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설리 인스타그램   9월 마지막 날, 그리고 10월 첫날 인터넷에서는 두 키워드가 눈길을 잡았다. 10월 개봉을 앞두고 제작보고회를 개최한 영화 ‘82년생 김지영’과 그 하루 전날 29일, 자신의 방송 중 가슴을 노출한 설리였다. ‘82년생 김지영’은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자마자 논란의 중심에 섰다. 시작은 남성들의 불편함이었다. 여성이 사회에서 겪어야 할 여러 어려움의 이유가 남성이었다는 점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불만은 “과거 어머니들 세대라면 모를까, 82년생이면 여성들이 오히려 혜택 받은 세대 아니냐”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현재는 남성이 더 차별받는 시대라고 반박했다. 여성들은 아직도 한국은 남성 중심 사회에고, ‘82년생 김지영’의 내용에서 공감할 부분이 많다며, 남성들의 반발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중간 지대도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일뿐 한국에서의 여성 혹은 남성들의 삶을 일반화시킨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젠더 논쟁에서 이런 중간 지대의 목소리는 사실 자주 묻힌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는 만들어졌고 곧 개봉한다고 알려지자, 잠잠했던 논쟁은 다시 불이 붙었다. 영화가 공개된 것도 아닌 단지 제작보고회일 뿐인데, 기사 댓글은 논쟁적 공간이 되었고, 여배우인 정유미는 “악플과 평점 테러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남성들의 영화 보이콧 댓글이 이어졌고, 여성들은 N차 관람으로 맞불을 놨다. 설리는 인스타그램 생방송 중 가슴이 노출됐다. 물론 설리가 도발적인 행동을 하고 그런 류의 사진을 올린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뭐가 문제야”라며 불편해 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리를 향한 비판은 끊이질 않는다. 설리 등 걸그룹 멤버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걸그룹은 이래야 한다”라는 틀을 적용시킨다. 대부분은 근엄한 도덕적 이야기다. 물론 이들이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청소년들이 따라할 수 있기에”이다. 사실 웃기는 소리다. 미디어 플랫폼이 TV에 한정됐던 90년대도 아니고, 국내외 어떤 소식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이런 주장은 옹색할 뿐이다. 특히 설리의 행동에 더 비판이 가해지는 이유는 무반응 때문이다. 보통 연예인은 비판이 가해지면 사과를 하든지의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설리는 ‘마이웨이’다. 오히려 대중의 반응을 즐긴다. 사실 설리의 섹스어필이 죄가 아니다. 결국 불편함의 표현은 대중의 배설이고, 미디어의 과한 관심이다.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지만, ‘82년생 김지영’과 설리를 향한 논쟁의 시작은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삶에 대한 범위 설정 때문이다. “남자는 그래도 돼” “남자는 이래야 해”는 양립해 사용됐지만, “여자는 이래야 해”와 비교해 “여자는 그래도 돼”의 사용빈도는 극히 낮다. 그리고 ‘82년생 김지영’은 “여자는 이래야 해”의 틀에서 살아온 이야기라면, 설리가 보여주는 모습은 “여자는 (혹은 여자도) 그래도 돼”의 틀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물론 극단적인 여성들은 이런 범위 설정을 남성들이 했고, 때문에 ‘남성은 적’이라는 식의 규정을 한다. ‘오버’다. 사회가 형성되면서 모두가 만들어낸 것이고, 잘못된 것은 모두가 논의해야 할 내용이다. 그리고 변화의 분위기는 ‘82년생 김지영’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여성이 있고 공감을 하는 남성이 있는 것, 그리고 설리를 향한 비판을 “문제가 뭔데”라고 하는 반응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유명준의 시선] ‘82년생 김지영’ 그리고 설리

유명준 기자 승인 2019.10.02 10:40 | 최종 수정 2139.07.03 00:00 의견 0
사진=연합뉴스, 설리 인스타그램
사진=연합뉴스, 설리 인스타그램

 

9월 마지막 날, 그리고 10월 첫날 인터넷에서는 두 키워드가 눈길을 잡았다. 10월 개봉을 앞두고 제작보고회를 개최한 영화 ‘82년생 김지영’과 그 하루 전날 29일, 자신의 방송 중 가슴을 노출한 설리였다.

‘82년생 김지영’은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자마자 논란의 중심에 섰다. 시작은 남성들의 불편함이었다. 여성이 사회에서 겪어야 할 여러 어려움의 이유가 남성이었다는 점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불만은 “과거 어머니들 세대라면 모를까, 82년생이면 여성들이 오히려 혜택 받은 세대 아니냐”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현재는 남성이 더 차별받는 시대라고 반박했다. 여성들은 아직도 한국은 남성 중심 사회에고, ‘82년생 김지영’의 내용에서 공감할 부분이 많다며, 남성들의 반발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중간 지대도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일뿐 한국에서의 여성 혹은 남성들의 삶을 일반화시킨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젠더 논쟁에서 이런 중간 지대의 목소리는 사실 자주 묻힌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는 만들어졌고 곧 개봉한다고 알려지자, 잠잠했던 논쟁은 다시 불이 붙었다. 영화가 공개된 것도 아닌 단지 제작보고회일 뿐인데, 기사 댓글은 논쟁적 공간이 되었고, 여배우인 정유미는 “악플과 평점 테러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남성들의 영화 보이콧 댓글이 이어졌고, 여성들은 N차 관람으로 맞불을 놨다.

설리는 인스타그램 생방송 중 가슴이 노출됐다. 물론 설리가 도발적인 행동을 하고 그런 류의 사진을 올린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뭐가 문제야”라며 불편해 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리를 향한 비판은 끊이질 않는다.

설리 등 걸그룹 멤버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걸그룹은 이래야 한다”라는 틀을 적용시킨다. 대부분은 근엄한 도덕적 이야기다. 물론 이들이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청소년들이 따라할 수 있기에”이다. 사실 웃기는 소리다. 미디어 플랫폼이 TV에 한정됐던 90년대도 아니고, 국내외 어떤 소식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이런 주장은 옹색할 뿐이다.

특히 설리의 행동에 더 비판이 가해지는 이유는 무반응 때문이다. 보통 연예인은 비판이 가해지면 사과를 하든지의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설리는 ‘마이웨이’다. 오히려 대중의 반응을 즐긴다. 사실 설리의 섹스어필이 죄가 아니다. 결국 불편함의 표현은 대중의 배설이고, 미디어의 과한 관심이다.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지만, ‘82년생 김지영’과 설리를 향한 논쟁의 시작은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삶에 대한 범위 설정 때문이다.

“남자는 그래도 돼” “남자는 이래야 해”는 양립해 사용됐지만, “여자는 이래야 해”와 비교해 “여자는 그래도 돼”의 사용빈도는 극히 낮다. 그리고 ‘82년생 김지영’은 “여자는 이래야 해”의 틀에서 살아온 이야기라면, 설리가 보여주는 모습은 “여자는 (혹은 여자도) 그래도 돼”의 틀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물론 극단적인 여성들은 이런 범위 설정을 남성들이 했고, 때문에 ‘남성은 적’이라는 식의 규정을 한다. ‘오버’다. 사회가 형성되면서 모두가 만들어낸 것이고, 잘못된 것은 모두가 논의해야 할 내용이다. 그리고 변화의 분위기는 ‘82년생 김지영’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여성이 있고 공감을 하는 남성이 있는 것, 그리고 설리를 향한 비판을 “문제가 뭔데”라고 하는 반응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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