 울며 쓴 글이 요즘 보면 부끄러운 것처럼 그런 느낌이 아닐까 해요. 그런데 독자분들의 후기 중에 ‘간간이 느끼했다’고 하는 반응들이 있더라고요. 아마 독자분들은 사랑 이야기에서 그런 부분을 느끼지 않으셨을까 생각해요. 나도 그렇고 요즘 분들이 사랑을 부끄러워하는 분위기거든요. ‘이 사람을 사랑해, 너무 사랑해’ 했을 때 부끄러워하고 오글거리는 것 같아요. 하지만 더 사랑해야 하고 사랑은 쑥스러운 게 아니라는 게 내 지론입니다. 그런 건 느끼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사회 과반수가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하는 사회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감정이 부끄러운 사회가 된다면 그 사회가 더 살기 편한 사회일 것 같아요” ▲ 사랑꾼이시네요 “네 저는 사랑꾼이 맞습니다” ▲ 그런데 책의 첫 글이 사랑은 아니었고 성인방송 작가로 일한 경험이었습니다. 무척 충격적이기도 했고, 다소 의도가 보이기도 했는데요. 성인방송을 첫 글로 정한 건 본인이었나요? “아뇨, 사실은 편집자께서 ‘이건 무조건 앞으로 빼야겠다’ 하셨어요(웃음). 브런치에 쓴 글들 중에서는 두 번째 글이었습니다. 내 안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서 연인과 헤어진 후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썼고 그 다음으로 충격적이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던 일을 정리하고 싶어 성인방송 작가로 일한 경험을 썼어요. 출판사 제안에 의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첫 장이 성인방송 얘기라 안 살 수가 없었다’는 독자분들도 계시더라고요(웃음). 내게는 첫 책이라 글 배치에 대한 생각을 못했는데 출판사에 감사하죠. ‘단짠단짠’으로 잘 배분해주셨더라고요. 편집자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데 신기한 인연이기도 해요. 내가 지난해에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라는 책을 읽고 감명받아 글을 썼는데 브런치 대상 심사위원 중 한분이 이 책을 쓴 김은경 작가님이셨어요. 게다가 출간까지 도와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이죠” 사진=강이슬 작가 제공 ▲ 인생의 행운과도 같은 존재셨네요. 어쩌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려 애쓰던 작가님을 발굴하고 도와준 존재라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안 느끼한 산문집’은 한 20대 청춘의 가난과 고난과 역경을 그린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잖아요. 책을 보면서 왜 이렇게까지 가난하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지방에서 상경해 방송작가 일을 하고 있는데요, 사실 친구들과는 공감대가 많아요. 친구들끼리 만나면 꼭 하는 게 ‘내가 더 힘들다’ ‘그 정도면 많이 받는 거다’는 식의 가난배틀이거든요. 정말 모두 도토리 키재기에요. 방송작가라는 일이 정말 좋았고 그래서 버텼지만 혹자들은 ‘서울에 미쳐있다’ ‘지방으로 가라’는 식으로 다른 의도인 마냥 치부하기도 하세요. 그런데 난 정말 방송작가 일이 너무 재밌어서 분했을 정도였거든요. 어느 정도였나 하면 세 달 일해서 총 40만원 받았을 때가 있었어요. 공과금도 밀리고 쌀도 떨어지고 수도꼭지를 돌리면 녹이 섞여 나오는 상황에 긍정적인 성격인데도 현타(현자타임)가 오더라고요. 연봉 1000만원도 안돼 월세 20만원 낼 돈이 없어서 친구가 대신 내준 적도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너 대단해’ ‘힘들지’라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원래 그래’, ‘버텨야 이겨’라는 말들만 들었죠. 그래서 이를 악물고 나중에 훌륭한 작가가 된다면 후배들에게 버티라고 말하기보다는 잘못된 구조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한달에 10만원 받고 밤새가면서 워라밸은커녕 핸드폰을 놓지도 못해서 목욕탕도 못 가는 상황이 비일비재하지만 내가 참여한 방송이 나가고 나면 정말 행복해요. 특히 첫 프로그램이었던 ‘SNL코리아’는 마치 마약 같았어요. 생방인 터라 그 자리에서 관객들의 리액션이 보이거든요. 그럴 때 정말 ‘내가 사람들이 웃는 저 아이디어에 보탬이 됐어’라며 스스로가 멋져보였어요. 본디 인내심이 강한 편이 아니고 끈기없고 충동적인데 방송작가 일은 그 희열에 취해서 해 온 것 같아요” ▲ 책에도 구체적인 설명들이 나와요. 두 시간 출연한 앵무새가 본인의 한달 월급만큼 가져갔다거나 옥탑방에서 겨울이면 수도관이 얼어 물통을 들고 상가에 물을 뜨러 다녔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요. 더욱이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부모에게는 팍팍한 현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작품 전반에 걸쳐 고백했는데요. 책이 나오고 나서 부모님 반응이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게 가장 걱정됐었어요. 서울에서 혼자 살고 있을 때 엄마가 한번 오셨다가 반지하에 사는 모습을 보곤 그렇게 한숨을 쉬었거든요. 다행히 부모님께서는 딸이 써놓은 가난하고 힘들었던 글을 보고 ‘얼마나 힘들었니’라고 하시기보단 ‘역시 너는 독하고 멘탈이 튼튼하다’고 해주셨어요. 아마 쑥스러워서 무뚝뚝하게 말하신 것 같아요. 책 나오고 나서 ‘용돈 보내줄까?’라는 말을 자주 하시거든요(웃음). 사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그렇게 살아온 건데 부모님이 미안해할 일은 아니죠” ▲ 자립적인 딸이라 뿌듯하고 대견하실 것 같아요. 작품에도 부모님 얘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양친에 애틋한 마음이 있지만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무척 남다르더라고요. 지금의 강한 멘탈과 긍정적 성격은 아버지 영향인가요? “가장 친한 친구에게 할 수 있는 말보다 더 깊은 얘기를 할 수 있는, 내게 아버지는 그런 존재에요. 남자친구와 여행간다는 말을 엄마가 아닌 아빠에게 하는 정도요. 특히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나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줬어요. 6살 무렵부터 술집에 가면 내 앞에 콜라 한잔 따라주시고는 ‘너는 요즘 어떠니? 유치원에서 별 일 없니?’라고 묻고는 싫어하는 아이 이야기를 하면 당신 경험에 빗대 얘기해주곤 하셨어요. 지금도 함께 술 마시면 가장 재밌는 사람이에요. 아빠와 왜 사이가 좋지? 하고 생각해본 적 있는데 사춘기 때 아빠가 외국에 나가 계셨어서 그래서 더 애틋했던 것 같아요”   ▲ 서로를 존중하고 애틋해하는 딸이 대견하게도 책을 냈네요. 처녀작인데 책이 나왔을 때 기분은 어떠셨나요?  “1차 원고를 넘겼을 때가 가장 떨렸던 것 같아요. 호들갑을 떨 정도였는데 1차 원고를 내고 3개월 정도 후에 책이 나와서 정작 실물 책을 봤을 땐 그렇게까지 떨리진 않았던 것 같아요. 다만 후기가 올라오고 5쇄를 찍도록 책을 사준 독자분들이 공감해준다는 것에 고맙고 위로를 받을 때가 많아요” 사진=강이슬 작가 제공 ▲ 명실공히 제 6회 브런치 대상 수상작가입니다. 왜 브런치를 선택한 건가요? “에세이 시장이 곧 어떻게 변할지 어렴풋이 보이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브런치를 통해 출간한 작가로서 생각하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의 장점과 가치란 무엇이 있을까요?  “브런치는 글을 좋아하는 사람,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좋은 플랫폼이에요. 내 경우는 고등학생 때 수필을 쓴 이후로는 내 글, 나를 위한 글을 쓸 기회가 없어서 오프라인 글쓰기 모임을 찾아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추천을 받아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케이스거든요. 우선 브런치는 자신이 쓴 글을 올릴만한 곳이 마땅치 않은 이들에게 좋아요. 내가 고교 졸업 후 10년간 일이 아닌 글을 쓰지 않은 이유도 갈증은 있었지만 긴 글을 써도 이 글을 올릴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는 것이거든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내 이야기를 쓴 글을 올리면 올리는 스스로도 좀 민망한 기분이고 보는 사람도 오글거리는 분위기에요. 더군다나 SNS 자체가 짧은 글을 재미있게 가볍게 보는 곳이라서이기도 하고요. 반면 브런치는 긴 글을 올려도 보는 사람들이 반겨주는 분위기고 서로를 응원하고 위안이 되는 분위기에요.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 이런 느낌이 계속 글을 쓰도록 해준 원동력이 됐어요. 특히 브런치는 글을 봐요. 6회 대상작 응모할 때 구독자가 100명도 안됐거든요. 유명작가도 있고 1만 구독자를 거느린 이들도 있었던지라 ‘누가 글 하나하나를 다 읽고 뽑아주겠냐’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내가 뽑혔어요! 구독자가 10명도 안되는 고등학생 작가도 선정됐고요. 정말로, 브런치는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무엇보다 글을 쓰고 싶은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플랫폼입니다” ▲ 방송작가에 이어 책 작가도 됐는데 글을 쓴다는 행위에는 즐거움을 포함한, 혹은 상회하는 고통이 따르죠. 두 직업이 모두 글쓰는 일인데 힘들진 않으신가요?  “방송일은 확실하게 일의 영역이고요. 방송일이 아닌 내 글을 쓰는 일은 직업이라기보다는 취미라 생각하고 싶어요. 스스로 압박을 받고 즐거워지지가 않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글을 쓰는 일을 그만둘까봐서요. 그래서 언제, 어느 때 꼭 글을 써야지 하고 규정하지 않아요. 최대한 글쓰는 일만큼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적절히 안배를 하는데 글쓰기는 정말 너무너무 좋아하는 취미로 남기고 싶어요” ▲ 책 날개에 적힌 ‘가난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자기소개 문구가 너무 인상적이었는데요, 앞으로도 꾸준히 자신의 이야기로 글을 써나가실 생각이신가요?  “사실 원고료가 들어오고 책도 팔린 덕에 깜깜하고 암흑같지는 않아서 ‘가난은 그만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계약이 만기돼서 이사를 가긴 하지만 방바닥이 평평한 곳으로 갑니다. 지금까지 살던 곳은 울퉁불퉁해서 체중계나 온수매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정도였거든요. 대출을 받았는데 대출자격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어요. 그래서 앞으로의 글은 가난은 아닐 것 같지만 다음에 내기로 한 책도 에세이라서 일상의 일들이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쥐어짜는 느낌보다는 나 스스로 끝까지 즐겁게 쓸 수 있는 글들로 꾸리려고 해요. 그리고 나중엔 코미디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SNL코리아’를 하면서 고정관념에서 살짝 비껴나가 웃음을 전하는 작업들이 즐거웠거든요. 훗날 내공이 쌓이면 영상으로든 글로든 코미디와 관련한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마주보기] 카카오 브런치 대상 작가, 강이슬의 운명적인 글쓰기

강이슬 작가, 브런치 제 6회 대상 작가로 선정 '안 느끼한 산문집' 출간
20대의 꿈, 청춘, 사랑을 담은 담담하고 솔직한 고백에 독자 호평

문다영 기자 승인 2019.12.31 10:08 의견 0
사진=강이슬 작가 제공


tvN ‘SNL코리아’ ‘인생술집’ ‘놀라운 토요일’. 작가 인터뷰에서 왜 TV예능 프로그램을 말하는가 하면 이번에 만난 작가가 이 프로그램들의 방송 작가이기 때문이다. 비록 왕작가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막내급 작가인데다 2시간 출연에 80만원을 받아간 앵무새보다도 못한 급여를 받으며 일했지만 앞서 말한 프로그램들에 지대한 애정을 품었고 분명 일조한 부분이 있기에 강이슬 작가 프로필에 당당히 소개되어야 마땅한 이력이다. 

이제 겨우 스물 아홉, 돌아오는 2020년에 서른이 되는 강 작가는 세상의 나이로는 어리지만 산전수전 다 겪으며 팍팍한 서울살이와 미디어에서 가장 척박하다는 방송작가 7년차를 보내며 내면이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났다. 그 경험들을 그러모아 써내려간 작품이 바로 ‘안 느끼한 산문집’이다. 제목부터 통통 튀는 이 에세이는 무명의 작가로선 드물게 5쇄까지 찍어내며 1만부 판매 고지 앞에 서 있다. 이는 요즘 에세이 트렌드라고도 할 수 있는 일회성, 소비성 글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어리다면 한창 어리다 할 수 있는 20대 막내작가의 글에는 삶을 관통하는 통찰력과 깊이 있는 사유, 탄식과 웃음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그만의 시선이 담겨 독자들을 매료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 24일, 본인의 작업실로 종종 이용한다는 서울 합정 근처 한 카페에서 강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안 느끼한 산문집’ 제목이 독특합니다. 느끼하다는 것이 작가님 책에선 ‘이상적’이라는 표현으로 읽힙니다만 여튼 느끼한 목표나 희망보다 당장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라 생각되는데 스스로는 어떠신가요, 정말 ‘안 느끼하게’ 써진 것 같나요?

“스스로는 느끼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썼고요, 지금 봤을 때는 부끄럽지는 않아요. 다만 시간을 믿을 수는 없겠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금의 내가 겪은 일들이고 솔직한 감정이라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겠지만 예전 싸이월드에 울며 쓴 글이 요즘 보면 부끄러운 것처럼 그런 느낌이 아닐까 해요. 그런데 독자분들의 후기 중에 ‘간간이 느끼했다’고 하는 반응들이 있더라고요. 아마 독자분들은 사랑 이야기에서 그런 부분을 느끼지 않으셨을까 생각해요. 나도 그렇고 요즘 분들이 사랑을 부끄러워하는 분위기거든요. ‘이 사람을 사랑해, 너무 사랑해’ 했을 때 부끄러워하고 오글거리는 것 같아요. 하지만 더 사랑해야 하고 사랑은 쑥스러운 게 아니라는 게 내 지론입니다. 그런 건 느끼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사회 과반수가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하는 사회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감정이 부끄러운 사회가 된다면 그 사회가 더 살기 편한 사회일 것 같아요”

▲ 사랑꾼이시네요

“네 저는 사랑꾼이 맞습니다”

▲ 그런데 책의 첫 글이 사랑은 아니었고 성인방송 작가로 일한 경험이었습니다. 무척 충격적이기도 했고, 다소 의도가 보이기도 했는데요. 성인방송을 첫 글로 정한 건 본인이었나요?

“아뇨, 사실은 편집자께서 ‘이건 무조건 앞으로 빼야겠다’ 하셨어요(웃음). 브런치에 쓴 글들 중에서는 두 번째 글이었습니다. 내 안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서 연인과 헤어진 후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썼고 그 다음으로 충격적이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던 일을 정리하고 싶어 성인방송 작가로 일한 경험을 썼어요. 출판사 제안에 의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첫 장이 성인방송 얘기라 안 살 수가 없었다’는 독자분들도 계시더라고요(웃음). 내게는 첫 책이라 글 배치에 대한 생각을 못했는데 출판사에 감사하죠. ‘단짠단짠’으로 잘 배분해주셨더라고요. 편집자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데 신기한 인연이기도 해요. 내가 지난해에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라는 책을 읽고 감명받아 글을 썼는데 브런치 대상 심사위원 중 한분이 이 책을 쓴 김은경 작가님이셨어요. 게다가 출간까지 도와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이죠”

사진=강이슬 작가 제공


▲ 인생의 행운과도 같은 존재셨네요. 어쩌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려 애쓰던 작가님을 발굴하고 도와준 존재라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안 느끼한 산문집’은 한 20대 청춘의 가난과 고난과 역경을 그린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잖아요. 책을 보면서 왜 이렇게까지 가난하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지방에서 상경해 방송작가 일을 하고 있는데요, 사실 친구들과는 공감대가 많아요. 친구들끼리 만나면 꼭 하는 게 ‘내가 더 힘들다’ ‘그 정도면 많이 받는 거다’는 식의 가난배틀이거든요. 정말 모두 도토리 키재기에요. 방송작가라는 일이 정말 좋았고 그래서 버텼지만 혹자들은 ‘서울에 미쳐있다’ ‘지방으로 가라’는 식으로 다른 의도인 마냥 치부하기도 하세요. 그런데 난 정말 방송작가 일이 너무 재밌어서 분했을 정도였거든요. 어느 정도였나 하면 세 달 일해서 총 40만원 받았을 때가 있었어요. 공과금도 밀리고 쌀도 떨어지고 수도꼭지를 돌리면 녹이 섞여 나오는 상황에 긍정적인 성격인데도 현타(현자타임)가 오더라고요. 연봉 1000만원도 안돼 월세 20만원 낼 돈이 없어서 친구가 대신 내준 적도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너 대단해’ ‘힘들지’라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원래 그래’, ‘버텨야 이겨’라는 말들만 들었죠. 그래서 이를 악물고 나중에 훌륭한 작가가 된다면 후배들에게 버티라고 말하기보다는 잘못된 구조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한달에 10만원 받고 밤새가면서 워라밸은커녕 핸드폰을 놓지도 못해서 목욕탕도 못 가는 상황이 비일비재하지만 내가 참여한 방송이 나가고 나면 정말 행복해요. 특히 첫 프로그램이었던 ‘SNL코리아’는 마치 마약 같았어요. 생방인 터라 그 자리에서 관객들의 리액션이 보이거든요. 그럴 때 정말 ‘내가 사람들이 웃는 저 아이디어에 보탬이 됐어’라며 스스로가 멋져보였어요. 본디 인내심이 강한 편이 아니고 끈기없고 충동적인데 방송작가 일은 그 희열에 취해서 해 온 것 같아요”

▲ 책에도 구체적인 설명들이 나와요. 두 시간 출연한 앵무새가 본인의 한달 월급만큼 가져갔다거나 옥탑방에서 겨울이면 수도관이 얼어 물통을 들고 상가에 물을 뜨러 다녔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요. 더욱이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부모에게는 팍팍한 현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작품 전반에 걸쳐 고백했는데요. 책이 나오고 나서 부모님 반응이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게 가장 걱정됐었어요. 서울에서 혼자 살고 있을 때 엄마가 한번 오셨다가 반지하에 사는 모습을 보곤 그렇게 한숨을 쉬었거든요. 다행히 부모님께서는 딸이 써놓은 가난하고 힘들었던 글을 보고 ‘얼마나 힘들었니’라고 하시기보단 ‘역시 너는 독하고 멘탈이 튼튼하다’고 해주셨어요. 아마 쑥스러워서 무뚝뚝하게 말하신 것 같아요. 책 나오고 나서 ‘용돈 보내줄까?’라는 말을 자주 하시거든요(웃음). 사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그렇게 살아온 건데 부모님이 미안해할 일은 아니죠”

▲ 자립적인 딸이라 뿌듯하고 대견하실 것 같아요. 작품에도 부모님 얘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양친에 애틋한 마음이 있지만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무척 남다르더라고요. 지금의 강한 멘탈과 긍정적 성격은 아버지 영향인가요?

“가장 친한 친구에게 할 수 있는 말보다 더 깊은 얘기를 할 수 있는, 내게 아버지는 그런 존재에요. 남자친구와 여행간다는 말을 엄마가 아닌 아빠에게 하는 정도요. 특히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나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줬어요. 6살 무렵부터 술집에 가면 내 앞에 콜라 한잔 따라주시고는 ‘너는 요즘 어떠니? 유치원에서 별 일 없니?’라고 묻고는 싫어하는 아이 이야기를 하면 당신 경험에 빗대 얘기해주곤 하셨어요. 지금도 함께 술 마시면 가장 재밌는 사람이에요. 아빠와 왜 사이가 좋지? 하고 생각해본 적 있는데 사춘기 때 아빠가 외국에 나가 계셨어서 그래서 더 애틋했던 것 같아요”
 
▲ 서로를 존중하고 애틋해하는 딸이 대견하게도 책을 냈네요. 처녀작인데 책이 나왔을 때 기분은 어떠셨나요? 

“1차 원고를 넘겼을 때가 가장 떨렸던 것 같아요. 호들갑을 떨 정도였는데 1차 원고를 내고 3개월 정도 후에 책이 나와서 정작 실물 책을 봤을 땐 그렇게까지 떨리진 않았던 것 같아요. 다만 후기가 올라오고 5쇄를 찍도록 책을 사준 독자분들이 공감해준다는 것에 고맙고 위로를 받을 때가 많아요”

사진=강이슬 작가 제공


▲ 명실공히 제 6회 브런치 대상 수상작가입니다. 왜 브런치를 선택한 건가요? “에세이 시장이 곧 어떻게 변할지 어렴풋이 보이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브런치를 통해 출간한 작가로서 생각하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의 장점과 가치란 무엇이 있을까요? 

“브런치는 글을 좋아하는 사람,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좋은 플랫폼이에요. 내 경우는 고등학생 때 수필을 쓴 이후로는 내 글, 나를 위한 글을 쓸 기회가 없어서 오프라인 글쓰기 모임을 찾아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추천을 받아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케이스거든요. 우선 브런치는 자신이 쓴 글을 올릴만한 곳이 마땅치 않은 이들에게 좋아요. 내가 고교 졸업 후 10년간 일이 아닌 글을 쓰지 않은 이유도 갈증은 있었지만 긴 글을 써도 이 글을 올릴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는 것이거든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내 이야기를 쓴 글을 올리면 올리는 스스로도 좀 민망한 기분이고 보는 사람도 오글거리는 분위기에요. 더군다나 SNS 자체가 짧은 글을 재미있게 가볍게 보는 곳이라서이기도 하고요. 반면 브런치는 긴 글을 올려도 보는 사람들이 반겨주는 분위기고 서로를 응원하고 위안이 되는 분위기에요.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 이런 느낌이 계속 글을 쓰도록 해준 원동력이 됐어요. 특히 브런치는 글을 봐요. 6회 대상작 응모할 때 구독자가 100명도 안됐거든요. 유명작가도 있고 1만 구독자를 거느린 이들도 있었던지라 ‘누가 글 하나하나를 다 읽고 뽑아주겠냐’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내가 뽑혔어요! 구독자가 10명도 안되는 고등학생 작가도 선정됐고요. 정말로, 브런치는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무엇보다 글을 쓰고 싶은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플랫폼입니다”

▲ 방송작가에 이어 책 작가도 됐는데 글을 쓴다는 행위에는 즐거움을 포함한, 혹은 상회하는 고통이 따르죠. 두 직업이 모두 글쓰는 일인데 힘들진 않으신가요? 

“방송일은 확실하게 일의 영역이고요. 방송일이 아닌 내 글을 쓰는 일은 직업이라기보다는 취미라 생각하고 싶어요. 스스로 압박을 받고 즐거워지지가 않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글을 쓰는 일을 그만둘까봐서요. 그래서 언제, 어느 때 꼭 글을 써야지 하고 규정하지 않아요. 최대한 글쓰는 일만큼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적절히 안배를 하는데 글쓰기는 정말 너무너무 좋아하는 취미로 남기고 싶어요”

▲ 책 날개에 적힌 ‘가난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자기소개 문구가 너무 인상적이었는데요, 앞으로도 꾸준히 자신의 이야기로 글을 써나가실 생각이신가요? 

“사실 원고료가 들어오고 책도 팔린 덕에 깜깜하고 암흑같지는 않아서 ‘가난은 그만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계약이 만기돼서 이사를 가긴 하지만 방바닥이 평평한 곳으로 갑니다. 지금까지 살던 곳은 울퉁불퉁해서 체중계나 온수매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정도였거든요. 대출을 받았는데 대출자격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어요. 그래서 앞으로의 글은 가난은 아닐 것 같지만 다음에 내기로 한 책도 에세이라서 일상의 일들이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쥐어짜는 느낌보다는 나 스스로 끝까지 즐겁게 쓸 수 있는 글들로 꾸리려고 해요. 그리고 나중엔 코미디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SNL코리아’를 하면서 고정관념에서 살짝 비껴나가 웃음을 전하는 작업들이 즐거웠거든요. 훗날 내공이 쌓이면 영상으로든 글로든 코미디와 관련한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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