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CJ ENM 나이 40을 넘어 웬 아이돌이냐는 말을 많이 듣는데, 좋은걸 어쩌겠는가. 요즘 한국에 아닌 사람이 없다는 ‘아미’로서 다시금 ‘덕질’ 세상에 입덕해 생활의 행복 하나를 ‘겟’ 하였다. 덕분에 파이널 무대를 장식하는 방탄소년단을 보기위해 연말 연초의 여러 시상식과 지상파 가요 결산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니 아이돌을 좋아하는 본인조차도 비슷비슷한 음악과 춤사위에 다소 무료해짐을 느꼈다. 시상식엔 왜 다른 장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건지.  전국의 트로트 붐을 일으키고 있는 송가인 씨도 있었고, 어느새 언더 장르가 아니게 된 힙합도 있었고, 밴드도 있었고, 발라드도 있었고.. 심지어 그 잘나간다는 아이유도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찾아보기가 힘들다. 티켓 파워와 관중파워가 비교 불가라는 말도 알겠는데, 이건 수익 창출을 해야 하는 콘서트가 아니지 않는가.  앞서 말했듯이 나 역시 팬으로서 아이돌 음악 장르 (지금은 케이팝으로 대변되고 있는)를 무시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서양 음악이 마치 교과서 이냥 혹은 우월한 음악 이냥 치부되는 시기는 점점 지나고 있다고 본다. 현재 모든 음악이 그들의 음악과 같았다면 우리 음악시장은 언제나 그들의 하위급으로 평가되거나 영어 발음이 구리다는 둥 오리지널티(Originality)가 없다는 둥 무시의 대상이 되거나 혹은 같은 음악들 사이에서 언젠가는 사장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수년의 역사를 가진 장르에 대한 그들의 솔(Soul)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 마치 그들이 대중적으로 판소리나 트로트를 진정으로 이해하여 표현 하리라 기대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게다가 그런 음악이 인기가 없어질 때 우리의 시장도 같이 사라지게 된다. 세상은 무엇이든 한 가지만 존재할 시에 언젠가는 멸종되었다. 대체재나 옮겨갈 곳이 없으면 당연하지 않은가.  이런 의미에서 케이팝 (아이돌) 장르의 탄생과 이의 세계화가 뿌듯하다. 하나의 노래 안에서 펼쳐지는 변화무쌍한 전개와, 패션과, 춤사위가 펼쳐지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이 장르는 저 서양(?) 음악이 시들해지더라도 우리만의 독특한 장르로 계속 살아남을 것이며 전세계에서 대중의 관심을 받을 것이라 보인다. 뭔 노래도 아닌 걸 듣는 냐고 어른들에게 구박받던 시대를 지나 꾸준한 발전으로 그 어떤 제조업보다 독특한 수익창출과 더불어 외교 선양을 하고 있지 않은가. 서태지와 아이들 세대로서 참 뿌듯한 일이다.  허나, 우리에게 아이돌 음악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돌 음악이라는 정의가 제대로 되었는지는 좀 의문이다) 아이돌 음악처럼 우리 안에서 얼마든지 많은 장르가 존재할진대 매주 보이는 주요 음악 프로그램과 시상식에는 온통 그들의 음악 밖에는 없다. 요즘 어디가 뜬다네~하면 몰렸다가 사라지는 동네 상권들도 그렇고, 대만 샌드위치나 마라탕처럼 유행이라네 하면 여기저기 생겼다 금세 사라지는 메뉴들도 그렇고, 어디가 맛있다네 하면 며칠간만 줄에 줄을 서야 먹는 식당도 그렇거니와 공연을 보러오는 관중 때문인지, 댓글을 다는 어린 친구들 때문인지 공연을 주체하는 이들도 문화와 이 시장의 발전을 보기보다, 당장의 트렌드라 씌워진 내용만 좇아가기 바쁜 듯 해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들었다놨다 해서 미안하지만 우리가 그리 동경하던 서양의 유명한 시상식과 연말 음악 행사들이 다양한 장르로 나누어 분야별 상을 수여하고, 예전의 음악들도 공유하며 축제처럼 즐기지 않는가. 다양성과 각각의 중요함을 인지하고 있으니 꾸준한 발전을 이루는 것이고 아티스트들이 내가 잊혀질까 걱정하는 일처럼 한 번에 사장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알면서도 부러워만 하고 있는것 하다. 그건 그들이니까.. 라며.  종전에 멸종 얘기를 했지만, 작게 보면 우리에게도 해당 되는 일일 수 있다. 음악에 있어서 아이돌 음악만이 케이팝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면.. 그 음악이 시들해지면 어쩔 것인가. 시상식은 이제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세계화는 또 그냥 쉽사리 다른 장르로 키우기 위해 몇 십 년의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인가. 음악을 소비하는 이들도 한 몫 하겠지만, 시장에서 그 음악을 키우고 보여주는 이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할 때라 생각된다. 한 분야의 깊이는 다양성 안에서 빛이 난다. 부러워만 하기에는 이제 우리 소비자도, 기획자도, 아티스트도, 자금력도, 문화 파워도, 지식도, 플랫폼도 여러모로 꽤 컸다.  바라건대 내년엔 다양함의 축제를 즐기게 되길 소망해 본다.

[오팀장의 별별엔터테인먼트] 가요계 장르의 편중, 멸망은 피하자

오경하 팀장 승인 2020.01.06 12:58 의견 0
사진=CJ ENM


나이 40을 넘어 웬 아이돌이냐는 말을 많이 듣는데, 좋은걸 어쩌겠는가. 요즘 한국에 아닌 사람이 없다는 ‘아미’로서 다시금 ‘덕질’ 세상에 입덕해 생활의 행복 하나를 ‘겟’ 하였다. 덕분에 파이널 무대를 장식하는 방탄소년단을 보기위해 연말 연초의 여러 시상식과 지상파 가요 결산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니 아이돌을 좋아하는 본인조차도 비슷비슷한 음악과 춤사위에 다소 무료해짐을 느꼈다. 시상식엔 왜 다른 장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건지. 

전국의 트로트 붐을 일으키고 있는 송가인 씨도 있었고, 어느새 언더 장르가 아니게 된 힙합도 있었고, 밴드도 있었고, 발라드도 있었고.. 심지어 그 잘나간다는 아이유도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찾아보기가 힘들다. 티켓 파워와 관중파워가 비교 불가라는 말도 알겠는데, 이건 수익 창출을 해야 하는 콘서트가 아니지 않는가. 

앞서 말했듯이 나 역시 팬으로서 아이돌 음악 장르 (지금은 케이팝으로 대변되고 있는)를 무시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서양 음악이 마치 교과서 이냥 혹은 우월한 음악 이냥 치부되는 시기는 점점 지나고 있다고 본다. 현재 모든 음악이 그들의 음악과 같았다면 우리 음악시장은 언제나 그들의 하위급으로 평가되거나 영어 발음이 구리다는 둥 오리지널티(Originality)가 없다는 둥 무시의 대상이 되거나 혹은 같은 음악들 사이에서 언젠가는 사장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수년의 역사를 가진 장르에 대한 그들의 솔(Soul)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 마치 그들이 대중적으로 판소리나 트로트를 진정으로 이해하여 표현 하리라 기대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게다가 그런 음악이 인기가 없어질 때 우리의 시장도 같이 사라지게 된다. 세상은 무엇이든 한 가지만 존재할 시에 언젠가는 멸종되었다. 대체재나 옮겨갈 곳이 없으면 당연하지 않은가. 

이런 의미에서 케이팝 (아이돌) 장르의 탄생과 이의 세계화가 뿌듯하다. 하나의 노래 안에서 펼쳐지는 변화무쌍한 전개와, 패션과, 춤사위가 펼쳐지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이 장르는 저 서양(?) 음악이 시들해지더라도 우리만의 독특한 장르로 계속 살아남을 것이며 전세계에서 대중의 관심을 받을 것이라 보인다. 뭔 노래도 아닌 걸 듣는 냐고 어른들에게 구박받던 시대를 지나 꾸준한 발전으로 그 어떤 제조업보다 독특한 수익창출과 더불어 외교 선양을 하고 있지 않은가. 서태지와 아이들 세대로서 참 뿌듯한 일이다. 

허나, 우리에게 아이돌 음악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돌 음악이라는 정의가 제대로 되었는지는 좀 의문이다) 아이돌 음악처럼 우리 안에서 얼마든지 많은 장르가 존재할진대 매주 보이는 주요 음악 프로그램과 시상식에는 온통 그들의 음악 밖에는 없다. 요즘 어디가 뜬다네~하면 몰렸다가 사라지는 동네 상권들도 그렇고, 대만 샌드위치나 마라탕처럼 유행이라네 하면 여기저기 생겼다 금세 사라지는 메뉴들도 그렇고, 어디가 맛있다네 하면 며칠간만 줄에 줄을 서야 먹는 식당도 그렇거니와 공연을 보러오는 관중 때문인지, 댓글을 다는 어린 친구들 때문인지 공연을 주체하는 이들도 문화와 이 시장의 발전을 보기보다, 당장의 트렌드라 씌워진 내용만 좇아가기 바쁜 듯 해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들었다놨다 해서 미안하지만 우리가 그리 동경하던 서양의 유명한 시상식과 연말 음악 행사들이 다양한 장르로 나누어 분야별 상을 수여하고, 예전의 음악들도 공유하며 축제처럼 즐기지 않는가. 다양성과 각각의 중요함을 인지하고 있으니 꾸준한 발전을 이루는 것이고 아티스트들이 내가 잊혀질까 걱정하는 일처럼 한 번에 사장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알면서도 부러워만 하고 있는것 하다. 그건 그들이니까.. 라며. 

종전에 멸종 얘기를 했지만, 작게 보면 우리에게도 해당 되는 일일 수 있다. 음악에 있어서 아이돌 음악만이 케이팝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면.. 그 음악이 시들해지면 어쩔 것인가. 시상식은 이제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세계화는 또 그냥 쉽사리 다른 장르로 키우기 위해 몇 십 년의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인가. 음악을 소비하는 이들도 한 몫 하겠지만, 시장에서 그 음악을 키우고 보여주는 이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할 때라 생각된다. 한 분야의 깊이는 다양성 안에서 빛이 난다. 부러워만 하기에는 이제 우리 소비자도, 기획자도, 아티스트도, 자금력도, 문화 파워도, 지식도, 플랫폼도 여러모로 꽤 컸다. 

바라건대 내년엔 다양함의 축제를 즐기게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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